1.
천하에 둘도 없는 악인이라 생각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천박함이 있다 생각했었다.
가슴속으로 칼을 갈았던게 10년이고, 죽을 때까지 응보하지 못하면
한 순간이라도 더 오래 살아서 죽기 전에 무덤에 칼이라도 꽂고 죽겠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참으로 깃털처럼 소소하게 스치다가 만나서
경우에 맞지 않게 인사를 하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양 안부를 묻고 형식이야 어쨌건 화해를 하였다.
10년 간 속에 갈아왔던 칼이 순간 바람든 무 하나 잘라버리지도 못하고
훅 하니 사라져버렸다.
세월의 유구함이
상처의 우툴두툴함도 갉아버리고 흉터도 낡게 만들어버렸던 것인가.
2.
시간은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리고 반본환원할 수 있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아니하다.
오디세우스처럼 흉터는 아무리 낡아도 타인에게 보이고
무엇보다 짊어진 사람에게는 영원히 남는다.
단지 기세가 사라질 뿐이고, 상처의 반대급부가
무기력함에 의해 속으로 갈무리될 뿐이다.
시간도 없애지 못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특히나 그것이 가슴 속 상처라면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3.
쉽게들 말한다.
잊어라 잊어 잊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그렇게 위로하는 사람들도 물론 안다.
잊으라 말한다 한들 그것이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그때 입은 손해와 아픔이 가신다 하더라도
사람이 예전처럼 무탈하게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것도
다들 잘 안다.
인생의 흉터를 없던 것처럼 매만져주는 성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상처와 사람을 둘 다 깎아내버릴 뿐이다.
만약 시간이 망각을 일으켜
그 사람에게 엣 아픔을 더 이상 기억나게 해 주지 않는다 한들
옛 추억 무게만큼의 허망함 또한 삶에 들어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안다.
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