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00건

  1. 2010.06.28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그렇지만 10
  2. 2010.06.12 6.12 소사 10
  3. 2010.06.06 4
  4. 2010.05.30 2010.5.30 소사 8
  5. 2010.05.28 고양이 들이고서 바뀐 점 8
  6. 2010.05.17 동네 - 애 데리고 나가기 2
  7. 2010.05.14 2010.5.14 소고 1
  8. 2010.05.05 閑事莫管 (한사막관) 3
  9. 2010.05.03 고양이 4
  10. 2010.04.29 빈번함 4
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지구촌을 달군 월드컵이 끝났지만
난 축구경기를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별반 축구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그일보다 더 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셨다. 
편찮으시다고 하면 어폐가 있다. 편찮지는 않으시다. 대신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지.
언젠가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병의 발견. 그리고 치료가 상당히 희박한 증상.

막장드라마에서 가끔 주인공 죽을 때 써 먹는 그 병. 뇌암. 뇌종양.

부부젤라인지 자블라니인지 붕가붕가인지를 TV에서 볼 맘이 생길 수가 없었다.
검사결과를 알게 된 다음부터 든 느낌은 시간이 딱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뭔가 생경하면서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느낌. 
내 일이 아닌 것을 내가 역할극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었다.


-1-
사람은 유한한 존재다. 언젠가는 내 주변의 모두가 죽고, 나도 죽는다. 
필멸의 존재에게 죽음이란 필연의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누구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깊이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고민거리라기 보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막상 [죽음].[이별]같은 생경한 말이
어느날 문자나 개념에서 벗어나 생생한 사실이 되어 우리 코 앞에 들이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꾸듯 현실을 몽롱하게 보게 된다. 
근심, 걱정, 가족, 사랑
그리고 그가 떠나간 뒤에 처할 나의 처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정형화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2-
언젠가는 닥치리라
늘 최악의 상황은 다가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누누이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이지만
실제로 닥치게 되면 역시 마음속의 다짐이라는 것은
단순 예방차원의 것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늘 하는 말 있지 않은가?
바닥이라 생각하는가. 지하실을 보게 된다.
인생의 굴곡은 사람의 생각을 훨씬 넘어서는
끝없는 밑바닥이 존재한다.

사람은 약하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해 본 사람이라고 해도
재앙이 닥쳤을때 면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보게 된다.

일가친척, 가족의 죽음을 한 두번 본 것이 아니지만
늘 그 과정은 새롭고, 새로와서 서럽고 슬프다.


-3-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니까.
수술을 받아보자고 하신다. 위험성도 상당히 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는 수술을 해 봐야 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불확실성만큼 사람에게 절망과 희망을 강요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천천히 돌이켜보면

언젠가는 어떤 경로로든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은 그 과정을 밟게 되어 있고 목도하고 집례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슬픔이 지나가고 애통함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간 뒤에는
돌아올 수 없는 추억에 대한 회한이 남으리라.
그것이 인생일테니까.
아직은 아니라지만 언젠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끄적거려봤자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
슬프다는 거다.

자식 아닌가
몸에서 태어난 자식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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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6. 12. 21:03
1.
비오는 날 기르는 고양이 접종을 시키러 차를 빼러가는 순간
비를 흠뻑 맞으면서 차를 가로질러 가는 길고양이 하나를 봤다. 몸도 약간 불편한지 다리를 절룩이면서.

같은 고양인데도 
같은 사람인데도
처한 처지가 다르다.

난 운명이나 팔자에 인생을 담보잡히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런 태도는 팔자나 운명이라는 것이 갖는  불가항력에서 회피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2.
체해서 죽을뻔 했다.
아직도 몸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뭔가 약속을 잡으면 대부분 탈이 난다.
긴장을 해서인가?

마음을 비워야지.


3.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축구를 시작한 모양이더라.
아파서 침대를 구르면서 끙끙대고 있는데
좋다고 위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아파트 주민들이 주는 것 없이 밉더라. (--;;)

하긴,
지금도 월드컵을 안 보고 있구나.

축구란 스포츠는 희한한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경기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
내셔널리즘이 가장 뿌리깊게 박혀있는 스포츠이기도 하고.

뭐, 내가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을 싫어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a


4.
타블로 학력문제가지고 까기 시작하던 네티즌은
이제 사건이 정상화되고 타블로가 제대로 인증을 하는 것 같으니까
갑자기 병역이 어쩌고 언플이 어쩌고 하면서 주제를 바꾸고 있다.
어쨌건 타블로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은 원래 그 사람이 죄가 없어도 미워하게 되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에 1억원짜리 시계 버렸다고
뇌물받은 죄책감에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아직까지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천지삐까리다.

그냥 미운거야. 진실과는 상관없이.
그걸 아는 인간들이
그 양반 죽어서 슬프다는 인간들이
왜 다른 사람 못 씹어먹어서 안달복달이야.

그러니까 너희에게 MB는 딱 격에 맞는 인물이라 이거다.


5.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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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 한담 2010. 6. 6. 23:00
오랫만에 주말에 머릿속을 완전히 비우고 사는 듯한 느낌이다.
아파트 한쪽 구석에 처박히고 있는 것만 시공간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지

고양이 한 마리랑 일절 아무 대화없이 둘이 먹고 살면서 놀다보니
무인도에 난파된 배에서 내려 고양이랑 하염없이 시간을 때우는 표류자가 된 기분이다.

사람은 같은 동반인이 사람이 아닌 담에는
까탈스럽고 어려운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아무런 필요가 없다.
그냥 온 몸으로 알고 표정과 동작으로 감정을 알게 되는 거다.
물론 나와 다른 이종생물간에
완벽한 이해와 소통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 간에는 소통이 얼마나 되는가. 그 잘난 언어체계를 가지고도 말이야.

낚시줄에 쥐새끼 인형을 묶어서 고양이랑 놀다가
배가 고플 것 같으면 밥이나 주고
졸리면 마루바닥에 누워서 같이 자다가
다시 일어나면
나는 그래도 문자를 가진 인간이랍시고 이것저것 끄적이고
고양이는 멀뚱 보다가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러 가거나 무릎위에서 자고.

말 한 마디 없지만 외롭지는 않다.

원래 집에서 TV를 켜지 않는다.
집안에 소음이라고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키보드음 뿐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집이 적막하고 조용하고
사방을 침묵으로 두르게 되면
사람은 짐승처럼 예민해진다.

떨어지는 물소리와 시계의 초침소리, 옆집의 대화와 길 건너편의 자동차 소리, 바깥의 고양이 소리까지
모든 것이 엄청나게 크게 들려온다. 내가 침묵하면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걸 유지할 수 있다면
평생을 이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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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30 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5. 30. 21:54
1.
선거안내문이 도착했다. 무려 8명을 뽑는다.

참 많은 자리, 한 자리만 가지고 생각해도 오랫동안 고민해야 할 자리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한 날 뽑는다는 것 자체가
이 나라의 현재 수준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씁슬하다.

그냥 우리들은 투표를 무슨 심심풀이 파적으로 하루 놀면서 하는 짓거리로 여기는 거 아닌가.
그래놓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징징대지.

2.
어머니가 갑자기 졸도를 하셔서 병원에 다녀왔다.
멀쩡하던 분이 예배시간에 쓰러지신거다.

피곤하고 체하셔서 그러시다는데
정말 순간 놀랐다.

창졸간에 겨를없다는 게 이런 것이더라.
사람 인생 들꽃같다더니 
바로 옆에서 넘어지시는데 아무 손 쓸 경황이 없었다.

다행히 병원 진찰받았는데 별 일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평일에 한번 진료를 더 받으러 가셔야 할 듯 하다.

3
그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나더라.

원래 난 부모님하고 같이 교회를 가지 않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좀 이른 시간에 가고 싶더라.
그래서 같이 부모님과 예배를 드리다가 이런 일이 생기니

갑자기 아 대체 이거 뭔 일이냐.
그래도 장자라고 이런 자리에 같이 있는건가
별별 미신같고 운명론적이 생각이 머리를 핑핑 울리고
911...아니 119전화하면서도 머리속은 오버클럭된 CPU처럼 굉굉거리는데

그나마 일이 커지지 않아 다행이다.


4.
이거 보면 확실히 장가는 가야겠더라.
고양이새끼가 내 핸드폰으로 119불러줄 리도 없고.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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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늦잠을 못 잔다.
    이 망할...5시반부터 배고프다고 울기시작. 못 들은 척 8시까지 개기면 그때부터는 막 벅벅 긁는다.

2. 집에서 밥을 후다닥 먹게 되었다.
    일단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 밑에서 낑낑대거나 올라오려고 용을 쓰는 놈 때문에
    밥먹는데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성묘가 되면 좀 달라질지도 모르는데 이 놈은 아무리 식식대고 주의를 주고
    꿀밤을 줘도 5초면 까먹고 다시 덤벼든다.
   
   그래서 지금 내 저녁먹는 광경은 80년대 홍콩 무협영화 수준이다.
   식탁에 올라오는 고양이 발을 한 손으로 막고 한 손으로 젓가락 질을 하고있다.

3. 거의 매일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내가 알러지가 있는 줄 몰랐다.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다.
   kaka는 내가 자기를 협박하기 위해서 전기청소기를 돌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4. 인내심이 늘어나는 건지 줄어드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미 십여개의 크고작은 흉터가 몸에 생겼는데 그건 그렇다 치고
   하루에도 한번씩은 kaka에게 화내는 것 같다.
   
   고양이가 사람이 아닌데 사람의 길을 알 도리도 없고
   뭘 물어뜯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뭘 깨면 안되는지 들어가면 안되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당연한 것인데  정작 나는 보고 있으면 성질이 난다.
  
   내가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쌓으려고 데려온 것 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분풀이로 애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하고 사는 것보다 어렵더라. 
   눈만 마주친다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감정적인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더라.
   (소라게가 오히려 애완용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 놈이 좀 더 크면 바뀌려나
    아니면 내가 신경을 덜 쓰고 살게 되려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내 주변을 대충대충 뭉개면서 사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촘촘하게 내 구획과 사는 패턴을 정리해 놓았더라.
  
  내가 고양이보다 까칠하게 사는 사람이어서 고양이의 설렁설렁함을
  못 보고 지나가는지도 모를 일.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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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엄마가 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중.

너댓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잠에서 덜 깼는지 엄마 손을 잡고 주춤주춤 걸으면서 훌쩍훌쩍 징징거리는 중

애가 움직이지 않자 엄마가 두리번 거리다가 공원 앞의 비둘기를 보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oo야! 저기 새 있네! 저기 친구있다! 저리로 가자!"

그러자 애가 징징거리며 말했다.

"아니야 엄마! 새는 내 친구가 아니야!"



아이는 잠에 취해서도 세상보는 눈이 날카로왔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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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14 소고

작은 방 한담 2010. 5. 14. 22:07
1. 고양이를 들여놓았다.
   2개월령이다. 3월달에 났으니 뭐...아직 핏덩이다. 사료나 제대로 먹나 모르겠다.
   주인에게서 분양받아 얻어올 때 천지가 진동하게 울어대더니
    집에서는 으슥한 때 짱박혀서 움직이도 않다가 지금은 잠이 들었다.

  살아 생전에 애완동물이 되지 않던 집이다.
  원래 개를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4마린가를 길렀는데
  한마리도 늙어죽은 놈이 없고 모두 비명횡사했었다.

  그래서 애완동물을 기르지 말아야지 속으로는 그러고 있었는데
  사람이 혼자 있다보니 아무래도 마음이 심란하고
  뜻없고 덧없는 일에 자꾸 집중하게 되더라.
  
  아직 잘 모르겠다. 집에는 고양이 먹이 냄새가 진동하고...
(고양이는 냄새가 안 나는데 왜 사료에서 냄새가...-.-)
  이놈은 아직 사람 피해 돌아다니지만
  뭐 어쩌랴.

 집에 사람이건 짐승이건 들여놨으면
 그걸로 인연이 정해진 것인데.


2.
심사숙고해서 만든 인연이니
다른 쪽에 신경쓰지 않으련다.


3.
요즘 근대 상하이에 대한 책들을 계속 읽고 있다.
상하이. 1920년대의 상하이는 뉴욕하고 별반 다를 바 없더라.
인간이 축하는 모든 환락과 부패와 열정이 다 모여있더라.
그거 참.

그리고 그 와중에 그곳에서 살아 숨쉬던 우리 독립지사들.
혁명은 낭만이 아니며 독립은 피로 쓰는 역사이지만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곳은 식민지 치하의 도시
남의 땅이라 거꾸로 자유가 허락된 곳이었다니.

삶이란, 역사란, 참으로 쓰디쓰고 기구한 것. 
Posted by 荊軻
,
한사막관.

쓸데없는 일에 손을 대지 말라는 고사성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여기저기 기웃거리길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이도 뭔가 내게 관심을 써 줬으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여기에서 사람들간의 교류가 생기는 것이리라.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욕심이 좌우하는 것.
사람은 [인정받고싶은]욕구라는 것이 있다. 특히나 자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초패왕 항우가 진시황의 아방궁을 불태우고 뭔 짓거리를 했나. 초나라로 보화를 짊어지고 떠났다. 
'금의환향'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서 말이다. 천하를 앞둔 사내치곤 띨빵한 짓거리였지만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고향 초나라에 가서 친한 동네 사람들에게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 보여주고 싶은 게 그 욕심 아니었겠는가?

사람들은 여기서 좌절한다.
최소한 나를 이해해주고 내가가진 것을 저 친구는 그래도 가감없이 봐 주고 나와 함께 하겠거니 생각하지만
사람은 십인십색, 내가 신용한다고 그가 나를 신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저 사람이 내게는 [천명중의 한 명]일지 몰라도 그 사람은 나를 [천 명 가운데 있는 그러저러한 관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슬퍼할 일도 아니고 짜증낼 일도 아닌 것이다. 슬퍼하고 짜증낼 때 한사막관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이다.

대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붕(朋)이라고 할만한 이는 죽을 때까지 몇 이나 될 것인가?
내가 살아가면서 진짜 형(兄)이나 제(弟)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다섯손가락을 넘을 것인가?
내가 살아가면서 진정 사(師)라고 부를 수 있는 자를 죽기 전에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살면서 실제로 애(愛)할 수 있는 사람이...세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삶이라는 것은 비정하고 얄팍하고 손이 갈수록 혼탁해지고 정성을 다하더라도 잡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연이고 하늘이 내린 교우 아니면 힘든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인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용을 쓴다고, 내가 무언가를 구하려고, 취하려고 한다해서
그것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둥바둥 거림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일에 손을 대는 일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임을 느낀다. 
그리고 쓸데없는 일임을 알면 거기서 손을 털고 조용히 빠져나와야 할 일인 것이다.

어디 나 혼자그런 생각을 했을까.

碧梧桐 심은 뜻은 鳳凰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타신디 기다려도 아니오고
無心한 一片 明月이 뷘 가지에 걸녀셰라
 
옛 사람도 다를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뜬금없는 결론 : 고양이나 빨리 길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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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작은 방 한담 2010. 5. 3. 14:46

들이기로 잠정 결정.

이것저것 들어갈 게 많구나. 통장 잔고가 남아있나? -.-a









어쨌건

나도 어지간히 지쳤나보다.

딱 마음쓰는 요량은 여기까지. 더 이상은 無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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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번함

작은 방 한담 2010. 4. 29. 00:10
트위터를 최근 몇 달간 쓰고 있었는데
뭔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어차피 블로그도 마찬가지지만
정제되지 않은 어휘들이 숱하게 올라가고 넘어가는 것이 인터넷의 글줄이다.

누군가가 안부를 묻고
안부에 답하고
전화해서 대화할만큼 친한 사이가 아닌 사이끼리는
그런 것에 있어서 낯간지럽지 않은 좋은 방편이긴 한데

참으로 허탄한 말을 마구 쉽게 내가 쏟아내는구나 싶더라.
더군다나 술이라도 한 잔 걸친 다음에는.

내뱉은 말들뿐 아니라 내갈겨 쓴 글도 줏어담기 힘든 것이다.
delete하나로 원본은 해결될 거라 믿는다 쳐도
이미 시신경을 타고 뇌리에 들어간 글자들은 어떻게 지울 것인가.

쓰고 다시 고쳐쓰고 고쳐써도
내 마음을 분별해서 전달하기 힘든게 상식인데
너무나도 많은 말을 쉽게 쓴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특히나 그 글에 내 불안정한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다면.

어차피 쪽글 적는 판에 너무 심각하게 보는 거 아니냐고 할 것 같긴 한데

내 마음의 끝자락 하나라도 사람에게 보이기 싶지 않은 때가 있고
그런 감정을 스스로가 쉽게 무너뜨리는 실수 중 하나가
너무 말을 많이 하거나 너무 많이 쓰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색을 바로하진 못하더라도
부끄럽지는 말아야하는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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