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한담 2010. 6. 6. 23:00
오랫만에 주말에 머릿속을 완전히 비우고 사는 듯한 느낌이다.
아파트 한쪽 구석에 처박히고 있는 것만 시공간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지

고양이 한 마리랑 일절 아무 대화없이 둘이 먹고 살면서 놀다보니
무인도에 난파된 배에서 내려 고양이랑 하염없이 시간을 때우는 표류자가 된 기분이다.

사람은 같은 동반인이 사람이 아닌 담에는
까탈스럽고 어려운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아무런 필요가 없다.
그냥 온 몸으로 알고 표정과 동작으로 감정을 알게 되는 거다.
물론 나와 다른 이종생물간에
완벽한 이해와 소통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 간에는 소통이 얼마나 되는가. 그 잘난 언어체계를 가지고도 말이야.

낚시줄에 쥐새끼 인형을 묶어서 고양이랑 놀다가
배가 고플 것 같으면 밥이나 주고
졸리면 마루바닥에 누워서 같이 자다가
다시 일어나면
나는 그래도 문자를 가진 인간이랍시고 이것저것 끄적이고
고양이는 멀뚱 보다가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러 가거나 무릎위에서 자고.

말 한 마디 없지만 외롭지는 않다.

원래 집에서 TV를 켜지 않는다.
집안에 소음이라고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키보드음 뿐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집이 적막하고 조용하고
사방을 침묵으로 두르게 되면
사람은 짐승처럼 예민해진다.

떨어지는 물소리와 시계의 초침소리, 옆집의 대화와 길 건너편의 자동차 소리, 바깥의 고양이 소리까지
모든 것이 엄청나게 크게 들려온다. 내가 침묵하면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걸 유지할 수 있다면
평생을 이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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