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동쪽태평양 해변가에 오슈라는 지역이 있다.
여기 꼬맹이 한 놈이 살았다. 어릴 때 천연두로 한쪽 눈이 날아갔지만 아버지가 나름대로 동네 세력가라서 빠방하게 살았나보다. 아버지는 이놈에게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라고 스파르타 교육을 시키고 아들은 아버지의 세뇌교육덕분에 나름대로 꿈을 실현하려고 용쓴다. 당시 조금 야망있다는 놈들은 다 가지고 있던 꿈. 일본통일.
그놈이 독안룡(獨眼龍)이니, 오슈의 용이니. 떨어진 용이니 불리던 다테 마사무네다.
(요즘 오락에는 이렇게 초절정 꽃미남 쿨가이로 그려놓지만서도)
(그냥 이렇게 생긴 거다)
나름대로 근성있고 노력도 하고 능력도 있는 놈이었던 모양이다....만
문제는 늦게 태어났고, 집안도 촌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
이미 다테가 태어나서 뭔가하려고 동부지방을 평정하고 폼잡고 있을때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잡아먹고
그 뒤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다.
정신차려보니까 그냥 자기는 지방영주였던 거지.
갑(甲)인 토요토미가 "나는 관대한데, 단가 잘 쳐줄 테니까 내 밑에서 시다바리해라"라는 말을 전한다.
사실, 여기서부터 이 인간의 인생은 결정지어진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믿으면 뭐하나. 동원하는 자원의 숫자부터 차이가 벌어지는데.
이 인간이 고심고심 생각을 하고 장고를 하다가 결국은
상복을 입고 토요토미앞에 가서 "늦어서 죄송함다. 부장님" 하고 무릎을 꿇었다.
입이 벌어진 토요토미가 "그래, 다사장 좀 늦을 수도 있지." 하면서 지팡이로 목을 톡톡 쳤단다.
"좀 더 늦었으면 뒈지셨을 거예요" 이러면서.
기분 더러웠을거다.
그런데 을(乙)이 되면,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일단 갑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다테 마사무네가 혼자 늘 지껄였다는 유명한 말이 그거다
"X바, 내가 20년만 빨리 태어났어도"
이건 우리 을들도 많이 하는 말이니까. 씨바 내가 저 새끼보다 돈만 좀 있었어도, 내가 이 동네 짬밥이 얼만데
그러면서도 갑의 더러운 요구는 다 받아주면서 한술 더 떠야 살아남을 수 있는게 을인거다.
다테 마사무네는 임진왜란때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온갖 분탕질 다 치고 갔다.
2차 진주성혈전 때 2~3만정도 되던 진주성민을 몽땅 도륙하는데 앞장 선 인간이다.
(무슨 떨어진 용, 떨어진 도살자지.) 항간에는 쉴드 쳐준다고 마사무네는 별로 앞장서서 일 하지 않았어요 하는
사람도 있는데...모르지, 내가 그곳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을의 성향으로는 갑의 요구보다 한 술 더 떠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거다. 아마 지가 앞장서서 노략질하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패악을 떨었으면
[간양록]의 저자 강항 선생이 다테 마사무네를 일컫어 (왜적중에 가장 흉폭하고 음흉한 쉐이)라고 하셨을까.
그래도 속으로는 토요토미에게 이를 갈고 있었겠지.
상복입고 갔는데 지팡이로 모가지를 탁탁 치면서 "다사장~"하는 놈이 온전한 정신으로 이뻐보일리가 없다.
이럴 때 을이 할 수 있는 건 뭐?
그렇지. 질기게 버텨서 갑 부장이 모가지 떨어지길 기다리는 거!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과 히데요시 아들이 일본을 두고 싸울 때
마사무네는 도쿠가와에게 딜을 한다.
"내가 과장님 라인 탈테니까, 지금부터 나오는 모든 물량 턴키로 우리에게 오케이?"
"오케이. 싸나이는 네버 일구이언"
그래서 마사무네는 토쿠가와에게 붙고, 토요토미가는 홀라당 멸망해버린다.
그리고 지원 보상으로 100만석 영지를 받기로 약속받았다.
그런데 을이 원래 갑(甲)하나만 보고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갑 저놈이 뭔 짓을 할지 머떻게 아냔 말이야. 살아갈 방안을 생각해 놔야지.
그래서 내부자거래로 다른 쪽하고도 딜을 트고 있었는데...도쿠가와가 이걸 알아낸 거이다.
"너 믿을 놈 못 되긴 하는데...다사장 그동안 성의도 있고, 나도말한거 있으니까...."
그래서 100만석이 아닌 60만 석으로 강등.
그렇게 해서 현재 일본의 센다이 지역에서 터줏대감 노릇 하면서
젊은 시절 꿈 다 접고 이리저리하면서 살다가 마사무네는 죽었다는 전혀 슬프지 않은 이야기다.
그래도 부하직원들에게는 잘해 줬는지. 센다이 지역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산업단지가 되었고
결국 40만석을 자가충당해서 100만석 영주의 꿈을 이루긴 했다는 사나이.
그냥 이리저리 살기 팍팍했던
몇 백년 전의 乙 사무라이.
(임진왜란때 안 오고, 씨바 더러워서 일 안해! 했다면 내가 좀 호감을 가지고 봐 줬을 인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