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00건

  1. 2010.08.24 2010.8.23일 소사 2
  2. 2010.08.16 2010.08.15 소사 9
  3. 2010.08.12 서울영감들 처음가는 국도놀이에 2
  4. 2010.08.12 아열대의 밤 6
  5. 2010.08.08 2010.8.8소사 2
  6. 2010.08.07 닮아가는거지 6
  7. 2010.08.05 영원한 을(乙)의 화신, 다테 마사무네 7
  8. 2010.08.05 2010.8.4 소사 4
  9. 2010.08.03 김치찌개 2
  10. 2010.07.31 그 때는 그랬더라고 2
1.
사람의 마음에 품은 뜻이 무엇이고 재능이 무엇인지는 혈연도 모르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영글어 나오기 전까지는 보여준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가 알랴?


2.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서양의 풍조
노력한들 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는 동양사상.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과연
뭘 얼마나 해봤길래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바꿔서
노력한들 되지 않는 게 있다고 믿는 이들은
얼마나 노력을 해 봤길래 그런 결론에 이른 것일까.


3.
되지 않더라고 끝까지 노력한다가 결론인 것 같다.

그러다 뒈지면?
할 수 없다. 세상에 자취를 남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4.
요즘은 일관된 것도 없고, 지켜야 할 미덕도 없어지고
내 스스로가 좋은 편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관두자.
입 아프게 말해 무엇하리. 여기서 지껄인다 하더라도 
사실 나도 이미 그 풍조 안에 살고 거기 흠뻑 젖어있는 것이다.


5.
인내하여 딸 수 있는 열매가 있다면 인내함이 당연한 것이다.
돌사과를 사과인줄 알고 기다림은 바보의 인내일 뿐이다.
참된 열매를 발견하면 끝까지 기다려야지.

그런데
무엇이 진짜이고 참인지는 구분이 가능한가.
이렇게 혼돈이 혜안을 막아버리는 시대 앞에 그나마 갖고 있지도 않은 안목으로 갈음하려는 나는.

6.
되었다. 말이 많구나
누가 뭐라 해도 내 꿈은 질풍경초.
Posted by 荊軻
,
1. 
광복절이다.
과연 우리민족은 5000년의 역사를 이어갈 만한 저력이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이상하리만치 비관론으로 점철되는 듯한 시절이라 가슴이 먹먹하다.


2.
고양이와 고양이
그리고 사람 한 마리


3.
뭔가 하나를 끝냈는데 끝낸 기분이 들지 않는구나
이건은 미진하다는 이야기인데
미진하지 않을 때까지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다.


4.
하루하루는 부질없고 의미없이 흐르는데
세월은 가지 않고
생체시계는 쏜살같이 흘러간다.


5.
그나마 사람들을 만나니 다행이다만
나는 사람들을 1주일에 한 번만 만난다.
그것도 정해진 사람들 외에는 보지도 않는다.
이러고 산다는 게 어찌보면 대단하긴 한데

꼭 심산유곡에 들어가야만 세상하고 인연이 끊기는 게 아니더라.


6.
읽는 것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면
쓰는 것에 대한 흥미도 반감되는 법.

지친건가?
Posted by 荊軻
,
오산에서 사업하는 사업주를 만나겠다고 아침부터 일찌감치 서울을 나서 고속도로를 탔는데

70년대에는 고속도로인 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아침이건 저녁이건 6.25 사변때 피난가는 행렬이나 진배없으니
내가 빠른지 우마차가 빠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동탄까지는 졸면서 가도 운전할 수 있는 지경이니
차라리 내가 황영조나 이봉걸..아니 이봉주의 심폐만 있었어도 그냥 배낭메고  뛰는 것이
훨씬 건강이나 경제나 지구환경이나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있던 찰나에
"형님, 차라리 국도를 한번 타 봅시다" 라는 N군의 말에
차를 국도로 몰고 빠지기로 했다.

오, 이런 풍경이?
얼마나 돌아가는 지는 계산하지 않았는데. 하여간 차가 붕붕 달린다.
게다가 양 옆에 푸르른 신록이 우거지니 가히 드라이브 아닌가.
사내 둘이 하는 칙칙 음울한 그린 드라이브!

이러저러 광고주를 만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아까 일도 있고, 분명 고속도로는 대박집 점심시간만큼이나 메어터질테니
다시 국도로 타고 올라가자는 심산이 들었다.

그렇게 잘 가고 있었다.
네비게이션 교차로 하나 놓치기 전까지는.

교차로 하나 잘못 탔더니
갑자기 키로수가 10km이상 늘면서
나는 생전 가볼 일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통탄 시내를 횡단해서
역시나 연고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수원시내를 관통하기 시작햇다.

"이게 뭣이냐! 쓸데없이 길만 뱅뱅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게 왜 교차로를 놓치신겁니까!"

"시끄러 임마 누가 이럴줄 알았어?"

"아이 참 어쩌구 저쩌구"

"시끄러 시끄러"

둘이 투덜대면서 차를 몰고 오는데 빗방울까지 후두둑
그렇게 음울하고 칙칙한 그레이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앞에 성곽이 보이더라

음? 이건 교과서에서만 봤던 수원 화성인가?

"야, 이게 수원 화성인가보다."

"나도 책에서만 봤지 처음 보는데"

"야, 잘 지어놨구만"

"이것이 정약용의 기중기로 만든 바로 그 성이오"

"기중기가 아니라 거중기여"

"머 어쨌거나...아~ 이쁘구만"

"아~ 이쁘구먼~"

갑자기 두 사람은 신이나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그렇게 다니면서
경수산업도로를 타고 의왕을 지나 과천을 넘어 남태령 옆의 우미관..아니 우면산터널까지 지나
허위허위 십몇 키로를 돌아 사무실까지 도착하고 말았다.

"야~ 오늘 구경 잘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국도 타는거 재미있네."





...이러니 돈을 못 벌지


Posted by 荊軻
,

아열대의 밤

작은 방 한담 2010. 8. 12. 09:10
여름이 내가 알던 여름이 아닌 여름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무더움을 비껴나가기 힘든 날씨였다.
하지만 이젠 처마 밑에 누워 선들선들 부는 바람에 피곤을 식힐 수 있는 풍경은
말 그대로 옛 흑백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망할 놈의 습기.
하늘은 뭉게구름이 아닌
언제 비를 한바탕 뿌려놓을 지 모르는 적란운이 언젠바부터 주인행세를 하고
아니나 다를까 하루에 한번씩은 스콜을 뿌린다.
이게 대한민국 조선의 날씨냔 말이지.
소식적에 잠깐 들려본 태국과 캄보디아 날씨하고 다를 바가 없다.
이제 천장에 도마뱀이 붙어 산다고 해도 놀랍지가 않아요.

아는 후배 말을 들어보니
전남 어느 시에서는 가로수를 야자나무로 심었는데
그게 사시사철 잘 자라고 있다는 해괴망측한 소리도 들었다.

점점 땅이 들끓어 오르는 모양이다.
스티븐 호킹박사는 지구멸망 앞으로 200년이라고 말까지 했단다.

사실, 내일 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어이없는 세상이 하루이틀 지나왔느냐마는

최소한 내일 죽더라도
선선한 날씨 속에서 죽고 싶구나.

열대야 따위는 정말 지옥에나 있어야 할 물건이야.
Posted by 荊軻
,

2010.8.8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8. 8. 20:31
1.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가 되었다.
아직까지는 무임소 보직. 
하긴, 내 성향을 담당목사님이 아는데 애들에게 바로 덜컥 붙여주실리도 만무하고.

그나저나,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라서
수능이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도모른다. 
자식있는 어른들이라면 자식때문이라도 정보가 있을텐데 난 그런것도 없으니
이를 어쩜 좋단 말이냐


2.
내가 우리 집 고양이를 대하는 걸 보면 난 참 엄격한 인간이구나 싶다.
고양이도 절절 매는데 사람이라면 좀 버겨내기 힘들지도.

둘째 고양이를 들일까 생각중이다.
사람하고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고
어차피 다른 생명을 보듬어 안고 가는게 인생의 무게라면
사람이나 고양이나 별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제 별반 미련이 안 남네.


3.
인생에 멱살잡히지 않을 정도의 자본만 있다면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여유로와질까.
Posted by 荊軻
,

닮아가는거지

투덜투덜 2010. 8. 7. 13:59
어린 시절
반찬투정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물끄러미 보다가

어느순간 불같이 화를 내며 
(우리 집안은 화가 나면 도화선에 불 붙었다가 터지는 화약하고 비슷하다)

"야 이 자식아 지금 이디오피아에서는 쌀 한 줌 못 먹고 굶어죽는 애들이 숱한데 지금 뭔 짓이냐!"
하면서 낼름 먹으라고 채근을 하셨다.

배부르면 남기는 것이 차라리 몸에 낫다는 집안도 있긴 하지만
우리 집안은 그거랑 반대였다. 고래로 쌀 남기는 놈은 천벌받을놈...뭐 아직 이런 분위기라.


2.
고양이가 양양대길래
[유기농]이라고 써 있는 캔 하나를 따서 주었다.

물끄러미 냄새를 맡아보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양양~거린다.

"야 이 자식아, 지금 길바닥에는 쓰레기도 못 먹고 굶어죽는 길고양이가 천진데 뭔 배부른 소리냐!"

성질내는 걸 알았는지
시무룩~하니 땅바닥을 쳐다보다가 지금 캔을 열심히 먹고 있는 중


3.
닮아가는거지.
어린 시절 배운대로.


Posted by 荊軻
,
일본 전국시대
동쪽태평양 해변가에 오슈라는 지역이 있다.
여기 꼬맹이 한 놈이 살았다. 어릴 때 천연두로 한쪽 눈이 날아갔지만 아버지가 나름대로 동네 세력가라서 빠방하게 살았나보다. 아버지는 이놈에게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라고 스파르타 교육을 시키고 아들은 아버지의 세뇌교육덕분에 나름대로 꿈을 실현하려고 용쓴다. 당시 조금 야망있다는 놈들은 다 가지고 있던 꿈. 일본통일.

그놈이 독안룡(獨眼龍)이니, 오슈의 용이니. 떨어진 용이니 불리던 다테 마사무네다.

(요즘 오락에는 이렇게 초절정 꽃미남 쿨가이로 그려놓지만서도)

(그냥 이렇게 생긴 거다)

나름대로 근성있고 노력도 하고 능력도 있는 놈이었던 모양이다....만 
문제는 늦게 태어났고, 집안도 촌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
이미 다테가 태어나서 뭔가하려고 동부지방을 평정하고 폼잡고 있을때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잡아먹고
그 뒤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다.
정신차려보니까 그냥 자기는 지방영주였던 거지.

갑(甲)인 토요토미가 "나는 관대한데, 단가 잘 쳐줄 테니까 내 밑에서 시다바리해라"라는 말을 전한다.
사실, 여기서부터 이 인간의 인생은 결정지어진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믿으면 뭐하나. 동원하는 자원의 숫자부터 차이가 벌어지는데.
이 인간이 고심고심 생각을 하고 장고를 하다가 결국은 
상복을 입고 토요토미앞에 가서 "늦어서 죄송함다. 부장님" 하고 무릎을 꿇었다.
입이 벌어진 토요토미가 "그래, 다사장 좀 늦을 수도 있지." 하면서 지팡이로 목을  톡톡 쳤단다.
"좀 더 늦었으면 뒈지셨을 거예요" 이러면서.

기분 더러웠을거다.
그런데 을(乙)이 되면,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일단 갑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다테 마사무네가 혼자 늘 지껄였다는 유명한 말이 그거다
"X바, 내가 20년만 빨리 태어났어도"
이건 우리 을들도 많이 하는 말이니까. 씨바 내가 저 새끼보다 돈만 좀 있었어도, 내가 이 동네 짬밥이 얼만데
그러면서도 갑의 더러운 요구는 다 받아주면서 한술 더 떠야 살아남을 수 있는게 을인거다.

다테 마사무네는 임진왜란때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온갖 분탕질 다 치고 갔다.
2차 진주성혈전 때 2~3만정도 되던 진주성민을 몽땅 도륙하는데 앞장 선 인간이다.
(무슨 떨어진 용, 떨어진 도살자지.) 항간에는 쉴드 쳐준다고 마사무네는 별로 앞장서서 일 하지 않았어요 하는
사람도 있는데...모르지, 내가 그곳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을의 성향으로는 갑의 요구보다 한 술 더 떠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거다. 아마 지가 앞장서서 노략질하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패악을 떨었으면
[간양록]의 저자 강항 선생이 다테 마사무네를 일컫어 (왜적중에 가장 흉폭하고 음흉한 쉐이)라고 하셨을까. 

그래도 속으로는 토요토미에게 이를 갈고 있었겠지.
상복입고 갔는데 지팡이로 모가지를 탁탁 치면서 "다사장~"하는 놈이 온전한 정신으로 이뻐보일리가 없다.

이럴 때 을이 할 수 있는 건 뭐? 
그렇지. 질기게 버텨서 갑 부장이 모가지 떨어지길 기다리는 거!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과 히데요시 아들이 일본을 두고 싸울 때
마사무네는 도쿠가와에게 딜을 한다.

"내가 과장님 라인 탈테니까, 지금부터 나오는 모든 물량 턴키로 우리에게 오케이?"

"오케이. 싸나이는 네버 일구이언"

그래서 마사무네는 토쿠가와에게 붙고, 토요토미가는 홀라당 멸망해버린다.
그리고 지원 보상으로 100만석 영지를 받기로 약속받았다.

그런데 을이 원래 갑(甲)하나만 보고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갑 저놈이 뭔 짓을 할지 머떻게 아냔 말이야. 살아갈 방안을 생각해 놔야지.
그래서 내부자거래로 다른 쪽하고도 딜을 트고 있었는데...도쿠가와가 이걸 알아낸 거이다.

"너 믿을 놈 못 되긴 하는데...다사장 그동안 성의도 있고, 나도말한거 있으니까...."
그래서 100만석이 아닌 60만 석으로 강등. 

그렇게 해서 현재 일본의 센다이 지역에서 터줏대감 노릇 하면서 
젊은 시절 꿈 다 접고 이리저리하면서 살다가 마사무네는 죽었다는 전혀 슬프지 않은 이야기다.
그래도 부하직원들에게는 잘해 줬는지. 센다이 지역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산업단지가 되었고
결국 40만석을 자가충당해서 100만석 영주의 꿈을 이루긴 했다는 사나이.

그냥 이리저리 살기 팍팍했던
몇 백년 전의 乙 사무라이.

(임진왜란때 안 오고, 씨바 더러워서 일 안해! 했다면 내가 좀 호감을 가지고 봐 줬을 인물인데....)
Posted by 荊軻
,
1.
알던 후배놈이 알던 선배라고 사무실에 놀러왔다.
아, 여자애다.
아무리 남초현상에 찌든 인생역정이라지만 그래도 가끔 귀엽거나 이뻐보이는 후배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이다.
40 가까이 살면 말이지.
(이거 써 놓고 보니까 무지하게 우울한 멘트로구나)

하여지간 놀러왔는데
뭐랄까나

세상은 국방부시계처럼 건전지빼도 돌아가는 와중인데 모여서 이야기하면 왜 과거의 기억들이 현실을 지배하고 나이를 먹는 줄 모르는 건지 모르겠다. 꿈속의 꿈인가. 젠장. 어디 물속에라도 떨어져야 하는건가.


2.
다들 그러고 산다.

나는 나이를 먹지않을거야
그래도 이래뵈면 동년배에 비해서 젊어보이지 않나
아직 기회는 있어
언제든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얻을 수 있을거야

아마 환갑진갑미수백수 다 지낼때까지 사람들은 이러고 살 것이다.


3.
하루하루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내 일을 할 때는 짧고 남의 일을 할 때는 길다.


4.
진심이 통하는 세상이라는 게 존재했다면
아마 현실은 이렇게까지 일그러져 있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荊軻
,

김치찌개

믿거나 말거나 2010. 8. 3. 23:39
자취하는 사람들이
영 먹을 건 없는데 뭔가 따듯한게 먹고 싶을 경우

최후의 보루로 묵혀두엇던 냉장고의 발효음식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국거리. 김치찌개.

사실 김치지개를 끓여먹는 것도 거의 몇년 만에 처음이었다.
예전 경상도 끄트머리에서 자취할 때는 매일 먹었던 게 삽겹살에 김치찌개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육식으로 버티는 것은 마찬가지였구나. 이거 참 변화없는 인생일세)
지금 식단은 고아해 진 건지, 내가 귀찮아 진 것인지 알쏭달쏭하기 그지없다.

김치지개맛이 달라질 것이야 없다. 김치맛이 변하기야 하겠는가.
대신 부재료로 들어가는 것이 스팸하고 버터라는 것.

혹자는 그건 김치찌개가 아니라 부대찌개야 라고 말하지만
난 쏘세지와 마카로니까지는 아직 김치와 섞지 않은 바, 당당하게 내가 먹은 것은 김치찌개라고 주장할 수 있다.

집마다 지방마다 집안마다 김치찌개는 천양지차, 백인백색의 풍미를 지닌다.
버터넣는 집은 꽤 안다.
치즈넣는 용자도 있더라만 난 그건 못 먹겠고
별 희한한 걸 김치랑 버무려서 끓이는 가정들도 많더라.

그걸 보면
김치라는 식품은 참 대단한 범용성을 지니고 있는게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생 시절에 어머니에게 김치담는 걸 배워두는 건데.
Posted by 荊軻
,
기실, 사람의 사는 행위라는 것이 하루하루의 소사가 얽혀서 이루어지는 것이니만큼 하루하루의 나날이 사람에게 주는 무게감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딱히 신경쓰지 않는 깃털같은 무게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그것은 수미산같은 무게를 가지고 사람의 등 위에 올라타고, 퉁방울만한 눈을 가지고 사람의 눈을 대신하며, 큼지막한 작대기를 하나 꽁무니에 매달고 사람의 뒷자락에서 갈 길을 조종하는 키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이미 그것을 깨달을 때가 되어서는 이미 난 하루하루의 무게에 눌려서 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돈벌이는 신통치 않지, 게다가 머리숱은 점점 빠져나가는데 주변의 환경은 계속 무언가를 채근하지. 게다가 하루하루 조금씩 늘어만가는 실망과 이뤄지지 않은 소망의 여운들은 그날그날 잊혀지지 않은 채 조금씩 앙금이 남아서 어느순간엔가는 내가 버틸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까지 절망의 찌꺼기들이 그득이 채워져 있었다. 이런 순간이 계속 되어서 몇 년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리 대차고 희망적으로 살아가고자 마음을 먹는다 하더라고 사람의 움직임과 태도에는 조금씩 [실패자]의 기운이 감돌기 마련이었다.

본시 이럴 적에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혼자 지새워야 한다. 그것이 정석이지만
사람이란 동물은 뭔가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다른 것으로 자기자신을 채우려고 하는 본능이 발동하는 법이다.
그 당시 나는 굉장히 외롭다고 느꼈다. 주변사람들이 생각할 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오직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애쓰는 정신병자처럼 보일만큼, 나는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 하루하루를 헤멨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양이도 키우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랬지만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 찾아다니는 것은 여자였다.

반려였는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딱히 그 대상에 대한 소구점이 무어라 정의내리기 어렵다.
그 당시도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여자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할 방법도 만무했고, 여자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정서적으로 그걸 유지시킬만한 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아니면 아무런 인생의 목적이 없는 양 행동했다.

사람이 정해진 목표를 외곬으로 쫒아보면 사람이 절박해지고, 사람이 구차해지고, 실수가 잦아지고 틈이 생기게 되며, 종당에는 사람들이 거북스럽게 여기게 된다. 별다른 연분없는 사람들도 이렇게 느낄진대 좋아한다고 쫒아다니는 여자들은 오죽 했겠는가. 백이면 백 그 당시 좋다고 쫒아다닌 여자들은 모두 진저리를 내면서 돌아서고 말았다. 
아마 나는 당시에 그렇게 생각했던 듯 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것저것 계획한 대로 그나마 남아있는 생을 살아가려면 지금부터라도 뭔가 있어야 한다고.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지금도 시간은 턱없이 모자람을 느끼지만, 그 당시에도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적인 목표를 가지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모든 바램과 욕망과 집착이 계속되는 실패의 쳇바퀴를 하염없이 굴리고 굴린 뒤에. 이제는 될대로 되 버려라 하고 포기할 즈음이 되어서다.

요즘도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그 때, 인연을 만났으면 지금하고 똑같은 삶이 유지되었을까?
아마 아니라고 생각된다. 준비되지 못한 삶의 연장이 몇년 정도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그건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쉽게 푸는 문제를 못 푸는 경우가 허다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생각도 않는 문제를 혼자 해결하고 희희낙락하는 경우도 많다.
누구에게나 쉽다고 자신에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인성이나 이성이나 교육이나 환경, 주장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한 개인에 속한 성질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분석할 필요는 없다. 한 명에게 해당되는 문제를 남이 풀어서 대신 답안을 채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때는 그랬더라고 정리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런 글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슬프고 서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것이리라.
나중에 살 날이 살아온 날 보다 작아졌을 때 회한으로 가득한 것이 인생일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없지만, 적은 것도 갖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는게 인생이다.

그냥 그런 것이었음을 알았다면 
최소한 그렇게 힘들게 시간을 부지런히 낭비하면서 살지는 않았을텐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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