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관은 정말 많은 영화들이 숱하게 걸리고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너무 빨리 순환되어서, 보겠다 맘먹은 영화도 어영부영 하다보면 이미 극장에서 내려가 버린 뒤에 극장을 찾은 경우도 허다하다. 뭐든지 빨리빨리, 이익구조가 날 것 같지 않으면 잽싸게 타이틀을 갈아버리는 것도 풍조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아동용 영화나 애니메이션같은 경우는
갈수록 하이틴 스타나 유명 걸그룹, 혹은 유명 배우들의 더빙이 많아지는 것 같다.
반대급부로, 전문성우들의 입지는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 우리가 어렸을 적에 성우라는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었다. 일단 목소리도 좋아야 되는데 목소리 변형도 되어야 하고
연기까지 잘 해야 하지 않나. 아, 연기를 잘 하는 게 우선인가?
KBS2 토요명화, MBC 주말의 영화, KBS1 명화극장 같은 곳은
말 그대로 기라성같은 성우들의 각축장이었다.
이 성우라는 것이 마술같은 직업인게,
원판의 연기자가 정말 거지같이 연기를 못해도
뛰어난 성우가 감정을 넣어주면 그 양반의 연기가 화경에 돌입하는 경우가 있었다.
서양영화도 그런거 태반이었겠지만 특히 중국영화, 듣도보도 못하던 인간들이 연기하는 무협영화 같은 경우에는
성우들이 살려준 영화도 태반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성우들 중에 연기자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데 점점 그들의 자리도 좁혀지는 게 아닌가 싶다.
원문의 느낌을 듣고 싶어서 자막으로보기 원하는 매니아들이 늘어나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인지도 있는 배우나 가수들이 대신 더빙을 맡고
그들이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이제 케이블(만화채널)과 공중파 저녁영화 정도일 것이다.
옆나라 일본은 게임산업쪽으로 많은 성우들이 옮겨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게임산업 이미 칠성판 위에 올라간 채 흙 덮일 날만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2.
필요에 의해서, 혹은 사회의 변화에 의해서
직업이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은
현직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슴아픈 일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거진 손 놓고 있지만 광고업은 대기업과 일하는 거대 하우스들 빼고는
이제 다 죽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TV드라마에서 머리 나풀대며 차가운 도시여자들이 볼펜하나 쥐고 까닥대며 연기한
잘나가는 카피라이터, AE, 디자이너 따위는 양잿물먹고 죽은 지 오래 된 이야기다.
(사실 애초에 그딴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많은 직업들이 그렇게 명멸한다. 예전에 변사가 영화관에 있었고 안내양이 버스에 있었던
시절이 지나갔듯이. 그리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또 다른 걸 구하러 돌아다닌다.
아니면 도태되던가.
현업으로 성우를 뛰고 있는 내 동창놈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든 걸 때려치고 수십번 시험을 봐서 성우에 합격한 그 녀석은
지금 이렇게 흘러가는 세월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