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진영씨가 죽었다. 우리 집 앞의 언덕배기위에 있는 병원에서.
내가 장진영을 처음 본 건 [반칙왕]에서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쉰들러리스트]을 마지막으로 보고 군대를 갔고 [반칙왕]을 본 직후 은행에 입사했다...이 뭥미)
참 깔끔하니 좋은 마스크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그 여자는 성큼성큼 커진 중견배우가 되어 있었고
스타의 풍모를 풍길 줄 아는 배우가 된 것 같더니
어느 날 심지가 닳은 양초가 자기가 녹인 촛농에 빠져 꺼지듯
그렇게 사라졌다.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가.
서글픈 일이다.
꽃다운 이가 순식간에 시들어 사라지는 것만큼 애처로운 일이 세상에 또 있으랴.
2.
어제 8/31일
광화문의 시네큐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흥국생명의 결단.
아직 3년의 계약을 남겨놓고 영화사 백두대간은 철수를 해 버렸다.
숨막힐 듯 우뚝우뚝 솟은 빌딩 숲 사이
여름에 턱턱 숨이 차오르는 비정하기 그지없는 서울 콘크리트 바닥 사이에서
정말 사람이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던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찾는]이들을 위하던 극장.
내가 그곳에서 본 영화는 별반 많지 많았다.
[아귀레: 신의 분노] 와 [잠수종과 나비]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 아마 몇 편 더 있었겠지만
이젠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발걸음이 쉽게 닿는 서울시내에서
흥행과 관계없는 좋은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는 상징이 중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이제 그곳은 추억으로 사라지고
제3세계의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수익을 내는 영화관 [씨네큐브]가 되어서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난 흥국생명을 욕하고 싶지 않다.
흥국생명은 그 커다란 지하공간을 그동안 기꺼이 백두대간에게 희사했었다.
그동안 보여준 훌륭한 Patron의 풍모를 이번 결정으로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좋은 후원자에게서 그 손길을 끊어버릴 수 밖에 없는 외부의 경제적 환경과
그런 경제적 환경을 만들어 낸 사람들과 이런 환경이 사라지는 것에 영 무덤덤한
우리 자신들에게 욕을 해 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블럭 떨어진 곳에서 새롭게 공구리질을 하고 발전하는 한국이니
뭐시기니 하는 70년대 발라드를 불러제끼는 2009년.
참 좋은 것들이
아홉수를 빙자해서 너무 많이 사라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