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들의 점심식사라는 것이 실상은
난로에 장작깨비 집어 넣듯이 대충 위장에 퍼 넣게 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무난한 식당 찾아가는 게 일이 되죠.
맛집이라는게 존재하긴 합니다만 실상 맛집이라는 것이 특별한 메뉴로 승부하는 게 다반사니까요. 

그런데 어쩌다 가끔은 특별한 집이 있습니다.
주 메뉴가 아니라 밑반찬이 맛있는 집들이 있죠.
먹다보면 밑반찬으로 밥 다 먹고 주 메뉴는 배부른 상태로 멀뚱멀뚱 기다리는 집.
 
올 칼라 레드로 땜빵된 반찬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반찬에
'아, 이 집 주인은 반찬까지 제대로 만드는구나' 하는 곳이 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그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만들고 무치고 버무리는데 손맛까지 들어가려면
정성이 없이는 곤란할 겁니다.

타고나기를 천상의 손맛과 미각이 있어서 손을 대는대로 걸작이 나오는 식신(食神)이 아닌 담에는
먹을 물건에 대해서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정성과 자존심 아니겠습니까.

모든 게 마찬가지일 겁니다.
퇴고를 수십차례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글이 나오기힘들 겁니다.
스티븐킹은 퇴고할 때 '원본의 10%는 버린다'라는 각오로 글을 정리한다고 하죠.

저희 회사도 단가를 일정비율 아래로 치면 일을 안 받습니다.
돈이 안 되서 못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디자인의 자존심을 돈 몇푼에 넘기지 않겠다는 생각도 분명 있으니까요.

빨리빨리 쉽게쉽게
넘길 수 있는 곳은 넘기고 마는게 현대 사회의 단편이라지만
뭔가 제대로 된 것을 보이려면 끝까지 사람이 가지고 가야 하는 게 있긴 합니다.
개인의 자존심이건, 사람에 대한 정성에서 출발하건 간에.

* 점심을 다 먹고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붙잡고 물어봅니다.
   " 오늘 청국장 짜지 않았어요?"
   " 아니오. 맛있었는데요."
   " 그래요? 아까 내릴 때 간을 보니까 좀 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output이 다른 쪽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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