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고백이나 첨언을 하자면, 나는 3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거의 가풍처럼 기독교를 믿고 있는 집안이다.한 세대 30년이라고 치면 대충 내가 믿는 시간까지만 해도 중첩되는 기간을 제하면 짧게는 50년이고 길게는 70년이상 되는 기간동안 한 가정의 정신적인 dogma로 존재해 오는 것인데 실제적으로 이것에서 오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더불어 나도 이 신앙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로 인한 도덕적 규례나 개인적인 가치가 정해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조건 하에서 내 행동양식도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성향을 빌려보면 나는 오히려 불교쪽에 더 가깝다. 선(禪)에 더욱 가까운 양식이 내 개인적인 사고방식이고 내면에 침잠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기독교나 불교나 그 핵심적인 사안에서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아니지, 오히려 그 core는 180도 다를 수 있지만 그것에 접근하는 종교적 방식에 있어서는 두 종교의 수련법이나 깨닫는 과정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아직 불교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돈오점수나 성령의 체험과 성경의 묵상이 한자와 한글의 체험일 뿐, 인간이 느끼는 것은 같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는 절대자와 인간개인의 수련이라는 가장 큰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내가 진여를 깨닫느냐 아니면 이 우주만물의 창조주가 존재함을 불현듯 깨닫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 삶의 방식에 변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막말로, 내가 어늘 불가적인 수행을 하다가 본래면목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세상을 창조주가 만들었고 구세주가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어느날 갑자기 천둥에 머리를 돌리듯 깨달았다면 그것은 기독교적인 구원의 감격인가 아니면 불교적인 득도의 경지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웅다웅 살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이다. 그리고 살면 살수록 기독교의 성경에 써 있는 대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온몸으로 증명하며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독교의 적이면 적이지 절대 아군이 아니라는 것을 정신적으로 육체저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악다구니 같은 돈지랄의 환경 속에서 살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 이번 주 로또 맞게 해주세요]따위의 기도를 줄기차게 뻑적지근한 교회에 앉아서 드리고 있다. 그것은 어찌 말릴 수 있으랴? 나도 가끔 먹고살기 힘드니까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해 달라는 절박성 기도가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기도가 아니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어차피 기독교와 상충되는 사회 안에서 상충되는 가치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해 봤자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개인적인 신앙의 모습은 점점 탈세속화 되어간다. 성경을 읽으면서 오히려 산문의 한가함을 느끼려고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용한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이나 산속 도량에서 독경을 하는 것이나 스스로의 욕심과 아집에서 벗어나서 신이나 도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일진대. 그래서 중세시대에 수도원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불어 이것도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모든 종교의 끝은 결국 시장으로 나와서 도를 설법하는 데 있는 것이다. 원효대사가 정토종을 만들 때 그러했듯이 도가 도에 이르면 그 끝은 사람들에게 나서서 도를 잇는 길이 되는 것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하고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이 뭔 차이가 있겠는가. 전도 찌라시 돌리면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론적인 문제가 아닌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것이 전도의 궁극적인 목표 아니겠는가.

아아 살면 살수록 어렵고 어렵고 또 어려운 것이 신앙생활이고 종교에 관련된 생각이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글로 풀어내지 못할 만큼 많은 종교적인 실타래가 꼬여있는데 과연 이것이 죽을 때까지 다 풀릴 것인가. 아니면 그 전에 번쩍하고 귀가 들리고 눈이 트이는 경험을 다시 하게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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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절대 망하지 않는 회사에 들어간 남편을 둔 후배녀석이 하나 있다.
결혼도 어찌어찌 하더니 스리슬쩍 난관도 별로 거치지 않고 잘 골인을 했다.
그러더니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쑥쑥 낳았다
(애 낳는게 쉽기야 하겠나. 내가 남자니까 경험이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둘이나 낳다니 요즘 세상에 대단한 체력에 배짱이라는 생각밖에는...)

그러다가 남편이 유학을 간단다.
그래서 따라 나간다네.

-.-a
그런데 난
이 친구가 뭘 하던간데 절대로 인생이 힘들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아닌 확신이 있다.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성품이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사람의 인생에 흐르는 기같은게 느껴져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 주변의 사람들이 고생하는 건 그렇게 못 본 것 같다 (난 늘 예외조항에 가까우니까 빼고)

아무런 사심없이
잘 되기를 바래 마지 않는 사람이다.
나처럼 사심없이 그냥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하는 주위의 사람이 많아서 
그만큼 잘 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도 사람의 인생은 십인십색.

겨울이 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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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 1 하다가 그냥 세이브하면서 자려는 중임.

내가 이걸 왜 샀지.

흑...무섭다.

공포영화보다 공포게임이 무섭다고 하더니
그 말이 진실이었음을 깨닫는 중.

밤에 하지 말고 낮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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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제작자 장난 아닌 듯.
디아블로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건
(아이템 전쟁이 된 디아2 말고 디아블로1편 말임...그 당시에 정말 무서웠음)
적은 안 보이고 어디선가 들리는 크르르르르 소리였는데

데드스페이스에서는
갑자기 뒤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머리서 뭐가 쿵꽝거리는 소리까지
확실히 사람은 보는 것보다 연상하는 게 더 무섭다.

이 게임 뒤로 가면
카메라 뒤에서 덮친다는데
이거 어떻게 끝까지 깰 수 있을지 모르겠음.

난 내가 겁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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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데드스페이스까지!
일단 기어오브워2편에 매진하도록 했다.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방식의 슈팅감각은 좋았는데 엄폐 은폐가 조금 속도가 느려진 듯 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발란스는 아직까지 괜찮은 것 같고, 초중반까지 왔는데 가장 쉬운 난이도로 해서 별 어려움 없는 걸로 보니 1편과의 발란스 조절에 상당히 애쓴듯, 바꿔 말하면 별반 볼 게 없는 2편이라는 소리도 될 수 있는데 그건 다 깨 봐야 알겠다.
어쨌건 인류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으니 썰어야 할 뿐이다.

더불어서 가져 온 데드스페이스는 언제 시작할 지 모르겠다. 하드고어하기로는 비교도 안 된다는데 어떨까?

참고로 페이블2가 중고 3만7천원에 나와 있었는데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와 버렸음~

본조형님이나 그로밋님에게 빌려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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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에 대한 상념은 잠시 접어두자

어쨌건 이틀만에 가장 쉽게로 해서 싱글플레이를 끝냈다.

1편만한 박력이 있는 엔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듯.
아무래도 이것도 트릴로지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주고어호러물 데드 스페이스로 넘어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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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 입구 태평데파트 뒤쪽 직업훈련원 왼쪽에 있는 짚불구이 삼겹살.

후배 한 명이 추천해서 갔던 곳인데

꽤나 맛있더군요.
초벌로 짚불에서 통째로 한 번 살짝 구운 담에 고기가 나옵니다.

그리고는 손님들은 썰어진 고기를 재벌(?)해서 먹는 셈이죠.
은은한 스모크향이 나는 삼겹살이라 꽤나 풍미가 괜찮습니다.

예전 제가 고등학교-대학교 시절만 해도 이수사거리(총신대 입구)역 쪽은
정말 활발한 재래시장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쭉쭉 높이 올라간 주상복합건물과
다 리뉴얼이 되어버린 뒷골목 먹거리장터 덕에 토박이들도 가끔 길을 헤맬 정도가 되어버렸지요.

어쨌건 맛나게 식사를 했습니다.
같이 먹은 친구 녀석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처음처럼] 하나 시켜놓고 둘이 각각 2잔씩 먹은 다음

"우리 사이다나 마시자"로 의견일치를 봐서
사이다로 쫑내고 집에 왔네요.

헐~
요즘에 오랫만에 만나서 돼지고기에 사이다 마실 수 있는 친구들이 참 드물어졌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한 4명정도 남아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몽땅 모이면
장정 넷이 삽겹살 시키면서 콜라와 사이다를 쌓아두고 먹는 풍경이 벌어지는데
뭐, 그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배가 불러서 문제지.
어쨌건, 고기냄새가 배서 귀가하는 건 참 오랫만이군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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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속이 안 좋아서 점심을 거르는 중, 조금 뒤 광고주를 만나러 가야하는데 아마 단가싸움때문에 서로 면구스러운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 다는 것이 거슬림. 어쩌겠나. 먹고 살려고 서로 하는 짓인데. 그 많던 싱아는 어떤 놈이 다 파 먹어댄 거냐.

2. 그리고 저녁에는 오랫만에 보는 친구와 술자리. 아주 죽어나는 하루가 되겠구나.

3. 누군가가 다운 받아 놓은 [시모키타 글로리 데이즈]를 잠깐 보게되었다. 출연진 중 AV(adult Video)배우가 셋에 그라비아 모델이 셋. 흠...그래, 이런 드라마는 스토리의 개연성 따위는 깡그리 무시해 주는 거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그림의 숨은 내역을 찾아볼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냥 좋은 그림들 속에 있으면 편안해 지는 것이다.

4.  국전에 오늘 갈 수 있겠나 이래서...

5. 일주일 째 운동을 쉬는 중. 회사일에 치여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더불어 몸의 컨디션 급격히 쇠락중. 내 신체는 확실히 육체적으로 뭔가 긴장감을 주지 않으면 다음 주부터는 몸이 바로 망가진다. 뭐 이런 경우가...살기 위해서 하루 2시간 정도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움직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거야 말로 이율배반적인 현실상황.

6. 이것저것 1년치 결산을 해 봤더니
   차갑고 쿨하고 인정사정 없는 업체가 가장 결재를 많이 해 줬고 대충 인간적인 끈으로 비비고 들어간 회사는 벼룩의 간을 빼먹듯이 돈을 줬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역시 세상은 이런 것이다.

7. 뭔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드는데 또 그곳에서 다른 길이 생기고 다시 막다른 길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샛길이 생기고 막다른 골목이 나오는 상황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어떤 동선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단기적인 심사로는 헬 던전 레벨1로 내복만 입고 돌아다니는 기분.

8. 그래도 오늘이 금요일이다. 다음 주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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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값을 감당하기가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점점 마진이 깎여나가는 상태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년 1/4분기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제bonjo형님과도 이야기했지만
대기업이 하청업자들의 마진을 감안해주지 않는 한
대한민국 중소기업은 레밍이 될 확률이 거의 99.99%

점점 제조사들은 수도권 외곽으로 빠져서 경비를 절감시키려고 하는 반면
갑, 대기업들은 보다 빠르고 싸게 물건을 조달하려는 생각이 점점 강해져 왔다.

이런 식이면 서로 공멸이지.
작고 빠른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뒤쥐처럼 싸면서 먹어대는 수 밖에 없다.
몸의 열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먹어야 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서 엄청난 운동량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손실된 열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더 많이 먹어대야만 살 수 있다.

하, 이거 참 끔찍하구만.
어쨌건 [쥐처럼 부지런히 아둥바둥 대야 죽지않는 사회]를 만들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

으허허허 그건 오해입니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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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썰고!


땅에서도 썰것이다!!!

내일 저녁 아니면 내일 모레 무조건 국전으로....
기나긴 겨울 밤을 살육으로 가득 채우고
새벽기도 가면 좋아하실라나.


하지만 지르고 썰어야 하는 것이 이번 겨울의 숙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일자상전! 비인부전! 지름의 권 전승자이시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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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고 돌고

투덜투덜 2008. 11. 6. 17:10
사람에게는 각 인간이 따라가는 거절할 수 없는 루틴이 있는 것인지
정신을 차려보면 몇 년 전에 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을 보게 되는데
과연 사람에게 운명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된다.

쉬운 길을 선택해도 그 길로 가고
어려운 길을 선택해도 그 길로 간다면
차라리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게 더 정신건강에 낫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지금 전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길이 있는데 그 길이 존재하는 지도 알지 못하고 그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하여간 그 길은 지금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사람들이나 관념이나 방식과는 젼혀 다른 것을 보여줄수 있다치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익숙한 길에 계속 들어가서 그 길을 따라 살면서 모든 고민을 조금씩 풀어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그 길을 모르는데 내가 그 길이있는지를 어떻게 알며 그 길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를 못하는데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결국 해답을 찾는 방법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환경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 현재 내 주위에서 얻어질 수 있는 해답이 아니라면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이것저것 써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던 싫던 변화가 일어나야만 계속되는 삶의 순환구조 (아무리 봐도 선의 순환구조가 아니라고 판단되어지는)가 파괴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가?
허용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허용을 말하는 것인가 내 개인적인 EGO와 선악개념과 윤리관의 확장 내지는 파괴를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근본적인 인간성과 내가 쌓아온 인생의 겅험치를 리셋시키고 다시 시작해봐야 하는 걸까?

잠깐.
이건 해 봤는데.

결국 이것도 또 다른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리사이클에 지나지 않는 건가?

무엇을 한다 해도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인 것인가?
사조성이 머리위에 뜨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아 정말 살수록 인생은 고찰할 수 없는 측정불가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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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Road 2

작은 방 한담 2008. 11. 6. 10:06

솔직히 말하자면
난 지금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런데 걷다가 길이 두쪽으로 쪼개지는 걸 보면
둘 중의 한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운명이고 팔자인 것이
이정표만 보고 가만히 서서 평생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둘 다 솔직히 맘에 들지 않는다. 앞에 뭐가 있는지 뻔히 보이는데?

오바마 이야기도 했지만서도
잘 아는 길을 그냥 묵묵하게 돌진해 가느냐
아니면 전혀 모르는 미답의 길로 모험을 떠나냐의 문제이다.

흠.

근데 왜 나는 이딴 걸 결정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지만 고생을 사서 하는 놈은 미친 놈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아 난 미친놈이던가 미친놈이되도록 강요받거나 미친놈이 될 운명을 부여받았거나 그런 모양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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