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08.11.18 겨울이 오고 있다. 8
  2. 2008.11.18 역사의 굴레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6
  3. 2008.11.17 말레나 3
  4. 2008.11.17 건망증 5
  5. 2008.11.17 아침 2
  6. 2008.11.17 벌써 월요일 2
  7. 2008.11.15 선비처럼 살고 싶었다 3
  8. 2008.11.15 술을 먹으면
  9. 2008.11.14 제목에 욕 썼다가 지움... 5
  10. 2008.11.14 France(1) 4
더위를 별반 타지 않고 추위를 많이 타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어디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편이죠.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외근을 나가야합니다. 오늘도 충무로에 나갔습니다.
(bonjo형네 들를까 하다가 길 건너편이라 그냥 지하철로 다시 사무실로~)
사람들이 안 보이네요.
대한극장 앞도 썰렁하고
권텀오브솔러스를 볼까말까 하다가 돈도 없고 뭐시기거시기한지라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바지에 레깅스를 입은 처자들이 용감무쌍하게 돌아다니는군요.

중학교 다닐 적에 동네 아파트에 일본인가정에 하나 있었는데
이 가족은 자기 자식들에게 반바지를 겨울에도 입혀서 내보내더라구요.
나름대로의 전통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본의 극(克)에 대한 문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겨울은 묵묵히 이겨내는 것이다]라는 말이 전해진다는...
그래서 겨울에도 미니스커트 교복을 볼 수 있는 나라 아니겠습니까?
우와! 그래! 근성으로 이겨내는거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입니다. 살림살이나 경제도 겨울로 들어서고 있죠. 솔직히 더 걱정되는 것은 내년 봄입니다.
내년 봄은 춘래불사춘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모두들 하고 있지요. 부연하자면 이번 겨울은 내년 여름까지 갈 것입니다. 정말 기나긴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winter is coming]
제가 좋아하는 리얼 하드보일드 막장 환타지 [얼음과 불의 노래]에 나오는 스타크 가문의 금언이죠.

예,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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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독일의 10~18살 인구의 87%가 히틀러 유겐트에 소속됐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국가의 이름은 항상 옳다.
개개인의 이상과 신념은 국가를 위해 희생되어야 마땅하며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의 결단은 항상 옳다.

1939년
그리고 2009년이 다가온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제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적인 근거를 찾는 게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
이성을 공포가 억누르는 시대가 다시 온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디트리히 본 회퍼?
or
제3제국교회의 대다수 기독교도들?

주기철?
or
한경직?

유시민?
or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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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

見.聽,感 2008. 11. 17. 12:18
다른 건 생각이 하나도 안 나지만
마지막 엔딩이 뇌리속에 각인이 되어버린 영화.

솔직히 초중반까지 영화 줄거리 안 보고 에로에로 장면만 눈이 시뻘겋게 되어 찾아보다가
마지막 종반부터 슬슬 어라라? 하면서 내 인상이 굳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보게 되던 영화

엔리오 모리코네 옹의 음악에 묻혀가던
모니카 벨루치의 뒷모습을 보면서
서러운건지 그리운건지 뭐가뭔지 모를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데

아, 그것은
극장판 [안녕 은하철도999]에서 메텔이 마지막에 철이에게 이야기하던
[나는 너의 젊은 날의 추억, 다시 올수 없는 청춘의 그림자]라고 이야기하던
바로 그 장면 아닌가.
(난 이 만화 이 장면 보면서도 질질 짰던 경험이...)

어쨌건
세뇨라 말레나.
행운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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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작은 방 한담 2008. 11. 17. 11:30
1. 명함집을 찾았다.
    빨아서 널어놓은 바지 속에 있었다.
    다행히 zio님의 명함은 걸레가 된 내 명함 사이에 들어가 있어서 산산히 형해화되는 작업을 피할 수 있었음...
    대신 뒷주머니속과 명함집은 펄프로 떡이 되어 있는 상태...흑.
  
   분명히 빼 놓고 세탁기를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어쨌거나 명함집을 찾았으니 얻어놓은 명함들을 다시 잘 넣어두는 중.

2. 집에서 출근할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내가 열쇠를 돌렸나 안 돌렸나]를 가지고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고민을 없애기 위해서 전자식 자물쇠를 달까도 생각해 봤지만
    괜한데 돈 쓰는 것 같기도 해서 그냥 있는 상태.

3. 결벽증인지 건망증인지 모를 중간단계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아직까지는 별반 불편하지는 않고, 뭔가 생활도중 잊어버린 물건이 있다면
   오히려 그냥 훌훌 털어내고 [뭐 어쩌겠어?]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심정이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어 오히려 마음은 
   편해지고 있는 상황임. 확실히 사람은 처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정신건강이 결판나는 듯.
   아, 내가 20대에 조금만 더 이런 여유를 가졌더라면.

 

(아, 그래도 이런 말은 도저히 못하겠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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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작은 방 한담 2008. 11. 17. 09:54

1. 머리가 아프길래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아, 이거 아무래도 감기같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어....흑
   (근데 왜 아픈것도 생각을 해 봐야되지?)

2. 난 늘 계쩔이 바뀔 때마다 고민을 한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어차피 내 장롱에 들어있는 옷의 색깔은 모두 단일하기 때문에
   뭘 입던 똑같지만 나름대로 고민은 한다.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긴 시간을 고민할 것이다.
  
  결국 오늘 입고 나가기로 한 건 검정 폴라티에 검정조끼 그리고 검정 노스페이스 패딩잠바.
  바지는 검정 바지를 빨았으니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나가야겠다.
  더 추워지면 검정 쿠드로이바지를 입어야지...우리 땐 골덴바지라고 부르지 않았나?

3. 우리 집 소라게가 2년이 넘은 채 3년 가까이 홀로 생존을 하고 있다.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모르는 행운목과 함께 존재하는
   우리 집에 사는 인간 외 2개 생명체 중 하나.

  절대 죽지 않는 녀석이다.  인간도 견디기 힘든 우리 집의 0% 통풍환기 구조에서 다른 소라게들이 다 죽어갈 때도 
  나무껍질을 벗겨먹으면서도 살아남은 녀석이다.
 
아예 이름을 바꿔서 부른다.
이제 이 녀석의 이름은 [가츠]다. 베르세르크의 원작 주인공도 이 놈만 못할 듯.

오늘 아침도 이 놈을 보면서 난 불굴의 생존의지를 느낀다.
그래, 오늘도 나가서 생존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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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월요일

수련장 2008. 11. 17. 01:22
취생몽사하는 것도 아닌데 훌쩍 시간은 지나가서 벌써 월요일이 되었네
그러고 보면 사람인생이라는 것이 정말 뜬구름처럼 쉽게 시야에서 잊혀지는 것인데
그 짧은 시간동안 슬퍼하며 기뻐하며 그리워하며 토라지며 화를 내며 사는 것 또한 우습구나.

이 짧은 시간동안
몸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으면 병이 들고 사람을 건사하지 않으면 외로워지고 일을 하지 않으면 굶게 되며 용기를 내지 않으면 얻지를 못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더 짧은 시간 내에 미련해 지는 것이 사람이니 정말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무언가로 채워지지 않는 한 사람은 늘 결핍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결핍을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면 또한 사람은지치고 슬퍼지고 그로 인해 생에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 누군가 아는 지인이 말했지만 현상유지라는 말은 정말 가공할만큼 의미심장한 이야기라. 늙으면 젊음을 유지할 수 없고 명민함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인데 현상유지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의 절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이들고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줄어든다. 단지 돈만이 시간과 노력에 관게없이 들쑥날쑥할 뿐. 바꿔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돈은 시간의 법칙이나 자연의 인과율을 따르지 않는 극히 불가해한 존재일 뿐이다.

요즘 부모님이 잠이 부쩍 줄고 눈이 어두컴컴해 지셨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내가 봤을 때는 충분히 밝은 조명 아래서도 뭔가 어둡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게 인생이랄까.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아아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구나.
벌써 11월도 중순으로 넘어서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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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한 이야기지만 저게 내 목표다.

가슴에 십자가를 걸던 손목에 염주를 걸던 그것이야 다른 이야기지만

내 목표는 언제부터인가 [선비처럼 사는 것]이었다.

오직 진실만을 좆고 진실되게 살고 진실만을 후대에게 이야기해주겠다
그게 내 희망이고 지금도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복소무완란(覆巢無完卵)이라는 말이 있다.
조조가 공자의 후손인 북해태수 공융을 죽일 때 군사들이 집에 들어와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있을 때 공융의 작은 두 자식에게 하인들이 도망가라 했더니 어린 것들이 바둑을 두면서 말하길
[둥지가 뒤집히는데 알이 무사하리?]라고 하면서 태연히 바둑을 두다가 목이 잘렸다는 것이다.
나는 저 이야기를 반추해 볼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공융이 정치적인 감각은 떨어져도
아비가 가정에 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보여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사의 협기가 없다면 선비의 기개라도 갖고 있어야 인간이라고 할 것인데
어찌하여 요즘 이 나라에는 장사치의 얄팍한 눈가림외에는 없는 모양이다.
네모도 세모고 동그라미도 세모라고 하는 떄에 나라도 깨어 있고 싶은게 소망이다.

그러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아닌가.

수신이 안 되니 제가도 안되는 것이다.

최근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스스로가 아직 한없이 부족한데 무슨 치국평천하 운운할 도리와 자격이 있을꼬.
정말 오래오래 살아야 사람이 되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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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으면

작은 방 한담 2008. 11. 15. 12:23
사람이 보통 때보다 한 20%는 명랑해지는데

문제는 그 다음 날.

결론.
아침에 두통으로 혼났다는 정도.

내가 겪어본 최고의 숙취는 막걸리였는데 어어~ 그건 정말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거제도에 놀라갔다가 막걸리 2통을 먹고 (거진 다 먹었던 듯) 배불러서 기분좋게 잤는데
다음날 외도까지 배타고 가다가 죽는 줄 알았음
아버지 내 여기서 빠져죽소 하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니~ 아니, 이것이 아니고...

그래서 나이들면
독주를 먹어야 하는 모양이다.
위스키나 럼은 양으로 승부하기에는 독하기도하고 값도 비싸니까...
그나마 덜 취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내년에 경기도 어렵고 사업도 힘들고 그러면
기본적으로 접대나 스트레스 때문이나 술을 찾게 될 경우가 비일비재 할 것 같은데
그건 또 어떻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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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임금에게 목숨걸고 상소하던 양반들이 있었는데
상소 잘못 올리면 자기 집에서글 써도 다른 데로 곤장맞고 쫒겨나거나 목잘렸기 때문.

며칠 전에 인터넷에 한국 경제위기론을 이야기하던 50대 논객이
검찰조사까지 받고 거의 절필압력까지 받고 있는 상태

조선시대 최고 하드보일드라고 불리던 숙종도
자기 성질 박박 긁어놓는 송시열이를 원샷원킬로 죽인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대의명분 다 깔아놓고 원적지에서 죽여버렸는데
(송시열은 개인적으로 좀 문제 많다고 보는 편이라 별로 불쌍한 생각은 안 듦...)

이건 뭐 이현령비현령도 도가 있지
입만 벙긋거리면 그날로 조져대니
이게 뭔 놈의 민주주의 국가야 대판(大阪)왕조지...

촛불 들어도 잡아가 가방에 우산 있어도 잡아가 유모차 길에서 끌어도 조사받아
정작 가스통 끌고 방송국 진입시도 한 놈들은 정부지원금 받아
김구선생이 좌익이라고 10만원권에 안 넣어
세금으로 만들어낸 연기금 환율방어하는데 다 처발라

아 정말 욕을 하는 내 혀의 운동량이 아까운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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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1)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14. 16:17
예술과 평등과 자유의 나라라는 프랑스가 다음 기착지였는데 여기부터는 정말 럭셔리한 버스여행이었다.
원래 꼬질꼬질 거지여행을 각오했던 나로써는 더할나위없는 호사였고,(그래서 정말 가기 싫어햇었다.)
아마도 다시는 그런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다.

칼레에서 파리까지 버스를 타다니...놀라운 일 아닌가. 우리나라처럼 산세가 천변만화하는 지형도 아닌
그냥 둥그런 능선만 이어진 푸른 목초지가 그 먼 거리를 계속 잇고 있는 광경은 경이롭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솔직히 가장 놀라운 장면이었고, 이 경험을 날려버린 건 독일의 슈발츠발트였지만 둘은 상이하니 어쨌거나)

그래서 파리로 넘어갔는데...

파리는 실망이었당.
내가 갔던 때가 여름철이어서
진짜 파리지앵들은 다 어디론가 휴가를 가 버리고 빈 도시를 관광객들만 유랑하고 다녔기 때문....

게다가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이 하나도 안 남아버렸다.
필름을 감다가 다 감긴줄 알고 열었는데 필름이 찢어져버리며 후루룩 다 풀려버리는 초유의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어흑...디카가 없던 시절이란)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에펠탑 아래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친구가 찍어준 사진 뿐이었당.

설상가상, 아무도 안 들리는 인문사 박물관에 혼자 들어갔다가 일행과 버스가 사라져버리는 초유의 사태 발생.

지금같았으면 호텔 번호만 외워놓고 깡으로 버텼을 법 하지만 순수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20세 청년은
파리에서 미아가 되면 중동으로 납치되어 평생 노예가 된다는 당시의 [믿을만한 소문]에 귀가 쩌든 상태인지라
패닉에 빠져버렸다.

그래도 구명도생할 길은 찾아야겠기에
그 당시 에펠탑 광장 옆에서 과일을 팔던 집시처럼 보이는 아줌마에게
안되는 불어로 물어물어서 버스를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가 불어였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고, 사람이 절박해지면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는데 그때 나는 불어로 이야기하고 그 아줌마가 이야기하는 걸 다 알아들었다! 아니, 아줌마는 손짓으로 이야기했지...-.-)

아~ 그렇게 슬프게 다녀온 프랑스.
아마 다시는 못 가겠지....이런 환율에 돈 아까운줄 알게 된 나이라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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