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08.11.03 광고쟁이 4
  2. 2008.11.03 사는게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나 2
  3. 2008.11.02 Prague-3 4
  4. 2008.11.02 장판이 찢어지다 2
  5. 2008.11.02 그러고 보니 뭔가 블로그가 변질되어가고 있다 2
  6. 2008.11.02 아이팟 터치
  7. 2008.11.01 토요일 한담 2
  8. 2008.10.31 맘에 드는 일러스트 몇 개
  9. 2008.10.31 Alchohol
  10. 2008.10.31 10월달은 잔인한 달이었다

광고쟁이

작은 방 한담 2008. 11. 3. 14:37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나는 광고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출생은 카피라이터이되, 카피라이터로만 살 수 없기에 AE짓도 하고, AE짓만으로는 충당이 안되고 사람도 적고 그렇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으므로 가방모찌도 공공연히 하고 사람이 없을 때는 운전수부터 하역꾼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면서 살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 소규모 광고업체의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살고 있을 터, 뭐라고 혼자서 개인의 신세타령을 늘어놔 봤자 객적인 소리일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광고판에서 만나 본 사람들 중에서 정확하게 광고 본판에 뛰어들어서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이들은 극소수의 능력자들 뿐이다. 광고판에서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몇몇은 광고 외의 수입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일이 허다한데, 이유인즉슨
머리는 쓸만큼 써도 매출로 직접 이어지지 않으며 매출로 이어진다 해도 갑과 을의 고정적인 신분차별에 대한 억압이 늘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고판의 갑과 을은 다른 갑과 을의 상태와 비교해 볼 때 시민계급과 농노의 수준정도의 차이가 난다. 물론 제일기획이나 다른 외국계광고회사같은 덩치 큰 곳은 제외하고 볼 때, 광고판의 갑과 을의 관계는 클럽에서 만난 원나잇스탠드보다 끈끈함이 덜하다. 하루 아침에라도 잘못 보이면 그 날로 모든 것이 끊기는 것은 물론이요, 한 번의 프로젝트도 견적서 하나에서 밀리면 그 날로 거래가 끊기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상거래 행위의 상도나 인간관계에서의 끈끈함 같은 것은 전혀 볼 수 없는 곳이 이 곳으로 자기가 데리고 있던 직원을 내치는 것은 봄날 나물 뜯으러 가는 것보다 수월하고 관포지교가 오월동주로 변하는 것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20년 가까이 광고판에서 뼈를 묻은 어느 사장이 [돈 벌려거든 광고판을 떠나라]라고 너무나도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었으니 오죽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직업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 지금와서 별다른 일을 하기도 그렇거니와 두번째는 어쩌다 한 번 내가 창의력을 기울인 작품이 한 번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기쁨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일장춘몽을 꾸기 때문이다. 두번째 부분은 소규모 대행사에서는 로또1등과 같은 부분이다. 소규모 대행사와 거래하는 업체라봤자 크기가 고만고만할텐데 공중파 CF는 언감생심이요 지면광고도 제대로 못 싣고 그저 찌라시로 홍보효과를 노리는 부류가 대다수이다. 그런 곳에서 내가 제안할 수 있는 매체와 컨셉은 당연히 제한된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큰 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 대박의 꿈을 안고 인디언이 득시글대는 서부로 달려가는 포장마차들이 광고판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읽던말던 그냥 글을 쓰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그래서 이 직업이 적성에 맞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력의 극한을 뒤집어 놓은 말초신경의 장난질에 불과하다는 것은 빼도박도 못하는 이 시점에서야 깨닫는다.
블로깅과는 별도로 지금 뭔가를 집에서 혼자 쓰고 있다. 이게 무엇인지는 나도 쓰면서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내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흔들어 쏟아서 손으로 옮긴 뒤에 활자로 만드는 행위를 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은....아마도 내 천형이거나 내 천직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밖에.
어쨌건 지금도 뭔가를 만들어 내야한다.

돈을 만들어야지
돈을 만들면 자유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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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초등학생 멱살을 붙잡고 물어보자
이 백회혈에 피도 안 마른 자식아 인생이 즐겁냐 라고 하면  십중팔구 초등학생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 냅둬 건들지마 살기 힘들어라고.
축생으로 태어나서 구관조처럼 말할 수 없는 동물들이나 그냥 묵묵하게 사는거지 인생으로 태어나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 고해의 파도에 온 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 정당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살수록 불교가 말하는 고집멸도의 삶이 확실한 진실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생들은 나이가 먹으면서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국민이 찰나의 이익에 빠져서 부나비처럼 인생을 단견하며 돌진하는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진리가 어찌 체득하지 못할 종류의 것이겠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머리는 삼라만상 우주의 고해가 다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복잡하며, 가끔은 인생 뭐있어 최진실처럼 쫑낼까 하는 급박한 결단까지 수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마당인데 하물며 나보다 훨씬 처지가 절박하고 하루벌어 하루먹는 게 안 되는 인생이라면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득도하는 삶을 사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삶을 산다는 것은 공포와 자기보상을 동시에 짊어지고 다니는 운명이다. 쉽게 목숨을 내던질 수도 없고, 자기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쉽게 발을 뺄 만한 여건이 안되는게 태반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직 고민조차 채무관계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뭐 어쩌겠어. 이것이 내 운명인 것을. 혹은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알콜이라도 혈관속에 흘려보내면서 머릿속이라도 소독되기를 바란다. 젠장,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여기면서 다음날 아침의 두통과 숙취로 [죽고싶다]를 외치면서 치열하게 사는 이율배반적인 생활의 쳇바퀴를 돌리는 시지프스의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해 진다.
몇 주 전 존경하는 목사중의 한 분이 주일날 설교에서 절망을 피해가는 법에 대해서 설교 할 때에 마지막까지 남는 말이 하나 있었으니  세상의 고민은 내가 접한 것 보다 훨씬 심각하지 않다. 마음의 문제가 훨씬 크고 그것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게 이야기의 논지였다. 옳은 말이다. 내 스스로가 만드는 공포와 절망의 구렁텅이가 현실보다 크지만 그 공포와절망은 곧 현실로 구체화 된다. 늘상 보아오는 환타지중의 하나다. 공포가 실체화 되어서 사람을 갉아먹는 부분. 그것이야말로 삶의 고난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의 짐을 덜어놓을 만큼 심리상태가 고도로 안정되어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부단한 인내와 노력뿐만 아니라 의도한 수양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늘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기, 이런 경제환경 속에서는 그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삶에서 공포를 놓지 않지만 극한으로 치닫게 되면 자기보상의 미련을 내려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존심을 버리게 되고 그 안에서 자포자기의 위안을 얻는다. 물론 이것이 종교적으로 돌아가면 본래면목을 찾을 수 있는 법열의 단계까지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현실에서 자기를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서울역 지하보도를 아침에 걷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내 모습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절망이라는 이름 대신 자신을 잃어버리고 끈질긴 삶을 영위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단지 또다른 내 자아일뿐이다. 현실과 현상태의 밑바닥을 허무는 경계선은 생각보다 얄팍하다.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지만 한 번 넘어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군사지역 철조망 같은 것이다.
이 모든 생각과 절망적인 상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선을 넘지 않고 그나마 인간다운 자존심을 회복하고 살아가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몇몇은 신앙일 것이고 몇몇은 가족일 것이고 그리고 또 몇몇은 생명을 내 주고도 꺽지 못할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일 수도 있다. 인생은 평안함이라기 보다는 고난의 바다에 떠서 언젠가 건너편에 육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부단히 노를 저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젓다가 지쳐 죽어버리는 수가 태반이고 그 누군가가 육지에 도달했을거라는 풍문만 들려올 뿐, 나 혼자 타고 있는 일엽편주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아는 사람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는 전인미답의 황량하고 야만적인 세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야하는 이유는 일단 내가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나를 보호하는 껍데기가 조금씩 얇아질수록 진행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고 슬프고 억울하고 외롭지만 어쩌랴.

이게 인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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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gue-3

역수 나가는 날 2008. 11. 2. 23:27

프라하를 둘러보면서 가장 인상깊었고 가장 둘러보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곳은

[성 시릴&메토디우스 성당]이었다.



30대 넘은 올드 무비 팬들은 모두 아실 것이다. 2차대전비사를 영화한 것 중에 가장 충격적인 엔딩을 보여주는 영화 중 하나인 [새벽의 7인]을.

(아아 그 청춘, 새벽에 지다! 이 한마디로 모든게 나오는 카피. 당시 개봉 찌라시다)
당시 시대는 나치스 치하의 체코공화국.
SS친위대장 출신의 무자비하고 악명높기로 유명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체코 사령관으로 들어오고 체코 민중을 탄압하게 되자 영국에 피신해 있던 체코의용군을 중심으로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이 시도된다.

(피규어로 나온 하이드리히의 모습, 왜 어느 분 닮지 않았는가? 으허허 그건 오해입니다.)

하여지간 더 궁금한 건 영화를 보면 안다. 그리고 암살작전 성공한다.
문제는 암살을 성공한 담에 검거선풍이몰아쳐서 애꿏은 사람 꽤나 족쳤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이 동지를 배반하게 되고 체코의용군 7명은 하나 둘 좁혀지는 포위망 속에서 죽어나가고
맨 마지막 남은 2명의 젊은 용사는 [성 시릴&메토디우스 성당]에 은거한 채 최후의 항전을 맞는다.


슬쩍 찍은 성당이다. 이곳에서 나치독일군과 2명의 레지스탕스는 화력전을 펼치고, 파상공세에 시달리던 2명의 사내는 결국 성당 지하의 납골당으로 옮겨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한다.


(지하 납골당의 계단. 현재는 전시실 입구가 따로 있다. )
2사람은 지하실에 숨어서 쏟아지는 수류탄과 총탄을 견더내며 다음날 새벽까지 버텨내는 집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문제의 환기구를 통해 소방차들과 소화전에 연결된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당시 지하에 있던 두 사람은 환기구 아래 쪽에 폭탄을 설치하여 하수도를 통해 빠져나가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예상과는 다른 지점이었고 암반이 두터워 탈출에 실패하게 된다. 저위에 빛나는 곳이 환기구, 그리고 그 아래쪽 구멍이 당시 두 사람이 탈출을 하기 위해 구멍을 냈던 자리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국 물이 목까지 찰 때까지 버티다가 극적인 최후를 마치게 된다.
(영화 새벽의7인을 보신 분들은 알리라. 그 마지막의 비장함을)


 
(현재 환기구 바깥 쪽에는 저렇게 죽은 체코영웅들을 위한 추모비가 헌정되어 있다. 저건 총알자국.)
어쨌건 하이드리히의 죽음 이후 히틀러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프라하 인근의 마을 하나를 포격해서 날려버린다. 사람들은 다 죽어버렸고...

이 건물은 유명한 춤추는 건물이 있는 부근에 있다.

한국인들에겐 그리 유명한 곳이 아니다. 추억의 올드무비 팬들이나 가끔 찾을까.
하지만 한 번은 들러볼 만한 곳이다. 그 영화가 생각난다면.
어두침침하고 을씨년스러운 납골당에서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젊은이들의 뜨거움이 아직도 전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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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이 찢어지다

수련장 2008. 11. 2. 15:26
식탁의자를 뒤로 미는 순간 의자가 평소와 다르게 강한 마찰감이 의자다리를 지탱하는 것을 느끼고 의자를 치운 뒤 부엌바닥을 살펴보았다.  마치 송곳으로 파 놓은 것 처럼 밑바닥이 여기저기 패여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부러 이런 경우를 방지하고자 의자에 천으로 자리보호대까지 씌어놓은 상태였는데. 재빨리 의자를 뒤집어 보았다. 천보호대는 뻥 뚫어져 있었다. 어차피 사람이 앉으면 바닥와 접촉하는 부분은 늘 일정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넝마조각처럼 한 군데가 뚫려 있었고 그 사이로 뭔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보호대를 벗겨내자 플라스틱 밑받침이 톡하도 두조각이 난 채로 떨어져나왔다. 원래 의자를 만들 때 나무를 보호하기 이해서 말굽의 편자처럼 아랫쪽에 대 놓은 바둑돌만한 원형의 플라스틱이었다. 그런데 그게 두갈래로 쪼개진 것이었다. 다시 의자 다리를 살펴보니 그곳에는 플라스틱을 끼워넣기 위해 박아넣은 못이 끝이 삐죽히 나온 채 발바닥의 가시처럼 의자 다리 빝바닥에 존재하고 있었다. 저녀석이었다, 우리 집 부엌을 다 파헤쳐 놓은 녀석이.

망치 못뽑이로 간단하게 제거하고 쪼개진 플라스틱은 버린 채 다시 보호대를 씌웠다. 이제서야 밀리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엌바닥은 회생불가능한 상처를 남겼고 참으로 보기흉하고 상태도 안 좋은 결과만을 가져왔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세심하게 한번씩 살펴보고 무슨 문제인지 봤어야 했던 것이다. 의자를 보호해주려던 프라스틱이 쪼개지면서 오히려 거기 달려있던 못이 마루를 죄다 파헤쳐 놓는다니. 그리고 그것을 막아야 했던 천보호대가 범인을 숨겨주는 역할만을 하고 있었다니. 처음에 하나가 잘못 되기 시작하자 모든 선의로 포장되었던 것들이 뒤틀려 악의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의자를 함부로 관리한 내 잘못이 더 큰 노릇이다. 못이 솔직히 무슨 잘못인가. 그 아이는 애초에 직공이 만들었고 의도했던 대로 그 자리에 꽉 박혀있기만 했을 뿐인것을.

사소한 부주의 하나로 모든 일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나는 소소하지만 그런 경험을 많이 해 봤고 가끔은 네가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눈사태가 되어서 나를 덮치는 경험도 몇 번 해 보았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을 지내고 그 뒤 자숙의 시간을 거친 뒤 돌아보면 그 모든 일의 시작은 참으로 사소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생활에서 항상 주의하고 조심하면서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그것이 전적으로 내 개인의 잘못이라면 몰라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제3자의 사소한 실수 덕에 일어나는 사고라면 나는 그 때 어떤 방법을 택할 수 있을까?

사람은 살면서 두가지를 대비해야 하는 것 같다. 하나는 사고를 처음에 막아낼 수 있는 주의력과 조심성을 갖고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처를 감내하면서 살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사는 것이다. 전자가 항상 가능하다면 후자는 불필요한 노파심에 불과하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인생에는 후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마루바닥에 파인 생채기들을 본다. 이리저리 무두질하고 대충이나마 처리를 하면 지금처럼 울퉁불퉁거리지는 않겠지만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감출 수는 없는 일. 아마 저 모습을 그대로 보면서 사는 것이 인생일게다. 하지만 마루에 더 이상 상처를 내지는 말아야겠다. 아직도 마루를 쓸 일은 너무나도 많고 부엌의 의자에 앉아야 하는 것은 내가 생명체로 살아가는 이상 어쩔수 없는 필연적 선택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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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제외하고서는 절대로 사진을 올리지 않기로 내심 약속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사진을 마구 펌질해서 나르고 있는 나 자신!

하루에 300명을 넘는 괴 카운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 분명하다

원래는
순수한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블로그를 만들 생각이었다!
텍스트! 오직 텍스트로 점철되어서
처음 방문한 사람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활자에 압도되어
법화경을 읽는 기분으로 몇 줄 읽다가 뛰쳐나가게 만드는
그런 블로그를 꿈꾸고 있었는데!!!!

아아, 이것도 다 인간의 욕심과 아집을 벗어나지 못한 수양의 부족!

다시 텍스트로 회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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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 터치

작은 방 한담 2008. 11. 2. 09:55
어느 지인분 블로그 들어갔다가 본 건데


이 아이팟 터치
예쁘긴 하다.

사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머릿속에 드는 생각

내가 저걸 어디에 쓰지...?
내가 저걸 어디에 쓰지...?
내가 저걸 어디에 쓰지...?
내가 저걸 어디에 쓰지...?

 이 거 참
내가 생각해도 문제인가

내가 쓰는 핸든폰만을 봐도
적당히 큰 크기에 잘 눌러지는 버튼과 폴더를 열지 않아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
딱 이정도 기능만을 구비하기를 원하고 그 이상의 기능은 찾지도 않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
연비가 좋거나 수리가 용이하거나 값이 싸거나.
셋 중 두개만 만족하면 외형이나 브랜드는 별로 안 따지는 것처럼.

사람의 삶이나 소비성향이 질박하다는 것과
극도로 실용적인것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는 건데

난 질박하다기보다는
언젠가 부서질 것에 대한 물건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려는 것 같다.

결국
모든 것은 불신?

참담하군.

p.s) 써 놓고 보니까 지르라고 권유하신 그 분(!!)께 죄송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아날로그 감성에 아날로그 생활을 고집하는 인간이니...
      (콘솔게임을 즐기는 걸 보면 그게 오히려 대단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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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한담

작은 방 한담 2008. 11. 1. 21:59
1. 대체 방명록도 안 쓰고 댓글도 안 다는 눈팅만 하는 사람들이 370명이나 들어오는 이 괴상한 사이트의 주인으로써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귀하가 사람이시면 감사합니다.
귀신이면 물러가거라!

2. 저녁으로 먹은 건 맥주 하나와 돼지고기 편육 10조각정도.
   내가 무슨 중세시대 독일 용병도 아니고
   하긴 집에 먹을거라고는 그거 아니면 밀가루밖에 없는데 뭐 어쩌랴.
   햇반이 있긴 하지만 햇반이라는 것은 반찬을 마련해야 하는 종류기 때문에 참 곤란할 떄가 많다.
   그래서 자취하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저녁을 밖에서 사람들과 먹으려 드는 것이지만.

3.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힘들어지는 일이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보는 사람도 100%신뢰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온라인 장터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이 용자처럼 보이더라.
    (하긴 인터넷 쇼핑몰의 불안감을 극복한 지 몇 년 안되니까)

   그것도 그렇고...역시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건 어린 시절에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났던 사람들 외에는
    믿지 못한다는 것을 요즘 여실히 증명받고 있다. 하기사 어린시절 동무들이라고 모두 진실된 것도
    아니다. 결국 무소의 뿔처럼 혼자가게 되는 게 인생인가? 우울하군.

4. 기어즈 오브 워2가 8만3천원에 한정판을 판매한단다.
    벼룩의 간을 뺴먹을 작자들 같으니, 어차피 한 달만 더 참으면 팍팍 떨어진 값에 구매할 수 있는
    대량 타이틀을 그따위로 팔아먹는 걸 보면 정말 상도라고는 발바닥의 떄만큼도 없는 인간들이다.

5. 날씨가 좋으니 놀러가 볼까?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가 봤자 내 정서상 부합되는 곳도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
   멍하니 산 정상에 벤치 하나 있는 곳. 그런 곳이 좋은데
   문제는 그런 데 가면 서로 주물럭 거리는 연인들밖에 없다는거.

6. 성가대도 그렇고 내년의 교회 사역은 0가 될 것 같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그랬는데 수신은 개뿔이고 제가는 시궁창이니
   그냥 평신도로 사는 일 밖에 없는 것 같다. 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하지만 이근안이도 목사가 되는 나란데 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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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해머 온라인(중세라니...스페이스 마린을 원했는데)에 나오는
제국의 퇴마사 witch hunter.

최근 들어서 굉장히 호감을 갖고 있는 무적함대시절의 스페인 복식이 베이스같은데...
아마도 [알라트리스테 시리즈]를 읽고 난 뒤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저분해 보이고 퇴락해 보이지만 한 때의 영광이 아직 살아있는 마초스러운 분위기


아무래도 검도와 권투를 거쳐서
40대 후반에는 펜싱을 배울 것 같다는 기괴한 예감이 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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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ohol

투덜투덜 2008. 10. 31. 21:27

인간은 이 화학혼합물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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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이 끼어있는 달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잔혹스러운 달이다.

99년 10월 30일에 몇년인가 사귀던 첫 여친에게서 이별통보 받은 날이고
2001년 10월 23일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2008년 현재도 별달리 상황이 좋지가 않다.

이용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노래한 10월의 마지막 밤이 바로 오늘일진대
나 역시 10월을 잊지도 못하고 기억을 안 할래야 안 할 수도 없다. 

원래 내 인생이 파란을 많이 겪는다고 누군가 이야기 하더라만
파란 같지도 않은 파란들만 겪는다.
내밀하게 관찰하면 누구 인생이 순백의 도화지같기만 하랴만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어지러운 소회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양놈들의 귀신축제로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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