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한담'에 해당되는 글 668건

  1. 2011.06.28 경력이라 2
  2. 2011.06.26 비오는 날의 결혼식 4
  3. 2011.06.20 2011.06.20 소사 2
  4. 2011.06.17 버거움 2
  5. 2011.06.11 시나본, sweet cinnamon 13
  6. 2011.06.04 Death of Dr. Death 2
  7. 2011.05.31 마지막 친구의 청첩장 4
  8. 2011.05.20 봄이여 오라 2
  9. 2011.05.08 장인(匠人)과 인간 6
  10. 2011.05.07 욕지거리 2

경력이라

작은 방 한담 2011. 6. 28. 21:21
우리교회가 카페를 하나 한다.
나름대로 평수가 큰 곳이고 하루에 100명정도 들어간다. 근무시간이 빡빡하지도 않다.
그런데 그곳에서 매니저를 하나 찾는다고 연락이 왔다.

매니저라.
솔직히 내가 찾아서 문의를 하게 된 것도 아니고, 아는 분이 귀띔을 해서 한 번 물어봤다.
한 번 와 보란다.
어차피 글로 먹고 살기는 한계가 있는 법. 뭔가 금전적으로 융통이 될 사업을 하나 벌여야 할 당위성을 뼈저리게 느끼는데, 보수는 못 받는 한이 있더라고 한번 천천히 일을 배워볼까나 싶어서 그러마고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뭐...경력직을 원한단다. 한 몇년간 카페쪽에서 굴러먹던.

아, 그러시냐고. 그러고 그냥 커피 한 잔 얻어먹고 나왔다. 그나마 아는 분들이니까 그렇게 쉬엄쉬엄 이야기해주신 것 같다. 낯모르는 놈이 찾아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

대한민국은 세상 모두가 경력을 원한다.
그런데 그 경력은 맨 처음에 어디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결국 이렇게 되면 자기 돈으로 자영업을 하는 데서 경력이 출발하는 수 밖에 없다.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게 되자면 내 집이나 어떻게 빼야겠지. (팔리기나 하려나...원)

2.
사람들은 그래서 뭔가 보이는 자격을 원한다.
실생활에 아무런 필요가 없고, 실제로 현장에서도 필요없는 바리스타 자격증 같은 게 그래서 필요하다.
사람들은 뭔가 믿을만한 것을 원한다. 종이를 원하고 종이에 찍힌 도장을 원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어린왕자의 사업가처럼 생각하고 가로등지기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커피교습을 받을 때 그런 말을 들었다.

"필요없지만 있으면 편합니다."

[필요없지만 편한] - 논리적으로 뭔가 이상한 명제가 현실로 돌아다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모양이다.
불편하지만 이게 어른들의 사는 방식인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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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게 알아왔던 전 직장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말이 10년이지, 강산이 변했다.
그리고 그 직장 이후에도 나는 다른 직장이 몇 개 더 있었다. 말이 첫 직장이지 정이라고는 별반 남아있지 않은 회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친구하고는 계속 연락이 닿았더랬다. 그 중에 나는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그 친구는 그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나름대로 정신없이 살아온 중년의 삶이었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일요일 오후, 처음 가보는 결혼식장에 들러서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고 왔다.
하객들은 죄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 내가 모르는 친구들. 아마 지금 있는 직장의 동료들이겠지.

기실, 그 직장을 떠난 뒤에 그 친구를 본 것은 너댓번에 지나지 않는다.
10년 간 너댓 번. 우정이 남아있을 수 있는 횟수랴
그런데 우정은 남아있었고
어느 날 말 없이 던져주는 청첩장에도
당연히 가야겠다는 맘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걸 보면,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시간도, 횟수도, 방법도 중요한 것이 아님이더라.
한 번 보고도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고
매일 본다 하더라도 옆에서 죽어 나자빠지는 걸 본 들 119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가 버릴수 있는 게
또한 사람의 정이더라.

나는 의리가 돈독한 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매몰찬 이도 아니지만
사람마다 그 깊이와 관계하는 정리가 다름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구나.

가정까지 생겼으니 내 이제 그 친구를 남은 일생에 몇번이나 보게 될까.
아마 지난 10년간 본 횟수만큼 더 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라고 여기고 있으니 인연이라는 것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묘한 게 있을까.

남아있는 자는 어김없이 남아있고
떠날 사람은 붙잡아도 떠나가는 것이 인생.

잘 살기를 바래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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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은 돈 있는 몇 퍼센트 소수만의 보금자리를 위해서 모든 이들이 피땀을 쏟으면서 봉사하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몇 퍼센트는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족속이라고 치부하고,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자 시절에 열심히 운동해서 난자랑 결합해서 부잣집애 태어난 것을 노력이라면 노력이라고 하겠다만
뭔가 참 서글픈 일이다.



2.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지.



3.
자꾸 먼저 해야 할 일이 미뤄진다.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영영 안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4.
날은 점점 더워지고 몸은 점점 축나고. 
확실히 한해 한해 갈수록 몸이 피곤해진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건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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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움

작은 방 한담 2011. 6. 17. 22:32
글을 쓰기 위해서 블로그를 열었고
블로그에 글을 씀에 있어서 소재나 내 기분의 어떤 상황이건 거리끼지 않을 것임을 맨 처음에 천명하고 시작했건만 해가 가고 날이 가니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스스로의 발전하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거나
필력이 떨어졌거나, 혹은 기타 그 외의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내가 무언가 계속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뭔가 호구지책을 위한 기술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호구지책이 될 것인지는 모른다.
오히려 그것때문에 내가 지금 전심전력을 다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냉철하게 판단했을 때 훨씬 현실적일 수 있고
장래에 내 목숨을 구차하게 연명해 나갈 묘책일수도 있다.

근본적인 원인이 그것이지만
그런 상황에 맞물려서 개인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라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인 듯 하다.

하루종일 차를 몰고 경기도 남부지역에 큼지막한 신도시는 다 돌아다녔다.
내가 이거 뭔 짓거린가 하는 생각이 80%
이러다가 장래에 대한 계획은 전면 수정되겠구나가 10%
역시 이번에도 이 모양인가가 10%였는데

결국 이러다 보니 슬슬 몸을 사리게 되고
정작 제대로 배우거나 조언을 구하거나 정보를 얻는 일도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고
다시 딱딱한 껍질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연애전선같은건 아예 발생할 여럭도 환경도 조건도 우연도 기적도 없다. (--)  

조금만 더 버텨볼까
버텨볼까
아니면 그냥 물 흐르듯이 떠밀려가 버릴까.

삶이라는 게 갈수록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드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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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한참 예전에 2000년도 초엽에 Cinnabon이라고 불리는 빵집이 있었다.
빵집이 아니라 [시나몬롤 전문점]이었다.
이 빵집은 시사영어사. YBM에서 들여온 프랜차이즈였다. 광고도 했었다. 이 빵집의 인쇄광고가 [씨네21]에 실렸던 것을 처음 기억한다. 그리고 그 파란 로고와 맛있어보이는 모양때문에 내가 언젠간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씨네21을 보면서 부터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추억의 로고가 되어버린 시나본)

맨 처음 동네 후배들을 꼬셔서 차를 몰고 종로의 시사영어사 1층에 자리잡은 시나본에 한밤중에 들어가 시나몬롤을 사서 집 근처 교회 앞에서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들 지금은 결혼해서 애가 있지만 하여간 그 당시에는 그러면서 노는게 낙이었다. 각설하고, 그렇게 시나몬롤을 사서 한입 베 물어먹었는데 오마이갓. 지상에 이렇게 단 음식이 있다니.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세명 다 하나씩 먹었던가...하여간 그렇게 먹고 넌더리를 내던 생각이 난다.

하여간 YBM의 공격적 마케팅 덕인지 시나본은 종로, 강남역, 명동... 서울의 주요 상권마다 하나씩 들어가서 그 단맛을 사방팔방 퍼뜨리고 다녔고, 사람들은 이 기상천외한 극악한 단맛에 학을 떼면서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시나본은 굉장히 강한 강배전 커피와 같이 빵을 팔았다. 쓰디 쓴 커피가 아니면 도대체 못 먹었을 음식이었으니까.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지면 익숙해 지는 법인지 하여간 나는 꾸준히 시나몬롤을 먹으러 다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 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사라진 웬디스,타코벨등등 기라성같은 프랜차이즈의 길을 씨나본도 따라가 버렸던 것이다. 어느 순간엔가 시나본은 후다닥 문을 닫고 철수해버렸다. 아무래도 시나몬롤 하나로 승부하기도 벅찼을테고, 사람들이 그 극악한 단 맛을 못 견딘 것도 있었으리라.

혼자 가끔 그 달디단 맛을 추억하고는 했다. 그렇게 진한 당분을 지닌 시나몬롤은 사실 구경하기 힘든 종류였으니 혈당이 떨어져 정신이 혼미해지는 날에는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시나본이 눈 앞에 아른거렸던 것이다. 그 풍만한 수밀도의 계피즙을 추억하며.


- 2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약 10년 뒤.
 
며칠 전 나는 신세계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를 하릴없이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저 귀퉁이에서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을 팔고 있는 것 아닌가.

(스위트 시나몬이라 적혀 있는데)


(얼레? 어디서 많이 보던 형상일세?)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내가 10년 전에 보았던 시나본의 모습과 형태와 크기가 동일한 거 아닌가.

안경잽이 아가씨가 열심히 팔고 있길래 그 앞에 가서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 냉큼 물었다.

"내 이 크기와 형태를 보아하니 10여년 전, 강호를 주유하던 시나본의 모습이 남아있네.
 대체 자네는 시나본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내 비록 입은 짧으나 이것저것 땅바닥에 떨어진 것까지
 다 줏어먹어 본 사람이네. 숨기지 마시게."

"10년 전 시나본의 모습을 기억하는 소비자가 아직도 강호에 남아있을 줄 몰랐소이다."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안경잽이 소녀는 나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맞소이다. 귀공이 사서 드시려 하는 것은 예전 시나본의 모습과 맛과 품질 그대로요."

"무어라?"

내가 잠시 당황한 사이 안경잽이는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하였다.

"시나본이  쇠락하여 철수를 하던 게 벌써 10년, 그 후로 점점 가세가 약화되어 동아시아에서는 이제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소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남게 되었지요. 마지막 지부가 철수하던 그 날, 동남아 총당주께서 남은 우리들에게"

"그대들에게?"

"레시피를 전수해 주고 갔소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 무림고수가 기연을 얻어 무공을 전해줬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요리사가 레시피를 함부로 넘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지 못할까?"

"초면인 소비자에게 내가 허언을 해서 무엇하리"

안경잽이 소녀의 특성상, 싸가지는 없어도 거짓말은 안 하는 법이니 나는 그것을 사실이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본사가 철수하면서 레시피를 떨궈주고 가다니. 이런 헌헌장부스러운 상도(商道)가 있을손가. 하여간 그러려니 하면서 나는 집에 돌아와 하나를 뜯었다. 맛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과연 레시피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전에 느꼈던 그 단맛은 없으니 기이했다.
아마도 그 동안 생겨난 수 많은 음식점과 과자와 프랜차이즈들의 당도가 점점 올라간 것이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젠 시나본의 시나몬롤은 굉장히 평온한 단맛이 되었던 것이니.

아뿔싸, 10년만 늦게 강호에 출도했더라면 인생이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 법이거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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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블랙잭]을 보면, 명의 블랙잭의 맞수로 나오는 '닥터 키리코'라는 인물이 나온다.

군의관 출신.
사람의 목숨이 너무나도 쉽게 스러지고, 또한 원하지 않는 고통속에서 죽음을 맞는 것을 젊은 시절에 목격한 그는 절명의 상황 속에서 영겁의 고통에 시달리다 죽는 환자들에게 죽음을 내려주는 것이 의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이 의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환자를 안락사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보험회사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소생 가능성을 열어주는 블랙잭과 극과 극의 캐릭터를 갖는다.

일개 사람의 권한으로 생명을 말소시키는 권리, 특히 동종인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 가에 대해서 근원적인 의문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가끔 정신이 힘들고 괴로울 때 사람은 자살을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인에 이르기까지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절망 앞에서도 인간은 하염없이 무력하건만, 자신을 끝없이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병마 앞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인간은 없을 것이다. 내가 루게릭 병이나 말기 암이나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자. 인간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몇년, 몇 십년 버텨야 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죽기에는 너무 무섭다.  암환자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치매는 가끔씩 제정신이 돌아온다. 루 게릭병은 육신이 점점 죽어가는 것을 머리로 생생하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병이다. 모두 고통이 심한데 생명이 끊기지 않는다. 불치병이라는 것은 숙주의 생명력을 먹고 사는 질환.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 외에는 없는 거다

이런 상황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내가 그대를 인간답게 죽게 해 주겠소."

내가 저 상황이라면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종교인이라고 할 지라도 무척이나 어려운 선택 아닌가.

- 2-

미국에 한 의사가 살았다.

수많은 환자들이 불치의 명으로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채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다보다 못해 스스로가 환자들의 안락사를 돕기 시작했다. "인간답게 죽는 걸 돕고 싶었다." 가 그의  모토였다.

그는 정부로부터 체포되었다. 그리고 살인죄로 법정에 섰다. 그럴 때마다 배심원을 그를 풀어주었고, 그는 풀려나오자마자 자신을 찾아오는 불치병 환자들의 [자살]을 도와주었다. 130명이 넘는 사람에게는 그는 [의료행위]를 베풀었고 결국, 그는 구속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신의 대행자] 라고 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을 그를 [죽음의 천사, 살인자]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삶과 죽음에 관련된 모토에서 나는 감히 뭐라고 할 자격을 갖지 못한다. 이 사내는 신의 영역을 침범한 듯 하다. 하지만 왜 그랬는가에 대해서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의사
잭 케보키언.
신장질환으로 사망.
향년 83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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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일하게
고등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이
저녁에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을 보냈다.

멀리 나가기 싫어서 근처 삼계탕집에서 보았다.
불원천리 마다 않고 달려와서 봉투 하나를 건넨다. 청첩장.
남은 한 번 갔다가 다시 끝내고 그 과정을 잊을 때 쯤 되어서 장가를 가는구나.

"좋으냐."

"아니."

"뭔 소리냐. 아가씨 보면 좋지 않으냐."

"좋기야 하지.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다."

"그러냐."

"우린 나이를 먹었잖아."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이 있으니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고 가정의 평범한 일상의 바퀴를 굴리고 그렇게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 아니, 그렇게 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

뭐하는지를 묻는다.
이래저래 갈 길을 잡는 중이라고 했다. 기실, 나는 수많은 장애물과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한 치 앞을 안 보여주는 미래라는 놈을 없애고 싶은 마음 간절하건만, 그 녀석은 나를 보는 눈이 또 다르다.

"난 말이야. 때가 되면 말이지. 아무도 없는 섬에 내려가서 펜션을 하고 싶다. 정말이야.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펜션을 하고 싶어. 가끔 들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싶어. 그냥 바다를 보고 싶다. 아는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한 잔 반주에 말문을 연다. 자를 사람이 없는 회사에 다니는 녀석이 얼마나 사람에게 치였으면 저런 말을 하는 가 싶다. 나도 한 때 몸 담았던 곳이다. 그 녀석이 받는 돈은 부럽지만 그 삶은 추억하고 싶지도 않은 곳이다. 힘들것이다. 힘들거야. 장가갈 생각을 하니 더 암담하겠지. 앞으로도 십몇년을 그 곳에 시간을 묻어야 할 테니까. 장래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이 장래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을 걱정하고, 장가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무덤덤하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받아들인다. 인생은 감동을 뺏아간다. 우리는 더이상 청춘이 아님을 실감한다.

"일단 장가가면 애부터 낳아라."

"필요하냐?"

"내 경험으로는 필요하더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그 녀석은 결혼식날 보자며 총총히 개찰구로 사라지고, 나는 다시 젖은 지하철 계단을 올라와 집까지 터덜거리며 돌아갔다. 내가 편한 것인가 그 녀석이 행복한 것인가. 둘 다 아니겠지.
그래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유일하게 
직장에서 서로 우울하게 보냈던 청춘의 기억을 나눈 사내인데.

아무쪼록 순탄한 미래가 두 사람 앞에 열리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결혼 축하한다 친구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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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여 오라

작은 방 한담 2011. 5. 20. 02:29
세월의 지남과
사람의 끌림에 의해
남이 갖다주는 거 원하지 않으니

봄이여
내 봄이여

어서 오너라
어서어서 머리풀고 미친 년처럼 오거라

남들이 다 받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 봄이니 가없이 맞아주련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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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내서 커피수업을 듣고 있다.
나름대로 유명한 분 밑에서 수업을 듣는 중이다. 상당히 자유분방하게 가르치는 분인데 어디 얽매이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특화된 커리큘럼보다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훨씬 좋긴 하다.
아직까지는 잘 모르지만, 그리고 내 삶의 방향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교수법에 있어서는 인간적인 면모와 유대가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괜찮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양반은 너무 인간적이다.

"사람들은 이상한 게 있어요."

가끔 하는 말이다.

"커피  잘내리거나 유명한 사람들 있잖아요. 사람들은 뭔가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이죠. 그 사람이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다고 생각해요. 숭배를 하죠. 어떤 분야에서 완성이 되면 그 사람의 인격이 완성된다고들 생각하나봐요. 아니예요. 커피바닥에도 유명한 사기꾼들 많아요. 장인의 경지에 올라도 성질 더러운 사람 많아요. 저도 성격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해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죠."

배우라는 커피에 관한 이야기는 귀에 잘 안 들어오고 저런 이야기만 귀에 들어온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화가던, 가수던, 소설가던, 건축가던.
어떤 분야에서 일반의 격을 넘어선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그들의 가진 기예의 극(極)에 도달한 결과물에 의해 감동을 받는 것이지
그 사람에 의한 감동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럼데 우리는 가끔 그 결과물을 그 사람의 전인격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갖곤 한다. 동양적인 사상일까?
내가 가끔 쓰는 말중에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고 글과 사람이 같은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글 잘 쓰는 놈중에도 인간성 개차반인 놈들 많지않은가.
노래 잘 불러도 엉망인 인간들 많고, 연주자 중에 미친 놈  많고, 요리 잘하는 놈들도 개잡종인 놈들 많다.
 
도덕적으로 고양되는 과정은 지루하고 소득없는 수련의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특별하게 시간을 들이고
자신이 생각해야만 사람이 야수에서 인간으로 정화되는 것이지. 하루종일 음표보고 도마 위에서 칼썬다고
어느 순간 완성된 인격체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은 어느 날 자고자만하며 살다가 크게 한 대 맞은 뒤에
스스로에 대하여  준열한 반성을 갖게 되는 인생이 되던가. 

바꿔 말하면
사람들에게 보일 실력만 충분하면 내가 인격적으로 모자란 놈이라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소리가 된다.

이게 무서운 일인가아니면 흥겨운 일인가? 
우리는 모두 모자란 위인들이니 위안이 될 법한 소리겠지만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라는 자문을 했을 때는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갈팡질팡 하게 된다.

에전같았으면 사람답게 살자 했겠지만 살면 살수록 인생의 꽃밭은 줄어들고 돌밭만 늘어나지 않는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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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거리

작은 방 한담 2011. 5. 7. 22:36
생활의 연속 가운데 블로깅을 하다보면
가끔씩 그냥 욕지거리를 가득 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그날 상황이 정말 내 입맛에 맞지 않게 돌아가던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이 굉장히 처량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데 세상은 어시스트 하나 안하고 혼자 드리볼을 하고 있다는 심정이 들 때 그렇다.

하지만 감히 할 생각은 못하는게
내 블로그를 나만 보는 게 아닌 것이 첫째고,
내가 블로그를 읽는 사람들 기분까지 덩달아 망칠 이유가 없음이고
그렇게 욕지거리를 써 봤자 내 격만 떨어질 것 같은 것이 마지막 이유다.

그렇다고 일기에는 쓰느냐.
가끔은 쓰지만
며칠 지난 뒤에 읽어보면 왜 이런 욕을 써 놨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도 안 한다.
사건경과를 일일히 기록하고 유추해서 "그래서 그 XX가 나쁜놈이야"라고 기록해 놓은 일기도
몇개 있긴 하지만 그건 이미 이성을 지니고 기록한 결과물이니까 화가 나서 쓴 욕지거리라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욕이라는 건 그 순간에 사람의 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한 방어수단일 뿐이다.
길게 끌어 갈 것도 없고 기록으로 남길 것도 없다.
말 그대로 허공에 흩어져야 할 음성이다.

난 욕하는 걸 별반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흡연처럼 습관이 되겠지만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줄이는데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 없을 때 혼자 해야지
들으라고 하는 건 스파링을 위한 몸풀기의 시작일 뿐이다.

그래서 예전부터도 
조상님들이 안 듣는데서는 임금욕도 상관없다고 하신 모양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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