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장'에 해당되는 글 121건

  1. 2009.03.25 10
  2. 2009.03.19 호랑이의 새끼는 개호주가 되어야 하니 8
  3. 2009.03.16 머릿속에 얽혀있는 그 뭔가(?)들은 2
  4. 2009.03.14 4
  5. 2009.03.11 시합 8
  6. 2009.03.09 3/9
  7. 2009.03.04 부상 2
  8. 2009.02.12 Fencing
  9. 2009.02.05 긴장의 끈 3
  10. 2009.01.28 三人行必有我師 3

수련장 2009. 3. 25. 03:41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해져서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가
퍼뜩 정신이 드는 꿈을 꾸고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일어나 보니 새벽 3시 반.
나는 다시 군복을 입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열심히 뛰라고 닦달하고 있었고
나는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 근육이 땡겨 뛰지 못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의 악몽에 후들거리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깨어보니 하늘은 감깜하고 달은 사위어
어두움이 세상에 충만한데
오히려 나는 안도감을 찾았으니
현실이 꿈을 구축하는 것을 다행스레 여겼다.

어떠면 또 다른 호접지몽일지도 모른다.
실상의 나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손으로 쳐 가며
질퍽하고 차가운 흙바닥 위에서 군복을 입고 자는 어린 소년일까?

꿈은 자기불만의 표상
혹은 눌린 잠재의식의 표출,
아니면 일어날 일에 대한 불가해한 암시.

허구와 잿빛칼라의 공간에서 흙투성이 군복을 입고 뛰는 자와
실존하는 세상에서 새벽에 자판을 빌어 글을 쓰는 이는 
분명 같은 사람이었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전쟁중이었고 나는 훈련을 받고 있었으며
이 훈련이 지나가면 전선으로 투입되고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는 뻔히 알고 있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현재는 모르지만 앞날에 대한 기시감을 지니며
현실에서의 나는 당면한 일은 알아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아는 장소에서 깨어나 갑자기 현재만을 인식하는 장소로
떨어질 때의 이질감.
그것이 꿈과 현실을 갈라주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래.
나는 지금 나비가 아닌 것이고
잠시 잠이 든 사람인 것이다.

나는 미래를 모른다
Posted by 荊軻
,

뜬금없이 연예버라이어티에 출연해서
가슴 찌르르하게 만들고 나가버린 문성근.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겪고 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될 것이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는 말을
타인도 아니고 가족이, 그것도 자식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아버지라면
그 인생이 참 복된 것 아니었겠는가.

풍찬노숙으로 대의를 위해 싸워도
가족이 알아주는 가장이라니.

사내들이 자식을 낳으면,
특히 아들을 낳으면 당사자가 가장 바라는 것이
[존경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라고들 한다.

호랑이 자식에 강아지 없다지만
그걸 만드는 건 호랑이 자신일테지.

사람에게 결국 남는 것은 결국 이름이 갖는 무게.
늦봄은 고생은 했지만 행복한 사람이었으려니.

Posted by 荊軻
,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생각들이 규정되는 과정에서
타인의 말이나 책이나 선험적인 지식들에 의해 다대한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은 분명하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중에서도 특별하게 내 스스로 선택한 [특별한 몇가지 구절]에 의해서 조합되는 정의가 꽤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사과라는 것을 예를 들자면
이런저런 사전적 의미와 먹어본 경험과 사람들의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과정중에 사과라는 과일에 대한
심상과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 반영되어서 평범한 사전적 정의가 내 머릿속에 일어난다 치더라도
"사과의 강산이 공복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복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가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면
내가 사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의미가 그런 쪽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내가 나중에 사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게 된다면
"공복에 먹게 되면 별로 안 좋을 수도 있어"라고 말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것은 외부의 환경에 의해서 조작되어지거나 억압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은
개인의 엄격한 취사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의견일 뿐인데
이런 것들이 한데 묶여져서 지식의 총합이나 의견을 만들어내게 된다면
사람에게 균형잡힌 지식의 습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에 절대적인 기준점이 있다 치면
 과연 사람은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제논이 말한 아킬레스와 거북의 모순된 경주와 같이
가치중립에 다가가기 위해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록 그 지식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가 계속 생기기 때문에
새로 생겨난 지식으로 과거에 습득한 지식의 가치판단을 냉철하게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새로운 지식에 스스로 만든 편견이 쌓여간다면
절대로 가치중립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아닐까?

아, 머리속이 어지럽다.
그냥 자야겠다.
Posted by 荊軻
,

수련장 2009. 3. 14. 22:05
*권투경기 시청 후.*

졌당.
최고령 프로 대 전 동양챔피언의 경기라는게
어차피 승부가 떼어놓은 당상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선전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갔으니.


"다음주에 뵐께요" 라는 말에

"아마 다음주엔 못 나올겁니다. 후유증이 심할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하더니 
아마 다음주엔 못 뵐 듯.

아는 사람이 권투경기 나가니까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긴 하는구나.

격투기 선수를 가족으로 둔 사람은
오죽할까

추성훈 선수가 경기할 때 어머니는 TV를 안 본다고 하지.

아 아까워라.
시드만 잘 받았어도 4강까지는 무난히 갔을텐데.



Posted by 荊軻
,

시합

수련장 2009. 3. 11. 10:46
운동을 하고 나면 그나마 시들시들한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기분.

한 사내가 탈의실 쪽으로 조용히 들어온다.
그리고 수도꼭지에 입을 잠깐 댄다.
마시는 게 아니라 입을 대고 있다.

안다.
이 남자.

내가 맨 처음 체육관에 등록을 했을 때부터
땀복을 입고 줄넘기를 하던 남자
언제 체육관을 찾아도
이 사람은 줄넘기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내가 운동을 마치고 갈 때까지도
줄넘기를 하고 있던 적이 있었다.
마치 길거리 상점의 자동 인형처럼
같은 자세로 정확하게 같은 동작을 하던 남자.

- 안녕하세요
- 힘드네요

알고 있다.
시합이 토요일이다.

- 이번 주에 시합이죠?
- 예
- 힘드시겠네요
- 아직도 3kg정도 더 빼야 합니다.
- 아무것도 못 드시겠네요
- 이렇게 입만 축이고

일상은 나와 똑같다.
평일 일과를 사무실에서 넥타이를 메고 보내고
저녁에 체육관에 와서 운동을 한다.

- 상대가 너무 세요. 전직 동양챔피언
- 벌써요?
- 원래 한 두 차례 뒤에 붙을 줄 알았는데
- 그런데 왜 동양챔피언이 아마시합에
- 프로니까요.

몰랐다.
이 남자
프로였다는 걸
샐러리맨.
그리고 프로복서
뭔가 모를 괴리감이 머릿속을 잠시 맴돈다.

- 아무것도 안 드시고 회사에서 괜찮으십니까
- 그냥 하루종일 인상만 쓰고 있죠.
- 아.
- 차 한잔 하자는 것도 마다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좀 그렇게 보겠죠

고행.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한 첫번째 과정은
자기에 대한 혹독함일까

- 동양챔피언이라면 장난 아니겠네요
- 이번에는 진짜 심하게 맞겠죠
- 몇 라운드인가요
- 4라운드
- 4라운드
- 10라운드가 아닌 4라운드면 승산이 있습니다. 4라운드는 변수가 있으니까요

이 남자
절대로 진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지더라도 진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 열심히 하셨으니까 좋은 결과가 있겠죠
- 오늘 옆에서 운동을 하지 않으셨으면 혼자서는 운동 못했을 겁니다.
- 예?
- 혼자서 연습하기에는 지쳐서요. 누군가가 옆에서 연습하는 걸 보면서 힘을 내는거죠.

물론 나는 프로복서가 되고 싶은 꿈같은 건 있지도 않고
그 정도의 운동신경도 없다.
하지만 가끔은
누군가가 자기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걸 보는 게, 보여주는 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안다. 

 의지의 싸움.
타인을 보면서 자신을 투영하건, 스스로의 모습에서 타인을 투영하건
스스로 갖는 자신감에 날을 벼릴수 있으면
그것으로 하나의 가치를 갖는 것.

-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 예

난 아직 이 사람 이름도 모른다.
알아낸 것은
샐러리맨, 프로복서
그리고 참으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번 주 토요일
그의 주먹에 무운이 있기를.
Posted by 荊軻
,

3/9

수련장 2009. 3. 9. 03:40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고를 수 없다.
상황은 사람의 계급이나 위치를 만든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성품이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사람이 조형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면목이
아닐 지 모르고, 어쩌면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자기자신도
그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어리석은 자가 현자가 되고, 겁장이가 용사가 되고
말더듬이가 화술의 달인이 되거나 무책임한 자가 충신이 될 수 있는
환경은 언제나 존재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언제나 존재하고
혹은 뜻하지 않는 상황에 힘입어 자기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고귀한 성품이 발현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삶이란 변화무쌍하며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은 짧은 인생 가운데 담아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인간이 감히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이를 먹을수록 들고 있다.

내가 아는 것이 흑백일지라도
타인에게 백흑일지 모르고
절대자에게는 모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 작은 그릇으로 사해를 담을 수 있으랴
그렇다고 처해진 상황에 맞추는 것으로 내 역량을 다 담았다 만족할 수 있으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아마 우리는 죽을 때까지
정확하게 무엇 하나 정의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

잠깐 대문을 열고 아파트 난간에 서서
헤아릴 수 없이 반짝이는 사람들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가끔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 안에 나처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인생을 가지고 사는 이들이
살고 있다. 그것도 수백수천수만 수십억의 생령이.

봄은 왔으되 생각할 것은 무량대수로 늘어나고
내 머리는 다 담지 못하는구나.
Posted by 荊軻
,

부상

수련장 2009. 3. 4. 00:37
어차피 좋건 싫건
몸을 쓰는 운동을 하다 보면 부지기수로 다치는 일이 생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업이라고 넘겨야할 부분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마음이 급한 경우 몸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다.

즉, 과욕이다.

지금 하는 운동을 시작할 때 아킬레스 건염이 생기더니 이번에는 왼손목 힘줄이 좀 늘어난 듯 싶다.
어차피 며칠 정양하면 될 터이지만 어저께 내가 운동을 한 것을 복기해 보니
역시나 과욕이다. 쓸데없이 힘을 주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무언가 일을 하다보면 늘 상황이 어긋나는 경우가 있다.
결과를 뒤져보면
일에 집중하지 않거나
의욕만 앞서거나
긴장하여 공연히 뻣뻣하게 힘을 주거나.
만사가 비슷하다.

셋의 경우라면 십중팔구 다치는 법.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자신을 보고 있으면
긴장하거나 의욕만 앞서서 일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니
참으로 마음 다스리기가 힘든 것이다.

나이 먹을만큼 먹고도 이 모양이라니
만사휴의라.
Posted by 荊軻
,

Fencing

수련장 2009. 2. 12. 01:50
레베르테의 [검의대가]를 쉬지도 않고 읽었다. 새벽 1시 반.
뭔가 익숙한 시놉시스였지만 그래도 달필의 대가는 확실히 다른 감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하다. 이론이 아닌 실전에 강한 것이다. 이 책에 써 있는 펜싱의 기법을
쓰기 위해서 이 사람은 직접 검을 들었거나 아니면 펜싱에관련된 책이나 영상을 보는데
몇 년을 소비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읽는 사람이 안다. 정교한 칼의 합을 짜기 위해서는
직접 몸을 부딪혀 보는 게 최상이다. 아니면 그만큼 관전을 하거나.

각설하고, 읽다보니 펜싱에 대해서 스멀스멀 생기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다.
원래 내가 가려던 길은 검도와 펜싱이었지 복싱은 아니었다. 복싱은 말 그대로 검도의
보법을 보완하기 위해, 그리고 칼이 없는 적수공권의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택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운동량의 엄청남과 신체단련에 관해서는 최선인 듯)
사실은 검도로 넘어서다 어느정도 가정이 안정되면 펜싱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펜싱을 가르쳐 주는 곳은 거의 없다. 연대 펜싱동호회나 한남동, 야탑역쪽의 한군데 뿐인데
둘 다 나하고는 거리가 너무 먼 곳이다. 더군다나 지금 새롭게 전혀 다른 칼의 기예를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먼 처음 검도를 시작한 건 27살이었다. 그 당시에도 몸치였던 나는 기초를 배우는게
힘들어 죽을 맛이었고, 지금 하는 복싱도 기본을 배우는게 죽을 맛인데 언제 배울 지 모르는 펜싱의 기본기를
지금 보다 더 나이든 때에 배운다는 게 가당할까?
더군다나 가정이 안정되긴 개뿔. 이상한 방법으로 안정되긴 했지만 이런 가정을 원한 건 아니었고...
하지만 끌린다.

어르신들이 말하길, 사람이 이성을 넘어서 끌리는 게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물과 불과 칼이라고.
셋 다 보다보면 가까이 가게 되고, 한계를 넘어서 가까이 하면 죽는다고 했었다.
난 그 중의 하나에 홀린 모양이다.
물은 광대무변한 가운데 천변만화하는 파장이 있고
불은 순식간에 위로 타오르지만 그 오름에 천변만화함이 있고
칼은 직선으로 귀결되는 곡선의 결합에서 천변만화한다.

쌍수를 벗어나 외수로 쇳덩이를 움직이고, 일족일도의 간격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간격을 좁히는 보법을
익혀보고 싶고, 손목의 스냅을 극대화해서 찰나의 순간으로 넓은 면을 확보하고 그 가운데를 적중시켜
보고 싶은 거다. 그리고 그 낭창한 칼날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고.

쇠붙이에 몸 상할 사주라더니
사실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이미 몸 안에 쇠붙이가 있으니 액땜은 끝난 걸지도.
Posted by 荊軻
,

긴장의 끈

수련장 2009. 2. 5. 14:47
하루하루를 살면서 건강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긴장을 끈을 놓지 않는 삶이라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과식하면 바로 체한다
먹지 않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면 바로 표가 난다.
단백질을 과잉섭취하면 바로 탈이 난다.
잠을 많이 자면 머리가 아프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도 머리가 아프다.
가장 간단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은 탄수화물이지만
밀가루를 2끼 이상 연속으로 먹으면 탈이 난다.

골치아픈 신체구조다.
내 성격과 성향에 전혀 맞지 않지만
정확하게 짜여진 식단대로
정확한 양을 조절해서 먹어야만
건강하게 산다. 엄격히 말하면
탈나지 않고 산다.
규칙적인 습관, 정해진 습도와 수면시간
맞춰서 먹는 식생활. 규격에 짜인 것처럼
수도원에 사는 수도승처럼 타이트하게 짜여진 스케줄대로
살아야만 몸이 정상을 유지한다.

고민이 생긴다.
예전부터 그랬을까?
그렇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짜여진 틀 속에 몸을 가둬두지 않으면 살지 못할 정도로
과거에 방종하게 살았거나
틀을 깨는게 무서워서 스스로가 만든 규칙 속에
자신을 가둬둬야 살 것이라고 믿는 자기암시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천품이거나.

구름처럼 표표히 살아가는 삶과 자유로운 행보를 꿈꿨지만
이미 원초적인 신체반응이 그런 삶을 거부한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거의 정확한 시간에 이루어지고 끝난다.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혼자 집에 있으면 무얼 하는가?
답하지 못하였다.
그냥 정해진 대로 살고 있다.
정해진 대로.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쩌면 수행일수도 있고
무사집단으로 이루어져 세상에 대해
딱 자신의 위치와 할 일이 정해져있던 봉건 일본시대 구성원의 삶일지도 모른다.

좋은 점은 하나.
어떤 일에 대해서도
미련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인데.

요즘은 머리 끄댕이를 잡아당기는
일 하나가 있어서
가끔 일탈하는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일을 생각함에 있어서도
끝임없이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해 보면
아무래도 천품이 아닌가 싶다.
Posted by 荊軻
,

三人行必有我師

수련장 2009. 1. 28. 00:34

사람이 어떤 난제에 도달했을 때 취하는 방법은 딱 두가지다.
혼자 결정하던가 남이 결정해 주던가.

결국 마지막의 결정은 스스로가 하게 되는 경우지만
그 결정의 과정 속에서 개인이 갖게 되는 감정상태가 절대로 객관적이라고 믿지 못할 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三人行必有我師, 셋이 가면 그 중의 하나는 나의 스승이라.
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하게 되므로
선악 간에 반드시 스승이 될 만한 이가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러하다.

솔직히 사는 도중에 타인의 충고를 들어서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있고 나쁜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짧은 인생사를 비추어 봤을 때
"기다리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은 거의 90%에 근접하는 해답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성급하다는 말과 다름이 없으며
성급한 결정은 패착을 가져오는 지름길임을 몸으로 체득해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향은 자신이 아는 것과 반대의 경향을 띈다.
성급한 사람은 자신이 우유부단하다 속으로 생각하고
느긋한 사람은 자신이 너무나도 조급하다고 생각한다.

난 스스로가 굉장히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한다.
글쎄다.
과연 그러할까?

스스로에 대해서 모른다면 물어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귀가 얇다는 것과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은 다른 것 같다.

심각함에서 벗어나서
심안(心眼)이 아닌 심이(心耳)를 만들어야 할 때.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