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음식의 맛을 보고 좋아하는 건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
궁합이 잘 맞아서던가 좋은 에피소드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는 경우. 그렇지 않으면 어려서부터 먹어왔다던가 하는 나름대로의 추억이 있는 것이다. 그걸 감안해 보면 음식은 미각만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허영만선생의 만화 [식객]에 나온 것만한 감동의 과장은 없어도 맛에 대한 호불호가 생기는 과정에 추억이 들어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식객]은 과장이라고 볼 수만도 없겠다.

난 원래 호두과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라는 것이 보통
일가친척들이 차타고 올라오다가 천안삼거리 휴게소나 동네 제과점에서 사오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사실, 어린 시절에 다 그렇게 호두과자 먹지 않았나? 난 팥앙금이 든 호두과자를 싫어했다. 팥은 팥빙수나 팥빵에 들어있는거지 호두처럼 생긴 주제에 속에 팥이 들어있다니 뭔가 이율배반스러운 과자라고 어렸을적에 느낀 모양이다.그리고 호두과자에 호두가 들어있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어린 맘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니 이게 뭔 놈의 천안명물이야. 나한테 틀만 주고 팥만 줘도 다 찍어내겠구만'

그러다가 나이를 먹을대로 먹고
어느 날 천안역에 들렀다가
천안역 앞에 원조 호도과자라는 커다란 세군데 집을 보게 되었다. 학화, 태극당,그리고 한군데는 까먹었음...
직접 마실 나왔는데 한 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갔는데...

아,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건 다 짝퉁 사기였던것이다.
백앙금에 큼지막한 호두알이 박혀있는 호두과자...
ㅠ.ㅠ 젠장 이런 맛이었구나 흐어어어엉 내 유년시절을 돌려다오

정말 맛있었다.
적앙금과는 달리 백앙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인간인지라
그 자리에서 서른개 넘는 호두과자를 다 까먹고
화장실 문고리를 붙잡고 구슬프게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 다음부터 호두과자를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달까.

사람들이 [원조]라는 말을 믿고 음식을 대하다가 
보통 예상에 못미쳐 씁쓸해하면서 기대를 접는 게 일반적인데
호두과자는 그나마 원조가 정말 맛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음식이었다.
(내가 검은 팥앙금을 싫어하기 때문인가. 그래서 통영 오미사 꿀빵을 좋아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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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나물.
녹두나물의 다른 말이다.
반찬이지.
그리고 잘 쉰다.

그래서 숙주나물이다.
세종대왕에게 온갖 총애를 다 받은 뒤에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세조를 도와 공신이 반열에 든 사내.
지 딴에는 구국의 일념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후일 동료 사육신들이 모두 도륙난 반면 잘 먹고 잘 싸다 죽은 사나이.
그리고 당대의 천재. 그래서 금방 변질되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불렀다 한다.

한편 또 다른 이설도 있으니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보면
만두속을 만들때 숙주나물을 넣는데, 그냥 넣는것이 아니라 짓이겨서 쪄버린다.
사람들이 당시에 말하길
신숙주를 이 나물같이 짓이겨서 쪄버리자 라고 말하여
그것이 숙주나물의 어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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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누군가가 이야기한 포스팅이 있었다

사육신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조의 충성을 맹세하고 죽어갔다는 것은
당시의 기준으로는 충신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기준으로는 맹종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걸 보면서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몇 백년이 흐른 뒤에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80년대의 수많은 대학생들은 무어라고 판단해 줄 것인가
몇 백년 뒤에도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남아있을 거라고 장담도 못하는데.
당시의 신념에 의해 부질없이 죽어간 청춘이라고 말 할 가능성도 있는 거다.

농담이 아니다.

광복 65주년인 지금
독립운동가들을 우리는 어떻게 환대하는가.
독립유적지는 남아있는 것도 없고, 독립군 자손들은 명예도 얻지 못하고
어떤 놈들은 무장투쟁을 한 독립운동가를 [무척이나 쿨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테러리스트라고도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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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모든 것을 심판해주지는 않는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한과 분노와 갈망같은 것은 주의깊게 보지않으면
역사라는 텍스트는 무미건조한 승자와 패자의 관계 외에는 남지 않는다. 

고작해서 왕조에 대한 맹종으로 당대의 학자와 무장 여섯이 실패한 쿠데타로 뒈지고
열매도 못 필 민주화를 위해서 지성의 총아였던 대학생들이 맞아죽고
자력독립도 못한 주제에 풍찬노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헛수고 하면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

내가 [이성적]이라는 단어의 우상에 빠져서, 혹은 이성적인 척 하려고 
진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채 그냥 편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저 세 부류의 공통은
당시 사람들이 옳다고 여겼지만 감히 실행하지 못했던 당시의 이상을 위해서 일신의 영달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서 목숨을 던진 이들이라는 것이다. 철저히 [반이성적]이고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이성적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는거다.

신숙주의 태도는 합리적일 뿐 아니라 비전도 있다. 구국의 결단아닌가.
이완용의 태도 역시 합리적이고 사리에 맞다. 일본이 동아시아 최강국 아니었나?
박정희와 전두환과 군사정권의 행동은? 당연히 합리적이고 수지타산에 맞는 행동이다. 분단상황하에서
민주화 소요과 국정혼란이 어떤 위기상황을 촉발할 지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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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람들은 하지만 알고 느꼈더랬다.
신숙주가 개새끼라는 걸
이완용이 개새끼라는 걸
전두환이 개새끼라는 걸.
앞에서 말은 못해도 속으로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이 아니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상]과 거리가 먼 위인들이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
인간에게 일반은총으로 내려 진 도덕률이 세상 말미까지 남아있는 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계산에 부합한 결과외의 꿈을 쫓도록 설계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숙주는 그냥 죽일놈인 것이다.
시간이지났다고 옹호받을 대상도 아니고, 재평가 해줄 필요도 없는거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필요도 다시 훑어볼 필요도 없다.

그냥 맛나게 만두나 처먹으면서 살지
뭔 숙주나물 운운하면서 살고 앉아있겠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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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유취

수련장 2010. 8. 13. 00:58
사람이건 짐승이건 어린 것에게서는 속세의 냄새가 나지 않고 배내젖의 냄새가 풍겨난다.
하는 짓도 자신만을 위해 살며 보는 눈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인다.
어리고 육신이 짧을 때는 또한 그 행함도 작기에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로 인해 자신의 지식을 채워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도 자신만을 위해 살며 보는 눈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면
주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고 타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복중 태아를 벗어나 사회에 발을 담그고 산 지 거의 사십여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천품과 시류와 운수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굳이 이루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속상해 할 일은 없다.

난 해를 끼치며 살지 않았는가
내 행동으로 타인에게 죄를 짓지 않았는가
부지불식간에 짓는 죄를 사람이 갚지 못하기에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죄인이라 칭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나 책임지지 않는 잘못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터럭이라도 죄책감이 있으면 다행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사람사는 인생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것부터 나는 다시 젖먹이가 된다.

나이를 공으로 먹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지고지순하게 어려운 일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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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서 사업하는 사업주를 만나겠다고 아침부터 일찌감치 서울을 나서 고속도로를 탔는데

70년대에는 고속도로인 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아침이건 저녁이건 6.25 사변때 피난가는 행렬이나 진배없으니
내가 빠른지 우마차가 빠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동탄까지는 졸면서 가도 운전할 수 있는 지경이니
차라리 내가 황영조나 이봉걸..아니 이봉주의 심폐만 있었어도 그냥 배낭메고  뛰는 것이
훨씬 건강이나 경제나 지구환경이나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있던 찰나에
"형님, 차라리 국도를 한번 타 봅시다" 라는 N군의 말에
차를 국도로 몰고 빠지기로 했다.

오, 이런 풍경이?
얼마나 돌아가는 지는 계산하지 않았는데. 하여간 차가 붕붕 달린다.
게다가 양 옆에 푸르른 신록이 우거지니 가히 드라이브 아닌가.
사내 둘이 하는 칙칙 음울한 그린 드라이브!

이러저러 광고주를 만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아까 일도 있고, 분명 고속도로는 대박집 점심시간만큼이나 메어터질테니
다시 국도로 타고 올라가자는 심산이 들었다.

그렇게 잘 가고 있었다.
네비게이션 교차로 하나 놓치기 전까지는.

교차로 하나 잘못 탔더니
갑자기 키로수가 10km이상 늘면서
나는 생전 가볼 일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통탄 시내를 횡단해서
역시나 연고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수원시내를 관통하기 시작햇다.

"이게 뭣이냐! 쓸데없이 길만 뱅뱅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게 왜 교차로를 놓치신겁니까!"

"시끄러 임마 누가 이럴줄 알았어?"

"아이 참 어쩌구 저쩌구"

"시끄러 시끄러"

둘이 투덜대면서 차를 몰고 오는데 빗방울까지 후두둑
그렇게 음울하고 칙칙한 그레이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앞에 성곽이 보이더라

음? 이건 교과서에서만 봤던 수원 화성인가?

"야, 이게 수원 화성인가보다."

"나도 책에서만 봤지 처음 보는데"

"야, 잘 지어놨구만"

"이것이 정약용의 기중기로 만든 바로 그 성이오"

"기중기가 아니라 거중기여"

"머 어쨌거나...아~ 이쁘구만"

"아~ 이쁘구먼~"

갑자기 두 사람은 신이나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그렇게 다니면서
경수산업도로를 타고 의왕을 지나 과천을 넘어 남태령 옆의 우미관..아니 우면산터널까지 지나
허위허위 십몇 키로를 돌아 사무실까지 도착하고 말았다.

"야~ 오늘 구경 잘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국도 타는거 재미있네."





...이러니 돈을 못 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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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열대의 밤

작은 방 한담 2010. 8. 12. 09:10
여름이 내가 알던 여름이 아닌 여름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무더움을 비껴나가기 힘든 날씨였다.
하지만 이젠 처마 밑에 누워 선들선들 부는 바람에 피곤을 식힐 수 있는 풍경은
말 그대로 옛 흑백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망할 놈의 습기.
하늘은 뭉게구름이 아닌
언제 비를 한바탕 뿌려놓을 지 모르는 적란운이 언젠바부터 주인행세를 하고
아니나 다를까 하루에 한번씩은 스콜을 뿌린다.
이게 대한민국 조선의 날씨냔 말이지.
소식적에 잠깐 들려본 태국과 캄보디아 날씨하고 다를 바가 없다.
이제 천장에 도마뱀이 붙어 산다고 해도 놀랍지가 않아요.

아는 후배 말을 들어보니
전남 어느 시에서는 가로수를 야자나무로 심었는데
그게 사시사철 잘 자라고 있다는 해괴망측한 소리도 들었다.

점점 땅이 들끓어 오르는 모양이다.
스티븐 호킹박사는 지구멸망 앞으로 200년이라고 말까지 했단다.

사실, 내일 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어이없는 세상이 하루이틀 지나왔느냐마는

최소한 내일 죽더라도
선선한 날씨 속에서 죽고 싶구나.

열대야 따위는 정말 지옥에나 있어야 할 물건이야.
Posted by 荊軻
,
제 링크에도 걸려있는 파워블로거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신장병으로 유명을 달리 하셧다는군요.

예전부터, 미국코믹스에 대한 다양한 포스팅을 올려주시던 분이었고
그 곳에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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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국말로 씨렁이.

태국말로 [노랑]이라는 말인데 그냥 한번 붙여봤다.



둘 다 수컷.

첫째가 훤칠하니 잘 생기긴 잘 생겼는데
이 놈은 정말 둘째처럼 생겼다.
야물딱 지다. 울지도 않는다.
원래 잘 안 우는 놈이 무서운 놈이라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파양당하고
전에 살던 고양이들 텃세에 쫒겨나고 한
어린 녀석이 질곡이 좀 있는 놈이다.
거칠게 살아서 그런지 
집에 오자마자 숨지도 않고 이리저리 한바퀴 둘러보더니 퍼져 자더라.
첫째가 얘를 보더니 좀 학을 뗀 듯.

크기도 첫째 Kaka의 반 밖에 안되는데
처음 보고 형이 귀싸대기를 날려서 고개가 팍팍 돌아가도
눈하나 꿈쩍않고 울지도 않더라.

그런데 확실히 아기가 예쁘긴 하구나.

사람이건 짐승이건
나도 이제 데리고 사는 사내애가 둘이나 되고
갈 곳 없는 생명 둘이나 거두었으니
내가 세상에 할 일은 다 했다.

결혼따위는 개나 주라고 그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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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8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8. 8. 20:31
1.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가 되었다.
아직까지는 무임소 보직. 
하긴, 내 성향을 담당목사님이 아는데 애들에게 바로 덜컥 붙여주실리도 만무하고.

그나저나,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라서
수능이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도모른다. 
자식있는 어른들이라면 자식때문이라도 정보가 있을텐데 난 그런것도 없으니
이를 어쩜 좋단 말이냐


2.
내가 우리 집 고양이를 대하는 걸 보면 난 참 엄격한 인간이구나 싶다.
고양이도 절절 매는데 사람이라면 좀 버겨내기 힘들지도.

둘째 고양이를 들일까 생각중이다.
사람하고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고
어차피 다른 생명을 보듬어 안고 가는게 인생의 무게라면
사람이나 고양이나 별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제 별반 미련이 안 남네.


3.
인생에 멱살잡히지 않을 정도의 자본만 있다면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여유로와질까.
Posted by 荊軻
,

닮아가는거지

투덜투덜 2010. 8. 7. 13:59
어린 시절
반찬투정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물끄러미 보다가

어느순간 불같이 화를 내며 
(우리 집안은 화가 나면 도화선에 불 붙었다가 터지는 화약하고 비슷하다)

"야 이 자식아 지금 이디오피아에서는 쌀 한 줌 못 먹고 굶어죽는 애들이 숱한데 지금 뭔 짓이냐!"
하면서 낼름 먹으라고 채근을 하셨다.

배부르면 남기는 것이 차라리 몸에 낫다는 집안도 있긴 하지만
우리 집안은 그거랑 반대였다. 고래로 쌀 남기는 놈은 천벌받을놈...뭐 아직 이런 분위기라.


2.
고양이가 양양대길래
[유기농]이라고 써 있는 캔 하나를 따서 주었다.

물끄러미 냄새를 맡아보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양양~거린다.

"야 이 자식아, 지금 길바닥에는 쓰레기도 못 먹고 굶어죽는 길고양이가 천진데 뭔 배부른 소리냐!"

성질내는 걸 알았는지
시무룩~하니 땅바닥을 쳐다보다가 지금 캔을 열심히 먹고 있는 중


3.
닮아가는거지.
어린 시절 배운대로.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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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동쪽태평양 해변가에 오슈라는 지역이 있다.
여기 꼬맹이 한 놈이 살았다. 어릴 때 천연두로 한쪽 눈이 날아갔지만 아버지가 나름대로 동네 세력가라서 빠방하게 살았나보다. 아버지는 이놈에게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라고 스파르타 교육을 시키고 아들은 아버지의 세뇌교육덕분에 나름대로 꿈을 실현하려고 용쓴다. 당시 조금 야망있다는 놈들은 다 가지고 있던 꿈. 일본통일.

그놈이 독안룡(獨眼龍)이니, 오슈의 용이니. 떨어진 용이니 불리던 다테 마사무네다.

(요즘 오락에는 이렇게 초절정 꽃미남 쿨가이로 그려놓지만서도)

(그냥 이렇게 생긴 거다)

나름대로 근성있고 노력도 하고 능력도 있는 놈이었던 모양이다....만 
문제는 늦게 태어났고, 집안도 촌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
이미 다테가 태어나서 뭔가하려고 동부지방을 평정하고 폼잡고 있을때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잡아먹고
그 뒤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다.
정신차려보니까 그냥 자기는 지방영주였던 거지.

갑(甲)인 토요토미가 "나는 관대한데, 단가 잘 쳐줄 테니까 내 밑에서 시다바리해라"라는 말을 전한다.
사실, 여기서부터 이 인간의 인생은 결정지어진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믿으면 뭐하나. 동원하는 자원의 숫자부터 차이가 벌어지는데.
이 인간이 고심고심 생각을 하고 장고를 하다가 결국은 
상복을 입고 토요토미앞에 가서 "늦어서 죄송함다. 부장님" 하고 무릎을 꿇었다.
입이 벌어진 토요토미가 "그래, 다사장 좀 늦을 수도 있지." 하면서 지팡이로 목을  톡톡 쳤단다.
"좀 더 늦었으면 뒈지셨을 거예요" 이러면서.

기분 더러웠을거다.
그런데 을(乙)이 되면,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일단 갑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다테 마사무네가 혼자 늘 지껄였다는 유명한 말이 그거다
"X바, 내가 20년만 빨리 태어났어도"
이건 우리 을들도 많이 하는 말이니까. 씨바 내가 저 새끼보다 돈만 좀 있었어도, 내가 이 동네 짬밥이 얼만데
그러면서도 갑의 더러운 요구는 다 받아주면서 한술 더 떠야 살아남을 수 있는게 을인거다.

다테 마사무네는 임진왜란때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온갖 분탕질 다 치고 갔다.
2차 진주성혈전 때 2~3만정도 되던 진주성민을 몽땅 도륙하는데 앞장 선 인간이다.
(무슨 떨어진 용, 떨어진 도살자지.) 항간에는 쉴드 쳐준다고 마사무네는 별로 앞장서서 일 하지 않았어요 하는
사람도 있는데...모르지, 내가 그곳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을의 성향으로는 갑의 요구보다 한 술 더 떠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거다. 아마 지가 앞장서서 노략질하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패악을 떨었으면
[간양록]의 저자 강항 선생이 다테 마사무네를 일컫어 (왜적중에 가장 흉폭하고 음흉한 쉐이)라고 하셨을까. 

그래도 속으로는 토요토미에게 이를 갈고 있었겠지.
상복입고 갔는데 지팡이로 모가지를 탁탁 치면서 "다사장~"하는 놈이 온전한 정신으로 이뻐보일리가 없다.

이럴 때 을이 할 수 있는 건 뭐? 
그렇지. 질기게 버텨서 갑 부장이 모가지 떨어지길 기다리는 거!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과 히데요시 아들이 일본을 두고 싸울 때
마사무네는 도쿠가와에게 딜을 한다.

"내가 과장님 라인 탈테니까, 지금부터 나오는 모든 물량 턴키로 우리에게 오케이?"

"오케이. 싸나이는 네버 일구이언"

그래서 마사무네는 토쿠가와에게 붙고, 토요토미가는 홀라당 멸망해버린다.
그리고 지원 보상으로 100만석 영지를 받기로 약속받았다.

그런데 을이 원래 갑(甲)하나만 보고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갑 저놈이 뭔 짓을 할지 머떻게 아냔 말이야. 살아갈 방안을 생각해 놔야지.
그래서 내부자거래로 다른 쪽하고도 딜을 트고 있었는데...도쿠가와가 이걸 알아낸 거이다.

"너 믿을 놈 못 되긴 하는데...다사장 그동안 성의도 있고, 나도말한거 있으니까...."
그래서 100만석이 아닌 60만 석으로 강등. 

그렇게 해서 현재 일본의 센다이 지역에서 터줏대감 노릇 하면서 
젊은 시절 꿈 다 접고 이리저리하면서 살다가 마사무네는 죽었다는 전혀 슬프지 않은 이야기다.
그래도 부하직원들에게는 잘해 줬는지. 센다이 지역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산업단지가 되었고
결국 40만석을 자가충당해서 100만석 영주의 꿈을 이루긴 했다는 사나이.

그냥 이리저리 살기 팍팍했던
몇 백년 전의 乙 사무라이.

(임진왜란때 안 오고, 씨바 더러워서 일 안해! 했다면 내가 좀 호감을 가지고 봐 줬을 인물인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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