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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2 옥한음목사 소천, 그리고
  2. 2010.09.01 2010.09.01 2
  3. 2010.08.31 잡설 2010.08.31 6
  4. 2010.08.31 노력이라는 것 3
  5. 2010.08.30 인상 5
  6. 2010.08.30 날 선 편견 2
  7. 2010.08.29 얇구나
  8. 2010.08.28 [골든 슬럼버] (2010)
  9. 2010.08.26 나같은 게으름뱅이는 부러워하기도 힘든 서러움
  10. 2010.08.25 갑자기 & 뜬금없이 결투자들 4
사랑의 교회 옥한음 원로목사가 돌아가셨다.
예의 인터넷은 개독들은 죽으라!라는 말로 돌아가신 이의 마지막을 배웅하긴 한다만
나름대로 경건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니지, 나같은 범부가 따라가기 힘들게 사신 분인건 확실하다.

물론 보수 옹호 뉴라이트적인 정치발언을 일삼는 오목사를 후계자로 세운 일과
서울고쪽으로 2000억을 들여서 새롭게 교회를 세우게 만든 
생애 마지막 두 가지의 일을 제외하고서는.
물론 이것도 내 개인적인 편견에 가득한 의견이지만.

개관논정(蓋棺論定)이라는 말이 있다.
관뚜껑을 덮고 나서야 죽은 이의 논공행상을 논한다는 말이다.
고인을 엄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할 것인데
1. 객관성을 담보로 할 것
2. 시대상을 알아야 할 것
이다.  동시대를 같이 사는 이들은 1번이 부족하고 후대인들은 2번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은 
어느 세대가 단정짓건 늘 부족함을 느낀다. 아마 우리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죽어서 진토로 돌아가게 되는 그 날이
지난 뒤, 우리는 뭐라고 얼마 안 되는 지인들과 친척들에게 기억될 것인가.

아마 신께서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실 것이다.
죽어서 올라가 뵈오면 뭐라고 말씀을 하겠지. 
절대적인 판단이 있다고 믿는다면 열심히 살아야겠지.
최소한 개독으로 죽고 싶지는 않다.

어쨌거나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설교를 접해 들은 게 바로 어저께 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고 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더랬습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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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작은 방 한담 2010. 9. 1. 21:21
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딱 네명. 나까지 합쳐 다섯.

그 중의 마지막
영원히 젊음을 구가하며 찬란하지만 구질구질한 싱글을 누릴 줄 알았던 마지막 친구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발표를 했다.

진작 말하지 그랬냐는 말에 늘 그렇듯 어눌한 목소리로 바빴다고 이야기하는 친구.

드디어 모두가 간다. 
들어갔다 빠져나온 사람도 물론 존재한다만.

그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나니 하늘에서 빗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뜨거웠던 여름이여 안녕인가.


2.
무언가 사람들은 착각하면서 그 착각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걸로 위안을 받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은 날 좋아해 라던가
이번 일은 우리회사에 떨어지는 게 확실해 라던가
내 인생은 지금부터 꽃피게 될거야 라던가

기타등등

깨지 않아야 할 착각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누가 태양을 맨 눈으로 하염없이 응시할 수 있을까?


3.
뭔가 하나 둘 잊혀지고 잃어버리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4.
마피아의 격언이 생각난다.
"믿을 수 있는 것은 피붙이 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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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짧은 글을 쓰다보면 긴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2. 사람의 말속에 품은 뜻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3. 바닥을 본 다음에는 지하실을 보게 되는데 그 다음은 이게 몇층까지 내려가는 건지 확인해 보는 일.

4. 천하태평하게 사는 것이 타인의 미움을 사게 될 수도 있다.

5. 집에서 하루종일 자는 것이 하루종일 발품을 파는 것보다 이득이라면 당연히 자야한다.

6. 몸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망가져간다. 30이 넘은 다음부터는.

7. 희망은 바보짓이지만 절망은 병신짓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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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항로가 잔잔한 일망무제의 만경창파를 헤치고 가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못한게 우리들 인생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돛을 세우고 키질을 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배를 끌고 가려고 아둥바둥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이 노력이라는 것 아니냐.

하지만 아무리 한들 뼈가 부서져라 노력한들,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키를 붙잡고 있다가 토할지경까지 이르러도 바람이 바뀌지 않고 거칠어지는 것 또한 인생 아니랴.

이쯤 되었을 때 우리는 고뇌한다.
여기서 손 놓고 그냥 바람부는 대로 떠내려 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서서 죽더라도 키를 잡고 있어야 하나.

누군가는 손을 놓고 누구는 손을 놓지 못하고.

그렇게들 산다.
떠내려 가는 것이 어쩌면 편할지도 모르고
꽉 붙자고 사는 것이 그의 사는 목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장담하겠느냐. 바람부는대로 표랑하다 도착한 곳이 그가 꿈꾸던 곳일지도 모르고
내가 피땀바쳐 잡아끌며 도달한 목적지가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봉래 양사언은 이렇게 시를 읊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다고 양사언이 불굴의 투쟁적인 유학자였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양반은 유학자기도 했지만 선도(仙道)를 배운 사람이었다.
죽어서 신선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노자와 장자의 무위론을 알았을 게다. 세상엔 득도 없고 실도 없도다.
그런 그가 왜 저런 시를 읊었을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말을 할 정도는 벗어나야 한다는 거 아니었을까.
일단 뭐든지 토할때까지는 해 본 다음에 손을 놓던 계속 잡던 그 다음에 오는 건 자유로움이라는 거겠지.

그런데 그걸 알기 힘든거지.
언제까지 이걸 잡아야 하는 건지. 언제 놓아야 하는건지.
아직까지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라면
손을 놓기에는 요원하게 먼 것일지도 모르지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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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투덜투덜 2010. 8. 30. 23:50
내 인상이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다.
채무불이행자들에게 경계심을 주는 얼굴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쁜 인상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인상쓰면 표독해 보이고 인상 풀면 멍해보인다.

누군가는 착하다고 그러고 누군가는 무섭다고 그런다.
다 그때그때 심성에 따라 그런 것이다.

만가지 관상이 심상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김구 선생이 이 말을 보고 관상보기를 때려쳤다고 전한다.

사람은 그래서
좋게좋게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부귀공명을 관상으로 안다한들 그것이얼마나 맞겠으며
그것이 사람의 노력만 하겠는가.

오래 전 중국의 어느 영웅호걸은 아주 관상이 거지같았는데
어느 관상가가 그 사람 똥싸는 모습을 보고 천하호걸이 될 거라고 공언 했다던데
대체 어떤 식으로 똥을 싼 건지 궁금하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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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 편견

투덜투덜 2010. 8. 30. 00:46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게다.

3학년은 아니었을것이다. 그 시절은 광기의 시절 아닌가. 사람이 사람답게 보이지않는 시절이다. 동무들하고 농담따먹기 하면서 놀던 기억은 없다. 그리고 난 고3때 급우중에 얼굴 기억나는 사람이 없는 걸로 봐서 아마 1-2학년 시절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내 뒤에 있던 놈이 갑자기 낄낄대더니 내 등을 쳤다. 꽤나 사이가 좋은 놈이었다.

"뭔데?"

"어제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들어오셨는데 기분이 좋으신거야."

"그래서?"
 
"그러더니 날 부르면서 설교를 하실 것처럼 굴더니 딱 이 말씀만 하시고 들어가주무시더라."

"뭔데?"

"야! XX아! 너 나중에 니 맘에 드는 애 아무하고나 결혼 해라. 
 전라도 계집애랑 결혼해도 돼!
 교회만 안 다니면!"

아니 그 양반은 술처먹고 뭔 소리를 애한테 해댄거야 싶었지만 그 당시는 그런 생각까지 날만큼 철든 상황은 아니었고, 그냥 이 친구라는 잡놈은 내가 교회 다니는 거 뻔히 알면서 이런 흰소리를 수업시간에 나불대나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물론, 그렇다고 주먹질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사이는 좋았으니까.

*----*

지금도 왜 그 시퀀스가 뚜렷하게 기억나는 지 모르겠다.
아마 약간 소름이 끼쳤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등골이 서늘했던 감정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커진다.

급우와 급우의 아버지가 이야기한 저 짧은 대화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종교론을 한꺼번에 설명해 주는 날 선 코드 아닌가. 잘은 몰라도 아버지의 평상시 대화를 유추해 볼 수 있고, 그 아래에서 조신하게 자라온 내 급우의 코드도 읽을 수 있고, 이 놈이 말이 없어서 그렇지 맘 구석 어딘가에는 저런 이야기들을 축적해 놓은 어느 장소가 고스란히 남아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존 로크가 타블라 라싸(tabula rasa)라고 했던가? 인간의 마음은 맨 처음에 백지 같아서 순수하고 그 위에 무엇을 적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인간의 순수함라는 것이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요즘은 고민해 본다. 특이 지나간 고등학교 시절의 이 짧은 경험담을 반추하면 할수록 그 의문은 더욱 커진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한 지식의 습득은 책이나 선친의 기취득된 경험의 구전으로 이어받는 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한 지식의 습득만이 이뤄지는 것은 분명 아닐게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물들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과 아집이 있고, 우리는 다른 것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편견과 아집도 같이 흡수한다.

가족이건, 스승이건, 하다못해 술친구건
우리는 테두리 안의 사람들을 닮아가는 법.

편견없는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편견없는 인간의 중립성이란 구현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열조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인간의 철학과 종교적 함의를 다 알고 사람의 눈높이에서 벗어나 하늘에서 인간의 삶을 내려다 본다 하더라도.

내가 인간인 이상.


누군가가 그러더라
학생시절 순수함으로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어쩌구...

놀고 자빠진 일이지.
사람이 혼자 독고다이로 살 지 못하는 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편견은 사람과 어깨동무하면서 가기 마련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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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구나

투덜투덜 2010. 8. 29. 00:23
현실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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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묻노니,
그대여, 세상이 그대에게 억울함을 뒤집어 씌운다면 그대는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1.
2009년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가 2010년 여름 끝물 대한민국의 극장에 소리소문없이 걸려있다. [골든 슬럼버]. 극중에도 나오지만 비틀즈의 노래. 그리고 원작자 이사카 코타로가 지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원저는 읽어보지 않고 아직 목차밖에 보지 않았지만 시공간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인물들의 환경을 잡아놓은 스타일같다. 

원저를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에 대해 날선 비평을 하게 된다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원작극화]들의 한계이다. 어떤 영화도 책을 따라갈 수는 없다. 책은 텍스트로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도구이다. 타인이 만든 영상으로 내 자신의 상상력을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각설하고, 이 영화는 스릴러이면서 고발극인 동시에 신파이며 인간드라마다. 어정쩡한 두가지를 다 갖고있기 때문에 두개를 다 만족시킨다 말하기 힘들다. 극의 내러티브가 너무 성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만들었다고 말할수도 없다. 순간순간의 화면이 관객에게 힘있게 어필하고, 특히 과거회상 장면들은 잔잔하지만 무게가 있다. 
뜬금없는 인물설정만 제외한다면 정말 괜찮은 웰메이드영화.

2.
1번의 구구절절하고 기술적인 영화평을 떠나서 서두에 다시 집중해본다.

[ 세상이 그대에게 억울함을 뒤집어 씌운다면 그대는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아니, 까놓고 말해서 의지할 무언가가 있기는 한가?
  신(神)말고, 이 물질세계에서.]

아직 상영중인 영화라서 뭐라 세세하게 적지는 못하겠다.

영화는 그 중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수많은 가능성중의 하나이고,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니.

개인적으로는 정답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에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나

이런 생각도 들긴 하더라.

오랫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개인적인 무거움을 가지고 돌아온 영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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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열심히
필설로 감히 설명하기조차 뭐하도록 열심히 살려고 아둥바둥 대는 녀석이 있다.
눈에는 독기밖에 안 남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 녀석
사람을 볼 때도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볼 정도로
자신의 인생관이 이지러질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욕심많은 녀석.

실패. 또 실패
그리고 또 실패.

가끔 그 녀석을 볼 때마다
난 뭐라고 하기 힘든 서러움을 느낀다.

욕심이 사람의 길을 헛되게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굴곡진 그네의 팍팍한 인생과정이
과욕으로 실패를 부르는 것일까.
앞날이 어둡도록 눈을 멀게 하는 것일까

난 그렇게 부지런을 떨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건만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응당한 보상을 받는 길이라도
이 노력본위의 세상에서는 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뭐가 옳은 것일까
세상을 거쳐가는 문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그 문들이 모두 어디로 열려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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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의 입봉작

[결투자들]을 DVD나 블루레이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고 있는데
이거...한글자막 들어가 있는 건 이제 구할 수 없는 것인가?



이렇게 떡 하니 표지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건만
뒤져보면 이미 모두 품절입니다 메롱~ 약오르지 이놈아 라고 적혀있다.

-.-a
예전 MBC 주말의 명화에서 한 번 해 줬을 것이다.

일설에는 스탠리 큐브릭의 [베리린든]을 보고나서
리들리 스콧이 "나도 큐브릭처럼 찍을 수 있다!"라며 자연조명으로 이 영화를 찍으려다가
촬영감독이 입봉작에 사자밥먹고 싶냐는 말로 달래서 그냥 찍었다는 
카더라 속설이 전해지지만

어쨌건 풍광,연기,배경,스토리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끝내주는 데뷔작.

어디서 구해볼까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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