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10.10.12 영어책 2
  2. 2010.10.11 2010.10.10 소사 4
  3. 2010.10.09 타블로,악플러, 기타 여타한 잡상의 결론
  4. 2010.10.08 행복하게 살다가 자살하였다.
  5. 2010.10.08 근원적인 의문 2
  6. 2010.10.07 인간이 자만에 취하면
  7. 2010.10.05 옛 추억 2
  8. 2010.10.03 핏줄이 너를 기억할 것이라 6
  9. 2010.09.30 대충대충끄적끄적 4
  10. 2010.09.29 아득하구나 2

영어책

투덜투덜 2010. 10. 12. 23:28
오랫만에 공부를 좀 해볼까 했더니
졸리다

아, 독해로 먹고 살았는데 
이젠 이게 뭔 놈의 꼬부랑 오랑캐글자야 하는 식으로 보이니
이를 어쩜 좋누

그냥 다 관두고
컴퓨터나 업글해서
문명5나 시작할까

우히히~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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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0 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10. 11. 01:01
1.
해는 지고 길은 멀고


2.
난 가만 생각해 보면 늘 한 템포 늦게 무엇이든 시작하는 편이고 그로 인해서 얼리어답터 소리는 듣지 못하는데
내 인생의 출발선도 늘 그랬던 것 같다. 뭔가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몇 년, 혹은 몇 달이라도 먼저 그것을 잡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쉽사리 발이 나가지 않는 성격인 것을. 덕분에 시작한 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긴 하지만...아직까지 제대로 결실을 본 적이 없으니.

3.
2번에 갈음하여 생각컨데, 요즘 세상에 진중한 맛이라는 것은 병맛이라는 것과 상통하는 듯 하다.

4.
황장엽이 죽었다.
난 맨 처음 황장엽이 남한에 넘어왔을 때 북한 그대로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구먼.

그냥 그 양반은 조조 아래 순욱이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호의호식하며 마지막에 고종명했으니 인간의 복락은 다 누리고 죽은 거 아닌가.
불쌍할 일은 없다.

5.
"장남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네 살고 싶은대로 살아봐라"

토요일날 아버지가 던진 마지막 말

가슴이 시리다 못해 진짜로 아팠다.
하루종일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6.
그 다음에
괜찮은 아가씨 있으니 만나보라는 말에 벙 쪘지만

아버지는 
결혼하면 밥을 여자가 차려줄 것이라고 아직도 철석같이 믿고 계신다.

그건 이제 신화이며, 전설이고, 아틀란티스의 잃어버린 유물과 같은 것입니다
라고 해도

믿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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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인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주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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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책임이나 종교적 교리문제를 떠나서.

아파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하고 부유해도 충분히 불행할 수 있는 것이고.
(부유한데 불행한 건 좀 다른 이야긴 것 같긴 하다.)

나도 가끔은 그 생각을 해 본다.
행복의 정점에 있을 때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꼭대기가 있으면 분명히 나락이 또 있을테니까.

하지만
아직 꼭대기에 올라가보지 못했으니까 산다.

행복해지고 싶다.
왜?
글쎄.
힘든 이야기다.

그냥 불행한 것보단 나은 것 같다.
스트레스도 덜 받을테고
맘 씀씀이도 좀 유해질 것 같고
사람들에게도 잘 대해줄 것 같다.

지금 그렇게 하면 되지 않냐고?

글쎄.
여유가 없는데.

어찌보면 행복이란 여유로운 것인가보다.
난 시간은 넘쳐나는데 왜 여유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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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인 의문

투덜투덜 2010. 10. 8. 13:36
1.
진실로
용서와 화해를 하게 되면 구원이 찾아오는 것일까?


성폭행 당한 여자가
미친듯이 가슴을 쥐어 뜯다가 혼자 용서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처럼

그냥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자위하는 짓거리를
용서니 화해니 구원이니 하는
달콤하고 고상한 말로 포장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라면


2.
이게 [밀양]에서 한 이야기였지. 
사실,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에서 나타난 상황은 영화보다 더 지독하다.

이건 각자의 몫, 혹은 영원히 오지 않을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종교가 있는 사람의 몫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고.

어느 누구도 부족한 인간에게 신의 파편을 흉내내라고 할 수는 없다.


3,
난  그래서
죽을 때까지 미워하고
죽일 수 있으면 죽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 주제에
신의 자비를 흉내내는 불경건한 인간들이라니

사람은 사람의 감정에 충실해야
그 끝에 가서 구원의 끝자락이라도 조금 만져보는 것이리라.

속으로 배알이 꼴려 죽겠는데
난도질을 하더라도 끝까지 난도질을 해야 직성이 풀리겠는데
누가 내게 용서를 하라고 권한단 말인가?
내가 되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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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크 영웅전에 보면 [코리올라누스]라는 로마장군이 나온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이기도 하다.

위광이 탁월하고 무용이 뛰어난 사내였다.
단신에 소부대를 이끌고 외적의 침입을 혼자 방어하여 코리올리지방을 사수한 공로로 
코리올라누스라는 칭호를 만백성앞에서 부여받은 용사중의 용사요, 귀족중의 귀족이었다.
명성만을 얻었을 뿐, 재물에는 초연하였다.

그는 귀족이었음으로 평민과 다르다 생각하였고, 귀족중에서도 특출난 자라 스스로를 평가하였다.
그는 집정관이 되고 싶어하였다. 
귀족들의 동의를 원하였으나 떨어졌고, 오히려 평민들을 핍박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가
평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의 능력을 자랑했을 뿐 아니라
타인도 자신과 같이 엄격하기를 원했으니, 능력없는 자는 그 자리에 있을 것과
비루한 자는 위로 올라서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호민관과 백성에 의해 [민중을 핍박하는 자]로 찍혀 로마에서 추방되었다.

그 다음에 이 인간이 취한 일은
플루타크 영웅전 중에서도 가장 어이없고 기똥찬 일이었으니

자신이 한때 박살냈던 볼스키아의 왕에게 들어가
로마를 깨죽으로 만들겠으니 병사를 달라고 한 것이다.
얼씨구나 하고 왕은 병사를 내 주었고
이 인간은 병력을 이끌고 로마를 박살내려고 출정했다.

로마가 보이는 동구밖에서 군사를 정비하고 있을 때
코리올라누스의 어머니가 단신으로 찾아온다.
제발 가문의 고향의 짓밟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니를 보자
이 인간은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군하여
볼스키아 왕에게 죽음을 맞는다.
--

사람의 인성은 달라지지 않으니.
몇천년이 지나도 구절구절 하나하나에 써 있는 인간의 습속은
그대로 바뀌지 않으니, 아마 결말도 그리 다르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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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

작은 방 한담 2010. 10. 5. 20:33
여차저차 일이 생겨 10년만에 졸업한 대학교에 들렀다.

졸업한 뒤 이 근방으로 와 본 적이나 있었던가.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고 해도, 좁은 서울땅도 품팔다보면 넓기 그지없는 것이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근방에서 가장 큰 건물이 학교 도서관이었던 적도 있었건만
이제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주상복합이 앞을 가로막고
대학병원은 신축을 해서 도서관보다 훨씬 커져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로비를 채운 각종 음식점들, 커피점들, 

아이들의 모습은 변한 것이 별로 없어보였지만
건물의 모습이 더욱 많이 변했구나.

내가 졸업한 정치대는 이미 구 건물에서 나와 신축된 건물로 들어갔고
예전에 계란과 라면을 팔던 매점은 이미 브랜드 편의점이 들어서고
새로 신축된 건물 안에는 고아하게 와플과 커피를 팔고 있었다.

이제 손글씨 매직의 대자보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익히 보아오던 이슈는 걸리지도 않았다.
내가 보기엔 가볍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무거운 주제들이 대자보를 메우고 있었다.

이미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퇴물이 나이 먹은 것을 유세하랴.

다 그렇게 지나가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학교 사수대가 안기부 블랙리스트 3위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신입생때 선배들이 심심파적으로 해 주던 이야기. 하긴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은 가고 건물은 남고
사람은 변하고 건물도 변하는구나.
변하지 않는 것은 가을하늘과
고고히 터를 지키고 있는 학교 앞 홍콩반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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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만인보]를 받았다.

물론 만인보 전 권을 다 받은 것은 물론 아니다. 첫 1-3권만 받았다. 
30권을 무슨 똥배장으로 선물을 달라고 하겠는가. 그건 도둑놈이지.
고은 시인이 1980년 감옥에 갇혔을 때부터 구상했다는,
민초들의 역사를 넣은 시집을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한 시집. 
만 명은 못 되어도 5천명은 들어 간 시집을 내었다.

어찌보면 고은 시인의 만인보는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내었던 문체반정의 글들과 비슷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숨쉬는 글을 남기는 것이 진짜 역사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어찌보면 고은 시인의 만인보는 당대의 이인거사들이 한 일을 했는지도 모른다.
살아서 의원이 되었으니 죽을 때 까지 천명은 고칠 수 있다던 조선후기 침쟁이가 떠오르지 않는가.

각설하고
난 맨 처음에 누굴 대상으로 글을 시작했는지가 가장 궁금했었다.

할아버지.

아무런 권세도 이름도 없이 [학생부군]으로 묻힌 고은 시인의 할아버지가
5천명의 넘는 시 속의 인물 중 첫번째로 올라와 있더라.
 
제목을 보고 시를 보는데 가슴이 울컥하더라.
생전에 아무 것도 남길 것 없을 줄 알았던 촌로가
문재(文材)있는 손주를 만나 장구한 민초의 역사 첫 장에 이름을 올렸다.

책이 있고 한글이 살아있는 한
고은의 만인보도 남을 것이고
만인보가 남으면 그의 조부도 영영히 기억될 것이다.
철따라 지내는 제사가 어찌 이보다 풍성하랴.

고은 시인은 욕심으로 할아버지를 올리지 않았으리라.
가장 평범하게 살아간 사람을 맨 처음으로 찾다보니
그의 조부가 생각났던 것일진대.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한 사람이 영영히 기억될 것은 주지의 사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고
기억해 주는 이가 있기를 사람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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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하나 쓸 때 장고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몇 개나 썻으니 다 날림공사에 다름없는데
시간이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자위하면서도 참 맘에 안 든다
대충 어설프게 지어놓고 땜방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나도 참 몹쓸 놈이다. 세상을 이렇게 살아선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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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구나

작은 방 한담 2010. 9. 29. 21:00
그러고보니

사람 손 잡고 길을 걸어 본 지 참으로 오래 되었구나

다 커서 동무들과 손 잡고 걷기는 겸연쩍은 나이가 되었으니 그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나 좋다는 여인네 있는 것도 아니니 이것도 어렵고.

점점 사라지는 추억은 많은데 시간은 점점 빨리 가기만 하누나


손 주무르는게 좋아서 그랬겠나

그 시간이 좋아서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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