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장'에 해당되는 글 121건

  1. 2009.10.19 스테이크를 구웠다 6
  2. 2009.10.17 단설(短說)
  3. 2009.10.12 고민하지 말고
  4. 2009.10.11 서점에서 2
  5. 2009.10.06 한 울타리에 산다는 거 8
  6. 2009.09.29 오늘이 화요일인가?
  7. 2009.09.29 9월 단상
  8. 2009.09.12 허(虛) 4
  9. 2009.08.14 급한 성정 14
  10. 2009.07.28 달리는 말을 맨 처음 본 순간 4

스테이크를 구웠다

수련장 2009. 10. 19. 21:31
버터를 넣었다.

구웠다.

냄새가 좋았다.

"어미의 젖으로 자식을 굽고 있구나"

갑자기 든 생각.

그래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었다.

인간이란 원래 살성(殺性)을 타고 난 짐승 아닌가.

내가 뭐라고 혼자 격조있게 말한다 해서 칠정육욕을 다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얄팍하니 있는 척 고상한 척 사는 도리밖에.

만물이 무르익고 땅으로 떨어질 것은 떨어지는 
가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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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설(短說)

수련장 2009. 10. 17. 22:40
뭔가 생각을 정리한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일단 칠정육욕이 가라앉고
기쁨과 화남과 억울함과 서러움이 없어진 뒤에 쓰는 것이 원칙이다.

사람이 삶의 방향을 잡을 때도 그렇고
무슨 일을 해 나갈 때도 그렇다.

생각해본 뒤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결정할 것.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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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지 말고

수련장 2009. 10. 12. 23:05
"할 수 있는 일은 고민하지 말라"고 친구가 말해줬다.

그러고 보면 고민이라는 것은
내가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고민이 아니라 결단의 우왕좌왕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사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세상이라는게
이 일 해보고 안 되고
저 일 해보고 성사되고
그러다가 저러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나름대로 틀이 잡혀서 각자의 색깔을 띄는 거겠지.

맞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만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면야 이것이 정답.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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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수련장 2009. 10. 11. 00:47
오랫만에 아는 후배와 점심을 먹고 근처 서점에 들려서 책들을 보았다.
형형색색, 요즘 책들의 껍데기들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 것이냐.

예전에는 엄두도 못 냈을 부분코팅과 별색인쇄
그리고 수입지가 틀림없어 보이는 두툼하고 부드러운 겉지까지 보다보면
그런 책이라는 것은 요염하기 그지없는 미인과 같으니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덥썩 손에 넣고싶은 충동마져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군계일학이나 홍일점같아야 맛일진대
모든 책들이 다 자신의 겉태를 뽐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난형난제요 오히려
고르기가 쉽지 않다.

멀리서 쳐다보면 썩 쉽게 손이 가는 책이라는 것을 찾기가 힘들다.
나이를 먹어서 교만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하여간 요즘 상황이 그렇다.

무언가를 읽고 느끼고 모르던 것을 알고 싶지만
또한 원치 않는 것을 읽을 필요가 있겠냐는 얄팍함도 같이 있는 모양이다.

세상에 읽어서 독이 되는 책이 몇개나 있겠는가.
맘에 와 닿지 않으면 다시 집지 않는 것이 책이라는 것이니
책이 가진 무의미함보다는 그 책에 투자한 돈의 무의미함을 두려워하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스스로 채워지는 것도 없이 교만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고 돌아왔다.

결국, 책은 사지 못했던 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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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카페 글읽기가 가능해졌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게 생긴 고양이들이 많아서 가입한 건 잘 했다고 (가입하라는 충고를 들은 걸) 생각하는 중이다.

글을 쓰게 되면 바로 입양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보니 적잖이 망설여진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내 터전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인데
책임을 질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데리고 온 뒤 몇 달 간은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 뒤에도 애정이 변하지 않으려나.
사람이건 짐승이건
익숙해지면 서로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는 걸텐데.

젊은 시절엔
난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확신시키곤 했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 감정은 변하지 않았었는데.

스스로가 불안한게지.
사람이라는 동물이 갖는 애정의 불연속성이라는 것은 개만도 못할 수도 있다.
가정에 대한 미련은 고양이만도 못할 수 있고.
그래서 불안한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소라게 5년간 키운 공력으로 한 번 도전해 볼까.
밥만 꾸역꾸역 먹고 배부르면 밥그릇에 똥사고
일절 잘먹었습니다 따위 인사도 안 하는 소라게 수발드는게 고양이보다 어려울 지도 모르지.

고양이를 길러서 사람이 안정이 되면
그 때 아가씨를 찾아나 볼까.

소원이 있다면 나도
길에서 나를 보고 찾아오는 길냥이를 키워보고 싶다.
그리고 길에서 나를 보고 알아주는 아가씨를 만나보고 싶고.

고양이는 마냥 꿈만은 아닌 것 같지만
써 놓고 나니 아가씨의 경우는 말도 안되는 소망이로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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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 광고주와 미팅을 하고 왔다.
난 참 어리고 늙은 것이

종내 같은 미팅자리에서 본 갑대리가 그렇게 눈에 거슬리는 거다.
사람이 그냥그냥 웃고 좋게 넘어가야 하는데 꼬락서니가 보기 싫더라.
갑에게 그래서 벌어먹고 살겠나. 아직까지 치기 만땅인 노릇이지.

그런데 그 친구가 나중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양반에게 계속 말대꾸하는 거 보고
얼씨구 저X보소 어른한테 뭔 짓거리여하는 생각이 잠시 드는 순간
나도 사회에서 벼슬을 나이로 따지는 계열로 접어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술처먹고 나잇살타령하던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객관적이고 정의로운]인간들 참 싫어해놓고 말이지.


2.
인간의 마음에는 사람들을 각각 분류해 놓는 DB가 있는 모양이다.
한 명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 제각각 있는 것이지, 사실상 링크가 되어서 다른 사람이 연상될 만한 인물이라면
나하고 그리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그만큼 모른다는 이야기니까.

더불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워야 할 때라면 그냥 DB를 삭제하는 것이지
뭔가를 덮어씌우는 것 따위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거다.
그리고 그래봤자 성공할 리도 없고.

누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DB를 끝없이 정리한다. 추리고 분류하고 제거하고 다시 솎아내고.
어느 누구도 타인의 자리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단지 닫히고 열리고 사라지는 과정일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다른 사람의 Confidential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모두가 열람하기를 원하겠지만.
아마도
꽤나 다를 것이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내 DB의 위치라는 것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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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단상

수련장 2009. 9. 29. 01:57
날이 지고 다시 새벽이 온다.
사람들은 오늘 자면 내일 아침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러할까.

오늘 자는 이들중에 내일 아침을 보지 못할 이는 내 어림짐작보다 많을 것이다.
어느 날이런가 나도 그 알지 못하는 모임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 [어느 날]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까운지 모르기에 우리는 이렇게 여유롭게 사는 것이겠지만.

군대시절 강박관념처럼 지니고 있던 단상 하나가 있었다.
[난 내일 사고로 죽을지도 모르고, 오늘 자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지만 하여간 26개월을 그런 강박관념속에서 보냈다.
그도 그럴것이 군대있는 동안 사회에서 내 친구들이 두명이나 죽었으니.

그렇게 살다보니 군생활에 남겨놓은 물품이 하나 없다.
남들은 제대할 때 더블백 하나 짊어지고 보따리 하나 더 짊어지고 나오던데
난 몸뚱이 하나 일계장에 맞추고 그냥 걸어나와 버스를 타고 (부대 앞에 서울가는 버스종점이 있었다. 으히!)
집에 덜렁 돌아왔다. 26개월간의 일기 외에 아무것도 남긴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질박했던 것 같다.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고 살았더랬다. 그렇게도 살 수 있었다.

벌써 9월이 지나고 10월이 돌아온다.
이룬 것보다는 미뤄놓거나 완성되지 않은 것들이 많고 언제 가능할지 요원한 것도 있다.
머리가 가끔 아팠다. 이루어 진 것이 없는 실망감이 그 첫째일테고
기대함때문에 커진 두려움 탓이었으리라.
누구 말마따나 쉽게 부서져 버리는 것이 사람의 희망과 행복이다.

사람은 가진 것에 절망하지 않고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에 절망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인생으로 태어나 앞에 나 있는 길을 걸어가지 않으리?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과 닥칠 일에 대한 각오가 서 있는 것과는 분명 의미가 다를 터.
나날에 대한 충실함에 다름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내가 소망하는 것이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고.

설사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이 부숴질까 전전긍긍하지도 말아야겠다.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내일이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고
무엇보다 미래의 영역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므로.

이러다보면
자유로와지거나 충족되거나
둘 다 아니면 최소한 내 정신이라도 살아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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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虛)

수련장 2009. 9. 12. 01:44
밥을 먹고 일하고 씻고 자는 것이 평상시의 일이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삶에 있어서 모자란 것을 느끼고
그로 인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늦은 밤 잠을 못 이루고 홀로 앉아 그것이 무엇인가 잡아보려 해도
그 [무엇인가]는 속시원히 자기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살내음일수도 있으나 딱히 그것은 아니고
원없이 쓰고 또 쓰고픈 현금계좌의 자릿수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한 꿈도 아니고
앞으로 다가올 불명확한 미래에 대한 공포도 아니다.

그저 그것은 공허함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지 못했다고 느끼는 자괴감에서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나날의 충일함을 열망하며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또한 도라고 옛 성현이 말하신 바
나는 늘 도를 닦으며 살지만
그것에 만족치 못해서 또 다른 허(虛)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허탄한 허상을 깨버리기 전에는
평상심에 대한 것을 얻지 못할 것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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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성정

수련장 2009. 8. 14. 01:32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참 급한 성격이다.

쌀 씻기도 전에 밥이 맛있을까를 걱정하는 스타일.

요즘 업무시간 외에는 망중한을 독서로 보내고 있는데
가끔가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지금 이 나이에 과연 무엇을 쓸 수 있겠나? 시간이 없지 않을까?"
내지
"과연 쓰더라도 누가 내 줄것인가?"
따위의 고민을 하게 된다.

연애도 안 해보고 저 사람은 성격이 저러저러하니 가정생활에 애로가 만발하리
하는 공상하고 다를 바 없는 것일진대

왜 나는
몸을 쓰는 운동에 있어서 만큼은 우보천리를 실행하면서
다른 삶에 있어서는 이렇게 급하고 가볍게 삶을 관망하는 것일까?

너무 쉽게 쉽게 살아온 탓이려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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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에 대한 접근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한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관념이
현실속에 직시되는 순간
그 찰나의 상황이 가져오는 엄청난 중압감 속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은 사라지곤 한다.

예전 어느 바닷가에서
나는 질주하는 말을 한 마리 만난 적이 있었다.

도감에서 말을 보고
TV에서, 영화에서 보던 말을
맨 처음 실물로 보았을 때,
그것도 조랑말이 아닌 경주마가
최대한의 속도로 질주하여
내 바로 옆을 스치며
야수라고 형용할만한 자태로 후폭풍을 내게 맞쏘며 지나갔을 때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말에 대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들을
거두어가기에 충분했던 경험이었다.

고정관념.
스테레오타입.
인상에서 풍기는 인자함이나 경솔함, 혹은
그가 지니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광폭함.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지식과
몇 번 스쳐가며 획득한 얄팍한 지식따위는
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

내 이성과 감성을 한데 뭉뜽그려 박살내는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경험은
허공에 쌓아둔 수 많은 서적이 올려놓은 지식이 감당하지 못하는
심장을 뚫어버리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단지
만날 기회가 없거나
만나고 싶지않거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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