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무언가를 해야 할 일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단 호구지책에 대한 염원 뿐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 매진할 것을 찾고 있었는데
아주 어렴풋이 그 길로 가는 초입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든다.

쉬운 일도 아니고, 전혀 가 보지 못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뒤돌아 생각컨대, 내 그동안의 짧은 살아온 길에서 내 스스로 정해서 갔던 길 중
끝까지 걸어가서 무언가 성과를 얻어내었다 할 만한 것은 지극히 적고 손에 꼽을만한 것이었다.
그 중 몇몇은 정말 천운이 닿지 않아서 중간에 관둔 것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내 심기가 불안하고
겁에 질려 도중에 관두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지내온 삶이 앞으로 살 날만큼이나 차 오른 뒤에야
또 다른 길을 하나 또 발견하였다.

늘 새로운 길을 가는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앞이 어둑어둑하고
초행길에 대한 외로움과 두려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야겠다 마음먹었으면 또 가야하는 것이 인생 아닐까.

좀 더 유하게 지난 날을 살펴보면, 그 동안 엎치락 뒤치락 헤메며 걸어왔던 길이
결국 이 길을 가기 위해 둘러왔다 생각해보니 그리 나쁜 여정은 아니었던 셈이다.

비단 이 일뿐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내 삶에는 빈 자리가 많고 그것들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남은 삶일 것이다. 그 동안 두들기고 두들겨서 나름대로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모양을 잡고 오롯하게 남은 것들을 담아낼 시간인 것이다.

안 보이더라도 끝까지 가 봤으면, 그리고 그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얻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내 스스로 먹고 살 일에 대해서도 하루빨리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욕심을 하나 더 내 보자면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손잡고 같이 갈 이 하나쯤 있어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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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사람을 판별할 때 가진 것이나 성취한 것이 아닌 
교분을 가진 친구로 만나 그 사람의 인격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어찌 축복이 아니랴.


2.
모든 이의 생활과 고난을 하나의 글로 축약한다면
그 가운데 있는 수 많은 평지풍파를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지구 상에 사는 모든 이의 삶은 소설로 쓰기 족하고
그것들은 모두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룰 것이라는 데 한 표.


3.
읽을 책은 산더미 같은데 사람의 생은 유한하구나.


4.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보고 사는게 장부의 삶이라고 말했던 양소유는
결국 모든 것을 해탈하고 불가에 귀의하였다 하지만서도
그 모든 것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렇다면 해탈하지 못하는 것일까?

욕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만족이 있은 다음에야 
사람은 스스로가 가진 절대고독을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아직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많은 인생인지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한다.


5.
졸리면 자고
깨면 일하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과연 득도할수 있을 것인가.

그 가운데서 깨달음을 얻은 선사가 더 용하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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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 연봉

투덜투덜 2010. 2. 9. 11:51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와 인격이라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돈으로 결정되는 바.

이직이나 취업을 할 때 가장 주의할 것 중 하나는 월급을 얼마나 올려서 고용인에게 제출하느냐다.
솔직히 뻥카라도 올려 쓰는 것이 낫다. 겸손함이나 자기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금액보다는
일단 올려야 한다. 아쉽지만, 이 시대에 사람의 가치를 보고 고용할 수 있는 인간이란 그리 많지 않고
써 낸 금액에 의해 그 사람을 책정한다. 설상가상, 돈은 사람을 만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 처럼.

단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업체와 일하다 보면 처음의 가격대로 계속 주는 곳은 드물다.
애초의 가격보다 점점 깎아서 주려고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첫 단가가 중요하다.
계속 깎고깎아서 내려올 곳이 없을 만큼 깎게 되면 미련없이 그 회사와는 인연을 끊어야 한다.
돈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그 때쯤 되면 업체와 업체간의 관계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점점 하대가 들어오고 안 나가도 될 돈을 선심쓰듯 주는 경지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결국, 회사의 가치가 평가절하된다는 이야기고, 더불어 그 회사의 조직원인 우리도 [쉽게 내려볼 수 있는] 부류의
고용인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장이 아닌, 사실이 그러하다.

자신을 싼 값에 판 경우,
그리고 단가를 싼 값에 받을 수 밖에 없게 된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냥 돈에 내 자존심을 팔던가 혹은 자존심에 돈을 차버리던가.

아마 우리 회사는 계속 후자를 선택하는 쪽으로 가는 듯 하다.
돈으로 자존심을 살 수 있고, 자존심으로 돈을 살 수 없을 지언정
남에게 함부로 당할만큼 회사나 개인의 자존심이 값싸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그런걸로 사람의 인격을 재단받고 싶지도 않고, 회사의 가치가 평가절하 받고 싶지도 않으니까.

어쩌면 일장춘몽이오, 배고파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허황된 오만일지도 모르고
헐값에 우리 일을 팔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남은 허세일지도 모르지만.

* 단가로 사람 치는 회사들은 정말....어디 유럽이나 미국에 내보내서 인건비 무서운 줄 좀 알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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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이 노래 누가 불렀더라? 가물가물 하네
N: 015B
H: 아 그랬나
N: 이 노래 이후 정석원은 사랑노래를 못 부르는듯
H: 정석원이 작사한 거냐?
N: 그 노래 이후 뭐...
H: 아예 붓을 꺾었냐?
N: 그런 거 같은데...
H: 절절하구만.
N: 긍까...
H: 어디서 만났나부지?
N: 누가 제보했을지도.
H: 사람 사는 게 참 그렇고 그런거야 그거보면
N: 그런 거 같애요.

몇 년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확실히 조금 지난 노래들을 듣다보면
멜로디가 아니라 속의 감성이 사람의 심정을 격동시키는 게 있는데.

요즘은 뭐 그냥저냥...사랑은 물끓은 뒤 면발이 익기전에 넣는 스프련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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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화가 길창덕선생이 돌아가셨다.

이만화 저 만화 많이 생각나지만 [고집세]라는 캐릭터가 생각난다.
담벼락 한 귀퉁이에만 낙서를 해서 나중에 담벼락 그 곳만 헐어서 구멍이 나 버렸다.
아버지였던가...하여간 집주인은 사람들이 그 구멍에 대해서 물으면 이렇게 말한다.
[6.25 때 포탄자국]

어렸을 적 참 재미있게 보던 만화를 그려주셨는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릴적을 즐겁게 만들어 준 많은 만화가분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는게 참 슬프다.


2.
같이 밥 먹을 사람들이 있고
같이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음...애인 필요 없는건가. -.-;;;


3.
조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리 집 혈통이 잘 울지 않는 편이긴 하다.
주사를 맞췄는데. [어~]이러더니 멀뚱멀뚱 보고 있더라나.

...둔한 집안일지도.


4.
아버지가 수술을 하고 집에 오셨는데
별반 달라지신 것은 없으시다. 예후가 좋다.
확실히 의술은 발달하는 것인가보다. 난 아직도 가끔 시릴 때가 있는데.

그래도 두 분 다 나이를 드시는 것을 목도하고 있으면
조금씩 모래시계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사람들은 다가올 시간과 결과를 알면서 지켜봐야 할 뿐이다.
누구나 알면서도 별반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인생의 한 토막. 

하기사
젊었을 적에는 이런 일은 
정말 한참이나 먼 시간 뒤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내 코 앞에 와 있었다.


5.
그래서
같이 늙어갈 사람을 찾아서
사람들은 그렇게 헤매이는 것일지도.

무엇이 어쨌건 사람은 작고 미미하고 외로운 존재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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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와 산세가 다 잡힌다는 통영 미륵산

2. 새벽 찬 바람 맞으면서 뜨는 해를 보고 싶은 낙산 의상대

3. 배고플 때 먹어서 절대 잊혀지지 않았던 일본 도쿄 시모기타자와의 빵집 [안젤리카]의 미소빵의 맛.

4. 나오던 콧물까지 얼어버리게 추웠지만 너무나도 아늑했던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5. 카메라로 잡을 수 없어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가서 찍었던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성당

6. 바닷물에 페인트 풀어놓은 듯 새파랗기 그지없던 이태리 세스뜨리 레반테

7. 호그와트는 저리가게 음산하고 무서웠던 해질녘의 영국 이튼스쿨

8. 아마 다시는 가기 힘들 광할한 캄보디아 씨엡랍 호수와 경이로움의 극치였던 앙코르와트

9. 초록색 포도밭이 성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미국 프레스노.

10.

하지만 더 모든 것들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앞마당에 벽오동 하나 정갈하게 서 있던
강서구의 우리 2층집.

비가오면 산에서 흙탕물이 쏟아져 동네 앞길이 모두 벌겋게 되고
무덤들과 소나무가 울창했지만  해질녘까지 뛰어놀기에 너무나도 풍족했던 우리 동네 뒷산.

산 한가운데를 깎아서 산꼭대기에 서 있어서
늘 등교할 때 마다 숨이 턱에 걸렸던 [국민학교]

난생 처음으로 갈비탕이란 걸 먹어봤던
우리동네 시장바닥의 [정육점]

내가 가장 다시 가 보고 싶은 곳들은
이제는 가끔 꿈에서나 볼 수 밖에 없고
현실에서는 전혀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곳.

이미 수십년이 흘러 옛 길은 자취도 없어지고 산도 사라지고 어디에도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과거를 불식시키는 현대의 잔재만이 남아있는 [행정구역]. 


나는 정녕 그 곳에 가고 싶어하건만
그곳은 이제 남아있지 않으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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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주로 해 먹는 건 양배추국이다. 말 그대로 양배추국이다. 양배추에 소시지 몇 개 넣고 팔팔 끓인 담에 먹는다. 
뭔 맛이냐 묻는다면 그냥 양배추맛이라 칭하련다. 내게 있어서는 그냥 [구황작물]에 다름 아니니.

그런데 어제는 동네에 양배추가 씨가 말랐더라.
그리고 오늘 동네 야채가게를 찾아가 봤더니 양배추 통짜 한 놈 밖에 남지 않았더라. 눈물을 머금고 사왔다.
사실 혼자 먹을 국을 끓이는 데는 1/4통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그렇게 밖에 팔지 않으니.
나머지 3/4을 버려야 하나 고민중이다. 양배추는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채소 아닌가. (3-4일 가려나...)

요즘 큰 마트들을 가면 그래도 채소를 1/2, 1/4 나눠서 파는 것을 종종 보긴 하지만 
아직도 나같이 혼자 먹고사는 사람들을 위한 용품들은 부족하다.
정말 필요한 것은 [1인용 식재료]들인데....일본처럼 이런 것들만 따로따로 파는 곳이 좀 더 많아졌음 좋겠고,
사실, 이런 제품들이 대형마트가 아닌 동네마트에서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건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규모의 경제라는 것이 주는 편리함. 
이건 양날의 칼인진대.


2.
필체에서 사람의 인격이 묻어난다지만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행동에서 성격이 보이는 것 아니랴.

가끔 요리를 해 먹는다. 
아주 간단한 요리를 해 먹는 편이지만
일단 뭐라도 만들고 난 뒤 주방을 둘러보면
화적떼가 부엌에서 노략질이라도 한 모양이 되어버린다. 고기라도 썰어서 굽는다 치면 푸줏간 귀퉁이같은 형국이고.

그리고 만들어낸 음식이야 못 먹을만한 것은 없었어도
영양가를 따지거나 마리아주같은 것은 사치스러운 소리다. 데코레이션....은 어불성설이고.

하지만 같은 요리를
혼자 사는 남자가 만들어도 고아하고 정갈하게 만들어내는 사람을 봤고
별로 요리 안 하고 사는 사람도 정작 요리를 만들면 깔끔하게 해 내는 것도 봤고
별 고민없이 대충대충 냉장고 처박은거 꺼내서 만들어도 그럴득한 걸 뽑아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요리도 천품(天品)이 있는 것이다.
갈고 닦으면 빛나는 돌이 될 인재가 세상 모든 분야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일게다.

각설하고,
최소한 요리에 있어서 만큼은 
난 보석이 아니라 석탄이라는 걸 깨달았달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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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더톱에서 나즈굴에게 찔린 상처가
중간계에 남아있는 동안 늘 같은 때 같은 날에 도져 고통을 참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왜 겨울만 되면 늘 아프던 곳이 아픈걸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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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天寒)코 설심(雪深)한 날에
 님 찾으러 천상으로 갈 제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뷔님뷔 님뷔곰뷔, 천방지방 지방천방
한번도 쉬지 말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버선 벗은 발은 아니 시리되
여미온 가슴이 산득산득 하더라

- 무명-
청구영언에 전하는 조선 율시.




하늘은 매서웁고 흰눈이 가득한 날
사랑하는 님 찾으러 천상에 올라갈제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비님비 님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한번도 쉬지않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버선 벗은 발일랑은 쓰리지 아니한대
님그리는 온가슴만 산득산득 하더라

하늘나라 우리 님 (1985)
-송골매-



기억하는 분들 많으시리라.
저 노래 가사는 부르면 부를수록 참 정감있고 애닯고
고운 우리 말 아닌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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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디스크수술을 받으셨다.
쩝, 허리가 안 좋은 것도 내 부주의가 아니라 유전학적 성질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허리가 아픈 걸 그냥 참고 아프다고 오히려 내 허리에 성질을 부려서 허리가 탈난 거고
아버지고 허리가 아프다고 성질나서 골프장에 가서 스윙을 하셨다니 바로 그 담 날 수술...-.-;;;
(우리 집안의 가계도를 유전학적으로 살펴볼 수 없을까? 시실리섬 아니면 북유럽 스발바르제도쪽이 기원일지도)


요즘은 부분마취로 절개도 약간하고 통증을 최소화하고 회복도 빠르게 진행된다니 격세지감이다.
나 할때만 하더라도 디스크수술은 남자의 인생을 걸고하는 수술이었는데. (아, 난 살아남은 거지...-.-v)

갑자기 그 시절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난다.

수술날을 받아 놓은 수술전야.
가장 친한 친구놈이 병실을 찾아왔다.

눈물나게 고마왔다. 수술전에 내 병실을 찾아오는 친구라는 게 존재할 줄이야!
(지금도 만나는 몇 안되는 막역지우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놈이 갑자기 병원 구석탱이로 날 끌고가더니
거기 있는 탁자위에 뭘 꺼내놓는거다.
후라이드 치킨.

"야, 수술 전날엔 아무것도 먹음 안된다는데..."
수술 마치고 거동을 못하는 상태에서 음식물이 들어가고 소화활동이 시작되면 
화장실을 가야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의사선생님이 주의를 줬더랬다.

그러나 내 친구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다 이것도 추억이야. 그냥 먹어."

뭔가 이상하고 미묘한 느낌이랄까.
하면 안되는걸 알면서 저 말을 들으니까 괜시리 식욕이 땡기는 것이다.
분명 뭔가 홀렸을 것이다. 그 날 저녁 후라이드 치킨을 내 친구하고 다 먹어버렸으니.

그리고 수술 후

난 화장실에 못 가고 누워있는다는게
사람을 반쯤 정신나가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부친의 병실에 누워서 간병하고 있는데
그 친구놈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

"아버지 병원, 수술, 허리,"

"아버지 어떠시냐."

"그냥 그렇지 뭐. 나이가 있으시니"

"우리 아버지도 나이드시니 이것저것 수술 많이 받으시더라."

"근데 웬일이냐."

"사실 어디 좀 놀러갈까 하는게 관광정보 좀 들으려고"

"넌 꼭 괴상한 타이밍을 잡더라"

"내가 원래 그래"

"네가 원래 그랬지."

...초록은 동색인 법이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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