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10

작은 방 한담 2010. 4. 11. 00:23
1.
조카 100일이라 식구들끼리 모여서 조촐하게 점심을 먹었다.
대나무와 애들은 안 보면 부쩍부쩍 큰다더니, 예전하고는 전혀 다르게 얼굴이 변해간다.
맨 처음에는 영락없는 내 동생이더니 이젠 제수씨 얼굴이 많이 나온다.

어머니가 그러더라. 맨 처음 애가 나오면 부계의 얼굴을 가졌다가 커갈수록 엄마의 얼굴이 나온다고.

"이유는 뭘까요?"

"그래야 의심을 안 하지."

-0-
아아, 이거 참 명쾌한 자연의 섭리로구나.


2.
내 나이 조금 뒤면 불혹이다.
정상적이면 아이가 이제 중학교 들어갈 것 걱정하고
학습수준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걱정은 없으니 편하다.

이게 편한건지
타인의 기회를 갈취해서 편하게 사는건지
아니면 그냥 이게 내 삶인지.

대신 그만큼 같은 동류들의 고달픔을 모르고 산다.
모두가 하는 고생을 모르고 산다는 건
몸과 마음이 편할지 모르지만 정서적 괴리감이 생긴다는 거다.
물론 책임감도 없겠지.

철이 들 시기를 지나버리면 영영 피터팬으로 사는 것일까?


3.
죽는소리 해 봤자
죽지도 못할 뿐더러 사람들이 꺼리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작 죽으면 더 심하게 욕먹는다.

그러니 그냥 혼자 모든 건 삭히면서 사는 게 제일이다.


4.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일은 많이 남지도 않았다.

인생만사 세옹득실.
누가 어찌 될지 앞으로 뭐가 어찌 될지
어리석은 인간의 눈과 머리로 얼마나 볼수 있겠는가.

그저 일희일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정성이 닿으면 소득은 없어도 후회는 없으리.


5.
폴란드 대통령 내외가 비행기 타고가다 추락사.
영 문제 많은 기종이었다고 하던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나라도 말이죠.
자기 타고 다닐 것도 아닌데 후임자를 위해서
전용기 사 놓으려고 하셨던 분이 하나 있었지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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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역지우에게서 문자가 왔다.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고.
바로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다. 이제 그 녀석도 두 아이의 아비가 되니 살림이 꽤나 팍팍할 것이다.
이런저런 안부, 걱정,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는 이야기.

전화를 끊고 나니 참 만사가 새롭기 그지없더라.


난 애초에 운명따위는 믿지도 않았다.
세상살이같은 건 인간의 노력여하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juggernaut가 있더라.

그게 운명이고 팔자라는 것일까.

아무리 사랑해도 연이 안 닿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타인과비교하여 훨씬 좋은 시와 좋은 때를 맞춰서 
결실을 바람직하게 보는 이도 있으니

세상이란
유구하고 넓은 시간 안에서 모두에게 공평하나
그 알맹이 나락 하나하나는 모두 다르고 똑같지 아니한 것이니

그것이 팔자이고 운명일 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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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10/04/09

Quote 2010. 4. 9. 00:29
우리들의 인생이란 한갓 풀 같은 것. 
들에 핀 들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 이미 사라져 
그 서 있던 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꿈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최인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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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내가 이 영화를 왜 보러 들어갔는지 지금 복기를 해 보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그리고 흥행에서는 참패를 했다.
애초에 시간때우러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적절한 3류 쌈마이 영화]를 찾아서 극장에 기어들어갔는지 모르고,
그 목적을 나름대로 만족시키고 나올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보고 난 다음에 
"아니, 이거 조폭물인가 코미디 고어물인가..." 하면서 머리를 갸웃갸웃 거리면서 나오다가
한 1주일 쯤 뒤에 다시 기억을 살려보니.

"아, 이거 [청춘드라마]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다 케이블에서 다시 한 번 봤다.
아, 감동이었다. 이 영화를 액션조폭물이라 착각했던 내 패착.

2.
젊은 시절 모두가 비웃어도 굴하지 않던 꿈이 누구에게나 있다.
혼자 꾸어도 개의치 않을 꿈을 같이 나눌 친구들도 있다.
그것이면 좋은 게 청춘인 것.

하지만 청춘은 바래고, 사람들은 세파에 찌들고
세파속에 같이 자라온 동무들은 하나 둘 스스로의 호구지책을 위해 길을 떠난다.
정신차리고 눈 돌리면 나는 인생의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조각배. 누구 하나 챙겨줄 수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아련한 추억들이 선득하게 다가오면
누군들 그 안에서 한번 더 가슴뛰게 살고 싶지 않으리.
하지만 모두 다 안다.
이것이 현실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 쯤은.

아이들이 아닌,
이미 다 자란 어른들의 동화랄까. 약간 불량스럽게 보이지만 착실한, 옆에 살고 있는
껄렁대는 동네 아저씨에게 바치는 헌사랄까.

나이가 들면 보는 눈이 달라지긴 하는 모양이다.

그냥 넘겨짚기에는 참으로 아까웠던,
[사시미로 피칠갑한 붉은돼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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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투덜투덜 2010. 4. 8. 01:15
세상엔 왜 그리 대상없이 흐르는 눈물이 많은것이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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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月正當三十日(삼월정당삼십일) : 삼월하고 딱 맞는 삼십일인데

風光別我苦吟身(풍광별아고음신) : 풍광은 외로운 날 떠나는구나 

共君今夜不須睡(공군금야부수수) : 오늘 밤은 그대와 밤을 새려네

未到曉鍾猶是春(미도효종유시춘) : 종 울리기 전에는 아직 봄이니



봄은 오긴 온 것이며
가기는 가는 것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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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히스 레저를 맨 처음 접했던 영화.

이리저리 재미있는, 일어날 수 없는 서양의 신데렐라 스토리의 남성화였지만
여전히, 아직도 유쾌하기 그지없던 그 영화.

지붕 수선공의 아들이
오직 성공하겠다는 일념과 아버지의 격려 덕분에
세상을 오시하며 승승장구해서 꿈을 이룬다는
[백일몽]에 가까운 영화

예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레드넥(노동자계층)이 화이트칼라가 되고, 그중에서도 상류층에 올라가는 이야기는
요원하고 머나먼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인 듯 하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는
승승장구하고 가짜기사 윌리엄이 다시 금의환향하면서 고향 런던에 돌아올때 울리던
Thin lizzy의 노래 [The boys are back in town]

Guess who just got back today
Them wild eyed boys, that'd been away
Haven't changed, that much to say
But man I still think them cats are crazy
오늘 누가 왔는지 맞춰봐요
그 거친놈들이, 떠났던 놈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돌아왔네요.
하지만 여전히...뭐 좋겠다. 이런 가사.

Thin lizzy라면 아일랜드 출신의 하드락 그룹, 노동계층의 삶을 담은 노래를 불렀던 그 사람들.

나이 먹고 다시 저 장면을 보는데
왜 그렇게 아련하고 뭔가 가슴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감동도 아니고 애환도 아닌 이상한 기분이 드는지.

히스 레저는 이제 고인이 되었고
Thin lizzy의 필 리뇻도 애시당초 고인이 된 지 오래고
흑태자 에드워드로 나왔던 제임스 퓨어포이는 [ROME]에 나오더니 [솔로몬 케인]으로 
잘 나가는 아저씨가 되었지만.

세월은 무상하고 빠르고 시간은 잡아둘 수 없건만
아직도 여전히 상념은 남아있는데.

시간이란, 인생이란 ,
정말로.




 

Posted by 荊軻
,
1.
사람이 무언가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마음만 먹는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건 더 심해지는데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쓸데없는 부대비용이 엄청나게 산정된다.

그러니 뭔가 내 진로를 바꾸고 싶다면 지금 하는게 낫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비용이 늘어난다.


2.
꿈을 꾸는데 졸려서 일어나지 못하는 꿈을 종종 꾼다
그런 꿈 꾸고나면 잔게 잔 것 같지가 않다는 것.

호접지몽따위는 일도 아니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데 그 꿈에서 깨려고 하다가 가위눌리는 꿈이라는 건
꿔 본 사람만 아는 괴상망칙한 것.


3.
좋은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쁜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은 당신에 대해서 별반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없다면 당신이 문제.


4.
오늘은 부활절이다.
세상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날인데
어찌 이렇게도 세상권세는 눈 뜨고 보기 민망한 지경인가.


5.
1년 뒤의 내 모습이 아니라
1주일 뒤의 내 모습조차 장담할 수 없는게 사람 인생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하루하루를 마지막날이라고 생각하고 살며
삶의 거주창스러운 부분을 남기지 않았다던데
그것이 어쩌면 삶을 꾸려가는 가장 알찬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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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건가

투덜투덜 2010. 4. 2. 21:56
사람이 무언가를 깨달은 뒤 더 잘할 수 있다고 여겼을 때
정작 깨달음을 실천할 곳이 없다면
그것 또한 우울하기 그지없는 일인 것을.


하늘의 때가 아닌지
땅의 이익을 못 얻은건지
사람을 못 얻은건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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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격언과 교훈집은 동양과는 달리 장중하고 긴 문체로 이어진 [우화]의 형식을 띄는 경우가 많다. 
의미함축적이고 글자의 행간을 찾아 깊은 뜻을 음미하는 맛이 있는 동양의 고전과는 표현방식이 다른데
기나긴 구절과 문체의 반복적인 장면전환으로 의미를 이해하기는 매한가지로 난해하다는 공통점은 있다.

소개하는 [가윈(거웨인)경과 녹색의 기사]는 중세 아서왕 로맨스중 하나로 나름대로 유명한 작품중 하나인데
얼핏 봐서는 기사의 공훈담 같지만 그 안에는 신학적 상징주의와 더불어 중세인들이 이데아라고 생각한
철인의 이상향이 들어있는 짧은 서시이다.

크리스마스에 아서왕의 궁전에 기골장대한 괴인 [녹기사]가 출현해서 목자르기 게임(이게 게임이야?)을 신청하고
거기에 맞서서 녹기사의 게임을 신청하고 모험을 떠나는 원탁의 기사 거웨인의 무용담이다. 이 서시는 거웨인의
모험을 그리고 있는데 그 과정중에 중세인들의 선(virtue)이라고 생각한 신뢰,관대,예의,순결,연민에 대한 기사의
자기고행을 그려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기사는 그 모든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찾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비단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더라도, 거웨인의 무용담과 그 과정은 [교훈]을 염두해 두고 쓰여진 책일지라도 상당히 시사할 점이 많고, 그의 도덕적 노력과 의무를 진 자로써 갖는 책임감에 대한 용전분투는 독자로 하여금 묘한 쾌감을 갖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에 관한 이야기들은 숱한데, 그 전체적인 개략을 살펴볼 때 어찌보면 가장 완벽한 기사도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아서왕이 아니라 거웨인이다. 아서처럼 운명이 선택한 용사도 아니고 란슬롯처럼 여자에 홀려서 기사도를 팽개치지도 않고 트리스탄처럼 애정에 목말라 자기자신을 파멸시키지도 않고 갈라헤드나 퍼시발처럼 신앙에 종속되어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의 종속자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기사로써는 란슬롯에 버금가는 무용도 펼칠 줄 알고 성질도 가끔 부리고 미련퉁이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는 기사의 본분을 넘어서지 않고 늘 자신의 모자람에 대해서 고민하고 늘 고친다. 
녹색의 기사 말고도 유명한 거웨인의 설화 중 하나는 거웨인이 장가가는 에피소드인데, 이 이야기에서 그는 자기보다 한참 격이 낮고 못생긴 아가씨를 부인으로 맞게 됨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써, 그리고 현명한 자에게 배우는 말학의 모습으로 충실하게 부인에게 외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거웨인은 중세민중이 가장 숭앙하면서도 가장 가깝게 느끼는 [훌륭한 기사]의 원형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짧은 시집인데, 중세어로 쓰여진 이책을 이동길 교수는 10년에 걸쳐 번역해냈다고 한다. 번역자에게
은총있으라.

p.s) 사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인지라 이 주제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꽤 있었다

그 중 유명한 건 1984년에 나온 [Sword of Valiant], 거웨인과 녹색기사라는 타이틀의 영화였다.
이 영화는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공중파 방영이 되었던 영화다. 주인공 거웨인이 누군지는 예전에 까먹었지만
녹색기사의 위광이 너무 당당해서 아직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다.

[숀 코네리] 이 아저씨가 녹기사로 등장을 하셨으니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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