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1. 2009.01.05 자객과 테러리스트 6
  2. 2009.01.05 통영 4
  3. 2009.01.05 글렌 굴드라니. 5
  4. 2009.01.05 대화
  5. 2009.01.04 동거인 4
  6. 2009.01.04 절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 6
  7. 2009.01.04 자다가 4
  8. 2009.01.03 밥솥 5
  9. 2009.01.02 오늘 출근 안 하는 사람들이 꽤 있구나 10
  10. 2009.01.01 신년 첫 영화 - 수라설희(修羅雪姬) 2

개인적으로 형가라는 자객의 이름을 쓰는 네티즌으로써
독립운동가와 테러리스트의 관계를 내게 묻는다면
난 별다른 말 하고 싶지 않다.

나랏말이 배척받고 외국어가 국어가 되며
주권을 뺏기고 국적없는 군대가 되어 일생을 떠돌아도
천하의 누구 하나 도움주지 못하는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너는 무기를 들어 일체의 사(私)를 버리고 사(死)를 택할 수 있느냐?

일본 왕궁이 있는 궁전 앞  니주바시 다리에 폭탄을 던졌던 의사가 계셨다.
뉴라이트 너희들은 그 사람 이름이나 기억하냐.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칠순의 강우규 의사는 장로교 전도사 직분도 있었다.
신의 사랑을 전파할 사람이 타인에게 폭탄을 던진 심정을
개신교도인 뉴라이트 너희들은 아느냐.
 
뉴라이트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 시대에 감히 그 일 하지 못할 요량이면서
일제시절에 우리가 경제적으로 발전을 했네 따위 말이나 지껄일 거라면 
테러리스트건 뭐건 아무 이름으로도 부르지도 말라.

뉴타운으로 사기나 쳐서 의원직이나 따는 주제에

p.s) 솔직히 이게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 조차 이해안가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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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역수 나가는 날 2009. 1. 5. 11:25

나는 윤이상의 음악이 맞지 않고
청마의 시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날 풀리면 가 보련다

알지 못해도
끌리는 사람이 있듯이
땅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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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을 꼼꼼히 읽어보고 있었다.

소재가 글렌 굴드라니

더불어 조세희 시절부터 이어지는 관념적인 서사구조에 대한 경향의 집착이야
유명하긴 했지만 이번 당선작은 좀 의외였다.

글의 유려함이나 문체의 건조정갈함은 참 맘에 들었지만
글렌 굴드라.

그러고보니 나도 피아노를 친 게 나이로만 따지면 10년은 되었을 테지만
지금은 음계도 못 잡는 걸 보면 확실히 피아노는 내 악기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래서 당선작을 읽고 있을 때
뭔가 알 듯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읽는 기분이었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하나 더 사야겠다.

집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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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작은 방 한담 2009. 1. 5. 00:32

좋으냐
좋다

싫으냐
싫다

어떠냐
저렇다

이러냐
그렇다

이러자
그러자



오랫만에 타인과 나눈 대화
그래도 서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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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작은 방 한담 2009. 1. 4. 20:10
엄밀히 말하면
동거물(同居物)이다.

소라게. 3년차.
이름은 가츠
특기: 절대 죽지 않는다.

오늘은 동거물의 우리를 씻다가 저녁 나절을 보냈다.

세상에 호흡이 붙은 모든 것은
먹는 만큼 내보내는 법인데
그동안 바쁘고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는 핑계로
우리청소를 4개월정도 해 주지 않았더니
수조가 거름밭이 되어 있었다.

똥밭에서 4개월을 구르면서도
끝까지 살아남고 탈피까지 하다니 그 기백이 가상할 뿐이다.

깨끗하게 닦아 놓았으니
뭐라고 속으로 주인에게 더 이상 씨부리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연감에 보면 10~15년은 너끈히 산다던데
나랑 15년 이상 살면 구리로 된 소라껍데기라도 하나 줘야하는 건지.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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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메신저 아트레유가 남쪽의 예언가 율라라를 만나기 위해
죽음의 스핑크스를 통과하는 장면이 나온다.
통과하는 자들을 죽음의 시선으로 노려보는 두 마리의 사자.

그 길을 지나야만 신탁을 얻을 수 있다.

아트레유는 평생 스핑크스만 연구해 온
스핑크스의 달인 엥키부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

어찌하면 스핑크스의 시선을 피해 신탁을 얻을 수 있는가.

엥키부크는 말한다.

[그들은 현명한 자 선량한 자 용감한 자를 통과시키지 않고
 사악한 자 비겁한 자 어리석은자를 막지도 않는다
 의무와 고결함을 목적으로 오는 자를 통과시키지도 않고
 심심풀이로 갔던 자를 막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철두철미 우연이고 의미 없는 것이다.
누굴 통과시키고 안 통과시키고는]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이었다기보다
인생에 대해 개안(開眼)한 기분이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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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작은 방 한담 2009. 1. 4. 00:12
아직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지속적인 반복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 일어나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라고
일일이 꿈에서 지시를 받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다가
지금에야 잠깐 일어나서
머리를 정리한다.

내가 꿈에서 할 일을 얻어서
오늘 그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꿈꾸던 삶의 실현인가
실제 삶에 대한 허상인가

호접지몽이 따로 없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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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

작은 방 한담 2009. 1. 3. 01:09
대학생 시절만 하더라도
밥을 짓는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내가 당시에 자취를 했다는 이야긴 아니다.
단지, 생존기술의 습득삼아 밥 짓는 것을 모친에게 배웠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솥의 물을 조절하고 뜸을 들이는 일은
지난하고 부단한 실습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기밥솥이 등장했고
대충 물만 맞추고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밥이 만들어지는
신통한 문명의 이기에 감사하게 되었다.

아직도 자취할 때 쓰던 기계는 생생하다.
밥을 짓지만 식기가 아닌 기계로 나는 그 녀석을 대한다.
불 위에 듬직하게 앉아 있는 녀석이 아니라
전기와 버튼으로 움직이는 물건이다.
알아서 제가 다 일을 처리하는 잔망스러움이 있다.

그 덕에 나는 편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버튼 누르는 것마저 버거울 정도로 귀찮음을 
많이많이 갖게 되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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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서는 나만 한 것인가

그래도 사무실이 있는 빌딩은
늘 밤을 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누구나 노력을 하면서 살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겠지.

어쩌면 이것도 또 다른 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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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벽두를 처음 연 영화가 여인의 복수극이라니.  

70년대 일본무협극의 변조.
말 그대로 살부살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귀가 되는 여인의 이야기.

오직 남편의 복수를 위해 씨를 받고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살인 하나만을 평생의 업으로 지게 되는 꽃다운 여자.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극적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영화의 히로인을 맡은 카지 메이코의 차가운 미모와 표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금보면 상당히 유치한 화면도 있지만 
[킬 빌]에서 오마쥬를 넘어 그대로 차용한 설정들이 있을만큼
아직까지도 구태를 타지 않는 영화다.

사실,
복수극이라는 것은 유행을 타지 않는 변주곡이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소재다.
불의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 그 안에서 이득을 취하는 자
그리고 다시 날아올라 형세를 뒤바꾸려는 시도
하지만 결과는 늘 상처를 남긴다
새로운 상처로 과거의 상처를 덮는 것

그게 복수극의 이야기.
몽테크리스토부터, 스카라무슈, 대부, 그리고 수라설희.

카타르시스는 잔혹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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