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형가라는 자객의 이름을 쓰는 네티즌으로써
독립운동가와 테러리스트의 관계를 내게 묻는다면
난 별다른 말 하고 싶지 않다.
나랏말이 배척받고 외국어가 국어가 되며
주권을 뺏기고 국적없는 군대가 되어 일생을 떠돌아도
천하의 누구 하나 도움주지 못하는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너는 무기를 들어 일체의 사(私)를 버리고 사(死)를 택할 수 있느냐?
일본 왕궁이 있는 궁전 앞 니주바시 다리에 폭탄을 던졌던 의사가 계셨다.
뉴라이트 너희들은 그 사람 이름이나 기억하냐.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칠순의 강우규 의사는 장로교 전도사 직분도 있었다.
신의 사랑을 전파할 사람이 타인에게 폭탄을 던진 심정을
개신교도인 뉴라이트 너희들은 아느냐.
뉴라이트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 시대에 감히 그 일 하지 못할 요량이면서
일제시절에 우리가 경제적으로 발전을 했네 따위 말이나 지껄일 거라면
테러리스트건 뭐건 아무 이름으로도 부르지도 말라.
뉴타운으로 사기나 쳐서 의원직이나 따는 주제에
p.s) 솔직히 이게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 조차 이해안가는 현실.
'荊軻宿'에 해당되는 글 1419건
- 2009.01.05 자객과 테러리스트 6
- 2009.01.05 통영 4
- 2009.01.05 글렌 굴드라니. 5
- 2009.01.05 대화
- 2009.01.04 동거인 4
- 2009.01.04 절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 6
- 2009.01.04 자다가 4
- 2009.01.03 밥솥 5
- 2009.01.02 오늘 출근 안 하는 사람들이 꽤 있구나 10
- 2009.01.01 신년 첫 영화 - 수라설희(修羅雪姬) 2
나는 윤이상의 음악이 맞지 않고
청마의 시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날 풀리면 가 보련다
알지 못해도
끌리는 사람이 있듯이
땅도 그러하다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을 꼼꼼히 읽어보고 있었다.
소재가 글렌 굴드라니
더불어 조세희 시절부터 이어지는 관념적인 서사구조에 대한 경향의 집착이야
유명하긴 했지만 이번 당선작은 좀 의외였다.
글의 유려함이나 문체의 건조정갈함은 참 맘에 들었지만
글렌 굴드라.
그러고보니 나도 피아노를 친 게 나이로만 따지면 10년은 되었을 테지만
지금은 음계도 못 잡는 걸 보면 확실히 피아노는 내 악기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래서 당선작을 읽고 있을 때
뭔가 알 듯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읽는 기분이었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하나 더 사야겠다.
집에 없네.
좋으냐
좋다
싫으냐
싫다
어떠냐
저렇다
이러냐
그렇다
이러자
그러자
오랫만에 타인과 나눈 대화
그래도 서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동거물(同居物)이다.
소라게. 3년차.
이름은 가츠
특기: 절대 죽지 않는다.
오늘은 동거물의 우리를 씻다가 저녁 나절을 보냈다.
세상에 호흡이 붙은 모든 것은
먹는 만큼 내보내는 법인데
그동안 바쁘고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는 핑계로
우리청소를 4개월정도 해 주지 않았더니
수조가 거름밭이 되어 있었다.
똥밭에서 4개월을 구르면서도
끝까지 살아남고 탈피까지 하다니 그 기백이 가상할 뿐이다.
깨끗하게 닦아 놓았으니
뭐라고 속으로 주인에게 더 이상 씨부리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연감에 보면 10~15년은 너끈히 산다던데
나랑 15년 이상 살면 구리로 된 소라껍데기라도 하나 줘야하는 건지.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
동거물(同居物)이다.
소라게. 3년차.
이름은 가츠
특기: 절대 죽지 않는다.
오늘은 동거물의 우리를 씻다가 저녁 나절을 보냈다.
세상에 호흡이 붙은 모든 것은
먹는 만큼 내보내는 법인데
그동안 바쁘고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는 핑계로
우리청소를 4개월정도 해 주지 않았더니
수조가 거름밭이 되어 있었다.
똥밭에서 4개월을 구르면서도
끝까지 살아남고 탈피까지 하다니 그 기백이 가상할 뿐이다.
깨끗하게 닦아 놓았으니
뭐라고 속으로 주인에게 더 이상 씨부리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연감에 보면 10~15년은 너끈히 산다던데
나랑 15년 이상 살면 구리로 된 소라껍데기라도 하나 줘야하는 건지.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메신저 아트레유가 남쪽의 예언가 율라라를 만나기 위해
죽음의 스핑크스를 통과하는 장면이 나온다.
통과하는 자들을 죽음의 시선으로 노려보는 두 마리의 사자.
그 길을 지나야만 신탁을 얻을 수 있다.
아트레유는 평생 스핑크스만 연구해 온
스핑크스의 달인 엥키부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
어찌하면 스핑크스의 시선을 피해 신탁을 얻을 수 있는가.
엥키부크는 말한다.
[그들은 현명한 자 선량한 자 용감한 자를 통과시키지 않고
사악한 자 비겁한 자 어리석은자를 막지도 않는다
의무와 고결함을 목적으로 오는 자를 통과시키지도 않고
심심풀이로 갔던 자를 막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철두철미 우연이고 의미 없는 것이다.
누굴 통과시키고 안 통과시키고는]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이었다기보다
인생에 대해 개안(開眼)한 기분이었다.
메신저 아트레유가 남쪽의 예언가 율라라를 만나기 위해
죽음의 스핑크스를 통과하는 장면이 나온다.
통과하는 자들을 죽음의 시선으로 노려보는 두 마리의 사자.
그 길을 지나야만 신탁을 얻을 수 있다.
아트레유는 평생 스핑크스만 연구해 온
스핑크스의 달인 엥키부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
어찌하면 스핑크스의 시선을 피해 신탁을 얻을 수 있는가.
엥키부크는 말한다.
[그들은 현명한 자 선량한 자 용감한 자를 통과시키지 않고
사악한 자 비겁한 자 어리석은자를 막지도 않는다
의무와 고결함을 목적으로 오는 자를 통과시키지도 않고
심심풀이로 갔던 자를 막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철두철미 우연이고 의미 없는 것이다.
누굴 통과시키고 안 통과시키고는]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이었다기보다
인생에 대해 개안(開眼)한 기분이었다.
아직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지속적인 반복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 일어나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라고
일일이 꿈에서 지시를 받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다가
지금에야 잠깐 일어나서
머리를 정리한다.
내가 꿈에서 할 일을 얻어서
오늘 그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꿈꾸던 삶의 실현인가
실제 삶에 대한 허상인가
호접지몽이 따로 없다.
지속적인 반복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 일어나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라고
일일이 꿈에서 지시를 받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다가
지금에야 잠깐 일어나서
머리를 정리한다.
내가 꿈에서 할 일을 얻어서
오늘 그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꿈꾸던 삶의 실현인가
실제 삶에 대한 허상인가
호접지몽이 따로 없다.
대학생 시절만 하더라도
밥을 짓는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내가 당시에 자취를 했다는 이야긴 아니다.
단지, 생존기술의 습득삼아 밥 짓는 것을 모친에게 배웠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솥의 물을 조절하고 뜸을 들이는 일은
지난하고 부단한 실습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기밥솥이 등장했고
대충 물만 맞추고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밥이 만들어지는
신통한 문명의 이기에 감사하게 되었다.
아직도 자취할 때 쓰던 기계는 생생하다.
밥을 짓지만 식기가 아닌 기계로 나는 그 녀석을 대한다.
불 위에 듬직하게 앉아 있는 녀석이 아니라
전기와 버튼으로 움직이는 물건이다.
알아서 제가 다 일을 처리하는 잔망스러움이 있다.
그 덕에 나는 편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버튼 누르는 것마저 버거울 정도로 귀찮음을
많이많이 갖게 되었다.
밥을 짓는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내가 당시에 자취를 했다는 이야긴 아니다.
단지, 생존기술의 습득삼아 밥 짓는 것을 모친에게 배웠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솥의 물을 조절하고 뜸을 들이는 일은
지난하고 부단한 실습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기밥솥이 등장했고
대충 물만 맞추고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밥이 만들어지는
신통한 문명의 이기에 감사하게 되었다.
아직도 자취할 때 쓰던 기계는 생생하다.
밥을 짓지만 식기가 아닌 기계로 나는 그 녀석을 대한다.
불 위에 듬직하게 앉아 있는 녀석이 아니라
전기와 버튼으로 움직이는 물건이다.
알아서 제가 다 일을 처리하는 잔망스러움이 있다.
그 덕에 나는 편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버튼 누르는 것마저 버거울 정도로 귀찮음을
많이많이 갖게 되었다.
내 주위에서는 나만 한 것인가
그래도 사무실이 있는 빌딩은
늘 밤을 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누구나 노력을 하면서 살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겠지.
어쩌면 이것도 또 다른 꿈.
그래도 사무실이 있는 빌딩은
늘 밤을 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누구나 노력을 하면서 살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겠지.
어쩌면 이것도 또 다른 꿈.
2009년 벽두를 처음 연 영화가 여인의 복수극이라니.
70년대 일본무협극의 변조.
말 그대로 살부살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귀가 되는 여인의 이야기.
오직 남편의 복수를 위해 씨를 받고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살인 하나만을 평생의 업으로 지게 되는 꽃다운 여자.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극적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영화의 히로인을 맡은 카지 메이코의 차가운 미모와 표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금보면 상당히 유치한 화면도 있지만
[킬 빌]에서 오마쥬를 넘어 그대로 차용한 설정들이 있을만큼
아직까지도 구태를 타지 않는 영화다.
사실,
복수극이라는 것은 유행을 타지 않는 변주곡이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소재다.
불의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 그 안에서 이득을 취하는 자
그리고 다시 날아올라 형세를 뒤바꾸려는 시도
하지만 결과는 늘 상처를 남긴다
새로운 상처로 과거의 상처를 덮는 것
그게 복수극의 이야기.
몽테크리스토부터, 스카라무슈, 대부, 그리고 수라설희.
카타르시스는 잔혹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