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한담'에 해당되는 글 668건

  1. 2010.05.11 예지몽 4
  2. 2010.05.10 동네에서 4
  3. 2010.05.08 1세기의 삶
  4. 2010.05.03 고양이 4
  5. 2010.05.03 2010. 5. 2
  6. 2010.05.01 결혼할 때&장례식 때 2
  7. 2010.05.01 벼랑에 걸린 작은 나무가지처럼 2
  8. 2010.04.29 빈번함 4
  9. 2010.04.28 정말 가끔 오랫만에 만나는 후배
  10. 2010.04.27 4월도 이제 마지막 2

예지몽

작은 방 한담 2010. 5. 11. 11:42
어젯밤에 식탁 정리를 하다가 쓰레기통 옆에서 원두 찌꺼기를 땅바닥에 쏟아버리는 꿈을 꾸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식탁정리를 하다가 쓰레기통 옆에서 원두 찌꺼기를 쏟았다.
휴지통을 열었는데 만두봉지에 휴지통이 막혀 있더라. 가만히 일을 당하고서 생각해보니 어딘가에서 본 듯 한 일이라. 어젯밤에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라웠다.

꿈이라고 해 봤자 어젯밤의 꿈이니 아침 기상시간하고는 길어봤자 일여덟시간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일여덞시간 앞의 일을 볼 수 있는 꿈을 꾼다면 나름대로 기한도 짧고 생생한 법이다. 충분히 문제대비를 할 수 있을지언정 그렇지 못함은 그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벌어질 것이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내가 영안(靈眼)이 밝아서 스스로 꾼 꿈으로 미래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미래에 닥칠 일을 예비하고 지켜낼 수 있겠지만
개꿈과 길몽이 섞여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재지를 가진 주제에
꿈 하나로 미래를 판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예지몽을 꾼다해도 결국 내 미래는 바뀌지 않는 것이다.

점을 보고, 사주를 보고, 앞길을 예견하는 많은 사람들과 방편들과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허랑된 것일테고, 몇몇은 신통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도리가 나에게는 없고
신통한 누군가가 내게 앞일을 말해준다 해도
내가 앞 일에 대한 함의와 숨은 뜻과 예감을 알기에는 둔감한 존재라
결국 알려준 일이 닥치고 지나간 뒤에야 '아, 이게 그 말이었구먼' 하는 성향이라면

굳이 내 앞날을 알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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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작은 방 한담 2010. 5. 10. 15:17
A:" 야, 걔 요즘 뭐하냐?"
B:" 누구?"
A:" 아, 걔 있잖아. 전에 우리랑 목욕탕 같이 가고 그러던 애"
B:" 아, 나도 걔 본지 한 참 됐는데"
C:"요즘 코빼기도 안 보이네."

동네 공원 벤치에 모여서 빙빙이 운동기구 돌리던 할머니 세 분의 대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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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의 삶

작은 방 한담 2010. 5. 8. 01:19
후배의 조모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마치고 돌아왔다.
천수 백세, 1910년 생이시라니 이제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호상이라 하지만 그것은 조문에서의 결례, 죽음은 어디서나 슬프다.

돌아오면서 곰곰히 이런저런 것을 생각해 봤다. 지금의 내 나이로 따져보면 100세라는 것은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다. 살 날이 산 날보다 많다는 것은 분명 뭔가 앞으로 있을 희망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고
혹은 이 무시무시한 삶의 억겁을 끝간데 없이 더 이어갈 절망의 기다림일수도 있겠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셨을까?
처음의 시간과 마지막의 시간은 희미해져 사람의 기억에서 좋지 않다 하더라도
과연 그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변해가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인은 무엇을 느꼈을까?


(이 양반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군)

영화 [하이랜더]가 생각난다.
불사의 종족. 하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외로움.

아마 고인은 동년배의 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다른 세대의 사람들 속에서 사셨으리라.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지식을 쌓고 혹은 부를 축적하고
그리고 홀로 남겨진다. 글쎄다. 사람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믿는 감성의 생물이니
그 삶의 객관적인 성취를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지는 모를 일이다.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게 1세기의 삶을 보장해 준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낼것인가?
수많은 책들을 읽고 쓰고 보고 느끼고 난 뒤에 그 다음엔 뭘 할까?

내가 생각해 낸 것은
결국 이 모든 것을 후대에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을 것 같다.

1세기라.
그러고 보니 난 반세기도 아직 살려면 한참 남았네그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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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작은 방 한담 2010. 5. 3. 14:46

들이기로 잠정 결정.

이것저것 들어갈 게 많구나. 통장 잔고가 남아있나? -.-a









어쨌건

나도 어지간히 지쳤나보다.

딱 마음쓰는 요량은 여기까지. 더 이상은 無用.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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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

작은 방 한담 2010. 5. 3. 01:10
1.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2.
세상에 태어나서 누가 누굴 원하고 누가 누굴 원망하는지 알 도리가 있으랴
그냥 들어오는 인연대로 사는 것이 현명한 인생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3.
맺고 싶다고 맺어지는 것도 아니고 끊겠다고 끊기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 둘 뿐이다.

4.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겠다고 기쓰는 것도 결과가 좋지는 못하더라.

5.
문 밖에서 아는 것과 문 안에 들이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들이는 것이라면 내가 그것에 대해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책임을 져야겠지.

6.
정작 내 입에 들일 것조차 없는데 무언가를 더 채우려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긴 사람이 가진 것으로 사람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7.
객은 떠나가고, 객은 들어오고
결국 이리저리 휘돌고 방랑하고 허랑하며 돌아오는 과정에서
온전히 남는 인연은 기연이거나 옛날부터 날 놓지 않던 인연이더라.

8.
사는게 나이가 먹을수록 무섭구나.
가진 것이 줄어들지라도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니
따져보면
기댈 곳이 점점 없어지고 
인간은 스스로를 의지할 수 없는 걍팍한 존재임을 깨닫게 됨이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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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추억록에서 [나]란 존재를 백지처럼 여기다가

갑자기 삶에 저 두가지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면
내 이름이 찬란한 황금문자로 박혀서 추억록 가운데 떡 박히게 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나 장가간다. 오빠 나 결혼해요
이런 문자+전화가 온다.

'근데 젠장 넌 대체 누구세요?' 라고 할 수도 없고 보통 그런 문자나 전화는 좋게좋게 말하고 끊지만
기분 찜찜한 건 별 수 없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추억의 귀통이에 박힌 존재에 불과한 나를 어느 날
현실세계에서 만나려고 하는 것은 단 하나, 봉투나 받으려는 짓거리라고 밖에 확대해석할 수 없다.
(이럴 때 얼굴이나 보자...는건 거짓말임. 친하지 않은 놈들은 사진 안 찍고 밥먹으러 가고 눈도장 찍어봤자 결혼식 당일날은 삐에로 분장을 하고 가도 결혼 당사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 이런 전화 오면 그런 생각만이 든다.
"세상에 친구라는 귀한 명사를 참 걸레처럼 쓰는 것들이 있구나."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가지 않는다. 어차피 갔다오면 자기들 삶에 매몰될 놈들이니.

2.
하지만 두번째 경우는 좀 망설여진다.
결혼이야 지 좋은 맛에 했다쳐도 장례를 누가 좋아서 치루는 놈이 있을 것이며

결혼식때 룰루랄라 아 이놈은 그래도 나랑 연분이 있지 하고 심심풀이 청첩장 날리는 수준하고
장례식 때 머리속이 텅 빌때 아, 이녀석은 그래도 내 친구니까 와줄거야 하고 연락하는 것은
엄밀하게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가게 된다.
어느 순간 기억의 회로에 불이 다시 들어와서 과거에 묻어뒀던 내 이름에 조명이 들어왔다 할지라도
누군가 막막할 때 부르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일 아닌가.
최소한 친구는 아니라 지인, 면식일지언정 그 정도면 내가 잘 처신했구나 싶은 것이다.

물론,
전화 건 놈이 누군지조차 모를 경우나
내 연적이었거나 기분 나쁘게 깨진 전직 여친이라던가
가문의 원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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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다보면 뭔가 아주 소소한 것이
사람의 마지막 낙하지점까지 가는 것을 방지해주곤 한다.

어쩌면 삶에 대한 악다구니, 간절한 소망이
만경창파에 떠 있는 겨자씨만한 것에
모든 희망을 담게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진 것도 없고
옆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살게되는 것.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나 꿈을 생각하고
꿈을 한 번 더 맛보기 위해서
살고 다시 잠이 든다.

쇼섕크탈출에서
앤디가 레드에게 그랬다.

"희망은 좋은 거, 아마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 이리라고.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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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번함

작은 방 한담 2010. 4. 29. 00:10
트위터를 최근 몇 달간 쓰고 있었는데
뭔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어차피 블로그도 마찬가지지만
정제되지 않은 어휘들이 숱하게 올라가고 넘어가는 것이 인터넷의 글줄이다.

누군가가 안부를 묻고
안부에 답하고
전화해서 대화할만큼 친한 사이가 아닌 사이끼리는
그런 것에 있어서 낯간지럽지 않은 좋은 방편이긴 한데

참으로 허탄한 말을 마구 쉽게 내가 쏟아내는구나 싶더라.
더군다나 술이라도 한 잔 걸친 다음에는.

내뱉은 말들뿐 아니라 내갈겨 쓴 글도 줏어담기 힘든 것이다.
delete하나로 원본은 해결될 거라 믿는다 쳐도
이미 시신경을 타고 뇌리에 들어간 글자들은 어떻게 지울 것인가.

쓰고 다시 고쳐쓰고 고쳐써도
내 마음을 분별해서 전달하기 힘든게 상식인데
너무나도 많은 말을 쉽게 쓴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특히나 그 글에 내 불안정한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다면.

어차피 쪽글 적는 판에 너무 심각하게 보는 거 아니냐고 할 것 같긴 한데

내 마음의 끝자락 하나라도 사람에게 보이기 싶지 않은 때가 있고
그런 감정을 스스로가 쉽게 무너뜨리는 실수 중 하나가
너무 말을 많이 하거나 너무 많이 쓰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색을 바로하진 못하더라도
부끄럽지는 말아야하는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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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언저리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녀석이면서도
내가 힘들때면 가끔 불러서 술을 먹는 녀석.

불러서 정말로
코가 비뚤어질정도로 마셨다.

그 녀석도 그동안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다는 것은 풍문을 통해 둘 다 안다.

20대 젊은 청춘도 아니면서
정말 미친듯이 짧은 시간에 몇 병을 비웠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걱정된다. 내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사업이야기부터
남녀상열지사까지
나누다보니 이 놈하고 못 한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이들었다.

예전에 그렇게 친한 놈이 아니었다.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컴퓨터 맛간거 고쳐주던 녀석이었는데
둘 다 세월의 더깨가 쌓이고 흡집이 나기 시작하더니
가끔 불러서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처지가 되었다.

"형님, 다 접고 차라리 외국으로 뜨시오. 형님 알아주는 놈이고 년이고 하나 없는 것 같쇠다."

나도 취하고 놈도 취했던가
그 자리에선 그렇게 웃고 말았는데

지금 조금 취기가 풀린 상태에서 생각하니
왜 이리 서러운지.

너나 잘 됐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임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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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벙덤벙 보내는 것 같더라니 결국 며칠 남기지도 않았다.

4월 한 달 간 든 생각이라면 뭐가 있을까.

지금 당장의 것을 위해서 달려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 하나를 파다보면 나오게 될 결실을 위해서 인내해야 하는건지.

누구나 쉽게 결론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정작 내가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두 가지를 같이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건 하나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조바심 때문에 그르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염없는 끈기와 인내를 요하는 것들도 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은 [발등에 불떨어짐]이라는 좋은 핑계거리를 가지고
많은 부분 신의를 날리곤 한다.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지난 주말
첼로팬 집에서 잠깐 본 고우영 [초한지]를 보면서
참 잊고 있던 많은 성정들과
내가 깊이 묻어두었던 나름대로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재고해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역사와 좋은 책은 언제 봐도 공부가 된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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