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한담'에 해당되는 글 668건

  1. 2010.09.07 과일 4
  2. 2010.09.06 짐승, 사람 6
  3. 2010.09.04 등불을 향해 끌려가는 삶 4
  4. 2010.09.02 9월 초 어느날 밤 7
  5. 2010.09.01 2010.09.01 2
  6. 2010.08.31 잡설 2010.08.31 6
  7. 2010.08.31 노력이라는 것 3
  8. 2010.08.25 탐욕은 죄니라
  9. 2010.08.24 2010.8.23일 소사 2
  10. 2010.08.19 오랫만에 사 들고 온 책 5

과일

작은 방 한담 2010. 9. 7. 00:38
일요일 늦은 오후에 갑자기 뜬금없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심심할 때 고양이나 보겠다고 하더니 진짜로 찾아왔다.
그러던 중 빈손으로 오는게 심심했던지 뭔가 한 뭉태기를 가져왔다.
이것이 무엇이오 물었더니 사과를 받으시오 하더라
나한테 뭘 잘못한게 있소 하면서 보니 어디서 서리라도 해왔는지
사과가 한다발이라. 안 그래도 빈한한 집안에 인스턴트로 가득한 냉장고니
채소와 과일은 늘 부족한 터라 기꺼이 받았다.
여차저차하다보니 손님은 이미 사라지고 자취라고는 큼지막한 사과봉투뿐인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것은 독처하는 사람 혼자 먹을만한 양이 아니라.
그렇다고 고양이들에게 사과를 먹이는 호사스러움을 보였다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을 성 싶고, 내가 죄다 깎아먹지 않으면 즙을 내어
마셔버릴 요량인데, 그것도 영 곤란할만큼 많다.

혼자 살면서 가장 필요하고, 부족하다 여기면서도 늘 가질 수 없는 것이
채소와 과일이다. 오래 둘 수 없으니 소량을 사야하고, 소량을 사려니 번거롭다.
육류야 사 놓고 냉동고에 때려넣으면 그만이나 과일이나 채소를 
그렇게 할 수가 없지않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일이나 채소나 모두
태양과 바람을 직접 받으면서 큰 족속들이라. 바람과 햇빛을 어떻게
오랫동안 손아귀에 넣어둘수 있으리. 쉽게 상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이치에 맞으리라.

내일부터는 아침에 커피대신 사과나 갈아서 쥬스를 해 먹는 웰빙식단이 될 것 같구나
그런데 난 사과는 산성인 음식이라 위가 안 좋은 사람이 먹으면 폭풍이 몰아치기도 하는데...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내일 똥은 내일 싸면되고.

얻기 힘든 먹을게 생긴 것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냐

사과를 내려주시고 표표히 사라지신 처사님께 감사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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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사람

작은 방 한담 2010. 9. 6. 11:59
1.
첫째 고양이는 예정되지 않은 불의의 습격(?)으로 암코양이가 낳은 아이.
아무도 바라지 않던 아이. 
그리고 주인도 바쁘고, 엄마도 정이 없었는지

고양이가 해야 하는 모래에 똥싸는 법도 모르고, 그루밍도 잘 모르고
뭘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던 아이.
맨 처음에 집에 와서 개(미안하다 개들아)난장판을 벌여놓고
일주일에 다섯번은 혼났던,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성마른 주인에게
무지하게 핍박받았던 녀석.

그 놈이 벌써 우리 집에 와서 2kg가 넘도록 커졌고
이제는 나름대로 고양이가 하는 짓은 다 하고
다른 꼬마 고양이도 돌볼 줄 알게 되었다.

정많은 녀석.


2.
몸 속에 기생충이 바글바글 거려서
설사를 달고 살던 둘째.
어린 나이에 이집 저집 옮겨갔다 쫒겨나길 반복하면서
사람에게 정을 안 주던 고양이.

처음에 들어왔을 때 설사에 학을 떼고 병원에 데려갔다.
먹기 싫다는 캡슐을 먹이려고
두 손으로 아가리를 찢어지게 벌리고 손가락을 목구멍까지 처 넣어서 
약을 먹였다.

어저께 처음으로 폴짝 무릎위에 올라왔다.

여전히 날 무서워하지만
가끔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3.
조금 있으면 나이가 마흔
이루어 놓은 것은 하나도 없고
점점 줄어드는 모발을 보면서 낼름 다 빠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내

피붙이라고는 부모형제밖에 없고
혼자 사는 집에는 먹다 남은 부스러기들만 쌓여가고

맘 먹고 하는 일 중에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일은 하나도 없지만

어쩌다 들어온 두 마리 짐승들과 같이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점점 익숙해지는 인간

아마도 다른 누군가와 다들 인연이 닿았으면
다들 다른 곳에서 다른 생을 살고 있었겠지만
삶이라는 게 하나 하나 날줄과 씨줄로 얽혀있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가면 이것도 어떻게든 변하겠지만.
지금은 한 지붕 아래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산다.

그래

남들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지.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건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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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의 후광에 이끌리고, 그곳에 기대려고 하고, 그와 닮으려고 하고, 그가 속한 그룹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개인적인 욕망의 투사, 그리고 후광효과까지 같이 노리면서.

하지만 개인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일 뿐이다.
특정한 비법이나 집단에 의한 성공이 보장된다면 이미 그건 카르텔이거나 그들만의 리그가 보장된 계급사회일 뿐이다. 한 사람의 성공은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 내가 그 사람과 모든 것이 똑같고, 공부하는 방법이나 노력하는 방법이 똑같고, 하다못해 좋아하는 야동도 똑같고 밥먹는 버릇도 똑같다고 해도 내가 그 사람처럼 성공한다는 법칙은 없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므로.

보여주는 성공의 길, 성공의 방법?
그게 개인적으로 체화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길은 스스로가 찾아갈 뿐이다. 그것을 잊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해서 같은 길에 오르리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림자로 가려진 횃불 속으로 돌진하는 나방의 날갯짓하고 다를 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정신차려보면 나는 나를 잃고 오직 할줄 아는 것은 허망한 날개짓뿐일지도 모르는 것을.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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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키보드를 치고 있는 도중 창문을 타고 들려오는 규칙적인 증기소리
아련하게 들리는 열차소리같기도한 그 소음은 압력솥 소리.

아 옆집이구나.
자정이 넘은 이 시각에 왜 밥을 할까
아이들 도시락일까
아니면 이 시간에 밥을 먹는걸까

그러고 보니
1시가 넘어 
어쩌면 2시에 가까운 시간에 문을 여는 소리가 종종 들렸다.

그렇구나
누군가
저 집안의 누군가가
야근을 하는구나
그것도 규칙적으로

밥을 먹지 않고 오니
부모가, 혹은 아내가 밥을 하는 게로구나
그래서 내 옆집은 그렇게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았구나
혼자 시끄럽다 궁시렁거린 것은 
그런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로구나

어느 9월 밤
창문을 넘어 들어온 칙칙대는 증기소리
가족들이 모여서 밥 먹는 소리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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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작은 방 한담 2010. 9. 1. 21:21
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딱 네명. 나까지 합쳐 다섯.

그 중의 마지막
영원히 젊음을 구가하며 찬란하지만 구질구질한 싱글을 누릴 줄 알았던 마지막 친구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발표를 했다.

진작 말하지 그랬냐는 말에 늘 그렇듯 어눌한 목소리로 바빴다고 이야기하는 친구.

드디어 모두가 간다. 
들어갔다 빠져나온 사람도 물론 존재한다만.

그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나니 하늘에서 빗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뜨거웠던 여름이여 안녕인가.


2.
무언가 사람들은 착각하면서 그 착각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걸로 위안을 받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은 날 좋아해 라던가
이번 일은 우리회사에 떨어지는 게 확실해 라던가
내 인생은 지금부터 꽃피게 될거야 라던가

기타등등

깨지 않아야 할 착각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누가 태양을 맨 눈으로 하염없이 응시할 수 있을까?


3.
뭔가 하나 둘 잊혀지고 잃어버리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4.
마피아의 격언이 생각난다.
"믿을 수 있는 것은 피붙이 뿐."
Posted by 荊軻
,
1. 짧은 글을 쓰다보면 긴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2. 사람의 말속에 품은 뜻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3. 바닥을 본 다음에는 지하실을 보게 되는데 그 다음은 이게 몇층까지 내려가는 건지 확인해 보는 일.

4. 천하태평하게 사는 것이 타인의 미움을 사게 될 수도 있다.

5. 집에서 하루종일 자는 것이 하루종일 발품을 파는 것보다 이득이라면 당연히 자야한다.

6. 몸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망가져간다. 30이 넘은 다음부터는.

7. 희망은 바보짓이지만 절망은 병신짓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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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항로가 잔잔한 일망무제의 만경창파를 헤치고 가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못한게 우리들 인생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돛을 세우고 키질을 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배를 끌고 가려고 아둥바둥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이 노력이라는 것 아니냐.

하지만 아무리 한들 뼈가 부서져라 노력한들,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키를 붙잡고 있다가 토할지경까지 이르러도 바람이 바뀌지 않고 거칠어지는 것 또한 인생 아니랴.

이쯤 되었을 때 우리는 고뇌한다.
여기서 손 놓고 그냥 바람부는 대로 떠내려 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서서 죽더라도 키를 잡고 있어야 하나.

누군가는 손을 놓고 누구는 손을 놓지 못하고.

그렇게들 산다.
떠내려 가는 것이 어쩌면 편할지도 모르고
꽉 붙자고 사는 것이 그의 사는 목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장담하겠느냐. 바람부는대로 표랑하다 도착한 곳이 그가 꿈꾸던 곳일지도 모르고
내가 피땀바쳐 잡아끌며 도달한 목적지가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봉래 양사언은 이렇게 시를 읊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다고 양사언이 불굴의 투쟁적인 유학자였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양반은 유학자기도 했지만 선도(仙道)를 배운 사람이었다.
죽어서 신선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노자와 장자의 무위론을 알았을 게다. 세상엔 득도 없고 실도 없도다.
그런 그가 왜 저런 시를 읊었을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말을 할 정도는 벗어나야 한다는 거 아니었을까.
일단 뭐든지 토할때까지는 해 본 다음에 손을 놓던 계속 잡던 그 다음에 오는 건 자유로움이라는 거겠지.

그런데 그걸 알기 힘든거지.
언제까지 이걸 잡아야 하는 건지. 언제 놓아야 하는건지.
아직까지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라면
손을 놓기에는 요원하게 먼 것일지도 모르지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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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두마리가 집에 있다.
어쩌다 들어왔는지 다시 생각을 복기하려고 해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방 거실에 배를 깔고 둘 다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태초에 시간이 생성될 때 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다.

이런 망할놈들.

한 마리가 있을 때는 그나마 집 안에 생물 하나 있다는 셈 치고 별 신경 안 썼는데
두 마리가 되자 이 두 생물이 나에 대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들끼리 놀더라.
그리고 미묘한 경쟁관계.

누가 더 많이 먹는가
누가 더 잘 노는가
누가 더 힘이 센가

따위의 10대 고삐리들이나 할 법한 짓을 고양이 두 마리가 하고 있다.
전능하신 사람님의 입장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작시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데
지들 딴에는 굉장히 치열한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다른건 모르겠다.
그런데 식탐에 경쟁이 붙었다.
미친 놈들처럼 사료를 처먹는다. 지들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거 아니라 이거지.
내가 조금 덜 먹으면 저 놈이 더 먹는다는 얄쌍하고 기괴한 피해의식이
두 마리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모양이다.
배가 터지도록 처 먹고 처 먹고 또 처먹는다.

어제는 자고 일어났더니
화장실 바닥에 사료를 토해놨더라.

내가 고양이라도 토했을 것이다.
설사 내가 핫도그 먹기 지존 고바야시라고 해도
너희들이 처먹는 것처럼 먹다가는 식도부터 위장까지 담을 수가 없었을 거다.

탐욕이라는 건 혼자 있을 때 생기는 게 아니다.
누군가 옆에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저 자가 나의 것을 늑탈한다고 여기면 없던 욕심까지 생기고
종당에는 내가 수용하지 못할 정도의 탐욕이 나를 망치는 것일게다.
 
어제부터 그래서
그냥 사료를 푸대기로 그릇에 부어놓고 나왔다.

미친놈들처럼 먹고 또 한 번 토하더니
오늘부터는 그냥 배 깔고 사료 근처에는 가지 않더라.

둘 다 아무리 먹어도 안 줄어들자
소유에 대한 욕심도 줄어들었나보다.
역시 흔해지면 가치가 떨어지는 법인가.

아마 저 두 놈은 또 다른 경쟁할 것을 찾아내겠지.

인간같으니라고.
Posted by 荊軻
,
1.
사람의 마음에 품은 뜻이 무엇이고 재능이 무엇인지는 혈연도 모르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영글어 나오기 전까지는 보여준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가 알랴?


2.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서양의 풍조
노력한들 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는 동양사상.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과연
뭘 얼마나 해봤길래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바꿔서
노력한들 되지 않는 게 있다고 믿는 이들은
얼마나 노력을 해 봤길래 그런 결론에 이른 것일까.


3.
되지 않더라고 끝까지 노력한다가 결론인 것 같다.

그러다 뒈지면?
할 수 없다. 세상에 자취를 남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4.
요즘은 일관된 것도 없고, 지켜야 할 미덕도 없어지고
내 스스로가 좋은 편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관두자.
입 아프게 말해 무엇하리. 여기서 지껄인다 하더라도 
사실 나도 이미 그 풍조 안에 살고 거기 흠뻑 젖어있는 것이다.


5.
인내하여 딸 수 있는 열매가 있다면 인내함이 당연한 것이다.
돌사과를 사과인줄 알고 기다림은 바보의 인내일 뿐이다.
참된 열매를 발견하면 끝까지 기다려야지.

그런데
무엇이 진짜이고 참인지는 구분이 가능한가.
이렇게 혼돈이 혜안을 막아버리는 시대 앞에 그나마 갖고 있지도 않은 안목으로 갈음하려는 나는.

6.
되었다. 말이 많구나
누가 뭐라 해도 내 꿈은 질풍경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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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의란 무엇인가]
  
-  아이폰 바람처럼 불어닥친 유행인지 아니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책인지. 아직 1/4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잊고 지내던 현실의 패러독스에 대해서 다시 살펴보게 하는 책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논조가 그런데 어째 책을 다 읽고 덮을 때까지 [정의란 무엇인가] 말해주지 않을 것 같다. 하긴, 그렇게 말할 리가 없지.


2. [소포클레스 비극선]
-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소포클레스 비극들. 고등학교때 읽은 오이디푸스 3부작 외에 다른 것들이 같이 들어있어서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양장본으로 탄생했다. 세익스피어나 소포클레스나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희곡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은 소설이 주는 감동하고 전혀 다른 것을 선사한다. 뭐랄까. 영화와 소설의 중간이면서도 전혀 다른 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달까. 그나저나 소포클레스는 거의 막장드라마 수준으로 사람을 몰고가는군.

세익스피어의 리처드3세를 다시 읽어볼까..아, 이런.


3. [일반언어학 강의]

소쉬르의 언어학 강의. 이걸 내가 왜 산거지?
0.0?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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