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한담'에 해당되는 글 668건

  1. 2010.11.08 2010.11.07 잡설
  2. 2010.11.04 2010.11.4일 잡설 2
  3. 2010.11.03 이성과 소통
  4. 2010.10.31 데이트 5
  5. 2010.10.30 몸살 오한 5
  6. 2010.10.27 그리 길지 않은 시간 7
  7. 2010.10.25 Memento mori 4
  8. 2010.10.17 2010.10.17. 소사 6
  9. 2010.10.11 2010.10.10 소사 4
  10. 2010.10.08 행복하게 살다가 자살하였다.
1.
비가 온다. 올 때가 되었지.

추워지리라.
혼자 있으면서 춥지 아니한 적 있었던가
둘이 있어도 추운게 인생인데


2.
독전병에 대한 짧은 콩트를 하나 써 볼까 했는데
이미 누군가가 글을 써 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확실히 소재의 참신함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문체고, 구성능력이고, 언어의 조탁이다.


3.
벌써 11월.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결혼식이 많아진다.
해가 가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해를 넘긴다]는  말에 사람들의 심리는 다급해진다.
별다를 일 없는 시간의 연속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해가 가기 전에 여자를 찾고, 결혼을 하고, 살림을 장만하고, 애를 갖기를 원한다.

누군가가 선을 그어서
오늘부터 1년이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그저 몸으로만 깨닫던 시절에도
이런 다급함이 있었을까.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이래저래 몸이 간질거리는 것을 보니
시간에 쫓기는 모양이로세
Posted by 荊軻
,
1.
사람은 자신이 비굴함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면 무언가 대체점을 찾기 마련이다.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고, 다른이의 평가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최고겠지만
사람이라는 게 무인도에 사는 생물이 아닌데 어떻게 그러겠나.
자기계발로도 열등감이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은 호가호위를 하게 되어있다.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유행을 타는 책을 읽고
잘 나가는 사람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쉬운 말을 학자연하게 꼬아서 말한다.

그러다 아무도 없는 집에 와서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바라보면
참으로 허울만 번지르르한 껍데기 아닌가.

다름 아니라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2.
힘을 북돋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다른 별에서 왔던지
다른 지방에서 왔던지 성별이 무엇인지 얼마나 오래 알아왔는지를 불문하고.

반대도 있다.
가끔 같이 있다보면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으면서 여기 있나 싶기도 한 사람도 있는 법.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찾는게 중요한가보다.


3.
집에 사 둔 맥주를 거진 한 달이 다 되어서야 하나를 까서 
소세지랑 같이 져녁 대신 먹었는데
이젠 영 술이 맛이 없다.

벌써 술맛이 없어지는 나이인가? 그건 아닐텐데. 

하지만 아직 신에게는 뜯지 않은 맥주가 열 두병 남아있사옵니다.
아, 하나 방금 전 죽었구나.


4.
무엇을 먹을지 입을지 걱정하지 말라고 성경에 써 있건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으니 이것저것 고민을 하고 알아본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른 공부도 하고,
바쁘게 살아보지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난 입에 풀칠하는 재주는 정말 손방으로 타고난 놈인가보다.
조상들의 격언을 뒤집는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인간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5.
아침의 빨래
저녁에 입게되는
마른 겨울날

Posted by 荊軻
,

이성과 소통

작은 방 한담 2010. 11. 3. 22:17
1.
가끔 사람들은 자신의 명함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이라는 이름을 박아넣은 뒤에 남들이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일단 멱살부터 잡곤 한다.

그래놓고 분이 풀리지 않으면 자기와 같은 명함을 돌린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의 모임]을 만든 뒤 자신이 보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이 눈에 띄면
우르르 달려가 밟아놓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사람에게 존재하는 이성이라는 것이 학문적 훈련이나 토론으로 얻어지는 특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더불어서 개인의 심성고양이 없다면 인텔리깡패와 다른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2.
세상이 이성만능주의로 빠질수록
신비주의에 대한 열망도 깊어진다.


3.
한명회가 죽기 전에 성종에게 보낸 유명한 유언이
"처음에 부지런하고 나중에 게으름이 인지상정이니 나중을 삼가기를 처음처럼 하소서"라 하였다.

원리원칙을 지키자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정부에서 , 사회에서 , 교회에서

많이도 어그러지고 있다.
제발 바라기는 더 이상 무너지는 것만이라도 그치기를.

남 욕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도 그래야하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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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작은 방 한담 2010. 10. 31. 21:34
고모님이 무릎을 다치쳐서 병문안을 다녀왔다. 원래는 아버지와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조카를 돌보시겠다고 안 가신단다. 원래 우리 집안이 게으른데다, 자기 식솔이 있으면 절대로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마 나도 그랬고 앞으로 가족이 생기면 또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어쨌거나. 각설하고 아버지는 동생이 아픈데 나하고 어머니를 보냈다.

어머니를 모시고 주말에  드라이브를 했다.

"얘, 광화문쪽으로 가 보자."

"거기 막히는데 왜 그 쪽으로 가요?"

"나 그쪽 바뀐 다음에 한 번도 못 가봤어, 그리고 네 조카 태어난 담에 외출도 못해봤잖아."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손녀가 생긴 담에는 그냥 집에만 계셨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리저리 뱅뱅 돌아서 광화문 광장까지 가서 경복궁 앞에서 유턴을 하면서 천천히 시내를 돌았다.

"많이 바뀌었구나. 아이고 이렇게 변했네"

어머니는 내심 밖에 나와서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날씨도 무척이나 화창했더랬다.
병문안을 벼락처럼 끝내고 (고모 미안해요) 어머니는 점심을 드시고 싶어했다.

"어디 근처에 먹을 데 없을까?"

"엄마, 기왕 여기까지 나왔으니 삼청동이나 가요."

"그래그래, 거기나 가 보자"

뭔 바람으로 거길 가자고 했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하여간 삼청동에 스파게티를 먹으러 어머니랑 길을 나섰다.
차를 좁은 골목 주차장에 세워놓고, 선남선녀가 디카 하나씩 끼고 어슬렁 거리를 길을 모자가 터덜터덜 걸으면서
가을날의 서울시내 데이트에 나섰다. 예전에 친구들하고 왔을 때는 여기가 아니라 이쪽길로 올랐는데 뭐라고 어머니는 연신 중얼거리시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계셨다. 잘 모시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여자들만 바글거리고 사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스파게티집에 들어가서 모자가 이태리 국수를 시켜먹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속이 버글거리긴 하지만 어쨌거나 즐거웠다. 즐거워하는 어머니를 보는 게 즐거웠다.

"얘, 호떡이나 하나 사 가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길 옆의 호떡집에 들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뭔 호떡이오."

"네 아버지 호떡이나 하나 주지 뭘..."

호떡 네 개에 4천원.

"아이고 비싸네."

하지만 연신 웃으시며 좋아하시더라.
날이 참 좋더라. 파란 하늘에 점점이 흐르는 구름이 좋더라.

언제 또 어머니랑 둘이서 와 보겠는가
언제 또 해 보겠는가.
모자가 같이 골목길을 걸어다니는 일을.

그러고보니
나 어렸을 적에는
참 많이 엄마 손을 잡고 여기저기 다녔던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구나.
후회할 겨를도 없이 너무 빨리 가는구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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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오한

작은 방 한담 2010. 10. 30. 09:26
요즘은 예전과 달리
몸살감기가 오면 몸만 찌부둥한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한이 생기더군요.

맨 처음에 오한이 찾아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땀이 비질비질 흘러야 할 기온에 갑자기 사지에 소름이 돋으면서 그렇게 추울 수가 없는 거예요.

오한은 인체의 체온조절기능이 일시적으로 불능일 때 찾아온다고 하죠.

어제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신경을 하도 써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다보니 그런건지는 몰라도

오한이 난 다음에는
어김없이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관리실에서 막아 놓은 온도펌프를 한꺼번에 열어버리는 모양입니다.

그 덕에
오랫만에 10월에 오리털 이불을 꺼내서 덮고
그 아래서 끙끙대다가
땀 쏙 빼고 지금에서야 일어났네요.

그런데 점점 발생빈도수가 늘어납니다.
나이를 먹는 증거겠지요.

참 서글프네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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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통화를 해보았다.
별다를 것이 없는 목소리

맨처음엔 내 목소리를 듣고 어색해했지만
잠깐 뒤엔 그냥 그렇더라

"요즘 어떻게 지내요?"

그냥 일상적인 대화, 그리고 침묵.

2분도 안 되는 통화였을테지만
업무때문에 건 전화가 참 길게 느껴졌다.

내가 이 사람을 안 건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도 변했고, 나도 변했고.
하지만 사람이 오래되어도
가끔 보아도
변하지 않는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 있더라.

처음 보았을 때 가졌던 감정이
퇴색되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

하지만 엄연한 건 비정한 현실이고 내가 서 있는 자리고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다. 나는 낭만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고
그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업무상의 통화로 끝나는 것일게다.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안다.
알아도 족히 오래전에 알았을 것이다.

아트 가펑클은
Traveling boy에서
완벽한 사랑은 영원히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노래 했건만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무척이나 긴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오랬동안 한 사람에게 동일한 감정을 갖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주위의 사람들이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하나 정도일까.
무덤까지 가져가서 혼자 만족하며 사라질 추억같은 거
하나 정도는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뜬금없이 맥주가 땡기는 저녁.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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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mori

작은 방 한담 2010. 10. 25. 23:51
지난 주 토요일, 거진 몇년 간 찾아뵙지 못한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뵈러 천안까지 온 가족이 떠났다. 온 가족이래봤자 나랑 동생이랑 부모님이다. 그래도이렇게 가족이 모여서 차를 같이 타고 내려간 것도 오랫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딱 출발까지였다. 단풍을 보겠다는 행락객의 여파로 9시에 출발한 우리 차는 12시가 되도록 기흥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결국 천안까지 반절도 못 가고 다시 돌아와버리고 말았다. 야밤에 도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다음 주 쯤에 다시 가야한다. 

아버지는 요즘 계속 무덤을 들르고 싶어 하신다.
사람은 때가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물론 저러다가 한동안 더 장수하실지도 모르지만 속내가 급하신 게다. 가족들의 무덤을 보고 어디에 묻혀있는 지를 보고, 그리고 정리해 둘 것은 다 정리해 두고 당신도 떠나실 채비를 하려는 것이다. 그걸 맏이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차가 막힌다고 연발로 욕을 해대는 아버지를 옆에 두고도 나는 한소리도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일순간이다. 
할머니 임종을 본 것이 어제 저녁같은데, 내 나이가 불혹에 다가간다.
누구나 사람은 흙으로 지어졌고 흙으로 돌아간다. 내가 살던 자취는 몇 달 지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기억할 자는 기억하리라. 누군가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사라짐으로
우리의 후대들에게 인생의 필멸과 부질없음을 또한 깨닫게 할 것이다.

죽은자를 기억하라, 그들도 한 때는 우리처럼 청춘이었고 삶과 꿈에 모든 것을 걸고 밤을 새던 자들이었으되
지금 우리 곁에 남아있지 않으니 모든 이의 인생이 그러한 것이다. 너른 하늘은 계속 움직이되 변하지 않으나 좁은 땅에 발 붙인 이들은 영원할 것같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다가 풀잎이 마르듯 소리없이 짧게 사라진다.

다음 주에 제대로 찾아가면 나는 할머니의 산소를 기억하려나.
그 수많은 무덤들 사이에서 조모의 묘소가 어디쯤 있는지 기억이 나려나. 

아마 이번에 가지않으면 그나마 실낱처럼 남아있는 기억도 흩어지겠지
기억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기억해야 내가 기억될 것 같은 이 느낌이란. 
Posted by 荊軻
,
1.
모교가 자사고로 바뀐다는 소식을 교회 고등부 학생들에게 들었다.
지금 2학년이 마지막. 그러니까 1학년부터는 자사고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마지막 후배들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난 뺑뺑이로 내 모교에 들어간 것이지 귀족학교에 입학했던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마법사의 핏줄이 섞여서 호그와트에 간 것도 아니었다.

이십 몇 회로 우리 학교는 생명을 다 하는구나.
굿바이. 나의 고등학교여.

하긴 별반 좋은 추억은 없었구나.


2.
저녁을 혼자 밖에서 먹다가
아줌마 둘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외식을 하고 있었다. 
본의아니게 대화를 엿들었다.

"우리 애는 집중력이 없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초등학교 2학년에게 집중력을 요구하는 아줌마가 참 대단해 보였다.
소림사라도 보낼 작정인가.


3.
형 오늘 밖에 시간이 없어요 라고 문자가 매일 오는
IT종사자 후배가 있다.
한마디로 술먹자는 이야기다.

매일 12시에 끝난단다.
납기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

그래도 시간이 좀 비면
늘 전화를 한다.
같이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술 잘먹는 놈도 아니고 그냥 얼굴 보자는 이야기지.  
난들 모르겠나.

확실히
사내놈들이 어리버리해도 끝정은 확실하다.

이번 주엔 되겠지. 아마 되겠지.
그동안 나도 바빴다. 믿어 주려나?


4.
아침 저녁으로 작은 창문을 넘어오는 바람이 이젠 차갑다.
벌써 계절은 이렇게 변해가는데
수확철이 끝나가는 마당에도 아직 손에 잡힌 것이 없다.

언제쯤 거둘 수 있을까?


5.
뜬금없이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가 생각나네

이젠 소녀도 아니겠지만
세월이 하여간 미워라.
Posted by 荊軻
,

2010.10.10 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10. 11. 01:01
1.
해는 지고 길은 멀고


2.
난 가만 생각해 보면 늘 한 템포 늦게 무엇이든 시작하는 편이고 그로 인해서 얼리어답터 소리는 듣지 못하는데
내 인생의 출발선도 늘 그랬던 것 같다. 뭔가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몇 년, 혹은 몇 달이라도 먼저 그것을 잡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쉽사리 발이 나가지 않는 성격인 것을. 덕분에 시작한 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긴 하지만...아직까지 제대로 결실을 본 적이 없으니.

3.
2번에 갈음하여 생각컨데, 요즘 세상에 진중한 맛이라는 것은 병맛이라는 것과 상통하는 듯 하다.

4.
황장엽이 죽었다.
난 맨 처음 황장엽이 남한에 넘어왔을 때 북한 그대로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구먼.

그냥 그 양반은 조조 아래 순욱이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호의호식하며 마지막에 고종명했으니 인간의 복락은 다 누리고 죽은 거 아닌가.
불쌍할 일은 없다.

5.
"장남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네 살고 싶은대로 살아봐라"

토요일날 아버지가 던진 마지막 말

가슴이 시리다 못해 진짜로 아팠다.
하루종일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6.
그 다음에
괜찮은 아가씨 있으니 만나보라는 말에 벙 쪘지만

아버지는 
결혼하면 밥을 여자가 차려줄 것이라고 아직도 철석같이 믿고 계신다.

그건 이제 신화이며, 전설이고, 아틀란티스의 잃어버린 유물과 같은 것입니다
라고 해도

믿지 않으신다.
Posted by 荊軻
,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책임이나 종교적 교리문제를 떠나서.

아파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하고 부유해도 충분히 불행할 수 있는 것이고.
(부유한데 불행한 건 좀 다른 이야긴 것 같긴 하다.)

나도 가끔은 그 생각을 해 본다.
행복의 정점에 있을 때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꼭대기가 있으면 분명히 나락이 또 있을테니까.

하지만
아직 꼭대기에 올라가보지 못했으니까 산다.

행복해지고 싶다.
왜?
글쎄.
힘든 이야기다.

그냥 불행한 것보단 나은 것 같다.
스트레스도 덜 받을테고
맘 씀씀이도 좀 유해질 것 같고
사람들에게도 잘 대해줄 것 같다.

지금 그렇게 하면 되지 않냐고?

글쎄.
여유가 없는데.

어찌보면 행복이란 여유로운 것인가보다.
난 시간은 넘쳐나는데 왜 여유가 없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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