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한담'에 해당되는 글 668건

  1. 2010.12.09 아버지 다운 6
  2. 2010.12.06 배우자 & 교회 & 부모님 6
  3. 2010.12.04 관계의 상품화 2
  4. 2010.11.30 행동반경
  5. 2010.11.28 2010.11.28 소사
  6. 2010.11.26 차를 팔았습니다. 6
  7. 2010.11.22 2010.11.22 소사 2
  8. 2010.11.22 메탈기어 시리즈. 게임 이상의 함의. 5
  9. 2010.11.15 단 한 권, 단 한 번 4
  10. 2010.11.11 2010.11.11

아버지 다운

작은 방 한담 2010. 12. 9. 00:52
마실 물이 다 떨어졌다. 코스트코를 들리려고 했는데
자동차가 없지 무언가. 부모님댁까지 가서 차를 빌려서 물만 사러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무슨 물을 사러 양재동까지 가냐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많이 사는게 이익이라 그렇다고 하시니
아버지가 따라오셨다. 아니 왜...

기왕 간 김에 이것저것 구경이나 하고 사오자 싶으셨는지 내가 뭘 구매하는지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려고 오셨는지 하여간 쇼핑을 부자가 같이 하게 되었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어릴적에 동네 시장골목을 왔다갔다 한 기억은 있지만 아버지하고 쇼핑을 가 본 적은 난생 처음이다. 그것도 머리털 한참 나다 못해 빠질만한 나이에.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옷 판매대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신다.

"왜 그러세요?"

"아니...네 조카 그놈 아침에 데리고 왔다갔다 할 때 추워서 말이지...싼 거 있나 보려고."

여기저기 들었다 놓았다. 입었다 벗었다 하시는데.
가격표를 연신 보면서 흘낏흘낏 남들을 쳐다본다. 미국놈들 사이즈하고 동양사이드가 섞여 있어서 천차만별이고, 싸게 나온 것들 치고는 추위를 막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것저것 고르시는 걸 보니 뭔가 필요하신 모양이다. 한참을 그러시다. 이것저것 보더니 가격표를 보시고 다시 얼굴이 딱딱해진다.

"그냥 가자."

싸다면 어느 곳보다 싼 판매점이다. 하지만 가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혹하기는 한테 투덜투덜 대면서도 정작 손으로는 집지를 못하시는 게다. 아들네미 입장에서는 익히 봐 온 광경이다. 넥타이 하나라도 공짜로 얻어와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 이런데서 옷을 사실리가 있나. 양복도 구로공단 공장에서 떼어다 사다 입으시는 양반인데.

그렇게 옷 매장을 떠나서 식료품을 사러 가려는 도중. 마지막 매대에서 덕다운을 하나 보고 호기심이 동하셨는지 살짝 만져보신다. 등산객 사이에서는 꽤 잘 알려진 브랜드다. 가볍고, 따듯한 산행용 다운. 내가 가격표를 슬쩍 본다.
헉, 아까 것보다 0이 하나 더 붙어있다. 슬쩍 아버지 얼굴을 보니 아버지도 가격표가 영 마음에 안 드셨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계셨건만, 여전히 슬쩍슬쩍 옷 하나를 들춰보고 계신다.

"한 번 입어보세요."

한번 걸쳐보시더니 생각보다 가벼워서 좋으신 모양이다. 

"그냥 그거 사죠. 몇 벌 안 남았는데."

"비싸지 않냐?"

"백화점에서는 더 비싸요. 나름대로 알려진 브랜든데."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시고 주섬주섬 다운을 접어서 카트에 실으신다. 아까 옷들보다 확연히 비싸다. 십만원을 넘었다. 당신도 종내 그것이 맘에 안 드시는 모양이다. 행여 맘이 바뀔세라. 난 카트를 몰고 식료품점으로 부리나케 달렸고, 아버지도 천천히 나를 따라 식료품점으로 내려간다.

갑자기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내가 살다가 이렇게 비싼 옷을 사 보네."

20만원도 안 되는 다운.
갑자기 코 끝이 알싸해지는데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돈이 없는 양반도 아니면서. 슬쩍 쳐다보는데 아버지는 다운에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 어지간히 맘에 드시는 모양이다. 부전자전, 나도 옷에 돈 쓰지 않는다만 아버지만 하랴. 나이가 들면 따듯한거 입는게 낫다고 어리버리 대충 아버지가 듣는지 내 혼잣말인지 중얼거리면서 난 카트를 끈다. 아q버지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다시 물을 어디서 파는지 찾으러 돌아다니신다. 없으면 안 쓰면 되는거다. 내가 저 말을 몇번이나 들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가. 그래, 없으면 안 쓰면 되는거지. 단단한 땅에 물이 괴는거지. 못 벌어도 쓰지 않으면 되고, 쓰지 않으면 모이는거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당신을 위해 쓰시면 안 되려나. 자식의 부족함이 참 이렇게 한심스럽게 다가올 수가 있는가. 그래도 아버지는 종내 별 말은 안 한다. 그냥 비싸고 좋은 옷을 하나 구입하신게다.

생애 처음으로 아들이랑 같이 간 쇼핑에서 가장 비싼 옷을.

아버지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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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밥먹다가 갑자기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은 무슨,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나이를 먹으면 부모님 비위를 맞춰주는 것 또한 자식의 의무.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결국 종교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무리 널널하게 산다고 쳐도 우리 집안은 100년 가업 3대가 기독교를 믿고 있고 내 조카까지 합하면 4대째 명실공히 한 세기를 기독교를 집안의 가풍으로 삼고 살아온 가문이다. 나도 아무리 날라리로 산다쳐도 교인인 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 결국 종교이야기와 결혼할 여자의 종교 이야기가 나왔다.
(참 웃기는 이야기다. 사람도 없는데)

나 : 난 교회 다니는 여자랑 결혼 안 할랍니다.
어머니: 왜
나 : 별로 정이 안 가요. 
어머니: 그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낫지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툭 던진 한마디

아버지: 사실 교회 다니는 애들이 깍쟁이긴 하지.
나: ?
아버지: 솔직히 나부터가 깍쟁인데 교회다니는 것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냐. 너희엄마가 특이한 거야. 
           그냥 너 좋은 사람하고 해라
어머니: 그래두 그게 아닌데... (' ')

어머니는 못내 아쉬운 척. 하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아내칭찬이니 슬쩍 넘어가셨다.

교회 다니는 사람하고 결혼하라는 것도 고집이고, 꼭 안 다니는 사람하고 하겠다는 것도 고집이다. 그걸 모를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그냥 사람들이 모여 앉아 허탄한 희망을 나누는 것이겠지. 나야 불교도가 오던 천주교도가 오던 무슬림이 오던 상관은 안 하겠지만 설사 기독교인이랑 연분이 맞는다고 해도 별 말은 안 해야겠다. 그게 주님의 뜻이겠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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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페이스북, 기타 여러가지 소셜 네트워크 프로그램들을 쓰다보면 개인적으로 열이 확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의견인양 제시하면서 다른쪽으로 링크를 걸어놓고 사적, 집단적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들이다. 뭔가 지금 아니면 다시 못 올 찬스처럼 말해놓고 가 보면 경품이건, 여론조사건, 아니면 조회수 늘리려는 조작이건 그런 식의 이익모델을 만들어 놓는 것 말이다.

수익모델이나 이익창출이라는 말이 케이크 위의 시럽처럼 느껴지는 것이 현 세대의 감성이다. 아무리 돈을 배격해도 돈이 좋은 것은 새삼 말할 가치조차 없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이용한다는 것 역시 현 세태를 통과하는 코드라고 생각된다. 상도고 도의고 그런 케케묵은 구절은 무덤속에서나 외워댈지어다. 이거 아닌가.

어차피 전기선을 타고 0과1의 변화로 만들어진 인터넷의 친분과 교류라는 것은 끈끈한 것은 되지 않는다. 전류처럼 빠르고 이합집산이 유동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깃털처럼 가볍고 병균처럼 불어나는]만남일 뿐이다. 노력만 하면 한 번에 수천명을 만날 수 있지만 당신이 죽어 넘어지더라도 관계는 없어지지 않는다. 혹은 당신이 잘못한 거 없더라도 어느날 모든 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받거나 강제탈퇴당할 수도 있다. 이것이 소셜네트워크다. 말 그대로 가볍고 쌍방의 관심이 뭉쳐져 만들어진 문화이다. 이런 곳이니 이익모델을 그런데 끼워 넣는다고 누가 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익모델, 이익창출, 가벼운 관계, 관심 네트워킹. 뭐 잘못된 게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이 싫다. 아직까지도 나는 내가 땅바닥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들과의 연장되는 만남이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킹이라고 생각한다. 연락이 끊긴 옛 지인들과의 만남을 편하게 해 주는 도구라는데 더 중점을 두지 새로운 인맥형성이나 관심그룹결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인터넷으로 만나 아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그런지 뜬금없이 밀려들어오는 광고가 스폰서의 리트윗이나 게시글로 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프라이버시를 늑탈당하는 기분이다.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프라이버시는 절단난 것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것이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고풍스럽게 살고 싶다. 사람이 살아생전에 몇 명이나 제대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짧은 삶을 되도않는 네트워킹에 밀어넣고 [개나소나 내친구]의 항연에 내 이름을 넣고 싶지도 않거니와, 그 네트워킹의 자료가 되는 파일의 하나로 [친구]라는 캐비넷에 하나의 서류철로 자리하고 싶지도 않다. 지인이 아니라 면식으로 삼기도 힘든 사람들이 그 안에 분명 존재한다. 친구란 그런 것이 아닐게다. 사람이 그러할 진대 광고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아직까지도 내게 [관계]라는 말은 참으로 무거운 울림이 있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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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반경

작은 방 한담 2010. 11. 30. 01:30
차가 없어지니 사람의 움직이는 동선이 급격이 축소되어버렸다.

원래 차 있는 인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예전 대학 다닐때, 첫 직장 다닐때는 여기저기 지하철 버스 택시 도보 할 것 없이 시간만 되면 알아서 찾아가서 만날 사람들을 만나던 것이 일과였고 재미였는데 나이 좀 먹고 운전하는 것에 맛들인 다음에는 그저 한없이 게을러진 것이다. 어지간한 일은 이제 나가지 않고 집에서 해결하려고 하니 겨울에 베짱이 짓 아닌가.

쉽게 쉽게 만나고 움직이고 일처리 하는 세태에 몸이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운신하는 것만 그럴까. 사람 만나는 것. 깨닫는 것. 보고 듣는 것 모든 것에
내 육신의 편안함이 먼저 우선되어버릇 하는 삶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불편하고 안 좋다고 하면  허겁지겁 달려가서 그 사람의 안위를 보곤 했는데 요즘은 모든게 심드렁한 것 같고. 전화로 대충 때우거나 인터넷망으로 때울 수 있으면 가급적 그렇게 살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부지런해야지 부지런해야지 말로만 떠들고
결국은 그냥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아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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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8 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11. 28. 23:59
1.
삭풍이 뼈까지 사무치는데
나라는 누란지위에 몰려있고
정치인들은 제대로 일하는 이가 없으며
군기는 땅에 떨어져 있다.

구한말이라니.

2.
영화[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케이블로 보았다.
욕심이 과하니 아무것도 들어있지 못하구나.
원작을 바꾸려면 야멸차게 바꿨어야지.
아예 여자캐릭은 도중에 없애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차승원

감독의 의도는 좋았고 조금이나마 들어오긴 했지만
너무나도 쉽게쉽게 장면이 전환되어
스스로가 가진 정체성을 갉아먹는 캐릭이 되어버리다니.

햄릿이 리차드3세가 되어버린 경우랄까.

그나저나 예나 지금이나
같지 못하는 이상향을 꿈꾸는 것은
조선백성이나 대한민국 국민이나 똑같구나
그리고 그 안에 자신들만의 욕심이 감추어진 것 또한 다르지 않구나

누구 핏줄인데


3.
겨울이로구나
새삼 입을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구나
옷이라고 있는 것은 군고구마장수 파카뿐인데.

어찌어찌 가다보면 어느날엔가 다시 벗어던질 날이 있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올해 봄에 낳은 고양이들은 겨울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너희들은 겨울이 무언지 아느냐.
오늘 하늘에서 내리던 하얀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걸 하루이틀 보다보면
일년 이년 보다보면
어느새 저 멀리 있던 시간이 코 앞에 턱 하니 다가오는 것을 아느냐

알게 되겠지
좀 늦게.


4.
어저께
오랫만에 결혼한 옛 교회후배와 이야기를 하였는데
참으로 나도 많이 바뀌고 일그러졌음을 느끼는구나.

더불어서
사람의 인연없음보다는
사람의 정 없음이 더 부질없고 환멸스럽다는 것도 깨닫는구나.


5.
사람이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노력함이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근원적인 의문.
왜라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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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회에 나와서 제 손으로 돈을 벌고
처음으로 차를 산 것이 2001년이었습니다.
아담하게 몰고 다닐 수 있는 차 하나 있었으면 했습니다.

처음으로 내 차가 생겼을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참 빨랐습니다. 밟는대로 나갔습니다. 차가 있으면 생활이 편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차였습니다. 자동차는 뽑기운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 중에서도 괜찮은 놈이었던 모양입니다. 한번도 주인 속을 썩인적이 없습니다. 펑크 한 번 나서 약속시간에 늦은 것 말고는 한번도 속썩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잘못은 제가 더 많이 저질렀습니다. 일천한 운전실력으로 하얀 자체에 여기저기 기스를 내 놓은 것은 다 제 잘못입니다. 어떤 놈이 와서 문대고 간 적도 있고, 제가 아니라 저랑 같이 있던 이가 옆판을 다 긁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만 자동차 스스로는 참으로 우직하게 저를 위해서 굴러갔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올해로 9년째. 내년이면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태우면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에어콘을 켜면 소리만 요란할 뿐 앞으로 빨리 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동안 세월의 풍파를 겪었고, 자동차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둘 다 맨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의 날카로움과 속력은 사라지고 허덕허덕 길거리를 가기 급급해진 연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자동차는 다릅니다. 사람은 자신이 늙는 것을 감내하지만 자신이 타는 자동차가 늙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오늘
9년을 탄 차를 팔았습니다.

흰 색 차라 외국으로 수출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중고로 다시 넘겨질 것입니다.
자동차 도매인이 그리 많이 뛰지 않았으니 값을 좀 쳐주겠다고 했습니다. 많이 혹사당하면 값이 떨어지는 것이 자동차입니다. 아버지는 더 타고 될 것을 파는 것 아니냐고 군소리를 하셨지만 저는 속으로 조금 탔던 것에 대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더 받아서가 아니라 자동차를 그나마 덜 고생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9년입니다.
부모와 피붙이를 제외하고는
저하고 가장 길게 생활을 해 온 녀석입니다.
매매과정은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서류가 옮겨다니고 인감이 옮겨다니느라 제대로 작별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넷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녀석을 타인의 손에 맡기고 집으로 왔습니다. 한참을 이래저래 있다가 불현듯 주차장을 내려다 보았는데 그 녀석이 없습니다. 왜 팔았을까. 너무너무 후회가 됩니다.

저절로 눈물이 흐릅니다. 
참 정직하고 충성스런 녀석이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 안에 타면 목적지까지 간다는 신뢰가 있는 녀석이었는데.
팔지 말 것을 그랬나 싶어서 눈물이 납니다. 내 과거사가 한 쪽 찢겨서 날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오늘부로 저는 그녀석에 대한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며칠 뒤에 제 자동차는 다른 주인을 만나서 도로를 움직이고 있겠지요. 만화 [오 나의 여신님]을 보면 여주인공이 '모든 기계에는 요정이 붙어있다'고 말합니다. 만화일지라도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램들이 몇 개 있습니다. 아마 제 차의 요정은 성실하고 얌전하고 충직한 녀석이었을 겁니다. 부디 좋은 주인을 만나서 마지막으로 도로를 달리게 될 그 날 까지 몸 성히 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말 고마왔습니다.
다시 만날 일은 드물겠지만
다시 만나면 오늘 못다한 인사를 하겠습니다.

정말 정말 좋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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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2 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11. 22. 23:59
1.
나이를 먹고 뭔가 유난스런 짓을 시작한 것 같긴 한데 끝까지 잘 이어졌으면 싶다. 원래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잊어먹는 일을 종종 하면서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느껴보고 싶은가 보다. 그러면서 가끔 의외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는 게 인생이니까. 40대에 챔피언이 된 조지포먼 같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하긴, 조지 포먼은 챔피언이 되고도 남을 사람이긴 했지만.


2.
오랫만에 쫄아든 지갑형편을 무릅쓰고 책을 우수수 사 모았다.
대부분의 세익스피어의 희곡. 전예원 버전으로 모으다보니 지갑에서 비명을 지른다. 왜 개정판이 될수록 책 값은 비싸지는가? 죽어서 썩어문드러진 지 오래인 세익스피어가 첨삭을 했을리도 없는 고전이 말이다.

- 코리올라누스 : 풀르타크 영웅전이 출처인 비극영웅. 이건 영화화되기도 하는 중이라는군.
- 베로나의 두 신사 : 글쎄, 읽어보지 않았는데 대충 본 서평으로는 우정에 대한 희가극일 것 같다.
- 베니스의 상인: 예전 세로쓰기 버전의 오래된 글 말고, 고어체에서 벗어나지 않는 현대적인 번역을 원하는데. 괜찮
                       을지 잘 모르겠음.
- 리처드3세 : 결국은 다시 샀다. 빌려준 책이 내 손으로 돌아오려면 요원할 것 같은데 너무 읽고 싶단 말이지.

그리고 하나 더

에드몽 로스탕 : 시라노 드  베르주락.

3.

[시라노 드 베르주락]을 맨 처음 접한 건 아마 MBC 주말의 영화였을 것이다. 
제라르 드 빠르듀와 벵상 페레가 주연한 영화, 벌써 20년이 지난 영화다. 이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은 모두 이제 그 때의 청춘은 남지 않았고, 록산느 역의 안느 브로쉐는 예전의 청초함을 찾을 수 없어졌다. 하지만 그 때의 영상은 아직도 기억난다. 마지막까지 의기를 잃지 않던 시라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련했던가.

이제서야 원작을 사서 단숨에 읽었다. 
19세기 로망스가 아직도 21세기에 천연스럽게 다가온다.
아직까지도 가슴 한 켠에 고통스럽게 텍스트가 다가오는 것을 보니
내 청춘은 시들어도 사랑에 대한 정념은 아직 스러지지 않은 모양이로다.

누군들 그런 경험 없으랴

온 힘을 다해 밝은 빛을 향해 날아오르지만
그것은 닿을 수 없는 달빛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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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전에서 업어온 메탈기어4. Guns of Patriot를 며칠 전에 끝냈다. 사실 밀린 일이 있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잡으면서 하지는 못했지만 엄청나게 집중해서 한 듯 하다. 전작 [스네이크 이터]와 [sons of liberty]를 거진 일주일간 붙잡고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꽤나 열심히 단기간동안 깬 것이다. 물론 4편의 집중력이나 구성이 전작들만 못할 수도 있고, 코지마 히데오가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게임성보다는 내러티브에 중점을 두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메탈기어 시리즈1편을 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 40대를 넘겼거나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여야 한다.
MSX를 기반으로 나온 잠입액션. 그 첫 시작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 팩키지를 기억하는 당신은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섰을것이다)

총을 쏘지 않는 액션게임. 이 게임이 들키지 않게 숨어들어가는 [잡입액션 장르]의 시초이자 20년은 이어질 장대한 서사시가 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코지마 히데오가 그런 기획안을 가지고 만들었는지조차 의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 게임의 성공과 함께 뒤이어 20년간 등장한 [메탈기어2] [메탈기어 솔리드] [선즈오브 리버티] [스네이크 이터] [선즈 오브 패트리어트]로 이어지는 [메탈기어 사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패러렐 월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초기 메탈기어의 게임 스토리는 단순했다.
핵탄두를 세계 아무곳으로나 이동해서 쏠 수 있는 2족보행 전차. 말 그대로 비대칭무기 중에서도 발군인 특급무기[메탈기어]를 막기 위해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가 파견되고, 그를 막는 끝내주는 능력의 적들을 해치우고 기지에 잡입해 메탈기어를 파괴하면 되는 것이다. 메탈기어1,2편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엔딩을 맞는다.

(아~ 정겨운 도트)

그런데 스토리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만들어진 콘솔용 타이틀 [메탈기어 솔리드]부터 스토리의 궤가 달라진다. 아에 그래픽도 환골탈태했지만, 게임의 배경자체가 엄청나게 선이 굵어져 버린 것이다. 

메탈기어의 개발 뒤쪽으로는 세계의 군수시장과 전쟁경제를 통제하려는 미국과 그 미국의 상층부를 쥐고 있는 집단의  발톱이 숨어있고, 메탈기어를 탈취한 세력은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정보와 나노머신으로 통제하려는 (무형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는 자유의지의 용병들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는 체제유지를 위해 길러진 사냥개. 그리고 그 자신은 자기가 싸우는 라이벌들과는 태어날때부터 애증의 관계로 묶여진 숙명이 걸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무슨 운명의 희비쌍곡선인가.

(최강의 병사 솔리드 스네이크, 인물 설정은 영화 '뉴욕탈출'의 주인공이었던 커트러셀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영화에서 커트 러셀의 이름은 [스네이크 플린스킨]/ 플린스킨이라는 이름은 (선즈오브리버티)에서 솔리드 스네이크가 가명으로도 사용한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전쟁기계, 살육기계로 태어난 용병들의 자유의지와 그들과 사상을 같이 하지만 그들을 막아서야 하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장대한 이야기는 근 20년간을 끌어온다. 각각의 에피소드들 자체가 힘이 있고, 코지마 히데오의 연출력은 가히 장인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기 흥에 못 이겨 가끔 신파+일본 무사도에 빠지는 기나긴 동영상(이 게임들은 대대로 동영상과 플레이의 비율이 거의 맞먹고, 엄청나게 긴 엔딩을 자랑한다)들을 보면 좀 얼이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적재적소에 배치한 블랙코미디도 꽤나 플레이어를 즐겁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선즈오브리버티를 오밤중에 혼자 하다가 갑자기 게임에서 "당장 게임을 중지하고 전원을 꺼! 실제상황이다" 라는 메시지가 떠서 엄청나게 당황했던 적이 있다.

결국 20년 뒤, 프리퀄(스네이크 이터)이후 만들어진 최후작 (선즈 오브 패트리어트)로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는 그 끝을 맺는다. 설정상 끝을 내는 게 맞다. 그동안의 기나긴 전투와 싸움 끝에 미국으로 대표되는 군산복합체와의 힘겨운 싸움을 끝내는 라이벌과 그 라이벌을 없애야 하는 스네이크의 대결은 뭔지 뻔하지만 그 자체로도 가슴 한 군데가 아리다. 마지막에 백발이 성성해진 스네이크와 스네이크의 숙적 리퀴드 스네이크의 육탄대결은 70년대 다찌마리 영화를 연상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영화문법상 어울리는 것이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나노머신의 부작용으로 노화가 진행되는 마지막편의 솔리드 스네이크)

(최후까지 솔리드의 적으로 남는 리볼버 오셀롯. 인물 설정은 [석양의무법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맞수였던 명배우 리 반 클리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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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게임 시리즈를 통해 가장 놀랐던 것은
게임의 백그라운드를 이렇게 설정할 수 있는 일본의 자유로움이었다.
사실, 이 게임 전반에 흐르는 것은 반전주의와 탈전체주의. 궁극적으로는 아나키즘에 가깝다.
60년대생인 코지마가 전공투였을리는 만무하지만 그 사상의 맥은 일본의 전공투세대와 닿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개인을 구속할 수 밖에 없는 국가체제에 대한 저항과 그 방법으로써 찾아내는 폭력으로의 인간회귀라는 것을 게임에서 구현해서 20년을 끌어왔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좌빨]내지 [Programmer from 'The' North]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나라를 배신한 반역자라는 흔한 코드와 그것에서 한술 더 떠 체제를 파괴하는 세력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나노머신을 통한 인간의 구속, 정보통제로 인한 경제독점과 그 수단으로써의 전쟁. 전쟁을 통한 체제유지. 
약간의 SF를 양념으로 칠해놓았지만 어떤 부분은 쓰디 쓴 현실이다. 이미 소년병은 아프리카에선 흔한 병제중 하나이며, 블랙워터(black water)로 대표되는 미국의 용병회사들은 돈을 받고 무력을 정당하게 팔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이 사용되고 있음은 이미 이라크전으로 세계 만방이 깨달은 바 있고, 수많은 전쟁들 역시 구성원 개개인의 명분이 아닌 실체없는 체제유지를 위한 도구이며, 프로파간다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게임타이틀로 구현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 내 오버일수도 있겠지만 게임 하나가 검열당하는 뉴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루리웹의 누군가가 이렇게 글을 올렸다. [메탈기어 시리즈]는 왜 허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지 못하는가? 간단하다. 미국에서 어떤 놈이 만들겠냐고. 이런 내용을.

나는 이 시리즈를 플스2용 선즈 오브 리버티부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시작한 게임을 좀 늦은 2010년에 끝냈으니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서야 엔딩을 본 것이다. (2008년에 건즈오브패트리어트가 플3용으로 나왔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뭔가 유치해보이기도 하는 신파를 동영상에서 확인하고 쓴웃음을 짓곤 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내용이 아직까지도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됨에 쓴 입맛을 다신다. 정말로 자유의 아들들이 세상을 재정립하는 날이 올까. 단지 그것은 코지마 히데오가 만들어낸 한없이 가벼운 인류의 보편적 희망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삐딱한 내가 평범한 타이틀을 보고 흥분해서 지껄이는 과대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전 시리즈에서 제일 좋아했던 히로인 에바 사진으로 두서없는 마무리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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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미첼은 세상에 단 한 권의 책을 내고 남편하고 길을 가다가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어 죽었다.
에밀리 블론테 역시 단  한 권의 책을 내고 병에 걸려 죽었다.
기형도는 시집을 내려다가 내지도 못하고 극장에 앉아서 죽었다.
이중환은 평생 귀양살이를 전전하다가 논문 하나를 남기고 죽었고
헤로도토스는 평생 전쟁사 하나만 파다가 죽었다.


마가렛 여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하나를 평생의 업적으로 남겼고
[폭풍의 언덕]으로 에밀리 블론테는 아직도 기억되고
기형도의 유고시집은 그 자체로 이미 시인들의 표상이 되어 있으며
[택리지]는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대표하고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수많은 서양역사물의 시작점에 올라있지 않은가.

평생에 단 한 권이라도 사람들에게 남겨질 수 있는 것을 남길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거운 노릇이 아닐까.

파랑새를 쓴 마테를링크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고 평생 단 한 번만 쓸수 있는 책이다.

너무나도 지리멸렬하고 중언부언하면서 내 책을 써 온 것이 아니었을까.
허탄하고 심란하고 의미없는 대사와 묘사로 지금까지 반절 이상을 채워온 것이 아니었을까.

단 한 권으로 끝날 것이라면 무언가 남겨야 할텐데.
남기지는 못할더라도
최소한 다른 이들에게 베개는 고사하고 불쏘시개라도 되지 않아야 할텐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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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1

작은 방 한담 2010. 11. 11. 22:34
신께서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가치의 시간을 허락했을텐데

내게 남겨진 것은 점점 짧아진다는 걸 느끼고 있다.


죽는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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