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한담'에 해당되는 글 668건

  1. 2010.08.16 2010.08.15 소사 9
  2. 2010.08.15 호두과자의 추억 8
  3. 2010.08.14 뜬금없는 숙주나물에 대한 생각 5
  4. 2010.08.12 아열대의 밤 6
  5. 2010.08.10 근조. 궁극의 힘 님
  6. 2010.08.08 2010.8.8소사 2
  7. 2010.08.05 2010.8.4 소사 4
  8. 2010.07.31 그 때는 그랬더라고 2
  9. 2010.07.25 2010.7.25 소사 7
  10. 2010.07.23 사람이나 축생이나 4
1. 
광복절이다.
과연 우리민족은 5000년의 역사를 이어갈 만한 저력이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이상하리만치 비관론으로 점철되는 듯한 시절이라 가슴이 먹먹하다.


2.
고양이와 고양이
그리고 사람 한 마리


3.
뭔가 하나를 끝냈는데 끝낸 기분이 들지 않는구나
이건은 미진하다는 이야기인데
미진하지 않을 때까지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다.


4.
하루하루는 부질없고 의미없이 흐르는데
세월은 가지 않고
생체시계는 쏜살같이 흘러간다.


5.
그나마 사람들을 만나니 다행이다만
나는 사람들을 1주일에 한 번만 만난다.
그것도 정해진 사람들 외에는 보지도 않는다.
이러고 산다는 게 어찌보면 대단하긴 한데

꼭 심산유곡에 들어가야만 세상하고 인연이 끊기는 게 아니더라.


6.
읽는 것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면
쓰는 것에 대한 흥미도 반감되는 법.

지친건가?
Posted by 荊軻
,
사람이 어떤 음식의 맛을 보고 좋아하는 건 여러가지 경우가 있다.
궁합이 잘 맞아서던가 좋은 에피소드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는 경우. 그렇지 않으면 어려서부터 먹어왔다던가 하는 나름대로의 추억이 있는 것이다. 그걸 감안해 보면 음식은 미각만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허영만선생의 만화 [식객]에 나온 것만한 감동의 과장은 없어도 맛에 대한 호불호가 생기는 과정에 추억이 들어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식객]은 과장이라고 볼 수만도 없겠다.

난 원래 호두과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라는 것이 보통
일가친척들이 차타고 올라오다가 천안삼거리 휴게소나 동네 제과점에서 사오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사실, 어린 시절에 다 그렇게 호두과자 먹지 않았나? 난 팥앙금이 든 호두과자를 싫어했다. 팥은 팥빙수나 팥빵에 들어있는거지 호두처럼 생긴 주제에 속에 팥이 들어있다니 뭔가 이율배반스러운 과자라고 어렸을적에 느낀 모양이다.그리고 호두과자에 호두가 들어있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어린 맘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니 이게 뭔 놈의 천안명물이야. 나한테 틀만 주고 팥만 줘도 다 찍어내겠구만'

그러다가 나이를 먹을대로 먹고
어느 날 천안역에 들렀다가
천안역 앞에 원조 호도과자라는 커다란 세군데 집을 보게 되었다. 학화, 태극당,그리고 한군데는 까먹었음...
직접 마실 나왔는데 한 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갔는데...

아,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건 다 짝퉁 사기였던것이다.
백앙금에 큼지막한 호두알이 박혀있는 호두과자...
ㅠ.ㅠ 젠장 이런 맛이었구나 흐어어어엉 내 유년시절을 돌려다오

정말 맛있었다.
적앙금과는 달리 백앙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인간인지라
그 자리에서 서른개 넘는 호두과자를 다 까먹고
화장실 문고리를 붙잡고 구슬프게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 다음부터 호두과자를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달까.

사람들이 [원조]라는 말을 믿고 음식을 대하다가 
보통 예상에 못미쳐 씁쓸해하면서 기대를 접는 게 일반적인데
호두과자는 그나마 원조가 정말 맛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음식이었다.
(내가 검은 팥앙금을 싫어하기 때문인가. 그래서 통영 오미사 꿀빵을 좋아하는 걸까?)
Posted by 荊軻
,
숙주나물.
녹두나물의 다른 말이다.
반찬이지.
그리고 잘 쉰다.

그래서 숙주나물이다.
세종대왕에게 온갖 총애를 다 받은 뒤에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세조를 도와 공신이 반열에 든 사내.
지 딴에는 구국의 일념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후일 동료 사육신들이 모두 도륙난 반면 잘 먹고 잘 싸다 죽은 사나이.
그리고 당대의 천재. 그래서 금방 변질되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불렀다 한다.

한편 또 다른 이설도 있으니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보면
만두속을 만들때 숙주나물을 넣는데, 그냥 넣는것이 아니라 짓이겨서 쪄버린다.
사람들이 당시에 말하길
신숙주를 이 나물같이 짓이겨서 쪄버리자 라고 말하여
그것이 숙주나물의 어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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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누군가가 이야기한 포스팅이 있었다

사육신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조의 충성을 맹세하고 죽어갔다는 것은
당시의 기준으로는 충신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기준으로는 맹종에 불과하다고 썼다.

그걸 보면서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몇 백년이 흐른 뒤에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80년대의 수많은 대학생들은 무어라고 판단해 줄 것인가
몇 백년 뒤에도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남아있을 거라고 장담도 못하는데.
당시의 신념에 의해 부질없이 죽어간 청춘이라고 말 할 가능성도 있는 거다.

농담이 아니다.

광복 65주년인 지금
독립운동가들을 우리는 어떻게 환대하는가.
독립유적지는 남아있는 것도 없고, 독립군 자손들은 명예도 얻지 못하고
어떤 놈들은 무장투쟁을 한 독립운동가를 [무척이나 쿨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테러리스트라고도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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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모든 것을 심판해주지는 않는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한과 분노와 갈망같은 것은 주의깊게 보지않으면
역사라는 텍스트는 무미건조한 승자와 패자의 관계 외에는 남지 않는다. 

고작해서 왕조에 대한 맹종으로 당대의 학자와 무장 여섯이 실패한 쿠데타로 뒈지고
열매도 못 필 민주화를 위해서 지성의 총아였던 대학생들이 맞아죽고
자력독립도 못한 주제에 풍찬노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헛수고 하면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

내가 [이성적]이라는 단어의 우상에 빠져서, 혹은 이성적인 척 하려고 
진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채 그냥 편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저 세 부류의 공통은
당시 사람들이 옳다고 여겼지만 감히 실행하지 못했던 당시의 이상을 위해서 일신의 영달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서 목숨을 던진 이들이라는 것이다. 철저히 [반이성적]이고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이성적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는거다.

신숙주의 태도는 합리적일 뿐 아니라 비전도 있다. 구국의 결단아닌가.
이완용의 태도 역시 합리적이고 사리에 맞다. 일본이 동아시아 최강국 아니었나?
박정희와 전두환과 군사정권의 행동은? 당연히 합리적이고 수지타산에 맞는 행동이다. 분단상황하에서
민주화 소요과 국정혼란이 어떤 위기상황을 촉발할 지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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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람들은 하지만 알고 느꼈더랬다.
신숙주가 개새끼라는 걸
이완용이 개새끼라는 걸
전두환이 개새끼라는 걸.
앞에서 말은 못해도 속으로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이 아니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상]과 거리가 먼 위인들이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
인간에게 일반은총으로 내려 진 도덕률이 세상 말미까지 남아있는 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계산에 부합한 결과외의 꿈을 쫓도록 설계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숙주는 그냥 죽일놈인 것이다.
시간이지났다고 옹호받을 대상도 아니고, 재평가 해줄 필요도 없는거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필요도 다시 훑어볼 필요도 없다.

그냥 맛나게 만두나 처먹으면서 살지
뭔 숙주나물 운운하면서 살고 앉아있겠냐 말이다. 


Posted by 荊軻
,

아열대의 밤

작은 방 한담 2010. 8. 12. 09:10
여름이 내가 알던 여름이 아닌 여름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무더움을 비껴나가기 힘든 날씨였다.
하지만 이젠 처마 밑에 누워 선들선들 부는 바람에 피곤을 식힐 수 있는 풍경은
말 그대로 옛 흑백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망할 놈의 습기.
하늘은 뭉게구름이 아닌
언제 비를 한바탕 뿌려놓을 지 모르는 적란운이 언젠바부터 주인행세를 하고
아니나 다를까 하루에 한번씩은 스콜을 뿌린다.
이게 대한민국 조선의 날씨냔 말이지.
소식적에 잠깐 들려본 태국과 캄보디아 날씨하고 다를 바가 없다.
이제 천장에 도마뱀이 붙어 산다고 해도 놀랍지가 않아요.

아는 후배 말을 들어보니
전남 어느 시에서는 가로수를 야자나무로 심었는데
그게 사시사철 잘 자라고 있다는 해괴망측한 소리도 들었다.

점점 땅이 들끓어 오르는 모양이다.
스티븐 호킹박사는 지구멸망 앞으로 200년이라고 말까지 했단다.

사실, 내일 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어이없는 세상이 하루이틀 지나왔느냐마는

최소한 내일 죽더라도
선선한 날씨 속에서 죽고 싶구나.

열대야 따위는 정말 지옥에나 있어야 할 물건이야.
Posted by 荊軻
,
제 링크에도 걸려있는 파워블로거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신장병으로 유명을 달리 하셧다는군요.

예전부터, 미국코믹스에 대한 다양한 포스팅을 올려주시던 분이었고
그 곳에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荊軻
,

2010.8.8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8. 8. 20:31
1.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가 되었다.
아직까지는 무임소 보직. 
하긴, 내 성향을 담당목사님이 아는데 애들에게 바로 덜컥 붙여주실리도 만무하고.

그나저나,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라서
수능이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도모른다. 
자식있는 어른들이라면 자식때문이라도 정보가 있을텐데 난 그런것도 없으니
이를 어쩜 좋단 말이냐


2.
내가 우리 집 고양이를 대하는 걸 보면 난 참 엄격한 인간이구나 싶다.
고양이도 절절 매는데 사람이라면 좀 버겨내기 힘들지도.

둘째 고양이를 들일까 생각중이다.
사람하고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고
어차피 다른 생명을 보듬어 안고 가는게 인생의 무게라면
사람이나 고양이나 별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제 별반 미련이 안 남네.


3.
인생에 멱살잡히지 않을 정도의 자본만 있다면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여유로와질까.
Posted by 荊軻
,
1.
알던 후배놈이 알던 선배라고 사무실에 놀러왔다.
아, 여자애다.
아무리 남초현상에 찌든 인생역정이라지만 그래도 가끔 귀엽거나 이뻐보이는 후배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이다.
40 가까이 살면 말이지.
(이거 써 놓고 보니까 무지하게 우울한 멘트로구나)

하여지간 놀러왔는데
뭐랄까나

세상은 국방부시계처럼 건전지빼도 돌아가는 와중인데 모여서 이야기하면 왜 과거의 기억들이 현실을 지배하고 나이를 먹는 줄 모르는 건지 모르겠다. 꿈속의 꿈인가. 젠장. 어디 물속에라도 떨어져야 하는건가.


2.
다들 그러고 산다.

나는 나이를 먹지않을거야
그래도 이래뵈면 동년배에 비해서 젊어보이지 않나
아직 기회는 있어
언제든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얻을 수 있을거야

아마 환갑진갑미수백수 다 지낼때까지 사람들은 이러고 살 것이다.


3.
하루하루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내 일을 할 때는 짧고 남의 일을 할 때는 길다.


4.
진심이 통하는 세상이라는 게 존재했다면
아마 현실은 이렇게까지 일그러져 있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荊軻
,
기실, 사람의 사는 행위라는 것이 하루하루의 소사가 얽혀서 이루어지는 것이니만큼 하루하루의 나날이 사람에게 주는 무게감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딱히 신경쓰지 않는 깃털같은 무게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그것은 수미산같은 무게를 가지고 사람의 등 위에 올라타고, 퉁방울만한 눈을 가지고 사람의 눈을 대신하며, 큼지막한 작대기를 하나 꽁무니에 매달고 사람의 뒷자락에서 갈 길을 조종하는 키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이미 그것을 깨달을 때가 되어서는 이미 난 하루하루의 무게에 눌려서 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돈벌이는 신통치 않지, 게다가 머리숱은 점점 빠져나가는데 주변의 환경은 계속 무언가를 채근하지. 게다가 하루하루 조금씩 늘어만가는 실망과 이뤄지지 않은 소망의 여운들은 그날그날 잊혀지지 않은 채 조금씩 앙금이 남아서 어느순간엔가는 내가 버틸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까지 절망의 찌꺼기들이 그득이 채워져 있었다. 이런 순간이 계속 되어서 몇 년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리 대차고 희망적으로 살아가고자 마음을 먹는다 하더라고 사람의 움직임과 태도에는 조금씩 [실패자]의 기운이 감돌기 마련이었다.

본시 이럴 적에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혼자 지새워야 한다. 그것이 정석이지만
사람이란 동물은 뭔가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다른 것으로 자기자신을 채우려고 하는 본능이 발동하는 법이다.
그 당시 나는 굉장히 외롭다고 느꼈다. 주변사람들이 생각할 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오직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애쓰는 정신병자처럼 보일만큼, 나는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 하루하루를 헤멨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양이도 키우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랬지만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 찾아다니는 것은 여자였다.

반려였는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딱히 그 대상에 대한 소구점이 무어라 정의내리기 어렵다.
그 당시도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여자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할 방법도 만무했고, 여자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정서적으로 그걸 유지시킬만한 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아니면 아무런 인생의 목적이 없는 양 행동했다.

사람이 정해진 목표를 외곬으로 쫒아보면 사람이 절박해지고, 사람이 구차해지고, 실수가 잦아지고 틈이 생기게 되며, 종당에는 사람들이 거북스럽게 여기게 된다. 별다른 연분없는 사람들도 이렇게 느낄진대 좋아한다고 쫒아다니는 여자들은 오죽 했겠는가. 백이면 백 그 당시 좋다고 쫒아다닌 여자들은 모두 진저리를 내면서 돌아서고 말았다. 
아마 나는 당시에 그렇게 생각했던 듯 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것저것 계획한 대로 그나마 남아있는 생을 살아가려면 지금부터라도 뭔가 있어야 한다고.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지금도 시간은 턱없이 모자람을 느끼지만, 그 당시에도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적인 목표를 가지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모든 바램과 욕망과 집착이 계속되는 실패의 쳇바퀴를 하염없이 굴리고 굴린 뒤에. 이제는 될대로 되 버려라 하고 포기할 즈음이 되어서다.

요즘도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그 때, 인연을 만났으면 지금하고 똑같은 삶이 유지되었을까?
아마 아니라고 생각된다. 준비되지 못한 삶의 연장이 몇년 정도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그건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쉽게 푸는 문제를 못 푸는 경우가 허다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생각도 않는 문제를 혼자 해결하고 희희낙락하는 경우도 많다.
누구에게나 쉽다고 자신에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인성이나 이성이나 교육이나 환경, 주장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한 개인에 속한 성질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분석할 필요는 없다. 한 명에게 해당되는 문제를 남이 풀어서 대신 답안을 채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때는 그랬더라고 정리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런 글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슬프고 서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것이리라.
나중에 살 날이 살아온 날 보다 작아졌을 때 회한으로 가득한 것이 인생일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없지만, 적은 것도 갖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는게 인생이다.

그냥 그런 것이었음을 알았다면 
최소한 그렇게 힘들게 시간을 부지런히 낭비하면서 살지는 않았을텐데.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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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25 소사

작은 방 한담 2010. 7. 25. 22:38
1. 토요일에 아깽이 Kaka를 중성화 시켰다.
   아침에 병원에 데리고 나가려는 데 이 놈이 폴짝 무릎에 올라와서 양옹양 거리더라.

   "세상에 고양이나 사람이나 쉬운게 없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들은걸까. 그냥 좀 서글펐다. 어쩌다가 사람 손을 타게 되어서 이런 수술을 받는고.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수컷은 집에서 기르지 못한다. 집안 여기저기에 영역표시를 하고 다니니.
   암컷은 발정이 나면 괴로와한다고 한다. 계속 울어대고. 역시 집에서 기르기 힘든 것이다.

   아버지가 흘러가는 소리로 들으시곤 넌지시 이런 말을 하신다.
   "자연을 거스르는 짓은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갖다 버려"

  마지막 첨언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이 사람으로써 가진 생물적 우위를 가지고 다른 생물을 학대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같이 살기 위해서 생식력을 없앤다니. 내가 만약 애완동물인데 누가 날 거세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러웠다. 그런데 어찌하누. 애초에 사람사는 지붕 아래 태어나서 야생에서 살아갈 능력 하나 없고,
  모래에 발만 닿아도 놀라면서 탈탈 털어대는 이 꼬마를 집 밖으로 방사한다고 해 봤자 그 삶이 몇달이나 되겠는가.

  사실 그 몇달의 삶이 더 가치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가치있는 일인지 안타까운 삶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객관적인 수치로 접근할 뿐이지 고양이가 되어 생각할 도리는 없다. 더 오래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
  마치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몇 달 내에 죽으니 치료합시다. 라는 어조.
 
 인생은 그렇게 수치로 평가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묘생도 그럴진대 난 왜 이걸 선택한걸까.
 답을 선뜻 낼 수가 없었다. 그냥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

  수술을 위해 병원에 맡기고 몇 시간 후 데리러 갔다.
  날 보더니 엉엉 운다. 아팠던게다. 당연히 아프겠지. 
  내가 옳은 일을 한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 봤다.
  하지만 어쩌랴. 떨어진 것을 다시 붙일 수도 없는 노릇.
  퍼져서 골골대는 놈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는데

  오늘 아침엔 팔팔 거리고 잘만 돌아다닌다. 확실히 고양이들의 치유력은 경이롭다. 
  이 녀석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냥 지금처럼만 오래오래 살아라. 

  서시나 양귀비가 살아돌아와도 데리고 살아줄테니까.
  그게 내 도리고 책임이겠지.
  

2. 교회 고등부 선생직을 맡기로 했다.
   언젠가는 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2년 정도 늦어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일들을 천천히 하고 있고
   인생의 방향을 그렇게 꾸려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을 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3.
  덥다.

Posted by 荊軻
,
생활을 할 때 살아있는 생물과 같이 오랫동안 살다보면 둘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교감이 생기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 생물이 갑각류나 어패류같이 아예 극단적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종이 아니라
같은 온혈동물이나 포유류같은 고등생물체(뭐가 고등이지..하여간)랑 살게 되면
대충이나마 감정의 교류도 이뤄진다.

뭐, 오래 산 것도 아니다.
고양이랑 산 지 한 3개월 되었나.
대체 사람하고 사는 거랑 뭐가 다른건지 이젠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배고프면 징징대. 성질나면 앙앙대. 내가 성질부리면 도망가
좀 있으면 다시 와. 그러다 시간 지나면 화해해. 화해하면 또 잘 지내
그러다가 또 삐지면 서로 삐져. 그러다가 다시 친해져

그냥 사람 사는 짓거리에 아무런 다른 것이 없더라.

이쯤되면 심각하게 고뇌하게 된다. 여자를 만나서 되지않은 작업에 돈 들여가면서
어떻게든 연분을 이어볼까 하는 내 노력이 과연 고양이랑 사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 생활을 제공하게 될 것인가?

2세의 탄생과 생리적인 욕구충족 말고 뭐 다른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같은 언어체계와 사유능력을 가지고 이것저것 공유하는 감정의 깊이야 고양이보다 낫겠지만
결국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배고파, 성질나, 삐졌어, 이리와, 토닥토닥, 잘해보자, 알라뷰
이것밖에 더 있는가 말이다.

물론 하나 있긴 하다.
내가 숨이 넘어갈 때 고양이는 119를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
결국 내 편협한 생각에 따르면
Emergency를 위해서 같은 사람과 동거해야 한다는 말인데.

생각이란 늘 발전하고 변화하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듯 이리저리 바뀌니
어느 날, 내가 어떤 여자사람을 붙잡고 "당신 없으면 못 살것이오!" 따위 낯짝간지러운 이야기를 쏟아부을 지도 모르지만 (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지금 내 삶에 있어서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고양이 사료값만도 못하다.

거시적으로는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주위사람들은 말할테고, 나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하는데
뭐, 현재 감정이 이렇다는 걸 숨길수는 없지 않은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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