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작은 방 한담 2010. 9. 7. 00:38
일요일 늦은 오후에 갑자기 뜬금없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심심할 때 고양이나 보겠다고 하더니 진짜로 찾아왔다.
그러던 중 빈손으로 오는게 심심했던지 뭔가 한 뭉태기를 가져왔다.
이것이 무엇이오 물었더니 사과를 받으시오 하더라
나한테 뭘 잘못한게 있소 하면서 보니 어디서 서리라도 해왔는지
사과가 한다발이라. 안 그래도 빈한한 집안에 인스턴트로 가득한 냉장고니
채소와 과일은 늘 부족한 터라 기꺼이 받았다.
여차저차하다보니 손님은 이미 사라지고 자취라고는 큼지막한 사과봉투뿐인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것은 독처하는 사람 혼자 먹을만한 양이 아니라.
그렇다고 고양이들에게 사과를 먹이는 호사스러움을 보였다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을 성 싶고, 내가 죄다 깎아먹지 않으면 즙을 내어
마셔버릴 요량인데, 그것도 영 곤란할만큼 많다.

혼자 살면서 가장 필요하고, 부족하다 여기면서도 늘 가질 수 없는 것이
채소와 과일이다. 오래 둘 수 없으니 소량을 사야하고, 소량을 사려니 번거롭다.
육류야 사 놓고 냉동고에 때려넣으면 그만이나 과일이나 채소를 
그렇게 할 수가 없지않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일이나 채소나 모두
태양과 바람을 직접 받으면서 큰 족속들이라. 바람과 햇빛을 어떻게
오랫동안 손아귀에 넣어둘수 있으리. 쉽게 상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이치에 맞으리라.

내일부터는 아침에 커피대신 사과나 갈아서 쥬스를 해 먹는 웰빙식단이 될 것 같구나
그런데 난 사과는 산성인 음식이라 위가 안 좋은 사람이 먹으면 폭풍이 몰아치기도 하는데...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내일 똥은 내일 싸면되고.

얻기 힘든 먹을게 생긴 것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냐

사과를 내려주시고 표표히 사라지신 처사님께 감사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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