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늦은 오후에 갑자기 뜬금없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심심할 때 고양이나 보겠다고 하더니 진짜로 찾아왔다.
그러던 중 빈손으로 오는게 심심했던지 뭔가 한 뭉태기를 가져왔다.
이것이 무엇이오 물었더니 사과를 받으시오 하더라
나한테 뭘 잘못한게 있소 하면서 보니 어디서 서리라도 해왔는지
사과가 한다발이라. 안 그래도 빈한한 집안에 인스턴트로 가득한 냉장고니
채소와 과일은 늘 부족한 터라 기꺼이 받았다.
여차저차하다보니 손님은 이미 사라지고 자취라고는 큼지막한 사과봉투뿐인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것은 독처하는 사람 혼자 먹을만한 양이 아니라.
그렇다고 고양이들에게 사과를 먹이는 호사스러움을 보였다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을 성 싶고, 내가 죄다 깎아먹지 않으면 즙을 내어
마셔버릴 요량인데, 그것도 영 곤란할만큼 많다.
혼자 살면서 가장 필요하고, 부족하다 여기면서도 늘 가질 수 없는 것이
채소와 과일이다. 오래 둘 수 없으니 소량을 사야하고, 소량을 사려니 번거롭다.
육류야 사 놓고 냉동고에 때려넣으면 그만이나 과일이나 채소를
그렇게 할 수가 없지않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일이나 채소나 모두
태양과 바람을 직접 받으면서 큰 족속들이라. 바람과 햇빛을 어떻게
오랫동안 손아귀에 넣어둘수 있으리. 쉽게 상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이치에 맞으리라.
내일부터는 아침에 커피대신 사과나 갈아서 쥬스를 해 먹는 웰빙식단이 될 것 같구나
그런데 난 사과는 산성인 음식이라 위가 안 좋은 사람이 먹으면 폭풍이 몰아치기도 하는데...
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내일 똥은 내일 싸면되고.
얻기 힘든 먹을게 생긴 것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냐
사과를 내려주시고 표표히 사라지신 처사님께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