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의 대부분을 비행기에서 보내며 사람들과의 첩촉을 갖지 않는 프로페셔널.
그리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변화와 적응과 스스로가 찾는 삶의 지향점에 관한 이야기.

사람은 겪고 당해보면 그 일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나오는 조지클루니의 배역에 십분 공감.

땅에 내려와서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 갖는 삶의 무게라는 것에 대해
아직도 별반 모르고 침튀기며 말할만큼의 지혜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몰입을 할 수 있는 시점을 얻었달까.

홀로 앉아서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아늑하고 나름대로 소소하게 무거웠던 영화.

[허트 로커]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 아카데미에서 뭔가 좀 얻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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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見.聽,感 2010. 2. 15. 10:59

그냥 무심코 충동적으로 질러버린
그리고 아마 받아듣고 좋아할 것 같은.

가장 멜랑꼴리하고 감성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던 재즈 뮤지션 중 하나라던 쳇 베이커.

천성적인 고독함과 허무함을 이기지 못하고 약에 빠져들었다가
결국, 재기하는가 싶더니 호텔에서 몸을 날려 돌아가신,
뭐랄까나. 사운드에 걸맞는 삶을 살다 가 버린 사람이랄까.

어느 블로그에선가 읽은 것 같긴 하다.

"이 사내는 삶이라는 것이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여기고 술과 마약과 여자에 하루하루를 찌들어 살았다."

삶이란 특별한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거다.

하지만 술과 여자에 하루하루 찌들어 살 정도의 돈이 있다면 그건 특별한 거 아닌가.
(게다가 마약까지라니...)


 My funny Valentine...개인적으로는 미쉘 파이퍼 버전을 가장 좋아하지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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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天寒)코 설심(雪深)한 날에
 님 찾으러 천상으로 갈 제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뷔님뷔 님뷔곰뷔, 천방지방 지방천방
한번도 쉬지 말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버선 벗은 발은 아니 시리되
여미온 가슴이 산득산득 하더라

- 무명-
청구영언에 전하는 조선 율시.




하늘은 매서웁고 흰눈이 가득한 날
사랑하는 님 찾으러 천상에 올라갈제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비님비 님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한번도 쉬지않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버선 벗은 발일랑은 쓰리지 아니한대
님그리는 온가슴만 산득산득 하더라

하늘나라 우리 님 (1985)
-송골매-



기억하는 분들 많으시리라.
저 노래 가사는 부르면 부를수록 참 정감있고 애닯고
고운 우리 말 아닌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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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use hands to hold my fellow man
I use hands to help with what I can
But when I face an unjust injury
Then I'll change my hands into fists of fury

I use hands to show my friendliness
I use hands to give a kind caress
But when a man slaughters his fellow man
Then I'll change my hands into fists of fury

No more hands will give my love to you
But you know I've done what I must do

I've fought the strong and I did right the wrong
When I change my hands into fists of fury


* 타이거JK의 노래가 아닌 진짜 오리지날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의 오프닝송이다.

 구구한 설명 집어치워도 될 만큼 유명한 영화. 실제 권법가 정무체육회 곽원갑의 죽음을

 원안으로 각색한 이소룡의 항일격살기. 


후대 사람들이 어쩌니 저쩌니해도

이소룡이 짧은 그의 영화인생에서 보여준 체술과 스피드는 가히 후대의 귀감이고

스피드의 강약조절과 그 완급에서 보여주는 인체의 조형미라는 것은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다. 정무문을 맨 처음 봤을 때 쌍절곤이라는게 얼마나 무서워보였던지.


대부분의 이소룡 영화의 메인타이틀은 경음악이고, 그 중에는 영화음악의 대가

랄로쉬프린이 작곡한 [용쟁호투]의 테마같은 것도 있지만 이 영화는 특이하게 오프닝송이 있다.

그것도 영어!


해석을 굳이 달 필요도 없는 아주 쉬운 영어가사이고

해석하다보면 닭살이 들 정도로 쾌남스러운 내용인데

듣다보면 그 비장미(?)에 중독된다.


 (듣다보면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팍팍 갈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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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회사일도 꿀꿀하고, 친구는 불러도 답이 없고, 뭔가 허하기만 한 날이었는데
편리하게도 육신은 혼자여서 혼자 볼 영화를 찾아 다니다 이 영화를 선택했다.

알프스 오지에 박힌 채
묵언수행으로 평생을 사는 카르투지오 수사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
한 때 장엄했을 법한 그랑 샤르트뢰즈 수도원에 이제는 몇 안되는 수사들만이 남아서
영원한 신에게의 복종을 맹세하며 예배와 외출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장장 162분짜리 영화였다.
게다가 이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십몇년을 기다렸고, 수도회는 자연광만을 벗삼아
카메라로 찍기를 허락했다. 그래서 화면은 말 그대로 쌩짜다. 야간화면은 천지를 구분 못할 수준.

설상가상으로 묵언수행을 하는 수도사를 찍은 3시간 영화니 
그 속에서 나오는 음향이라는 게 바람소리, 빗소리, 고양이소리, 가끔 나오는 찬트(Chant) 정도다.
일 좀 빡시게 하고 영화감상 하러 가면 그대로 꿈나라에서 창조주를 만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은 3시간이었다.
정말로
적게 가지면 가질수록 사람에게는 평화가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말한 것처럼, 소유가 없으면 풀밭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을만큼 평온이 찾아올 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벅차서 울음이 펑펑 터지는 영화도 아니고
오히려 몰려오는 졸음과 아픈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봐야 할 영화였지만
보고나서 참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의 맹인수사의 이야기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신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달까.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신부나 될 것을.

p.s1)  1시간 늦게 들어왔다가 지루하다고 배배 몸을 꼬다 1시간 빨리 나간 커플이여...
          가질 거 다 가져놓고 득도까지 하려 들어? 욕심많은 것들!

p.s2)  수사들의 식사를 보면서 내 식사의 빈곤함에 다시 한번 놀람.

p.s 3) 수사들은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꾸려간다. 이 양반들이 대외적으로 판매해서 얻는 수익으로 수도원을
         꾸려가는데...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그건 [허브 리큐르]

p.s 4) 교구 신부님이 보러가라고 했다고 동네 카톨릭 아줌마들이 모두 와서 바글바글~ 그런데 아무도 안 떠들더라.
         신기했다. 사실 떠들 내용이 아니었다. 한 분은 피에타 형상으로 쓰러져 주무시는 걸 목격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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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見.聽,感 2010. 1. 5. 00:59
백설화묵빙(白雪化墨氷)
범세사제여(凡世事諸如)
청군기행보(請君夔行步)
모로무한등(暮路無寒燈)


흰 눈이 검은 얼음이 되나니
대저 세상 일이 이와 같구나
청컨대 그대여 조심해 걸으라
저무는 길에 외로운 등 하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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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천하에 자욱하여 자취도 없는데
친구가 생각나서 먼 길을 재촉하여 친구를 찾아갑니다.

친구는 갓 아래 방한모을 쓰고 있습니다. 꽤나 추웠던 모양이죠. 벗을 생각도 안 하는 거 보니까 
무지하게 친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방주인도 좋아라 하고 있는 걸 보니
눈 오는 날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입니다.

소를 타고 왔군요. 두 집이 꽤나 잘 아는 모양이고, 이런 방문이 한 두번이 아닌 모양입니다.
주인을 모시고 온 동자를 보면서 집의 동자가 "주차는 저쪽에"라고  이야기해 주는 듯 합니다.

이 작품은 관아재 조영석의 작품 [설중방우도]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딘가에 떡 하니 걸려 있을 겁니다.
작은 그림이 아니니까요. 선비화가였던 조영석은 그림을 참 잘 그렸는데, 그림만 그리는 건 선비의 가업이라
할 법은 아니고 잡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조가 자꾸 와서 그림을 그리래서 짜증도 내고
왕한테 항의하다가 사람들에게 욕먹고 영조는 괜찮다고 용서하고...뭐 그랬다는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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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밖에 눈이 꽤나 많이 옵니다.
그나마 어린 나이는 아니니 경치는 보면서 좋아하더라도
"추워죽겠는데 나가지 말자"라고 마음먹고 집에서 혼자 놀고 있는 중이죠.

가만 보면 당시 사람들은 참 로맨틱했던 모양입니다.
눈이 오고 세상이 깨끗해졌으니 청담(淸談)을 말할 지우를 찾아서 추위를 떨치고 벗을 찾아 갑니다.
오고가는 길에 고생이야 있겠습니다만 벗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그보다 컸던 듯 합니다.

내일부터는 월요일이니 다시 바빠지겠군요.
하얀 눈을 보면서 감상에 빠졌다가도 다시 우울해집니다.
옛 사람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있었겠습니까만
그런 여유가 사라지는 시절이라는 것이 못내 서운하긴 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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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화간일호주 독작무상친): 꽃 사이에 한 동이 술을  친구 없이 마시네.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거배요명월 대영성삼인): 잔 들어 달 부르고 그림자를 보니 셋이라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월기부해음 영도수아신): 달은 본래 마시지 못하고 그림자만 나를 따르는구나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잠반월장영 항낙수급춘): 잠시 달과 그림자 벗하니 이  봄을 즐겨보려나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아가월배회 아무영령난): 내 노래에 달이 따르고 내 춤추면 그림자도 춤추니
醒時同交歡 醉后各分散 (성시동교환 취후각분산): 깨어서는 함께 즐기고 취한 뒤에는 각자 흩어지도다
永結無情游 相期邈雲漢 (영결무정유 상기막운한): 영원히 사귐을 맺어 저 먼 은하에서 서로 만나세



술도 취해서 저정도 경지에 이르면 가히 신선. 그래서 이태백이 주선(酒仙)이런가.

본래 술을 잘 못하는지라 많이 먹으면 속이 불쾌해지는 스타일이라 아마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 될 듯.


 참고로 여흥삼아
 - 소시민 삼국지 천하통일기 -
 * 술마시는 능력 하나와 스토킹 하나로 천하를 통일하는 소시민의 이야기.
http://mlbpark.donga.com/bbs/view.php?bbs=mpark_bbs_bullpen09&idx=30756&cpage=5&s_work=&select=&keyword

원본이 joysf였는데 원본은 날아가고...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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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회에 끄적거려 올렸던 짧은 콩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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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가죽 주머니를 탈탈 털고 있었다. 말 그대로 먼지가 아래 풀썩거리게 탈탈 털어댔다. 여전히 빈 주머니인 건 확실하고 더 나올 건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냥 요식행위였을 뿐이다. 나도 알고 아버지도 알고, 가게주인도 알고.

 

아버지는 가게주인에게 히죽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가게주인은 눈을 껌벅이며 자네 참 아들을 향한 마음이 갸륵하네 라는 듯 고개를 까닥까닥 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이 금액으론 모든 걸 다 맞춰줄 수는 없겠수. 여기서 날 길이를 좀 줄이던가 전쟁신의 가호같은 걸 좀 뺍시다.

 

……하하. 그래도 가호주문이 없으면 싸울 때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날 길이가 한치 짧으면 목숨이 한 치 짧아지는 건 병법의 기본인데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이걸로는 안 된다니까 그러시네. 시간되고 지리 알 면 근처 다른 곳으로 가 보시우

 

하하……왕국에 달랑 한 군데 있는 상점인 걸 알고 왔는데 무슨 말씀을 그리 섭하게 하십니까. 조금만 싸게 해 주시오

 

잘 모르시는구먼. 여기서 남쪽으로 닷새 정도 날아가면 열풍의 사막이 있소. 그 사막의 유명한 [다섯 부리 산] 가운데 상점이 하나 더 있어요. 그 주인 컬렉션도 괜찮아요.

 

열풍의 사막을 어떻게 건너서……”

 

어찌 되었든 아버지의 말투는 아들이 듣기엔 거북할 정도로 저자세였고, 저런 식의 흥정이면 어떻게 끝날지 알 수도 없는 분위기였을 뿐 아니라 방앗간집 딸 에델을 집구석에 숨겨놓고 온 처지라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번엔 내가 주인에게 말했다.

 

그럼 바스타드 말고, 롱소드나 브로드는 되나요?

 

다 비슷해, 옵션을 다 넣으면 비싸지는 게지. [날이 빠지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전쟁신의 가호가 함께하고 명성을 드높이는] 바스타드 소드라는건 솔직히 전쟁터의 사치품이야

 

상인의 비꼬는 말에 아버지의 표정은 순식간에 심통난 아이처럼 변했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명성따윈 필요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그냥 칼은 롱소드나 바스타드나 상관없어요.

 

아들아,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거지. 전쟁이 벌어지기 전 귀족들과의 경합에서는 그 무장의 생김새도 중요한 거다. 진정한 전사가문의 아들이라면 바스타드를 차야 해. 하늘거리는 귀족들의 롱소드와는 다른 거란다. 그리고 명성으로 말하자면……”

 

아버지, 우리 가문이 용병출신이고, 그래서 바스타드를 차는 게 전통인 건 저도 알아요. 그렇다고 칼 모양이 밥 먹여주나요. 일단 살고 봐야죠. 그리고 귀족이 되었으면 명예는 그 정도로 족한 거죠.

 

갑자기 뒤에서 쿡쿡쿡 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말을 듣고 있던 상인은 내 말투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혼자 하늘을 보면서 손톱으로 머리를 긁더니 딱 하고 손가락 두 개를 튕겼다. 뭔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이보쇼. 손님, 손님의 조부가 패트릭 퍼셀이지? [난도질하는]퍼셀.

 

제 할아버지가 패트릭 퍼셀 경인건 맞는데 난도질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뚱하게 대답했고 가게주인은 다시 쿡쿡대기 시작했다.

 

맞는 것 같구만. 그 [난도질잡이]퍼셀이 귀족칭호를 받고 대륙 어딘가에 귀족이 되었다는 걸 들었지. 그리고 그 양반도 내게서 소드를 사 갔어. 그 때는 브로드 소드였지. 그걸 잊어버리고 바스타드를 차기 시작한거야. 그 칼 정말 좋은 칼이었거든.

 

가게주인은 생각보다 긴 팔을 죽 뻗어서 병기대 뒤에 있는 칼 하나를 꺼냈다. 기이한 검집에 꽂혀있는 바스타드 소드였다. 가죽도 아니고 쇳덩이도 아닌 것 같은 검집은 은색으로 실처럼 짜인 선이 사방을 두르고 있었다. 마치 무슨 핏줄처럼 보여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칠 오우(Chill Woe)! 마왕 [기즈]를 섬겼던 광투사 [더글러스 맥그레디]의 칼이다.

내 뒤에 서 있던 아버지의 입에서 헉 하는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상점주인은 다시 쿡쿡하고 웃더니 한 손에 칼을 잡고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날이 빠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투신의 가호를 받는 바스타드 소드지. 대신 명예는 없어. 일단 뽑으면 피를 봐야 한다. 피를 보지 않으면 주인을 미치게 만들고 피에 굶주리게 만들거야. 이 칼의 주인이 되겠나? 금액은 적당해.

 

아버지는 뒤에서 거품을 물고 이런 악덕상인아 불량상품을 팔 작정이냐 어쩌고 떠들고 계셨지만 난 그 칼의 문양과 칼집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확실히 명성에 걸맞은 물건이었다.소드의 폼멜에 아름답게 새겨진 울고 있는 해골! 이거야말로 피로 가문을 일으킨 퍼셀 가문에 어울리는 검 아닌가? 이거 정말 물건이로군. 내 성향에 딱 맞는 칼이야.

이미 결정은 내려진 뒤였다.

뽑지 않으면 저절로 명예는 생기겠군요. 악명일지라도.

 

.……드래곤 만큼이나 현명하구나. 꼬마.

 

아버지가 눈이 동그래져 나와 주인 사이에 황급히 끼어들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아버지의 등 뒤에 어느 새 드워프 다섯명이 나타나 세 명은 바닥의 금을 쓸어 담고 두 명은 아버지를 붙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려 했기 때문이다.

 

물건과 주인과의 계약은 성립되었습니다. 손님은 아드님을 대신해서 금액을 확인하고 인수증에 서명을 좀 해 주시오.

 

이런 말도 안 되는 허위계약이 어디 있느냐며 아버지는 욕을 남발하기 시작했지만 드워프 둘이 끌어대는데 별 재간이 없었는지 투덜대며 옆 방으로 끌려갔다. 주인은 그 모습을 보고 푸르르 웃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를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터죠? 전 이 상점이 있다는 이야길 처음 들었어요. 우리 주교님께서는……”

 

자네 주교님은 드래곤이 사람을 해치고 가축을 약탈하고 미녀를 희롱한다고 했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상점주인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이 짓을 시작한 건 200년 전의 궁여지책이었어. 세상에 퍼질 대로 퍼진 [드래곤 슬레이어]를 어떻게 회수할 까 하고 드래곤들이 회의를 하다 낸 결론이었거든. 금을 주고 사자는 지극히 황당하고 현실적인 방식이었지. 그것말고 방법도 없었어. 남은 동족이래 봤자 한 스무마리 되나? 그런데 그게 먹히더라고. 50년 만에 세상에 퍼진 [드래곤 슬레이어]를 황금을 주고 다 모았는데……”

 

상점 주인인 골드 드래곤은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날 쳐다봤다. 아마 기분 좋으면 하는 윙크 비슷한 것인 듯 했다.

 

그 동안 용사들이 동굴 안에 있던 무구들을 보고 눈이 뒤집혀 자잘한 거래들을 했어. 드래곤 슬레이어를 구입하는데 쓴 금보다 그게 더 많이 들어왔지. 곧 약탈하는 것보다 훨씬 금이 많이 들어왔어. 부르는 대로 주더라고. 드래곤은 경제관념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옆방에 아버지가 드워프들과 말다툼 중이었다. 맞게 가져 왔으니까 다시 세보라고 투덜대는 중이었고 드래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쿡쿡대고 다시 웃음을 지었다.

 

금이 많아지니까 싸울 일도 없고, 단골이 이쪽 저쪽 생기다 보니 마땅히 약탈할만한 지역도 없어졌어. 그리고 무엇보다……사람들이 날 애타게 찾더군. 그 중 네 증조부도 끼어있었지. 어쨌건 다른 드래곤들도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니 모두 상점을 차리기로 한 거야.

어차피 인간의 욕심은 드래곤보다 크고, 전쟁은 끊이지 않고, 가난해지면 마법아이템은 다시 되파는 법이거든.

 

드래곤의 눈은 즐거워 보였고,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경멸이 같이 묻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난 그제서야 거대한 동굴의 벽면을 살펴보았다. 경이로운 무기들 투성이었다. 성검과 마도와 신의 은총을 입은 갑옷과 운명을 거스르는 방패들이 산더미 같이 걸려있고 쌓여있었다. 이런 무기들로 무장한 군대라면 세상을 정복하고도 남을 것이었지만 그 전에 그 왕국은 파산을 백번도 넘게 할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내 성인식에 맞춰서 10년간 모았던 금을 바스타드 소드 하나 사는데 다 써버린 거니까.

 

내 생각을 엿봤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사람을 파악하는 것인지 드래곤은 슬쩍 사람이 두 명은 들어갈 만한 책상 문갑을 열더니 아주 자그마한 양피지 하나를 꺼내서 내게로 건네줬다. 아무것도 써 지지 않은 손수건만한 양피지였다.

 

우리 방침은 단골장사야. 20년 후, 네 자식의 무장이 필요할 때 한번 접었다 펴 봐. 그럼 상점으로 오는 약도가 나올 거야.

 

용의 동굴은 매번 마법으로 위치가 바뀌었고, 그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신용의 양피지]밖에 없다는 걸 이미 아버지에게 들은 바 있었다. 난 양피지를 아버지 몰래 재빨리 품에 넣었고 드래곤은 푸륵푸륵 너털웃음 비슷한 걸 울리더니 재빠르게 꼬리를 말아 무언가 하나를 내게 던졌다. 엉겁결에 손으로 낚아 챈 물건은 날이 다 빠져버린 낡아빠진 더크(dirk)였다. 드래곤은 웃으며 말했다.

 

성 프란시스의 더크다. 그거라면 미쳐서 검을 휘두르는 일은 방지해 줄 거야. 새로운 단골이 된 기념이다. 인간들 말로 옛다, 기분이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드워프와 계산을 다 마치고 옆방에서 튀어나왔다. 얼굴이 시뻘개진 당신은 다신 이런 거지 같은 곳에 안 오겠다는 둥 차라리 열풍의 사막에서 거래를 하겠다는 둥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내 손을 붙잡고 동굴을 빠져나갔다.  마법지도가 있어야 오는 상점이니 우리 가문이 아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지만 어쨌건 난 아버지 손에 허리춤을 잡혀 질질 끌려나면서 엄청난 돈을 주고 산 소드와 몰래 받은 더크를 두 손에 움켜잡고 드래곤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푸륵푸륵하는 용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고 그 웃음소리에 용 뒤에 쌓여있는 산더미 같은 금화들이 쩔렁쩔렁 울려대기 시작했으며 곧 동굴 전체에 웃음소리가 퍼져 천둥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외로운 산에 마른 천둥이 다시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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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담당하고 이태리의 명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 외에는
전혀 내용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이태리영화.

타비아니 형제에 의해 만들어진 좌파영화라는 소리만 확인했을 뿐이다.
근데 타비아니 형제가 좌파인지도 모르겠다. 이태리에 대해서 뭘 알겠나...본 조르노와 피자밖에 모르는데.


이 영화의 엔딩이다. 뭔가 요상한 엔딩인데...
이 동영상을 플레이 시켜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왜 이 영화를 링크시켜놨는지.

이 영화의 메인타이틀 테마가 이번 [inglourious Basterds]의 거진 메인 테마로 사용된 그 노래
Rabbia e tarantella (타란텔라의 어쩌구 같은데 뭔지...이태리말을 알아야지 원...)이다.

[인글로리어스 바스타드]의 영화음악을 원래 엔리오 모리코네가 맡아서 작곡해주기로 했는데
시간이 없다고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타란티노는 모리코네가 작곡한 이전의 영화음악들을 죄다 끌어다가 영화에 넣었다.
(허락받고 한건가? -.-a 그랬겠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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