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회사일도 꿀꿀하고, 친구는 불러도 답이 없고, 뭔가 허하기만 한 날이었는데
편리하게도 육신은 혼자여서 혼자 볼 영화를 찾아 다니다 이 영화를 선택했다.
알프스 오지에 박힌 채
묵언수행으로 평생을 사는 카르투지오 수사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
한 때 장엄했을 법한 그랑 샤르트뢰즈 수도원에 이제는 몇 안되는 수사들만이 남아서
영원한 신에게의 복종을 맹세하며 예배와 외출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장장 162분짜리 영화였다.
게다가 이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십몇년을 기다렸고, 수도회는 자연광만을 벗삼아
카메라로 찍기를 허락했다. 그래서 화면은 말 그대로 쌩짜다. 야간화면은 천지를 구분 못할 수준.
설상가상으로 묵언수행을 하는 수도사를 찍은 3시간 영화니
그 속에서 나오는 음향이라는 게 바람소리, 빗소리, 고양이소리, 가끔 나오는 찬트(Chant) 정도다.
일 좀 빡시게 하고 영화감상 하러 가면 그대로 꿈나라에서 창조주를 만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은 3시간이었다.
정말로
적게 가지면 가질수록 사람에게는 평화가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말한 것처럼, 소유가 없으면 풀밭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을만큼 평온이 찾아올 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벅차서 울음이 펑펑 터지는 영화도 아니고
오히려 몰려오는 졸음과 아픈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봐야 할 영화였지만
보고나서 참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의 맹인수사의 이야기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신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달까.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신부나 될 것을.
p.s1) 1시간 늦게 들어왔다가 지루하다고 배배 몸을 꼬다 1시간 빨리 나간 커플이여...
가질 거 다 가져놓고 득도까지 하려 들어? 욕심많은 것들!
p.s2) 수사들의 식사를 보면서 내 식사의 빈곤함에 다시 한번 놀람.
p.s 3) 수사들은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꾸려간다. 이 양반들이 대외적으로 판매해서 얻는 수익으로 수도원을
꾸려가는데...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그건 [허브 리큐르]
p.s 4) 교구 신부님이 보러가라고 했다고 동네 카톨릭 아줌마들이 모두 와서 바글바글~ 그런데 아무도 안 떠들더라.
신기했다. 사실 떠들 내용이 아니었다. 한 분은 피에타 형상으로 쓰러져 주무시는 걸 목격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