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DVD 몇 장

見.聽,感 2011. 4. 13. 11:22


지난 주말 업어온 DVD들입니다. 쿠로사와 아키라감독의 두 영화를 지금에서야 제대로 봅니다.
드문드문 줄거리도 안 이어지게 보던 영화였는데....집에서 마음놓고 보게 되었습니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 과 [7인의 사무라이]

[7인의 사무라이]야 워낙 유명한 영화고,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제 예상과는 다르게
코미디에 가까운 가벼운 활극물이어서 좀 뜻밖이었습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 진중하던 양반들이
같은 작품에 나오는데 분위기가 180도 달라서 적응이 안 되었습니다.

각설하고, 미후네 도시로라는 양반은 정말 볼수록 매력이있군요. 쿠로사와 아키라의 페르소나.
예전에는 몰랐는데. 세르지오 레오네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정말 비슷합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스트우드가 미후네 도시로를 많이 차용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모습까지 보이더군요.


(그러고 보니 최민수씨도 좀 비슷하긴 허네....)

 

 

하지만 이번에 얻은 것중에 가장 기뻤던 것은 쿠로사와 컬렉션이 아닙니다.
 


에롤 플린의 [Sea hawk], 이것이 국내에 나와있었을 줄이야. [바다매]라는 타이틀이 붙은 채로!
화면이 기똥차게 좋습니다. 40년대 블럭버스터라는게 뭔지를 깨닫게 해 주더군요. 생각보다 스토리가 
장구하고 좀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만 40년대 영화기법으로 생각해보면 상당히 스피디한 전개였을 법 싶습니다.

내용은 모두 다 아는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 엘리자베스2세의 대결입니다. 에롤 플린이 연기한 제프리 토프라는 해적은 아무리 봐도 프랜시스 드레이크경의 오마쥬같습니다. 말이 그렇지, 영국 입장에서야 애국자지만 스페인 입장에서는 해적인 게고, 다 그 뒤에 왕이라는 정치가들이 고단수 장기싸움을 하던 것이었지만....영화내용은 그렇게 심각하게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냥 스페인과 영국의 정치가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용감무쌍한 사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좀 무리 아니겠습니까. 일단 흑백영화의 고풍스러움이라는 것에 그냥 보다보면 오오 그렇군 이라고 납득해버리게 됩니다. 40년대 영화의 여주인공이 현대적으로 예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에롤 플린의 매력이 상쇄합니다. 요즘시절의 꽃미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만
왜 이 사내가 당시 허리우드의 아이콘이었는지 몇 챕터만 봐도 알게 됩니다. [캡틴 블러드]도 살 수 있으면 사야겠습니다. Swashbuckler 영화라는 장르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무법과 죽음과 대의명분의 거대함을 그저 가벼운 쾌활함과 기백으로 넘어서는  어처구니 없는 근성(?)이 있죠. 40년대 슈퍼로봇물을 보는 기분입니다.

아, 하나를 더 집어왔는데 이 녀석은 약간 장르가 특이합니다. 그 녀석은 좀 있다 다음에...비슷한 장르를 하나 더 구해보면 같이 소개하고 싶었는데... 커크 더글러스의 [바이킹]입니다. 아직 못 본 관계로 다음 기회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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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시간에 정말 짧게 할애되어 있던 이슬람문명의 특색, 그 중에서도 유명저서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이븐 바투타]여행기라는 것이다. 이 양반은 탕헤르(탠지어)출신의 이슬람 율법학사로 
요즘식으로 쓰자면 [공무원 신분으로 세계일주]를 하신 양반이다.
북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아라비아왕조를 거쳐 인도 (여기서 벼슬까지 했다..능력자) - 중국을 거친 뒤
다시 집으로 왔다가 스페인쪽으로 돌았다가
다시 집으로 왔다가 사하라 사막을 남행하여 (뭐야 이 사람) 중앙 아프리카까지 돌아보고 온
요즘 세상이라도 하기 힘든 세계탐방을 30년간 한 사람이다. 그냥 교과서에서 지나가는 식으로 본 인물치고는
너무나도 광범위하지 않은가.

하여간 그렇게 돌아다니니 술탄이 그동안 보고 들은 거 다 적어보라고 해서 글을 쓰고, 그걸 시인이 다시 짧게 각색해서 내 놓은 책이 이 여행기이다. 당시의 이슬람 문화와 지명과 관직, 경제와 도시발전까지 이르는 중세 근동의 이야기를 굉장히 소상하게 써 놓았다. 아직 첫 원행의 처음부분을 읽고 있는 상태다.
정통 무슬림들의 이름이 너무 헛갈려서 진도를 빼지 못하는 것도 있다.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는 애들 장난이더라.

하여간 이 책을 나름대로 거금을 투자해서 읽고 있는데...서문에 이슬람 음차의 고유발음과 지명을 살리려고 애썼다는 역자의 설명이 장황하게 써 있고, 이슬람문자 간단히 읽는 법까지 써 있었다.
상당한 노고와 공이 들어간 책이구나 하고 역자 이름을 봤다. 정수일 교수.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정수일이라고 하면 잘 모른다.

[무하마드 깐수]라고 하면 알아도.

-2-
정수일. 무하마드 깐수
중국출생의 한국인.
북한과 남한 두 군데에서 대학교수를 역임한 사나이.
중동과 동남아에서 10년 넘게 교수직을 하면서 살아 온 학자.
현재 대한민국에서 내 놓을 수 있는 중동연구가. 아랍통, 문명연구학자.
그리고 [간첩]으로 알려져 사형언도까지 받은 사내.

이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옥중에서 번역한 글이다.
5년이란 세월동안 그는 모국어로 아랍의 고전을 번역했다.
혹자는 그랬다. 이 분이 사형언도를 받고도 계속 감형이 되어서 복권이 된 이유는
북한과 10년 넘게 통신을 했지만 별반 중요한 정보를 준 것이 없는 것도 그렇고
더 큰 건 이 사람은 사형시키면 안되는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더 커서였다고.

아랍어를 포함해서 12개국어를 소화하고, 감옥 안에서 왕오천축국전과 이븐바투타 여행기를 초역해 내는 
경이로운 천재를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듯 하다. 어쩌면 남한 정부는 '분단된 조국을 위해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든 생각'이 간첩활동이었다는 정수일교수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분의 사상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직접 배워본 적도 없고 인연도 없으니.

하지만 나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는 말을 믿는 편이다.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다. 고대 아랍인들의 관용어구 하나하나를 다 번역해 놓은 그의 역저를 보면서
이 사람은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자 재사로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03년 사면복권되셨고, 지금은 문화연구교류센터를 만드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무나 사서 봐도 된다. 안 잡혀감.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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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swan (2010)

見.聽,感 2011. 3. 21. 11:37


먼저, 난 이 영화를 절대 몰입해서 보지 못했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영화의 내용이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복도 건너편 줄에 앉아있던 여인네가 극장 안에서 쉴새없이
핸드폰을 깜박거리면서 문자질을 하는 통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저주있을 지어다 너, 정신빠진 여자여!
하여간 그 덕에 난 정서적 교감이 일절 차단된 상태에서 영화를 관조적으로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기본 틀은 언뜻 보면 [욕망과 파멸]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희구, 없는 것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 야망의 완성을 위한 희생 정도랄까.

하지만 멍하니 보고 있자니 영화의 주제가 전혀 다른 것이 되더라.
[각성과 회복과 성취]일 수도 있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객의 기본적인 틀을 어디에 놓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하고 가냘픈 소녀로써 촛점을 맞춰야 할 것인가.
아니면 순진무구하고 가냘픈 소녀로 키워지도록 종용받은 마녀로 봐야 할 것인가.

나는 극 초반부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그 망할 휴대폰녀가 계속 깔짝대는 덕에 나탈리 포트만과 휴대폰녀를
거의 1:1의 비율로 장면전환하며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탈리 포트만이 여리여리하게 나오더라도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극 초반 주인공에 동화되지 않은 탓인가? 그래서 그런지 백조에서 흑조의 연기를 원하면서 오디션을 보는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은 딱 그거였다.

[포텐셜이 터지지 않은 색녀]

뱅상카셀의 느글느글한 연기도 연기지만, 자꾸 장면들을 보면서 발레영화가 아닌 쥐스트 자킨의 [O양의 이야기]가 떠오르더란 말이다. SM조교스러운 면이 이리저리 보이는데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딱 하나.

"아, 저 아이 몸 속에 숨은 불꽃이 터지겠구나.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거야. 천골천음지체란 말이지!"
 
그 생각이 들면서 그때부터 영화가 경황없이 휘몰아치면서 막판까지 사람을 쫙쫙 쪼면서 달려간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나를 막는 것들을 없애야 하는 거 아니랴.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데, 나중에 절명의 카타르시스까지 가면서 엔딩이 내려올 때, 개인적으로 나는 깨달았다.

저 마지막 표정은 딱 그거로구나. 오호라 통했구나. 색즉시공, 공즉시색. 남자가 여자랑 잔 다음에 머리가 명경지수처럼 냉정해지면서 담배무는 딱 그 느낌이로구나. 드디어 저 아이는 마지막에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거다. 라는, 지극히 형이하학적이면서도 관념적인 느낌이 들었다. 망할놈의 핸드폰녀, 너에게 감사하야 할까? 

뭐랄까, 아르노프스키 감독이 들으면 굉장히 화 내겠지만 고급에로에로영화를 하나 보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p.s)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아무래도 마법사 로드발트와 나탈리 포트만의 엄마가 자꾸 겹쳐져서 그런 것 같더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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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는 이미 SF계에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양반의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다. 나름대로 SF를 좋아한답시고 깝죽대놓고
정작 아시모프와 클라크의 저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양반의 책들이 이젠 책방에서 구하기 힘든 것도 그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어디서 모아야하나... 하여간 거장들의 SF를 다루는 시각은 결국 궁국의 시점에 가면 비슷해지는 것 같은데
수학의 궁극이 신학으로 이어지듯 SF의 사변적인 서술을 결국 우주의 생성과 그 가운에 있는 절대적인 존재. 혹은
신(神)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게 신인지. 다른 행성의 고등문명인지. 혹은 드래곤볼을 7개 모아주면 나오는 용인지 나메크인인지는 각 작가의 스토리텔링의 기법이지만 하여간 그렇게 귀결되는 듯 하다.

일전에도 인용했지만 어슐러 르 귄 여사는 SF작가, 혹은 저술가들은 문명사회에서 어떤 예언가나 천리안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는 그냥 헛소리담는 이야기꾼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탐구와 지식의 축적은 작가들로 하여금 일정수준 이상의 견해를 갖게 한다고 본다. 르 귄 여사도 그냥 자기는 이야기꾼에 불과하다고 겸손을 부렸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기존 문명사회가 작가들에게 갖는 경외감이라는 것이 그리 허황된 것은 아닌 듯 하다.
특히나 이 책이 1953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뭔가 고리타분하고 현대에 와서는 맞지 않는 설정도 있지만서도 그 독창성이나 인간의 진보과정에 대한 성찰은 눈부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역학은 나름대로 논리정연하다.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약 우리 말고 다른 종족이 외계에서 온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나가게 되는 길은 무엇일까?

이 책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중간선상에서, 절대자의 복종과 자유의지의 중간선상에서, 개인과 집단의 중간선상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뭔가 뜬금없이 이어지는 미국식 드라마 전개나 속도감이 맥을 놓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SF가 아닌 존재에 대한 함의를 가득 담은 채 끝나게 된다.
 이쯤되면 굳이 장르를 논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명작들은 결국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각기 다른 필체와 어조로 탐구해 들어가는 과정을 갖게 되는 법이니까.

지금와서 말이지만, 
이 소설 일찍 읽은 양반들이 꽤나 많은 만화와 영화에서 오마쥬를 했구나 싶더라.

문체가 아니라
작가의 끊없는 사유와 탐구 속에서 빚어진 결과물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책이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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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t - (구어) 용기, 기개, 담력, 투지. 근성.

우리나라에 더 브레이브라고 들어온 서부극 [True Grit]를 보게 되었다. 
1969년 동명의 소설로 이미 서부극의 전설 존 웨인이 주연을 맡았던 역시 동명의 영화에 대한 리메이크작이다.
우리나라에도 방영이 된 것으로 기억한다. 존웨인의 윈체스터 한손으로 돌려쏘기 (T-2 아놀드의 샷건 돌려쏘기는 나름대로 전통이 있는 방식이라는 것)가 나오는 것이 기억나는 것으로 봐서 분명 공중파에서 본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용기있는 추적] 인지 [진정한 용기]인지 하는 제목으로 나왔는데...고전적인 제목이 훨씬 
원제와 부합하는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1969년 작 True Grit이라면)

(이것이 2010년 판이 되겠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나선 당찬 10대 꼬마소녀. 소녀를 돕는 연방보안관(이라고 직함은 되어 있지만 실상은 소녀가 가진 돈에 눈이 팔려 범인을 쫓는 바운티헌터 늙은이),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는 텍사스 레인저의 이야기. 워낙 오래 된 고전이라 스토리는 알 사람 다 안다고 생각하고 써 놓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리메이크를 맡은 코엔형제는 영화와 소설에 충실하도록 각색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두 영화를 다 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2010년 판이 훨씬 대사가 많고, 사실적이며, 보다 하드보일드한 편이라고.  

존 웨인이 맡았던 역을 계승한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는 화경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세상을 거칠게 살아온 낡아버린 총잡이의 역할.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보이는 지치고 자조섞인 노인의 모습은 그대로 1800년대 서부에 던져놓아도 될 성 싶다. 맷 데이먼 역시 재미있는(아.이건 봐야 안다)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14살로 여주인공을 꿰 찬 (실제 소설 주인공의 나이가 아마 이럴 것이다. 69년 판에서는 그래도 20대의 킴 다비가 맡았는데)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딱 부러지는 연기력이다. 막말로 영화 다 보고 나오면서 저런 딸내미 하나 있으면 두세번 집안이 망가져도 금새 복구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코엔형제의 연출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예전 [아리조나 유괴사건]부터 [더 브레이브]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상을 찾으라면 [불가항력에 대한 인간의 하잘것 없는 운명, 그리고 노력에 대한 허망함]이 짙게 깔려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광할한 우주의 운행에 따른 거대한 숙명의 파도가 아니라 장난같은 잔물결이라는 의한 미미한 결과물이라는 말투다. 당연한 것 같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개인적으로는 웨스턴을 중국무협만큼이나 좋아한다. 세상은 어차피 회색으로 뒤엉켜있다고 사람들이 믿지만 종국에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검은 색과 하얀색이다. 그래서 배짱좋게 애매한 경계를 갈라버리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거나 감동을 받는다.  이 영화 역시 마지막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되고 인간은 그렇게 마감되는 것일게다. 오랫만에 웨스턴의 아련한 냄새가 그리워지는 분들꼐는 추천하고 싶은 영화.

하지만 대다수 한국관객들에게는 버림받고 있는 영화인 듯 하다. 이미 극장에서는 작은 상영관으로 옮겨가 버렸고, 조금 뒤면 극장에서 간판을 내릴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서부극과 무협이 통하던 시대는 지나도 이미 한참 지났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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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건 크게 두 가지다.
책의 주된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는데

그 첫째는 스페인 내전에서 조지오웰이 당한 부상이라는 게 나는 무슨 팔이나 어깨에 파편이라도 맞은 줄 알았는데 내 예상수준을 넘어서는 엄청난 중상이었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총알이 넘나드는 사지에 남편이 자원해서 입대하고 타국 전쟁에 자원해서 나갔는데 사지까지 쫒아가서 후방에서 지원을 해 주는 부인의 든든한 내조(?)에 또한 놀랐다. 부창부수라더니, 확실히 그런 것이구나...

각설하고,

책의 제목처럼 카탈로니아를 찬양하기위해서 조지 오웰이 쓴 글은 아니다. 스페인 내전의 짧은 4개월동안 겪은 그의 전쟁수기, 시가전, 부상, 내전, 그 안의 내흥까지 엮어서 펴 낸 이 수기는 어떤 실패한 아나키스트들의 회환같은 것이 잔뜩 들어있는 내용이다.

혁명은 오직 진행될 때만 건강하고 장미향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완성되는 혁명은 금방 시들고, 건강함은 소진되어버린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은 탐욕과 착취여서, 이성이 갈구하는 이상향은 절대로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평등한 세상]은 우아하게 휘발되어 날아가는 불꽃과 비슷하다. 존재하지만 영속하지 못한다. 조지 오웰은 그것을 목도하는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며 행복해 하고 절망한다. 조지오웰은 프랑코의 독재가 스페인을 완벽하게 점령하지 못하고, 아직 스페인이 내전을 계속하고 있는 당시에 이 책을 펴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안에는 희망이 담겨져있다. 그리고 저항정신이 충만하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를 사는 우리는 안다. 
스페인 내전 후 스페인에는 무엇이 남겨졌는지를. 조지 오웰도 목격했으리라.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 깊숙하게 뇌리를 간지럽혔다.


p.s) 소년 H 와 카탈로니아 찬가를 추천해주신login님게 감사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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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만에 2권짜리 책을 완독하면서
왜 이 책을 이 늙은 나이에 읽었을까 싶었다.



2차대전 말기,
고베시에 살던 소년(저자)이 전쟁이라는 광기에 중독되어 사리분별을 잃어가는 국가에 살면서
어떻게 가족간의 유대를 지키며, 친구들과 어떻게 살아가고, 지역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가에 대한 소설이다. 

저자의 집안배경은 좀 독특하다. 일본에도 몇 안되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났고,
항구도시 고베에 살면서 어릴 때부터 외국인들을 보면서 자라고
정치적으로 놀랄만큼 매서운 식견을 가진 아버지와 활달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가 보는 시선은 놀랄만큼 객관적이다. 동시에 이것은 황국신민을 표방하는 대다수 일본인들 사이에서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지 않았음도 소설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전쟁은 참혹하고, 가난은 사람을 무너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안에서 문자향을 남발하는 [휴머니즘]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책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지성을 자극하는 책이 있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유희를 제공하는 책이 있다.

그런데 그 중 드물게 [착한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착한 책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좋은 말, 쉬운 말만 써 있어서 착한 책이 아니라
쓴 사람의 마음이 묻어나는 책이 가끔 나오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유형이 아닌가 싶다.

20년 전의 나에게 읽히고 싶은 책.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면, 그 부모에게 읽히고 싶은 책.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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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천재뮤지션, 영혼의 작곡가라 불리다가
어느 순간 [표절의 여왕]으로 가치가 급락해버린 비운의 여성작곡가. 칸노 요코의 스코어는 참으로 하늘의 별처럼 많다. 작곡이건 표절이건 정말 엄청나게 쏟아넣었다는 것을 보면 그 정력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지만...하여간 [카우보이 비밥]은 남아있지 않을가. 표절의혹의 곡들과 함께.

(이 양반이 우리영화 [우아한 세계]의 영화음악을 맡았다는 건 이제 다 기억하지 않는다. 우아한 세계는 송강호만이 남아있을 뿐, 영화음악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송강호가 강렬했기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음악이 있고 이 양반이 음악을 맡은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중 하나는 [천공의 에스카플로네]에 삽입되었던 이 음악이다.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개인적으로도 좀 병맛스토리였다고 생각하는데 나름대로 괜찮은 메카닉 디자인과 배경설정에도 불구하고 죽쑨데는 두 가지이유. 주인공들이 웃기게 생겼다는 것. 또 하나는 그 때 이 만화랑 같이 붙었던 게 [신세기 에반겔리온]이었다는 것. 에반겔리온은 그 뒤 사골겔리온이 될 때까지 주구장창 뽑아져 나왔지만 에스카플로네는 극장판 한번 나오고 뭐...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니매이션의 스코어는 강력하다못해 치가 떨릴지경이다. 칸노 요코도 꽤나 심혈을 기울인 듯 관현악에서 뽑아 낼 수 있는 화성과 코러스, 그리고 찬트까지 온갖 몽환적인 요소를 다 뽑아넣어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이 [Epistle]

얼핏 들으면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한 소절처럼 들리는 소프라노의 하이피치와 남성부의 저음이 번갈아 교차되면서 빠르고 묵직하게 흘러간다. 찬트를 가지고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몇 안되는 음악. 사실, 애니메이션 스코어라는게 길어봤자 3-4분이니 그 정도의 긴장도만 잡아주면 되고 중요부분의 테마로 쓰이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을 볼 때, 상당히 완성도 높은 음악 아닌가 싶다. 그리고 빠른도입 - 변주 - 빠른후주로 이어지는 부분은 천재 코른골드가 클래식에서 헐리우드 스코어로 끌고 온 공식 [축약된 18세기 심포니]의 영향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난 클래식 매니아 수준은 아니니 그냥 이 사람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그러고 넘어가 주시길...)

이걸 듣다보면 참 아깝긴 하다.
어쩌다가 표절대마녀라는 길을 가게 되셨나. 그냥 천천히 여유롭게 쓰고 싶은 노래를 생각해 보지.

이 노래도 표절이면 뭐 할말 없음이다만.

p.s) 에스카플로네에서 이 노래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shilly, 뭔가 야릇하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냄새가 나긴 하는데
      그래도...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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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the pine trees linin' the windin' road
굽은길 줄지어 서 있는 소나무들처럼

I've got a name, I've got a name
나도 이름이 있네, 나도 이름이 있네

Like the singin' bird and the croakin' toad
지저귀는 새들과 개굴대는 두꺼비처럼 

I've got a name, I've got a name
나도 이름이 있네, 나도 이름이 있네

And I carry it with me like my daddy did
나도 내 아비처럼 이름을 지녔지만

But I'm livin' the dream that he kept hid
난 그가 잊고 살던 꿈속에서 산다네



Movin' me down the highway
드넓은 길로  지나가세
Rollin' me down the highway
광할한 길을 달려가세
Movin' ahead so life won't pass me by
삶을 흘려보내지 않도록 움직이세 


Like the north wind whistlin' down the sky
하늘에 기적처럼 소리내는 북풍 처럼

I've got a song, I've got a song
나도 노래가 있네, 나도 노래가 있네

Like the whippoorwill and the baby's cry
쏙독새 울음처럼, 어린아이 울음처럼

I've got a song, I've got a song
나도 노래가 있네, 나도 노래가 있네

And I carry it with me and I sing it loud
난 노래를 지니고 다니며 크게 부르지만

If it gets me nowhere, I'll go there proud
성공못한다 한들, 나는 자랑스러울 거네

Movin' me down the highway
드넓은 길로  지나가세
Rollin' me down the highway
광할한 길을 달려가세
Movin' ahead so life won't pass me by
삶을 흘려보내지 않도록 움직이세


And I'm gonna go there free
그럼 나는 자유를 얻겠지


Like the fool I am and I'll always be
난 바보같고 항상 그럴테지만

I've got a dream, I've got a dream
난 꿈이 있네, 난 꿈이 있네

They can change their minds but they can't change me
사람들은 생각을 바꿀수 있지만 나를 바꿀 순 없네.

I've got a dream, I've got a dream
나는 꿈이 있네, 난 꿈이 있네

Oh, I know I could share it if you want me to
자네가 원한다면 꿈을 나눌 것이고

If you're going my way, I'll go with you
같은 길을 걷겠다면, 동행이 되겠네

Movin' me down the highway
Rollin' me down the highway
Movin' ahead so life won't pass me by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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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묻노니,
그대여, 세상이 그대에게 억울함을 뒤집어 씌운다면 그대는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1.
2009년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가 2010년 여름 끝물 대한민국의 극장에 소리소문없이 걸려있다. [골든 슬럼버]. 극중에도 나오지만 비틀즈의 노래. 그리고 원작자 이사카 코타로가 지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원저는 읽어보지 않고 아직 목차밖에 보지 않았지만 시공간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인물들의 환경을 잡아놓은 스타일같다. 

원저를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에 대해 날선 비평을 하게 된다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원작극화]들의 한계이다. 어떤 영화도 책을 따라갈 수는 없다. 책은 텍스트로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도구이다. 타인이 만든 영상으로 내 자신의 상상력을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각설하고, 이 영화는 스릴러이면서 고발극인 동시에 신파이며 인간드라마다. 어정쩡한 두가지를 다 갖고있기 때문에 두개를 다 만족시킨다 말하기 힘들다. 극의 내러티브가 너무 성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만들었다고 말할수도 없다. 순간순간의 화면이 관객에게 힘있게 어필하고, 특히 과거회상 장면들은 잔잔하지만 무게가 있다. 
뜬금없는 인물설정만 제외한다면 정말 괜찮은 웰메이드영화.

2.
1번의 구구절절하고 기술적인 영화평을 떠나서 서두에 다시 집중해본다.

[ 세상이 그대에게 억울함을 뒤집어 씌운다면 그대는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아니, 까놓고 말해서 의지할 무언가가 있기는 한가?
  신(神)말고, 이 물질세계에서.]

아직 상영중인 영화라서 뭐라 세세하게 적지는 못하겠다.

영화는 그 중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수많은 가능성중의 하나이고,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니.

개인적으로는 정답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에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나

이런 생각도 들긴 하더라.

오랫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개인적인 무거움을 가지고 돌아온 영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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