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시간에 정말 짧게 할애되어 있던 이슬람문명의 특색, 그 중에서도 유명저서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이븐 바투타]여행기라는 것이다. 이 양반은 탕헤르(탠지어)출신의 이슬람 율법학사로
요즘식으로 쓰자면 [공무원 신분으로 세계일주]를 하신 양반이다.
북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아라비아왕조를 거쳐 인도 (여기서 벼슬까지 했다..능력자) - 중국을 거친 뒤
다시 집으로 왔다가 스페인쪽으로 돌았다가
다시 집으로 왔다가 사하라 사막을 남행하여 (뭐야 이 사람) 중앙 아프리카까지 돌아보고 온
요즘 세상이라도 하기 힘든 세계탐방을 30년간 한 사람이다. 그냥 교과서에서 지나가는 식으로 본 인물치고는
너무나도 광범위하지 않은가.
하여간 그렇게 돌아다니니 술탄이 그동안 보고 들은 거 다 적어보라고 해서 글을 쓰고, 그걸 시인이 다시 짧게 각색해서 내 놓은 책이 이 여행기이다. 당시의 이슬람 문화와 지명과 관직, 경제와 도시발전까지 이르는 중세 근동의 이야기를 굉장히 소상하게 써 놓았다. 아직 첫 원행의 처음부분을 읽고 있는 상태다.
정통 무슬림들의 이름이 너무 헛갈려서 진도를 빼지 못하는 것도 있다.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는 애들 장난이더라.
하여간 이 책을 나름대로 거금을 투자해서 읽고 있는데...서문에 이슬람 음차의 고유발음과 지명을 살리려고 애썼다는 역자의 설명이 장황하게 써 있고, 이슬람문자 간단히 읽는 법까지 써 있었다.
상당한 노고와 공이 들어간 책이구나 하고 역자 이름을 봤다. 정수일 교수.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정수일이라고 하면 잘 모른다.
[무하마드 깐수]라고 하면 알아도.
-2-
정수일. 무하마드 깐수
중국출생의 한국인.
북한과 남한 두 군데에서 대학교수를 역임한 사나이.
중동과 동남아에서 10년 넘게 교수직을 하면서 살아 온 학자.
현재 대한민국에서 내 놓을 수 있는 중동연구가. 아랍통, 문명연구학자.
그리고 [간첩]으로 알려져 사형언도까지 받은 사내.
이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옥중에서 번역한 글이다.
5년이란 세월동안 그는 모국어로 아랍의 고전을 번역했다.
혹자는 그랬다. 이 분이 사형언도를 받고도 계속 감형이 되어서 복권이 된 이유는
북한과 10년 넘게 통신을 했지만 별반 중요한 정보를 준 것이 없는 것도 그렇고
더 큰 건 이 사람은 사형시키면 안되는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더 커서였다고.
아랍어를 포함해서 12개국어를 소화하고, 감옥 안에서 왕오천축국전과 이븐바투타 여행기를 초역해 내는
경이로운 천재를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듯 하다. 어쩌면 남한 정부는 '분단된 조국을 위해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든 생각'이 간첩활동이었다는 정수일교수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분의 사상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직접 배워본 적도 없고 인연도 없으니.
하지만 나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는 말을 믿는 편이다.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다. 고대 아랍인들의 관용어구 하나하나를 다 번역해 놓은 그의 역저를 보면서
이 사람은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자 재사로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03년 사면복권되셨고, 지금은 문화연구교류센터를 만드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무나 사서 봐도 된다. 안 잡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