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C. 클라크는 이미 SF계에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양반의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다. 나름대로 SF를 좋아한답시고 깝죽대놓고
정작 아시모프와 클라크의 저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양반의 책들이 이젠 책방에서 구하기 힘든 것도 그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어디서 모아야하나... 하여간 거장들의 SF를 다루는 시각은 결국 궁국의 시점에 가면 비슷해지는 것 같은데
수학의 궁극이 신학으로 이어지듯 SF의 사변적인 서술을 결국 우주의 생성과 그 가운에 있는 절대적인 존재. 혹은
신(神)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게 신인지. 다른 행성의 고등문명인지. 혹은 드래곤볼을 7개 모아주면 나오는 용인지 나메크인인지는 각 작가의 스토리텔링의 기법이지만 하여간 그렇게 귀결되는 듯 하다.

일전에도 인용했지만 어슐러 르 귄 여사는 SF작가, 혹은 저술가들은 문명사회에서 어떤 예언가나 천리안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는 그냥 헛소리담는 이야기꾼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탐구와 지식의 축적은 작가들로 하여금 일정수준 이상의 견해를 갖게 한다고 본다. 르 귄 여사도 그냥 자기는 이야기꾼에 불과하다고 겸손을 부렸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기존 문명사회가 작가들에게 갖는 경외감이라는 것이 그리 허황된 것은 아닌 듯 하다.
특히나 이 책이 1953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뭔가 고리타분하고 현대에 와서는 맞지 않는 설정도 있지만서도 그 독창성이나 인간의 진보과정에 대한 성찰은 눈부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역학은 나름대로 논리정연하다.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약 우리 말고 다른 종족이 외계에서 온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나가게 되는 길은 무엇일까?

이 책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중간선상에서, 절대자의 복종과 자유의지의 중간선상에서, 개인과 집단의 중간선상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뭔가 뜬금없이 이어지는 미국식 드라마 전개나 속도감이 맥을 놓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SF가 아닌 존재에 대한 함의를 가득 담은 채 끝나게 된다.
 이쯤되면 굳이 장르를 논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명작들은 결국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각기 다른 필체와 어조로 탐구해 들어가는 과정을 갖게 되는 법이니까.

지금와서 말이지만, 
이 소설 일찍 읽은 양반들이 꽤나 많은 만화와 영화에서 오마쥬를 했구나 싶더라.

문체가 아니라
작가의 끊없는 사유와 탐구 속에서 빚어진 결과물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책이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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