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게

작은 방 한담 2009. 3. 20. 01:19
언제부터인가
그날 자고 그날 일어나는게 되어버렸다.

충동적으로 홍대까지 밤에 가 버렸는데
내가 알던 홍대는 이미 아니더라

사람도 움직이고 시간도 움직이고
내가 자는 동안 도시는 살아 움직이는데

왠지 나 홀로 우두커니 멈춰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나이먹는 거구나.

아무리 우스운 말을 해도
내 웃음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의 세대는 나와 함께 정해진 채 흘러가고
진지하지 않게 말을 해도
내 아랫사람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된다는게
아마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일게다.

서럽다는 생각보다
이제 좀 나이가 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음이
오히려 경이로울 뿐이로세.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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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연예버라이어티에 출연해서
가슴 찌르르하게 만들고 나가버린 문성근.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겪고 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될 것이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는 말을
타인도 아니고 가족이, 그것도 자식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아버지라면
그 인생이 참 복된 것 아니었겠는가.

풍찬노숙으로 대의를 위해 싸워도
가족이 알아주는 가장이라니.

사내들이 자식을 낳으면,
특히 아들을 낳으면 당사자가 가장 바라는 것이
[존경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라고들 한다.

호랑이 자식에 강아지 없다지만
그걸 만드는 건 호랑이 자신일테지.

사람에게 결국 남는 것은 결국 이름이 갖는 무게.
늦봄은 고생은 했지만 행복한 사람이었으려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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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회원님이
"할 일이 생각나지 않으면 오락이라도 하세요"
라는 충고(?)를 해 준 덕에 오랫만에 봉인해둔 스파4를 야심한 12시경 붙잡고 있었는데

뒤에서 여자 두 사람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가 갑자기 쭈빗.

'이거 뭔가...스테이지 배경음악인가'
하고 그냥 넘긴 채
다음 판을 하고 있었는데

또 다시 두명이 뒤에서 속닥거리는 소리.

0.0

당연히 무서워야 하는데
무주공산같은 집 안에 여자 목소리가 둘이나 들리다니!
할렐루야(?) 하면서 두리번 거리며 목소리 난 곳을 찾아봤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 실망한 채 스파4를 한 번 더 클리어 하고
지금까지 깨 있는데....

쳇.
츤데레같으니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적으로 벽이 좁은 화장실쪽으로
여자 두명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그런데 여자 둘이 왜 화장실에 들어가?
옆집에 딸이 있긴 한데...엄마랑 속닥거린걸까?

바로 뒤에서 들린 것 같은데
음향학적으로 회절이나 간섭이 있었겠지.

경건하게 손발 닦고 잠이나 자야겠다. 혹시 아나?
머리 푼 미소녀 둘이 다소곳하게 나타나서
원한을 풀어주소서~ 할 지..
^^ 홍홍홍

즐거워할 일이 아니잖아 ㅠ.ㅠ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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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한대로 영혼을 담아서 샌드백을 치려고 하다가 손목이 꺾일 뻔 하고
줄넘기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단의 여성들이 우르르르 들어왔다.

화보 촬영장소로 체육관을 빌렸단다
(관장님 뭔 생각잉...)

그러더니 길쭉한 여성 한 분이 여자 탈의실로 들어가더니만
갑자기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것이당

컨셉이 결혼컨셉이란다.

사각의 링 위에서...


야, 정말 피와 땀이 흐르는 컨셉이구나.

도시의 수도자처럼 조용히 샌드백을 치러 왔건만
봄바람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오니
사람이 머리 둘 곳이 없다.
그냥 대충 샤워하고 집으로 도망옴...

수건도 안 가져가서
대충 털고 물을 뚝뚝 흘리면서 집까지 왔는데
하나도 춥지 않더라

사람들도 봄이고
하늘도 봄이로구나.

에라이.

* 근데,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궁상 캐릭이 되어버린 건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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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대화

작은 방 한담 2009. 3. 18. 15:01
(두 사람이 같이 제품출고를 위해 수작업 중. 경비를 아끼려고 박스작업질...~)

N: 형 요즘 안정되어 보이십니다.
H: 바라는 게 없으니까 잃을 것도 없지.

N: .....

H: 왜?

N: 그냥~ 저녁에 뭐할거예요?

H: 영혼을 담아서 샌드백이나 칠거야

N: 요즘 주변에 파혼테크도 많고 막장크리 맞는 사람이 많네요

H: 내 주변도 그렇다

N: 남는 건 친구뿐

H: 남는 건 옛 친구 뿐.

N: 친구들이 많다는 것도 복이죠

H: 친구들도 돈 없으면 떠나가는 게 세상이고, 돈 없을 때 사귄 친구들은 돈 생기면 떠나가는 놈들도 허다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떠나가고, 자기보다 잘 났다고 질시해서 떠나가고.
    결국 남는 건 세상살이 같이 살면서 남아있는 친구들 밖에 없어.

N: 왜 그렇게 비관적이 됐수

H: 그냥. 가끔 은행에 남아있을 때 생각을 하곤 하는데...그 때 만약에 그렇게 했으면 지금쯤 그렇게 되었을까?

N: 형이 가장 얼굴이 처절하고 건강이 안 좋아보였던 게 은행있을 때야.

H: ........그랬구나.

N: 빨리 상자나 접읍시다.

H: 그럴까.

오늘은 1000개만 접고 퇴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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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훈련

작은 방 한담 2009. 3. 18. 14:49

-.- 5년차 이상부터는 비상교육만 1회 실시한다는군

차라리 오전에 불러줘서 4시간 정도 꾸벅꾸벅 졸다 오게 해 주지...
야밤에 부르다니~~~~~


(오! 자네 아직 젊구만.
 조국을 위해 도가니가 나갈 때까지 봉사하지 않겠나?)


삼정이 문란하면 나라가 망한다는데
결국 끝까지 나라를 지키는 건 민초들이려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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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37절 하반절.

...
음식점 머그컵 안쪽에 인쇄되어 써 있던 글귀.


그냥 실쭉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것저것 정비해야 할 삶의 도구들이
참 여러가지로구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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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만
가겠다 하는 곳은 언젠가 가는 종류의 사람이니
언젠가는 가리라 마음 먹은 곳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예전에 들려봤던 체코의 프라하와 체스키 크름로프인데..그렇게 절박하진 않고.
또 한 곳은 이 곳, 카미노 데 산티아고. 일명 순례자의 길.

사실 지명이 아니라 도보여행의 길이다.
예전 성 야곱이 유럽에 전도를 하기 위해 걸었다는 그 기나긴 800km의 도로를
도보로 걷는 여행을 이야기한다.

프랑스 생 장피에드포르를 출발해서 피레네를 종주해서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걸어가는
(한니발이나 나폴레옹도 아니고 이런 전도여행을 하다니...)
장장 800km의 도보여행.
하루에 7시간의 도보. 약 90리의 길을 걸어가며
자연을 보고, 건물을 보고 포장 안 된 흙길을 걷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한 번 걸어보고 싶다.
유럽에서는 꽤냐 유명한 도보 여행코스라고 하고
한국인들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란다. 

아마 나이가 좀 더 든 뒤에 혼자, 아니면 뜻과 영혼이 맞는 이와 함께 걸어가고 싶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 덕에 유명해진 길이긴 하지만
나는 이곳은 [시사인]을 동해 처음 기사를 접해 보고
꼭 한 번은 걸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홀로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같이 걸으면서 삶이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겠지.
이도저도 아니면 불평과 불만이 터져나오는
지옥의 천리행군이 될지도.

언제쯤 저기 갈 정도의
시간적 여유과 금전적 자유로움이 허용될까?

지금으로써는 난망한 일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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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88권 중에서 가장 읽기 힘든 책이었던 한스 페터 리히터의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는
이미 시중에 단행본으로 발간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굉장히 분량이 작은 소설인데 이 책을 읽는데 1주일이나 걸렸다.
[에이브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읽기 힘든 책] 중에 하나로 꼽히는 이유가 있다.
워낙에 거북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평범한 독일 중산층 가정의 아이로, 옆집 유대인 친구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의 일생을
지켜보는 관조자로 나오는 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나치스의 독일.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없다.

이 책이 중학생 필독 서적으로 꼽혔다는데...아직까지 그런지는 모르겠다. 난 어릴 때 이 책을 읽을 엄두가
안 나던데. 나이가 지긋한 지금 읽어도 기분이 나빠지는 책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에이브의 2,3,4권은 거의 독자를 인간환멸의 테크트리를 타게 하는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2권 - 에릭 호가드의 조그만 물고기 : 2차대전 때 박살난 이태리의 거지 소년과 소녀 이야기
3권 -제임스 콜리어의 형님 :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편 아버지와 독립군 자식간의 대립, 결말은 정말 극악무도.
4권이 이 책,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이다.

에이브를 기획한 이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이 시리즈 중에 독일작가가 쓴 나치스 시대의 글이 2편이 있다.
하나는 이 책이고, 또 하나는 독일 청년 징집병의 이야기  [아버지에게 4가지 질문을]이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국내의 전쟁도 아니고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참패를 한 국민이
이렇게 스스로의 참회록을 소설로 쓸 생각을 하다니. 뼈저린 반성이 아니라면 나오지 못할 글들이다.

거진 이 소설을 20년만에 읽었다. 
읽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번 주 일요일에 잠시 서점을 들렸는데 화들짝 놀란 일이 하나 있었다.
[히틀러와 제3제국]에 관련된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와있더라.
너무나도 섬찟했다.

경고인가? 
출판인들은 어쩌면 뭔가 느끼는지도.
혹은 히틀러를 벤치마킹하자는 경영서적이었을지도.

어쨌건 지금 시기가 평범한 시대는 아닌 듯 하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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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졸라서
[도나스]를 해 먹던 기억이 있어서였을까
어머니는 시장통 어디서 보셧는지
계피가루와 설탕을 같이 섞어서
죽죽 늘어지는 밀가루를 재주좋게 링으로 만들어 설탕을 버무린 뒤 튀겨주셨더랬다.

말 그대로 유탕제품인데 그 시기가 자라나는 성장기였으니 망정이지
요즘같은 시기에 한 서너개만 먹으면 바로 실려갔을 지도 모르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언젠가부터 먹기 시작한 도넛.

사실 대학생시절에는 먹지도 않았다.
사회생활 하면서 바쁜 와중에 아침은 먹어야 겠는데
우유를 먹으면 속이 안 좋은 부실한 신체조건때문에 시리얼을 고사하고 있으니
남은 대안이라고는 도넛이나 식빵정도.

그래도 식성이 아이 취향인지 달달한 것을 찾아 도넛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내 뱃살을 채운 것은 팔할이 도넛이었으리라.
그나마 와플이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도 트랜스지방의 향연에 빠져
죄많은 인생을 살고 있을 터. 

시작은 던킨으로 시작해서
크리스피크림에 중독되었다가
미스터도넛으로 넘어간 뒤
마지막은 뉴욕도넛 팩토리에서 끝났지만.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도넛을 그렇게 먹기 시작한 건
아침을 먹기 위해서라는 실제적인 명분뿐만은 아니었다.


(이 인간 때문에 좋아진 것 같단 말씀....)

...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먹을까.
몸에 안 좋아서 안 먹는 것 뿐일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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