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월요일

수련장 2008. 11. 17. 01:22
취생몽사하는 것도 아닌데 훌쩍 시간은 지나가서 벌써 월요일이 되었네
그러고 보면 사람인생이라는 것이 정말 뜬구름처럼 쉽게 시야에서 잊혀지는 것인데
그 짧은 시간동안 슬퍼하며 기뻐하며 그리워하며 토라지며 화를 내며 사는 것 또한 우습구나.

이 짧은 시간동안
몸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으면 병이 들고 사람을 건사하지 않으면 외로워지고 일을 하지 않으면 굶게 되며 용기를 내지 않으면 얻지를 못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더 짧은 시간 내에 미련해 지는 것이 사람이니 정말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무언가로 채워지지 않는 한 사람은 늘 결핍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결핍을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면 또한 사람은지치고 슬퍼지고 그로 인해 생에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 누군가 아는 지인이 말했지만 현상유지라는 말은 정말 가공할만큼 의미심장한 이야기라. 늙으면 젊음을 유지할 수 없고 명민함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인데 현상유지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의 절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이들고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줄어든다. 단지 돈만이 시간과 노력에 관게없이 들쑥날쑥할 뿐. 바꿔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돈은 시간의 법칙이나 자연의 인과율을 따르지 않는 극히 불가해한 존재일 뿐이다.

요즘 부모님이 잠이 부쩍 줄고 눈이 어두컴컴해 지셨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내가 봤을 때는 충분히 밝은 조명 아래서도 뭔가 어둡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게 인생이랄까.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아아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구나.
벌써 11월도 중순으로 넘어서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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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으면

작은 방 한담 2008. 11. 15. 12:23
사람이 보통 때보다 한 20%는 명랑해지는데

문제는 그 다음 날.

결론.
아침에 두통으로 혼났다는 정도.

내가 겪어본 최고의 숙취는 막걸리였는데 어어~ 그건 정말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거제도에 놀라갔다가 막걸리 2통을 먹고 (거진 다 먹었던 듯) 배불러서 기분좋게 잤는데
다음날 외도까지 배타고 가다가 죽는 줄 알았음
아버지 내 여기서 빠져죽소 하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니~ 아니, 이것이 아니고...

그래서 나이들면
독주를 먹어야 하는 모양이다.
위스키나 럼은 양으로 승부하기에는 독하기도하고 값도 비싸니까...
그나마 덜 취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내년에 경기도 어렵고 사업도 힘들고 그러면
기본적으로 접대나 스트레스 때문이나 술을 찾게 될 경우가 비일비재 할 것 같은데
그건 또 어떻게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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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 같은 거 말고 
명리학으로 오행 음양 간지를 다 따져본다는 인생총운...(야, 진짜 요즘 별 짓거리 다 한다.)

식신이니 관재니 편인이니 하는 [전문용어]가 튀어나오던데 그런 건 하나도 모르겠고 그냥 죽 읽어보는데도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역시...봐도 모르는 것이라면 알 도리가 없다.

무슨 운성 어쩌구 하는게 있던데 이건 Astrology비슷한 이야기 같더라. 그래서 그러려니...

원래 기독교집안이고, 이런 쪽은 신봉하지 않지만 동양철학이라는 것이 서양처럼 1+1=2의 개념이 아니라
어떤 조건이 어떤 조건과 만나면 상충하거나 협력한다는 기본적인 화합론이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라도 천변만화한다는 가변성이 존재한다. 좋은 사주가 있더라도 이게 시와 일에 따라 존재하는
다른 조건과 상충하면 좋은 사주라도 사람운명은 안 좋게 나올수 있다는게 이쪽의 주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쪽에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강조되는 것은....심신수양. 그렇지. 마음을 옳게 먹는게 제일이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게 10대 대운이라는 항목이었다.
내 인생에 온다는 10번의 대운.
오호라. 이게 언제쯤 온다는 거야 (이럴때는 솔깃)

신해년부터 시작이군.
신해년이 언제야.
올해가 무자년...


2031
2031?
2031년!
내 나이 예순 하나! 만으로 환갑!

그 뒤로 주르륵 10년이었다.

(아..하얗게 불태운 다음에 10년...)

61살부터 70살까지 내 인생의 황금기라니.

젠장 그 때 뭘 하라고



안 보는게 나을 뻔 했다.

p.s) 건강보조식품이나 알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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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메카닉, 우리말로 하면 수리공.

젠장....스타나 워크나 마찬가지지만 SCV없으면 아무것도 안 돼!
공포 호러 게임도 마찬가지!

함장이고 보안책임자고 박사고 연구원이고 다 놀아! 다!

정작 스패너 쥐고 일하는 건 나!
우주선까지 타고 항성간 메카닉 맡을 정도면 학위 몇개쯤은 주인공인 나도 있을텐데

왜 너희들은 앉아서 브릿지에서 숨어지내고
나는 공구들고 괴물들 썰어가면서
나만 [노가다]를 해야 하는 거냐!

이 게임의 줄거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함선에 에러가 수두룩하게 발생해서
거의 전장 2km에 육박하는 함선 안을
혼자서 (조수도 없이, 아 다 죽었구나) 뜯어고치고 다니다가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오오, 저 무기가 뭔지 아느냐...무기가 아니다! 커터라구!
절삭공구로 애들을 썰어버리다니...공구왕 가오가이거의 인간화랄까)

하지만 왠지 주인공은 다른사람보다 돈 많이 받을 거 같다...
저 시대에 노가다면 굉장히 많이 받지 않을까?

...국적이 대한민국이면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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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절대 망하지 않는 회사에 들어간 남편을 둔 후배녀석이 하나 있다.
결혼도 어찌어찌 하더니 스리슬쩍 난관도 별로 거치지 않고 잘 골인을 했다.
그러더니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쑥쑥 낳았다
(애 낳는게 쉽기야 하겠나. 내가 남자니까 경험이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둘이나 낳다니 요즘 세상에 대단한 체력에 배짱이라는 생각밖에는...)

그러다가 남편이 유학을 간단다.
그래서 따라 나간다네.

-.-a
그런데 난
이 친구가 뭘 하던간데 절대로 인생이 힘들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아닌 확신이 있다.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성품이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사람의 인생에 흐르는 기같은게 느껴져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 주변의 사람들이 고생하는 건 그렇게 못 본 것 같다 (난 늘 예외조항에 가까우니까 빼고)

아무런 사심없이
잘 되기를 바래 마지 않는 사람이다.
나처럼 사심없이 그냥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하는 주위의 사람이 많아서 
그만큼 잘 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도 사람의 인생은 십인십색.

겨울이 오고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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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값을 감당하기가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점점 마진이 깎여나가는 상태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년 1/4분기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제bonjo형님과도 이야기했지만
대기업이 하청업자들의 마진을 감안해주지 않는 한
대한민국 중소기업은 레밍이 될 확률이 거의 99.99%

점점 제조사들은 수도권 외곽으로 빠져서 경비를 절감시키려고 하는 반면
갑, 대기업들은 보다 빠르고 싸게 물건을 조달하려는 생각이 점점 강해져 왔다.

이런 식이면 서로 공멸이지.
작고 빠른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뒤쥐처럼 싸면서 먹어대는 수 밖에 없다.
몸의 열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먹어야 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서 엄청난 운동량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손실된 열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더 많이 먹어대야만 살 수 있다.

하, 이거 참 끔찍하구만.
어쨌건 [쥐처럼 부지런히 아둥바둥 대야 죽지않는 사회]를 만들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

으허허허 그건 오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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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고 돌고

투덜투덜 2008. 11. 6. 17:10
사람에게는 각 인간이 따라가는 거절할 수 없는 루틴이 있는 것인지
정신을 차려보면 몇 년 전에 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을 보게 되는데
과연 사람에게 운명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된다.

쉬운 길을 선택해도 그 길로 가고
어려운 길을 선택해도 그 길로 간다면
차라리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게 더 정신건강에 낫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지금 전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길이 있는데 그 길이 존재하는 지도 알지 못하고 그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하여간 그 길은 지금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사람들이나 관념이나 방식과는 젼혀 다른 것을 보여줄수 있다치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익숙한 길에 계속 들어가서 그 길을 따라 살면서 모든 고민을 조금씩 풀어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그 길을 모르는데 내가 그 길이있는지를 어떻게 알며 그 길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를 못하는데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결국 해답을 찾는 방법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환경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 현재 내 주위에서 얻어질 수 있는 해답이 아니라면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이것저것 써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던 싫던 변화가 일어나야만 계속되는 삶의 순환구조 (아무리 봐도 선의 순환구조가 아니라고 판단되어지는)가 파괴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가?
허용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허용을 말하는 것인가 내 개인적인 EGO와 선악개념과 윤리관의 확장 내지는 파괴를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근본적인 인간성과 내가 쌓아온 인생의 겅험치를 리셋시키고 다시 시작해봐야 하는 걸까?

잠깐.
이건 해 봤는데.

결국 이것도 또 다른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리사이클에 지나지 않는 건가?

무엇을 한다 해도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인 것인가?
사조성이 머리위에 뜨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아 정말 살수록 인생은 고찰할 수 없는 측정불가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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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Road 2

작은 방 한담 2008. 11. 6. 10:06

솔직히 말하자면
난 지금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런데 걷다가 길이 두쪽으로 쪼개지는 걸 보면
둘 중의 한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운명이고 팔자인 것이
이정표만 보고 가만히 서서 평생을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둘 다 솔직히 맘에 들지 않는다. 앞에 뭐가 있는지 뻔히 보이는데?

오바마 이야기도 했지만서도
잘 아는 길을 그냥 묵묵하게 돌진해 가느냐
아니면 전혀 모르는 미답의 길로 모험을 떠나냐의 문제이다.

흠.

근데 왜 나는 이딴 걸 결정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지만 고생을 사서 하는 놈은 미친 놈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아 난 미친놈이던가 미친놈이되도록 강요받거나 미친놈이 될 운명을 부여받았거나 그런 모양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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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 강동구와 서초구와 충무로 삼각지점을 잇는 랠리가 예상됨.

별수 있더냐!
하나님은 내 점심을 책임지지 않으신다. 왜냐고?
There is no Free Lunch!  라고 하시더라는 거지.

벌 수 있을 때 빨리 벌어야지....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매케인이나 오바마나 그놈들이 내 미래를 책임져 줄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으허허 오해입니다 양반은 아예 듣보잡 수준이니 논외.

빨리 끝내고 일 마무리 짓고
오늘은 도장가서 줄넘기라도 하고 싶다.

아 이 몸씁 집착같으니. 잘 하지도 못하면서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은 뭔가.
남이 보면 중년천재복서 난 줄 알겠네.

일단 이 글까지만 쓰고 랠리 시작~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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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초등학생 멱살을 붙잡고 물어보자
이 백회혈에 피도 안 마른 자식아 인생이 즐겁냐 라고 하면  십중팔구 초등학생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 냅둬 건들지마 살기 힘들어라고.
축생으로 태어나서 구관조처럼 말할 수 없는 동물들이나 그냥 묵묵하게 사는거지 인생으로 태어나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 고해의 파도에 온 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 정당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살수록 불교가 말하는 고집멸도의 삶이 확실한 진실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생들은 나이가 먹으면서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국민이 찰나의 이익에 빠져서 부나비처럼 인생을 단견하며 돌진하는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진리가 어찌 체득하지 못할 종류의 것이겠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머리는 삼라만상 우주의 고해가 다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복잡하며, 가끔은 인생 뭐있어 최진실처럼 쫑낼까 하는 급박한 결단까지 수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마당인데 하물며 나보다 훨씬 처지가 절박하고 하루벌어 하루먹는 게 안 되는 인생이라면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득도하는 삶을 사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삶을 산다는 것은 공포와 자기보상을 동시에 짊어지고 다니는 운명이다. 쉽게 목숨을 내던질 수도 없고, 자기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쉽게 발을 뺄 만한 여건이 안되는게 태반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직 고민조차 채무관계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뭐 어쩌겠어. 이것이 내 운명인 것을. 혹은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알콜이라도 혈관속에 흘려보내면서 머릿속이라도 소독되기를 바란다. 젠장,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여기면서 다음날 아침의 두통과 숙취로 [죽고싶다]를 외치면서 치열하게 사는 이율배반적인 생활의 쳇바퀴를 돌리는 시지프스의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해 진다.
몇 주 전 존경하는 목사중의 한 분이 주일날 설교에서 절망을 피해가는 법에 대해서 설교 할 때에 마지막까지 남는 말이 하나 있었으니  세상의 고민은 내가 접한 것 보다 훨씬 심각하지 않다. 마음의 문제가 훨씬 크고 그것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게 이야기의 논지였다. 옳은 말이다. 내 스스로가 만드는 공포와 절망의 구렁텅이가 현실보다 크지만 그 공포와절망은 곧 현실로 구체화 된다. 늘상 보아오는 환타지중의 하나다. 공포가 실체화 되어서 사람을 갉아먹는 부분. 그것이야말로 삶의 고난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의 짐을 덜어놓을 만큼 심리상태가 고도로 안정되어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부단한 인내와 노력뿐만 아니라 의도한 수양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늘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기, 이런 경제환경 속에서는 그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삶에서 공포를 놓지 않지만 극한으로 치닫게 되면 자기보상의 미련을 내려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존심을 버리게 되고 그 안에서 자포자기의 위안을 얻는다. 물론 이것이 종교적으로 돌아가면 본래면목을 찾을 수 있는 법열의 단계까지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현실에서 자기를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서울역 지하보도를 아침에 걷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내 모습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절망이라는 이름 대신 자신을 잃어버리고 끈질긴 삶을 영위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단지 또다른 내 자아일뿐이다. 현실과 현상태의 밑바닥을 허무는 경계선은 생각보다 얄팍하다.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지만 한 번 넘어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군사지역 철조망 같은 것이다.
이 모든 생각과 절망적인 상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선을 넘지 않고 그나마 인간다운 자존심을 회복하고 살아가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몇몇은 신앙일 것이고 몇몇은 가족일 것이고 그리고 또 몇몇은 생명을 내 주고도 꺽지 못할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일 수도 있다. 인생은 평안함이라기 보다는 고난의 바다에 떠서 언젠가 건너편에 육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부단히 노를 저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젓다가 지쳐 죽어버리는 수가 태반이고 그 누군가가 육지에 도달했을거라는 풍문만 들려올 뿐, 나 혼자 타고 있는 일엽편주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아는 사람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는 전인미답의 황량하고 야만적인 세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야하는 이유는 일단 내가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나를 보호하는 껍데기가 조금씩 얇아질수록 진행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고 슬프고 억울하고 외롭지만 어쩌랴.

이게 인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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