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도 않는 불멸의 OVA [자이언트 로보 - 지구가 정지하는 날]을 보다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되는 노래가 바로 저 노래.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다. 도니제티가 어찌 알았으랴. 자신의 오페라 아리아가 세계멸망을 앞에 두고 혼자 고뇌하는 대악당이 등장할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각설하고, 이 노래는 지구멸망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복수의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악당 겐야의 테마로 변주되어 나온다. 
오호라!
세상을 살면서 원한없는 놈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이 노래를 선곡한 건 나름대로 감독이 그 안에 무언가 이중의 복선을 넣고 싶었던 의도였을 것이다.
만화를 본 사람들은 알지만, 결국 이 드라마는 노래만큼이나 처절한 엔딩을 가져오는데
그 비극의 서두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오해
오해,
그래, 그 빌어먹을 인간사에 부도난 수표만큼이나 남발되는 오해 한 귀퉁이덕에
세상은 인류공멸의 문턱까지 왔다갔다 깔닥거리고 주인공과 우리의 무식하고 힘좋은 자이언트로보는 개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똥은 오해한 놈이 싸 놓고 뒷처리는 뭔일이 일어났는지 구분도 못하는 우리의 주인공이 해대는 것이다.

세상만사 다 그런거 아닌가.
누군가는 오해를 아주아주 열심히 해서 뼈에 사무치는 원한까지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을 만들어내는 반면, 나중에 뒷수습은 어쩌다 그 자리에 서 있는 타인들이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알지 못하면 말을 하지 마라]

누가 시장바닥에서 툭 내던진 말 같긴 해도, 이것도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황금율 중 하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상하게 보려는 눈초리가 있다고 생각되면
좀 내 스타일이 후져보이더라도 사실은 이러이러해서 어떻게 된 것이네 라고 말하는 용기도 필요한 듯 싶다.

안 그러면 
우리 중 누군가가
세계를 절단낼지도 모르지 않는가.


(지구의 운명을 애송이따위에게 맡길 순 없다!)

아아 물론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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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영국을 빛냈던 위대한 가객 톰 존스옹 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To live for today,
 To love for Tomorrow
 is the wisdom of fool"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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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hanabi]가 계속 생각난다.
학생시절, 맨 처음 소개되었던 일본영화라는 것 말고도
그 영화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영상미가 정말 진했다.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소름이 돋는다기보다 응당 저렇게 될 길을 사람이 덤덤하게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기보다는 희한한 울림을 가지면서 보게 된 영화였달까.

예전 철없고 젊었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 나도 저런 처지가 되고 저런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저렇게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닐까 "

쉬운 게 아니더라

사람이 사람하고 같이 어울려 살면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나

뒷골목 어깨들이나 이야기할 법한 [의리]라는 단어가
지금에 와서는 참 무거운 것으로 어깨를 누르더라.
사람이 사람하고 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정이 아니라 의리인것을.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알고 있는데
왜 정작 사람은 한없이 가벼운 것일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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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2010. 3. 15. 00:58
세상이 쫄딱 망했는데
너무너무 즐거운 일이 일어나는바람에
주위 사람들 눈총에도 관계없이 한없이 행복해지는 꿈을 꾸었다.

깨고 나니까 아쉬웠다.

아이 참.
그 망한 세상에 좀 더 오래 머물렀어도 될 법 했는데. 역시 낮잠이란 그런 것인가.


사람이라는 게 원래 자기밖에 모른다지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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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믿거나 말거나 2010. 3. 15. 00:50
뭐든지 끊어버리지 못하면 앞으로 가지 못하는 것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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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믿거나 말거나 2010. 2. 25. 19:43
H : (전화통화)
M: 여보세요
H: 어머니, 혹시 저 몰래 우리 집에 오셔서 냉장고를 치우셨나요?
M: 아니. 왜?
H: 냉동실이 너무 깨끗해져서 그냥 물어봤어요.
M: 네 여자친구가 치웠겠지
H: 내가 여자친구가 어디있어요
M:~
H: 뭡니까?


*. 아, 부모자식간에도 못 믿는 불신시대라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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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 날이 되었다.
세세한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이 추억인 바, 분명 체육시간 전에 교과가 있었을것이나
난 다른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지 생각나는 건 교실 책상을 뒤로 다 밀어놓고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가운데
널찍하니 만들어놓은 교실 앞마당에 아이들이 나와 춤판을 질펀하게 벌였다는 기억 뿐이다.

짜 놓은 조대로 임의대로 선생님이 시켰다는 기억은 나지만 그 순서상 우리는 거의 끝줄이었다. 손들어서 먼저 하겠다는 팀부터 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리 팀에서 선생님이 손들라는데 먼저 들 놈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어쨌건 춤만 소화하자는게 우리 생각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전체 동작만 딱딱 맞으면 안 좋은 점수야 받겠느냐는게 우리 생각이었고, 다른 놈들도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라는게 우리 나름대로의 판단이었는데...

"야, 저...저기봐."

갑자기 동료 중 한 놈이 교실 한 귀퉁이를 가리키며 [벤허]에서 베두윈 족장이 멧살라가 몰고 온 그리스 전차 보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지 않는가.

아뿔사, 청바지에 청자켓에 흰 티를 맞춰입은 일단의 사내애들이 보였다. 거기에 어디서 줏어왔는지 모두 손에 백장갑까지 끼고 있는 것 아닌가! 일단 뽀대가 다르다는게 이런 거였는데 그쪽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자유도 100%의 프리스타일 룩이었던 것이다.

"쟤들 뭐냐?"

아닌게 아니라 바로 다음이 그녀석들 차례였다. 이럴수가! 생전 처음보는 마름모꼴 대형! 게다가 그놈들이 고른 노래는 가요도 아니었다. 무려 팝! 이제는 작고하셨지만 일세를 풍미하신 팝의 황제 [마씨형님]의 노래였다. 
(드릴러 아니면 beat it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왜 노래는 생각나지 않는건가.)

지금와서도 감히 말하지만 그 친구들의 춤은 군대 [사단경연 연무대회]에 나가도 당당히 사단장표창쯤은 먹고 남을만한 것이었다. 그 박자에 그 비트에 어떻게 연습했는지 합이 딱딱 맞아떨어지는데 나중에는 거의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구경하던 우리 네명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라앉았고, 구경하던 여학생들은 우와~ 하는 감탄사를 저절로 입에 달고 있는 중이었다. 그 녀석들 춤이 다 끝나고 난 뒤 우리 네명은 고개를 교실바닥에 처박을 정도로 떨구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의  한국 발라드+인도구루 비전무용이 얼마나 높은 점수를 받을까...는 고사하고 이젠 제발 팀중에 낙제점만 받지 말아다오로  목표가 급수정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매정한 법이다. 바로 몇 팀 뒤에 호명된 우리 팀.

"야야, 사다리꼴"
본존불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

"사다리꼴로 서자고."

"누가 앞에 설건데"

"너랑 너, 그래도 우리중에 작쟎아"

네명밖에 없는데 뭔 놈의 사다리꼴. 하지만 일단 포메이션을 짜기는 해야 했으니, 결국 나와  안경친구, 두 샐러리맨이 앞에 서고 본존불과 힙합맨이 뒤에 선 자세로 무대에 섰다. 그리고 바로 시작되는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

일단 사람이 멍석에 올라가는게 힘든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작하면 오기로라도 발동이 걸리는 법이다. 음악이 나오자 연습한대로 순조롭게 우리들의 춤사위는 흘러갔고 아이들도 막판에 오니 춤 보는 것도 지겹다는 듯  무념무상의 자세로 듣고 있었다. 선생님의 표정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 아, 대충 점수는 나오겠구나 싶었다. 어서 빨리 끝내고 자리로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춤을 추다 보니 어느새 임병수의 노래는 후렴구에 도달하는 중이었다.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구루님의 비전 춤사위 시전.



순간, 교실의 공기 자체가 이상해졌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이들의 표정들이 갑자기 괴이해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여자애들이 눈이 점점 커졌고 남자애들은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러던 한 순간
우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에 대폭소가 터지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오 마이 갓.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은 열심을 다 해 활짝활짝 방긋방긋 하면서 옆으로 스리스텝 게걸음을 하는데 웃는 네놈들은 무에냐 라고 하고싶었지만 말은 못한 채 얼굴이 벌겋게 되어 화끈거리기 시작하고, 구경하는 애들은 웃느라 얼굴이 벌겋게 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애들에게 물어봤다. 왜 웃었냐고. 그러자 한다는 이야기가 
네 명 다 손은 방긋방긋 거리는데 얼굴은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는 거다. 세상에 미련을 버린듯한 네 명의 초탈한
얼굴이 방긋방긋하면서 게걸음을 걷는데 안 웃기는게 이상하지.

하여간 그 당시엔 그런 거 생각나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딱 하나!
[이 노래는 후렴구가 세번이나 있다]는 것 뿐이었다. 1절,2절, 그리고 간주후 바로 후렴

1절 후폭풍이 지나가고 다시 2절을 시작하자 웃음소리가 사그러들었다. 
그리고 안정될 것처럼 보이자마자 다시 시작되는 두번째 후렴구!
아이들은 아까보다 더 크게 웃기 시작했고 점점 모션이 커지기 시작했다. 뒹굴면서 웃는놈도 생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조차 표정이 좀 희한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공연하던 우리들은 이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관객들이 예술혼을 몰라줘도 쇼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대 매너 아닌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 네명은 정말 혼연일체가 되어 구루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간주가 끝난뒤에 나온 마지막 후렴구에서 우리는 정말 힘차게 방긋방긋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들은 웃다가 지쳐서 교실바닥에 엎어졌고, 웃다가 우는 놈까지 발생했다. 다른 건 몰라도 구루님이 말씀하신 [임팩트]하나만큼은 정말 끝내주는 무용이었던 것이다. 이제 머리는 생각하라고 달려있는 기관이 아니었다. 오직 노래 끝나기만을 계산하고 있었다. 오 주여, 제가 이 어린나이에 뭔 죄를 졌다고 이렇게 절 시험하시나요.

결국 음악은 끝이 났고
우리는 음악이 멈추고 난뒤 텅빈 무대에 남아...아니, 텅빈 무대를 어서 빨리 뒤로 하고 후다닥 관객속에 숨어버렸고 애들은 우리를 보면서 계속 키득키득 거렸다. 오 구루께서 우리를 이런 식으로 배신한 것인가. 본존불 저놈이 먼저 누나하고 사이가 좋았는지 인과관계를 파악한 뒤에 무용을 짜는 거였는데...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셨다.

"오늘 가장 잘한 팀은 둘이예요"

집중& 주목하는 아이들의 눈.

"맨 처음 팀은 팝송으로 연습한 누구누구네. 정말 딱 떨어지고 집단댄스의 강점을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두번 째..."

아이들이 선생님의 두번째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네 명. 창의적(?)이었고...무엇보다 열심히 했다는게 눈에 보였어요. 다들 웃는 상황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끝까지 자기들의 춤을 보여줬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줍니다."

믿겨지지 않는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설마 구루님의 안배가 아이들의 폭소를 유발하는 것까지 감안했을지는 아직도 미심쩍지만 하여간 선생님께서는 그 희한한 퓨전공연에 대해서 후한 안목으로 대하신 것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이 덜커덕 내려가는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본존불은 갑자기 자비하신 표정이 오만방자한 얼굴로 바뀌는 중이었고...

하여간 그렇게 해서 우리의 공연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나마 앵콜공연을 마이클잭슨 사단이 한 게 다행이었다. 우리에게 앵콜을 선생님이 요청했었다면 아마 모두 창밖으로 뒤어내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벌써 30년 가까이 흘러가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 임병수의 그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반 남아있지 않지만
가끔 소소하게 좋은 날씨에 햇살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가끔 그 때 그 광경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 것은
그만큼 그 시간의 잔상에 나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같이 놀았던 그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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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첫번째 관문을 통과한 나는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할 동료들의 면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중 한명은 나처럼 모범적 샐러리맨의 삶을 사는 도수가 좀 되는 안경을 낀 동네친구로, 행동반경과 생활양식이 거의 나와 비슷한 친구였다. 우울한 직장인의 삶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같은 그룹에 모인 것이었다.

또 하나는 스포티한 모습에 약간 껄렁대는 스타일의 친구였는데, 사람들하고 잘 노는 것 같아도 어느 샌가 둘러보면 인간들은 사라지고 영원한 단짝인 그림자와 같이 서 있는걸 발견하고 교실로 들어오는, 뭐랄까 고독한 힙합전사같은 녀석이었고
 
마지막 한 명은 반에서 떡대도 좀 있고, 남성호르몬의 발현도 상당하여 이미 코 아래 시커먼 수염이 자라있는 데다 머리도 곱슬이고 늘 졸린듯한 눈을 가진, 어느 산 대웅전에 모셔진 본존불이 보충수업을 받으러 내려온 듯한 인상의 친구로 뭔가 심도깊고 이해못할 발언으로 친구들이 경외하여 가까이 하지 않으시던 분이었다.

가히 환상의 조합이었다.
무슨 사조영웅문도 아니고, 교실 네 귀퉁이에 할거하던 우울한 영혼들이 한데 모여서 팀을  이뤘으니, 가히 실미도 부대원들에 비견되도 손색이 없는 팀원들이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는 운명공동체. 중간고사 점수가 달려있는 거 아닌가.
우리는 힙합전사같은 친구의 집에서 이틀 후에 모이기로 약속하고 이틀 뒤, 그 집에서 첫번째 안무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첫번째 관문 [친구]들과 [팀짜기]코스가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 바로 우리는 노래를 정했다. 노래를 정한 것은 본존불이셨다. 그는 우리에게 데크에 노래를 하나 꽂더니 들려주면서 말을 했다.
"이 노래가 우리한테 딱 맞는 것 같아"

노래제목은 임병수의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

임병수가 누구인가?
우리나라 역사상 아마 유일무이하게, 볼리비아에서 가수로 데뷔한 뒤 한국에 와서 가수활동을 하고 히트작을 내신 분이시다. 윤수일의 [아파트]를 [아파뜨라멘또]로 바꿔서 부르신 분이기도 하고...무엇보다 대한민국 가요사에 길이길이 빛날 바이브레이션의 소유자 아니신가. 하여지간 우리 네명은 방에 걸터앉아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를 경청하고 있었는데...

"야, 이거 여자애들이 해야 하는 노래 아니야?"
소프트 발라드 댄스곡이었으니, 누군지 모르지만 그 지적은 나름 타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갈하는 본존불.

"우리가 더 빠른 거 할 수 있어?"

침묵.

"그리고 고등학교 다니는 우리 누나가 그러는데 이게 우리들한테 잘 어울릴거래"

국민학교 재학생의 입장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누님]이라면 이미 산전수전 인생의 만경창파를 다 헤치고 삶을 관조하시는 분 아닌가. 우리 수준에서 고등학교 누님의 말은 거의 갠지스강에서 득도하신 구루(GURU)의 말씀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냥 하자"
"응"
이렇게 [선곡]도 결정.

"무용은 어떻게 해?"

"우리 누나가 좀 알려줬어."

아, 위대하신 구루의 은덕은 한이 없어라. 밤에 본존불의 머리맡에 나타나 휘영청 춤사위 한바탕을 보이고 가셨다는 누님의 비전을 우리는 본존불의 지도하에 연습하기 시작했다. 뭔가 좀 다소곳한 포즈가 많이 나왔지만 이게 어디인가! 춤이라곤 부채춤밖에 모르는 내게 감지덕지지. 우리 넷은 한창 노래에 맞춰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갑자기 본존불이 카세트를 딱 정지시켜버렸다.

"왜그래?"

"여기서부터가 중요해"

후렴구 (임병수의 이 노래를 한 번 들어보시면 알 것이다) 부분이 낭창한 바이브레이션과 함께 반복이 계속된다. 어찌 보면 클라이막스고, 여기에서 뭔가 임팩트있는 동작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본존불을 지도한 GURU님의 말이었다.  역시 고등학교는 국민학교와 레벨이 다른 것이다.적재적소에 뭔가 터져나와야 심사의원의 눈에 띈다는 것.

"자, 여기서 손을 이렇게...방긋."

"방긋?"

"햇님이 활짝 방긋."

(아..미안합니다. 비주얼이 필요해서)

"으응...그리고?"

"얼굴은 정면으로 하고 몸은 틀어서 스케이트 타듯이 오늘발부터 죽죽 옆으로~"

아무리 봐도 기괴하기 그지없는 동작이었다. 이집트 벽화에서 보는 평면구도아닌가?


"그러니까 이 상태에서 얼굴은 정면으로 하면서 활짝?"

"그렇지, 후렴이 끝날 때까지 네번 오른쪽, 틀어서 네번 왼쪽으로 스케이트 타듯이 죽죽 옆으로~"

"야 이거 이상하지 않아?"

"우리누나가 그랬어."

구루님의 말에 어찌 반박을 하리오. 얼굴 한 번 못 본 미천한 국민학생들을 위해 밤에 시범까지 보여주셨다는데. 
어쨌건 그렇게 노래가 끝날 때까지 춤동작이 짜여졌다. 왠지 성정체성이 의심스런 동작이었지만, 그 때는 찬밥 더운 밥 가릴 여지도 없었고 거기 모인 네명 모두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우리는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할 때까지 
임병수의 [사랑해사랑해 사랑해]후렴을 들으면서 안무를 반복했다. 그 때 가요기획사가 활성화되던 시절이었으면 아마 우리들의 인생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착각을 해보기도 한다.

"야, 근데 활짝 할 때 얼굴 표정은 어떻게 해?"

"음? 그런 말 없었는데. 그냥 있으면 되지. 뭐."

"그런가."

어쨌건 이렇게 마지막 관문 [안무]도 해결된 채로
운명의 댄스경연날은 다가오는 중이었다.

- continue -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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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X년 초여름인가 가을인가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시절, 

그 당시 우리들은 행복했었던 모양이다. 지금처럼 과외한다고 엄마들이 거품을 입에 물고 애들을 노란 버스에 갖다 처 넣지도 않았고, 놀이터에는 친구들과 깡패들이 우글우글 거렸으며, 학교 쉬는 시간에는 괴상한 앙케이트를 돌리는 여자애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고 학교 운동장엔 공 하나에 목숨걸고 우르르 달려가는 아이들로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난 그 해 6학년이었다. 
참으로 아쉽게도, 난 전술한 국민학교 시절의 자유로움을 그다지 좋아하지 못하는 소년이었던 듯 하다. 공놀이도 좋아하지 않았고, 하교하면 책이나 집에서 보다가 아버지와 함께 [조선왕조500년]이나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20년 뒤의 사회생활]을 그대로 예습하던 인간이었다. 말 그대로 직장과 집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살던, 
어른들이 보기엔 [참으로 모범적]이지만 나나 급우들이 느끼기엔 [참 더럽게 재미없게 사는]부류의 아동이었다.

요즘같았으면 이지메 목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절엔 아이들간에 나름대로 룰이란게 있었고 모두가 한 명을 공격하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다고 영 대인관계가 쑥맥은 아니었는지
같이 쑥덕거리며 말하던 친구들이 너덧은 있었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말을 하는 걸 받아주던 여자애들도 있었으니 
진짜 중견기업 대리의 일상사처럼 학교를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 친한 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막상 절친한 사이는 없는...고독한 도시남자의 
생활을 국민학교 6학년때부터 거듭해서 불혹의 나이까지 왔으니,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은 그 시절의 투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쨋건 그렇게 흘러가고 있던 그 해 초 여름인가 가을인가
평온한 직장...아니 학교생활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별다른 파문이 없는 학교생활을 영위하도록 힘써주신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갑자기 따스한 체육시간에 툭 하니 한마디를 던지신 것이다.

"얘들아, 이번 체육 중간고사는 협동체육으로 대신하겠다."
선생님의 이 말 한 마디가 그렇게 큰 파문을 가지고 올 줄이야.

"이번 체육 중간고사는...집단 댄스(Dance)다!"

포크댄스? 보이스카웃이 캠핑가면 사내들끼리 손을 잡고 왼쪽으로 빙빙 도는 거 말씀이신가?

"곡을 하나씩 정해라. 유행가도 좋다. 친구들끼리 안무를 짜라. 어떤 안무도 괜찮다. 너희들의 협동심을 보겠다."

엥?
이 양반이 뭐라는거야?

선생님이 편을 정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친한 애들끼리 팀을 맞춰서 
너희들끼리 곡을 짜고
안무를 만들어서
1주일 뒤에 급우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과정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친한] 애들끼리 [팀]을 짜서 [유행가]를 골라 [안무]를 짜라는데
괄호안에 들어가 있는 단어들이라는 것이 대체 나에게는 해당되는 것이 없는게 아닌가.

조선왕조500년을 보고 사극을 하거라! 라고 했다면 태조 이성계나 태종 이방원이라도 할 자신은 있었지만 춤이라고는 궁중 부채춤밖에 TV에서 못 본 난데...뭘 어쩌란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 담이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우르르 분자구조 배열되듯이 샤라라락 퍼지면서 이합집산을 하더니
지들끼리 마구 뭉치는거 아닌가!

여자애들이야 여자애들끼리 뭉치는 게 당연하고
같이 공차고 노는 놈들끼리 뭉치고
같이 장난감 만지던 놈들끼리 뭉치고
같이 껄렁하던 놈들끼리 뭉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인간은
나 밖에 없는 거다.
그나마 같이 말 섞던 놈들은 지들끼리 모여 숙떡거려
그렇다고 여자애들 사이에 청일점으로 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정말 세상에 다급한 경우 우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 이 고독하고 비정한 사회여.
혼자 탈이라도 쓰고 살풀이라도 해야하는 건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이런 천인공노할 과제를 준 선생님에 대한 적개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며 유행가라고는 [밤비내리는 영동교]밖에 생각이 나지 않고 있었는데...

"너희들 없냐? 그럼 같이 해라."
선생님의 말에 나는 불현듯 뒤를 돌아보았다.
아, 이런

나같은 놈이 세 놈 더 있지않은가.
그 세놈은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지라 쭈볏쭈볏 조금씩 모이던 중이었고
나는 재빨리 저기라도 껴야 개망신은 안 당하겠다 싶어 조르륵 달려가서 합류햇다.

그렇게 급조해서 만들어진 남자 4명
프로젝트 댄싱팀.

이미 그때 우리 넷은 다 예감하고 있었던 듯 하다.

앞으로 대충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 continue -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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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필론의 돼지라는 것은 철학자 피론이 등장하는 예화 한 토막이다.
엄밀히 말하면 피론과 돼지에 대한 일화다.

피론이 바다에 나갔는데 풍랑이 불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선창 바닥에 내려갔더니 돼지가 세상모르고 자고 있더라. 환경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철학자 역시 돼지 옆에서 잠을 자는 수 밖에 없었다...는게 이문열이 쓴 [필론의 돼지]에 나오는 예화다. 권력 앞에서 부화뇌동하는 지식인들의 무력함을 빗댄달까.

근데 사실은 이게 아니라는.

피론은 자는 돼지를 보고 감탄을 했다는 것이다.
"저것이야말로 아타락시아(Ataraxia)의 정화로다"하고.

그리스철학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 그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아타락시아라고 했을 때 피론은 그 아타락시아에 도달하는 방법을 "주위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모든 접촉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안으로 침잠하는 것" 즉, 모든 결정과 판단을 하지 않는 [판단중지의  입장]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왜?
인간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어서 사물의 성질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폭풍에 상관하지 않고 잠을 자는 돼지는 위대하다...라고한 것이라는데

이것도 맞는 이야긴지 아닌지는 믿거나 말거나.


p.s) 피론주의는 [회의주의]라고도 불리고 피론주의자는 회의주의자라고도 불린다. 흠...별반 좋은 평가를 받는 철학은 아니었던건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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