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인인가

투덜투덜 2009. 11. 27. 01:06
생긴 것과는 다르게 면전에서 싫은 말을 잘 안한다.
잘 안하는 게 아니라 거의 안한다.

일전에 중국집에 간 적이 있다. 새로 개업한 집이었다.
맛대가리가 정말 버릇이 없었다.

주인이 계산하고 나가는 데 물어봤다.
"맛은 어떠셨습니까?"

"예, 맛있었습니다."
난 이러고 나오려고 했는데, 옆에서 먹던 후배놈이
"아니오, 음식이 어쩌구 저쩌구 궁시렁 궁시렁~"하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러고 나온 담에 서로 이야기를 했다.
형은 왜 맛있다고 했느냐. 맛없다고 해 놓고.
난 이렇게 말했던 듯 하다.

"어차피 다시 올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첫 장사인데 그럼 됩니까. 그래도 이게 좋고 저게 좋고 이야기해야 장사도 잘 되고" 

"넌 다시 올거야?"

"아뇨."

"근데 왜 그래?"

"???"

일본인들은 철저하게 본심을 숨기다가 정말 친해진 다음에야 싫은 소리를 한다고 하던데.

-.-a 이거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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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갑자기 짜증이 확 나는 일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일을 복기하면서 생각해 보니
나도 확실히 내 얼굴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는 야박한 것 같다.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날 되게 유하다고 생각하는데...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잘 아는 이들은 내 성질의 과격함과 급박함을 잘 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정도로 급한 것도 안다.

친한 사람들에게도 유한 모습을 보이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딱 끊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결국은 도닦는 삶이라는게 이런 사람의 양면성을 하나로 만드는 일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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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함

투덜투덜 2009. 11. 25. 10:32
자도자도 피곤하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때가 있다.

뭔가 끊임없이 모자람이 생기는 듯한 이 느낌은 뭘로 채워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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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야 바른 말로
예전 조선시대부터도
사내라면 허우대가 장대하고 멀끔하니 생긴 헌헌장부가 뭇 여성들의 우상이었고
여자라면 단순호치에 버들가지처럼 낭창한 허리를 가진 미녀를 쫒는 법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미남미녀 찾는 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잘 난 사람들에게 남녀가 꼬이는 것도 다를 바가 없는 법이다.

단지 달라진 것이라면
없다 하여 남 흉보지 않고
있다 하여 내세우지 않던 사람들의 습성이

언제부터인가 내세울 것은 날 세우고 내세워서 
남들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믿는 풍조에 휘둘리는 것일 뿐이다.

우리집에 차 있네, 우리집은 2층이네, 우리집은 어제 뭐 먹었네 따위를 가지고 싸우는 어린애들마냥
생각없이 치기어린 일을 어른들이 하면서 트랜드니 자기특화 전략이니 하는
금방 이해되지 않는 사기성짙은 멘트로 사람들을 속여먹는 것이 자본주의의 세태다.

광고판에 있다보면 그런 생각들을 한다.
같은 말, 쉬운 말, 이해되는 말을
어렵게 꼬아놓고, 새로 만든 용어와 그림들과 도식들과 동영상을 이용해서
5초면 할 말을 50장짜리 기획서로 만들어가면
뭔가 그럴듯하게 봐 주는게 사람들의 습성이라는 것이다.

용모나 키나 사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냥 [훌쩍하니 키 크고 잘생겼으니 따르는 아가씨들이 많겠구나]
라는 말을 [현대사회에선 키도 경쟁력이라고 봐요. 용모 가꾸는 건 기본이예요. 모자라면 비호감이예요. 루저예요] 
하는 말로 바꿔 놓은 것 뿐이다. 기분은 더러운데 뭔가 그럴듯 한 말 아닌가.
타인과 비교해서 뭔가 야릇한 우위를 얻으려는 성향.
글쎄, 천한 거 아닌가?

[넌 키 크고 잘생겼으니 여자들이 좋아하겠다. 넌 예쁘고 착해보이니 남자들이 좋아하겠다.]
그냥 난 이 말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야 키 크지도 않고 잘 생기지도 않았으니 
남들 칭찬해줄 때만 쓰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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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온수가 시아버지 죽었을 때 팔촌 며느리 눈물 흘리듯이 찔끔찔끔 나온다. 
거의 샤워하는 게 사막에서 선인장 잘라서 나오는 물로 하는 격이다. 정말 고역이다.
참다참다 못해서 관리실에 공손히 전화를 했다.

관리실에서 아저씨가 나와 보더니
"관이 막혔네유. 이건 뭐 어쩔 수 없시유" 라고 말하곤 허위허위 가 버렸다.
아무래도 수도관을 뚫어야 할 것 같은데 뭘로 뚫을까.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이런 거 두 개를 발견했다.

국내 특허라는데...잔가시가 촘촘히 박혀서 막힌 구멍에 쑥 넣고 다시 쭉 뽑아올리면 찌꺼기가 같이 따라 올라오는 구조다. 맨 처음에 해보면 구역질나지만 자주 하면 나름대로 재미있는게 하수도청소인데...어쨌거나.
그런데 이게 녹슨 배관에도 가능할까 싶어서 다른 걸 검색해 봤다.

일명 [스프링관통기] - 이야, 관통기라니 멋진데! -  최장 15m까지 늘어나서 코일속에 내장된 강철 미사일 스프링이 배관 속을 좌르륵 긁으면서 감겨들어오는 물건이다. 굉장히 공대틱하고 멋지지 않은가! 나는 문과출신인데...

하여간 이 두가지중 어떤 걸 써서 우리 집 샤워배관을 뚫어볼까 고민중이다.

아, 먼저 샤워기를 뜯어내야 할 구경의 몽키스패너를 사야하는구나.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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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외 지출

투덜투덜 2009. 11. 19. 23:46
질박하게 산다 구두쇠처럼 산다
노력하고 각오하고 다짐처럼 산다고 치더라도
어느 순간 뜻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지출이 생기게 되면 늘 드는 생각.

꾸미는 건 사람이되 이루는 건 하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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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망은 넓고 넓어 성기고 성기지만
절대로 흘리는 법이 없다.


천라지망(-網)과 같은 의미.


세상에 죄 짓고 살아 사람의 법을 피한다 치고
행동을 간사하고 꾀있게 하여
사람이 만든 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늘의 법은 사람의 행동하고 사는 법을 감찰하여 
언젠가는 같은 것으로 보응을 한다 했으니

이것은 유학자들의 말이 아니라
도덕경을 쓴 노자의 말이다.


서양에도 같은 말이 있으니.

God's mill grind slow but sure
신의 맷돌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갈아준다....
훨씬 강력하고 직관적인 이야기. 

그래, 어쩌면 희망이거나 진리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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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 부모님 댁 근처 라멘집에 들어가서 라멘이나 하나 사 먹으려고 했다.
물론 라멘가게에 라멘이야 있었지만
갈색 가죽잠바에 수염기른 이가 들어와서 삿뽀로 라멘을 찾으니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해 방황하다 들어온 인간을 보는 듯한 대중의 눈빛이라니.

거기까진 좋은데

내가 앉은 바로 옆자리에 엄마손을 붙잡고 들어온 쪼만한 여자애가 앉아있었다.
물을 먹으려고 컵에 손을 뻗다가 내가 옆자리에 앉으니까
갑자기 콘센트에 손이라도 꽂은 양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날 보며 벌벌벌 떠는 게 아닌가.

아마 엄마가 옆에 앉아있지 않았으면 울것 같은 기세였다 -.-;;;

와따시와 니혼징이 아니고 그냥 배고파서 왔단다 얘야
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묵묵히 라멘만 호로록 먹고 집에 왔다가
아침에 이모저모 생각해보다 그냥 깎았다.

내 멋이지만 애를 울릴 필요는 없는 거 같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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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聯)

투덜투덜 2009. 11. 5. 19:21
사람은 모두 머리 위에 하나씩 가느다란 끈을 매달고 살아
나이를 먹고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어느 순간 그 끈이 얽혀서 떨어지지 못하는 이를 만나게 된다.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그가 잘나서도 아니며
순전히 어쩌다 만나는 우연의 총합으로 얽히게 된 실의 운명에 대해서 우리가 뭐라 가타부타 말할 수 있으랴.

얽힌 것이 종내 마뜩지 않아 서로 힘 줘 끊어버리고 다시 다른 이와 맞닿을 것을 희망한다 해도
그것이 또한 얽힐지 지나칠 지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랴

또한 천지가 뒤집힐 만큼 거센 태풍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끊기지 않을만큼 강한지, 혹은 어린 아이의 숨결에도 끊어질 만큼 약한지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랴

세상의 시종은 예정되고 순리대로 향한다 치더라도
사람의 제 갈 길 운명은 서로 맘먹은 대로 뿐 아니라 그가 아무런 생각없이 내 딛는 발걸음 하나와
아무런 의식없이 내 뻗은 손길 하나와 우연히 고개돌린 방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것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인간의 두루뭉침은 성질도 없고 모양도 없고 색깔도, 빛도, 맛도 없이 시시각각 변하며 화내고 사랑하고 애태우며 끌어안고 밀쳐내며 미워하며 슬퍼함이 한없고 다함없고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고통스럽고 행복함이 명운이 다할 때까지 계속 되나니 이것은 원래 태어남의 한계요, 머리를 쓰는 동물의 미몽이요, 자고함을 지닌 자의 철없음아닌가.

나는 아침에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을 기뻐하며 슬퍼하고 증오하며 사랑하며 궁금해하며 살고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이 내 생이 다 할 때까지 시종일관 계속 될 것이며 인연이 다른 이와 맞닿는다면 그로인해 또 기뻐하고 슬퍼할 것을 아나니 과연 이것은 어떻게 내가 다루어야 할 문제인가.

언젠가는 누군가와 또 다시 부딪혀 연이 얽힌다 해도 그가 누군지도 모르거니와 그것이 언제가 될 지도 모르거니와 그와 어떻게 될 지도 모르거니와 한가지 아는 것은 그 모든 와중에도 인간의 오욕칠정은 불같이 일어나며 연기처럼 사라질 것을 아나니 이 또한 어찌 다루어야 할 문제인가.

차라리 홀로 독처하며 홀로 거하는 것이 모든 일의 시종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 옷에 달라붙는 먼지처럼 수북한 감정들을 훌훌 털어내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그러지 못하나니 
인생은 사람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연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골방에 틀어박혀 소식을 전폐한다 해도 사람의 끈은 질기고 유장하며 절대 홀로 유지할 수 없음을 또한 아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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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

투덜투덜 2009. 11. 5. 16:31
인생은 업을 거스를 수도 없고 운명을 바꿀 수도 없으며

아닌 길을 가게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것이로구나

돌을 보고 옥인지 돌인지 알 수는 있을 지언정

돌을 옥으로 깎는 재주는 사람이 가진 게 아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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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뭔가 잘못 된 상품을 결제하고 배송을 받았다.
아무래도 필요없을 것 같아서 받자마자 상품을 뜯지도 않고 다시 반품을 시켰다.
좀 미안해서 내 돈으로 택배비 선불내고 보내줬다.

그런데 환불처리를 안해 주더라.

메일을 보냈다. 읽지도 않았다.
그래도 혹시 잘못 보냈나 싶어 다시 보냈다. 이번에도 읽지 않았다.
뭔가 쇼핑몰 시스템에 이상이 있거니 하고 반송요청만 해 놓고 기다렸다.

한 달 지난 담에도 꿀먹은 벙어리였다.
송장번호까지 가지고 있는데 왜 환불을 안해줄까. 망했을까?
궁금해서 쇼핑몰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이 왔다. 매우 성의없는 [판매자와의 상담 후 결제방법을 선택하시고 불라불라]
판매자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예 전화를 돌려버린 상태.

-.- 슬슬 뿔다구가 났다.

한 달이면 많이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핑몰에 오늘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과 통화하는데 10분을 기다렸다.
상담원이 받았다.

상품내역과 환불과정과 진행상황을 이야기햇다.
상담원은 죄송하다고 말하더라.

"상담원 아가씨가 죄송할 일 아닙니다. 그리고 환불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원하는 건 하나, 관리자에게 말해서 판매자를 그 쇼핑몰에서 쫓아내 주십시오. 확인하겠습니다. 
 없으면 소보원에 연락하겠다고 판매자에게 전해주십시오. 아가씨가 뭔 죄가 있소. 봉급받는 처지에"

무척이나 무미건조하게 
대출금 상환하러 오지 않는 상습연체자 현관 앞에서 말하듯한 목소리로 정중히 말했다.


저녁에 메일이 판매자에게 왔다.
환불신청했으니 바로 돈을 송금해주겠다고.
전화한 바로 당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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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조용조용하니 말하고 
써 달라는 양식에 맞게 쓰고
나 말고 상대방 처지도 좀 생각해 주고
좀 짜증나지만 기다릴 만큼 기다려 주고
적법한 절차에 맞춰 살려는 사람들을

모두 병신취급을 하는 것일까?

그 사람들이라고 성질 낼 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함부로 말 못하는 것도 아닌데.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라는 소리
내가 중학교때부터 듣던 소리.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바뀌지 않았다면
세상의 발전이라는 것, 진보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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