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8.07 닮아가는거지 6
  2. 2010.02.25 냉장고 4
  3. 2010.01.17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
  4. 2009.11.14 부모,대화,바램 2
  5. 2008.12.23 Bloodline 2

닮아가는거지

투덜투덜 2010. 8. 7. 13:59
어린 시절
반찬투정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물끄러미 보다가

어느순간 불같이 화를 내며 
(우리 집안은 화가 나면 도화선에 불 붙었다가 터지는 화약하고 비슷하다)

"야 이 자식아 지금 이디오피아에서는 쌀 한 줌 못 먹고 굶어죽는 애들이 숱한데 지금 뭔 짓이냐!"
하면서 낼름 먹으라고 채근을 하셨다.

배부르면 남기는 것이 차라리 몸에 낫다는 집안도 있긴 하지만
우리 집안은 그거랑 반대였다. 고래로 쌀 남기는 놈은 천벌받을놈...뭐 아직 이런 분위기라.


2.
고양이가 양양대길래
[유기농]이라고 써 있는 캔 하나를 따서 주었다.

물끄러미 냄새를 맡아보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양양~거린다.

"야 이 자식아, 지금 길바닥에는 쓰레기도 못 먹고 굶어죽는 길고양이가 천진데 뭔 배부른 소리냐!"

성질내는 걸 알았는지
시무룩~하니 땅바닥을 쳐다보다가 지금 캔을 열심히 먹고 있는 중


3.
닮아가는거지.
어린 시절 배운대로.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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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믿거나 말거나 2010. 2. 25. 19:43
H : (전화통화)
M: 여보세요
H: 어머니, 혹시 저 몰래 우리 집에 오셔서 냉장고를 치우셨나요?
M: 아니. 왜?
H: 냉동실이 너무 깨끗해져서 그냥 물어봤어요.
M: 네 여자친구가 치웠겠지
H: 내가 여자친구가 어디있어요
M:~
H: 뭡니까?


*. 아, 부모자식간에도 못 믿는 불신시대라니.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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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허리를 삐끗하셨습니다.
뼈를 다친 것도아니고, 그냥 근육이 놀란거지만 며칠 째 운신을 제대로 못하고 계시죠.

소파에 앉아서 친구분하고 전화를 하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예전과는 달라. 이런 걸로 몸도 못 가누고. 이제 죽으려나 봐"

옆에 멍하니 앉아 TV를 보고 있다가 그 말을 듣는데
아, 그런 기분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뼈가 찌릿찌릿 저리면서 머리까지 차가운게 확 올라오는 기분.

[죽겠다]는 말을 누구보다 싫어하시는 당신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걸 아들이 듣고 있자니
뭔가 머릿속을 크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옵니다.

아, 이젠 정말 나이가 많으시구나 하는 것과 함께 참 많이 달라지셨구만 하는 기분과 함께
뭔가 [금기시되는 예지]같은 것까지 떠오르는 것이죠.

그렇다고 "아버지 그런 약한 말씀은 마십시오! 아직 창창하시지 않습니까!" 뭐 이러면서
서로 포옹하고 그러는 낯간지러운 정서는 부자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 토종 한국인이니까요.

그냥 새삼스럽게 생각이 다시 날 뿐입니다.
마냥 모시는 날이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아버지를 볼 시간은 이제 대충 10년 안팍. 길어야 15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당신 눈에 보이겠지요.

이 모든 생각들이 찰나에 일어나고 합쳐졌습니다.
설명하기 힘들지요.

그냥 가슴이 아프다는 것 말고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적합한 말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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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저녁을 부모와 같이 먹고 벌이는 대화라는 것은 이제 어느정도 토픽이 정해져 있다.

[돈벌이]와 [여자]문제.

까 놓고 말해서, 저 문제로 아무리 밤을 새워 끝장토론을 벌인다 한들 우리는 문제의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하는 대로 산다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자식을 원하는 대로 살게 한다 해서 자식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꼭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우리는 서로서로가 무엇을 말하는 지 알고 무엇이 부족한 지 알고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걸 안다.
단지 대화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위안이다.
문자 그대로 Quantum of Solace가 필요할 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충분히 안다.
[알겠습니다. 잘 해 보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걱정마세요]

하지만 성정이 드세니 그런 말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고 늘 받아치는 것이 문제다.

부모는 자식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것은 숙명이다. 그래서 원치 않는 말을 하게 된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알지만 그것 때문에 부모가 걱정하는 것 자체가 싫다. 그래서 되받는지도 모른다.

이미 이렇게 산 지가 40년에 가까워진다. 
의미없고 소득없는 싸움이었던 것일까.

하나 배운 것은 있다.
부모의 마음을 자식은 절대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내가 부모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내 스스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하나 생겨난 소망도 있다.
다음에 내 짝을 만날 때
난 [가족]과 싸움을 할지언정 [가족]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과 만날 것이다.

나를 낳아 주고 길러준 가족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년이 넘는데
생면부지의 이성과 만나 가정을 꾸리고 하나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 것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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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line

작은 방 한담 2008. 12. 23. 12:02
확실히 남자들은 나이를 먹으면
혈족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식이야 연목구어니 그냥 관심 밖이라 해도

친족과 혈육에 대한 생각은 계속 커지는군요.
몇 년 전부터 드는 생각이지만
[최후의 보루]는 가족이라는 생각과
가족 중에서도 한 배에서 태어난 인간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높아집니다.

그래서 [대부]를 보다보면
처연한 생각이 드는 것이
가족의 유대가 아닌 가족의 해체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저도 슬슬 갓 결혼한 제 동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고 참 어설프기 그지없는 인생항로를 겪으면서
분에 안 맞는 생각을 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형제라는 게 어쩔 수 없는 모양이죠.

제 동생은 아버지보다 저를 더 어려워 하니...

이러다가 만약에 조카라도 생기면
아주 들들 볶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 많은 고리타분한 독신 아주버님이라는 건
제수씨도 별로 좋아할 컨셉이 아니긴 한데

어쨌건 저도 나이를 먹을대로 먹었군요.

눈 쌓인 길을 걸어서 회사에 도착하니
이런저런 상념들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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