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위정(各自爲政)이라는 고사는 '모두가 제 멋대로 알아서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현장이 지휘통솔 안되는 오합지졸들로 잔뜩 꾸려져 있을 때나 씀직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의 어원은 좀  특이하다.


춘추시대의 강자 초장왕이  송나라를 칠 때의 일이다. 이 때 송나라의 군권을 쥐고 있던 대장군 화원은  초나라 연합군의 공세를 막기 전,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특식으로 양고기를 지급했다. 그런데 이 때, 그는 그의 전차를 모는 양짐이라는 기수에게 양고기를 주지 않았다.


병사들이 그 이유를 묻자, 화원은 " 싸우는 병사들이나 먹는 것이지, 마차 모는 사람에게 양고기가 무슨 소용이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양짐이 듣고 마음 속에 담아 둔 것은 물론이다.

다음날 초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화원은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초나라연합군에게 돌격했는데, 양짐이 갑자기 적 한복판으로 마차를 단기로 몰고 들어간 덧이다. 화원이 깜짝 놀라서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하니까


"양고기 배식은 네 재량이지만 이 마차 모는 건 내 재량이야." 하고 양짐이 말하고는 그대로 초나라 연합군에게 투항해 버렸다. 순식간에 대장군이 잡히니 송나라는 지휘계통을 잃고 대패를 해 버렸다. 참으로 쪼잔한 장군과 1호차 운전병의 최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각자위정이라는 말은 서로가 협심단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많은 언론들은 양짐의 이기적인 행동을 힐난하며 총화단결하여 난관을 넘어가자는 말로 이 고사성어 소개를 마무리 짓곤 한다.


*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대도 바뀔 만큼 바뀐 상황 아닌가. 

문제의 중심은 양짐이 아니라 화원이다. 전국시대의 마차라는 것은 chariot, 한마디로 군사용 돌격전차인데 그 중에서도 자신을 모시고 전장을 누비는 사람이라면 중요도가 여느 병사 못잖은 사람일 것이다. 1호차 운전병이면 그 대우가 남다를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보면 그냥 내 운전수는 양고기 따위 안 먹어도 된다고 화원은 생까지 않는가. 이건 무엇인가.


화원이 병신이라 1호차운전병이 비전투병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게다. 명색이 대장군인데 그럴리는 없다.

이건 그냥 경멸이다. '내 밑에서 기는 놈이니까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라는 사고방식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1호차는 잘 달려간다는 믿음, 같은 차를 탔으니까, 운명공동체니까. 나 때문에 살고 있는거니까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식의 논리, 전차는 그저 내 소유물이라는 태도. 이것이 화원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생각한다.

 화원에게 양짐은 그냥 마부석에서 이리저리 방향전환을 하는 일종의 [물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자신이 양짐에 의해 생사여탈권을 박탈당하고 적의 포로가 된 뒤에야 박살이 나게 되었으리라.  다른 인간을 경멸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게 되는 경우는 자신이 경멸을 당하게 되는 순간일 뿐이리라. 


나는 그 쪼잔한 양짐의 행동이 100%는 아니더라도 50.1%는 이해가 간다. 요즘같은 갑을의 시대일수록 그 심정이 무엇인지 공감을 크게 할 수 있으리라. 각자위정이라는 말에서 사회가 도출해내는 교훈은 참으로 폭압스럽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왜 그렇게 그 사람이 행동했는 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단지 양고기 한 점 떄문이었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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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 9개월 정도 써 왔던 핸드폰을 새로 나온 핸드폰으로 과감하게 교체를 해 버렸다.

원래 전에 쓰던 핸드폰이 당시 최고의 스펙이라고 모두 뻥을 치지 이 제조사 개객기야  여겨지던 폰이었고, 그 폰을 구입하던 당시 사장이 "내가 핸드폰을 바꾸니까 팀장 너도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 그것이 사대의 의리 아니냐?" 하면서 말도 안되는 즉흥구매를 행했던지라. 별로 크게 선택을 하지 못하던 처지였다.


그래도 80만원 가까운 거금의 핸드폰이었다. 난 원래 상거래에서 흥정을 안 하는 사람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면서 일을 할 때도 그랬고, 다른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 금액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제시하는 가격이라면 이 가격이 모든 업계에 당연히 통용되는 비용이라는 생각 하에 가격을 지불한다. 난 그게 신뢰이자 공감대고, 그것이 경제활동의 가장 빝바닥에 깔리는 내용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난 틀렸더랬다. 최소한, 핸드폰 시장에서는 그게 틀렸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내 부하직원들이 왜 그렇게 비싸게 샀느냐고 계속 말들을 하더라. 이 정도 가격이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제 값 주고 사는 핸드폰]이 어디 있냐는 거다. 말 그대로 공시가격으로 사는 핸드폰이라는 것은 정보 어두운 노인들이나 아무 것도 보르는 직장인들이 어수룩하게 통신사 가서 사는 것이지, 요즘은 인터넷으로 그 절반 가격, 3/4 가격, 심지어는 공짜로도 번호이동으로 산다는 거다 (이쯤되면 필자가 얼마나 어수룩한지 알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의 반은 이런 빙신을 봤나 하면서 이 글을 읽고 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원래 장사라는 것이 이문을 남기는 것이니까 어느정도 마진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파는 핸드폰 가격이라는 것은 매장에서 파는 핸드폰 가격이라는 것과 너무나도 큰 괴리가 있더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매장에서 사는 것이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는 거다 (아니며 온라인이 밑지고 파는 거겠지) 그런데 내 주변의 대부분 젊은 친구들은 다들 그렇게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수리가 토끼 낚아채듯 타이밍을 골라가며 값싸게 핸드폰을 집어가고 되팔고 다시 갈아타기를 반복하더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지 아니면 세상이 내가 아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닌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가장 짜증이 나던 것은 더 이상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거래하는 것이 아무런 장점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사람이 같은 피조물을 대할 때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서 대화한다는 대전제가 이미 소용이 없더라. 어느 정도의 이문에 대한 암묵적인 보장을 하면서 진행되는 것이 상거래일텐데, 오히려 그것은 얼굴을 보지 않고 손가락으로만 의사표현을 하는 온라인에서 더욱 활성화가 되어가고. 정작 얼굴을 맞대서 사람들에게 물건을 구하러 오는 이들은 바보가 되어버리는 현상을 목격했달까.


아마 핸드폰에 국한된 이야기일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정부에서 핸드폰에 대한 가격을 규제해서 더 이상 온라인에서 그리 쉽게, 오프라인에서 그리 비싸게 팔지 못하게 만든다고 제한을 걸어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문을 정부가 알아서 메꿔주는 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내가 뭘 모르나, 하긴 이쪽으로는 문외한이지). 이윤추구를 정부가 정해주고, 오프라인에서는 소비자를 벗겨먹고, 온라인에서는 알아서 각자도생하는 것이 장땡인 시대. 


점점 시대가 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개개인들은 이윤의 흐름에 대해서 알 수 없어질 것이다. 정보의 중앙에 위치하여 매일매일 변하는 이익구조를 접하지 않는 한, 언젠가 개개인은 사회의 흐름에서 멀어진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예전에는 몇 세대를 지나서 움직여야 했던 상황이 한 개인의 인생 속에서 몇 번을 바뀔정도로 세상이 급속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인간은 사람들의 바람보다 훨씬 느리고 둔감하며 적응하지 못하는 동물이다.


하여간, 나는 지금 그래서 여지껏 행해온 내 상거래 방식을 버리고 다른 인터넷 쇼핑몰에서 빤스 사는 것처럼 휴대폰 하나를 생각외로 저렵하게 구입하게 되었다. (사람들 말로는 내가 규제 전 끝물 탔다고들 하는데...솔직히 뭐가 끝물이고 시작물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이게 고장날 즈음이 되면 그 때는 또 어떤 방식으로 거래를 터야 할까? 이젠 하나한 바뀌는 모양새가 슬슬 무서워지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난 사람들을 대면하고 핸드폰을 사는 일에 거부반응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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