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3.09 즐거움을 잊지 마라 2
  2. 2008.11.28 내가 글을 몰랐다면 5
  3. 2008.10.30 쓴다쓴다 2
맨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누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즐겁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일이 구체화 된 서술의 형태가 되어서 시각적 묘사와 심리적 묘사가 들어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지 못하는 강박관념 속에서 짐이 되고 있었다. 아무런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던 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글쟁이로 사는 건 힘들것이라는 단념이 맘 속 깊은 속에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세상에 글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찬사와 비평이 같이 들어온다. 둘 다 마음에 짐이 된다. 어떻게 써야 한다. 이렇게 써야한다 라는 나름대로의 강박관념이 생기기 시작한다. 강박관념이 생기면 걱정이 생기고 걱정이 생기면 일을 멀리하게 되고 일이 멀어지면 관심이 사라진다. 그렇게 일은 시들해지는 것이다.

오늘 우연하게 J.D 샐린저가 한 말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은둔해서 뭔가를 썼다. 작품을 발표할 성 싶더니 2010년 정월에 죽어버렸다. 뭘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뭔가 쓰고 있었다. 그는 즐거웠을 것이다. 머릿속에 까맣게 잊어버리고있던 공간에 다시 불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내가 좋아서 쓰는 거 아니었던가.

어슐러 르 귄 여사는 [어둠의 왼손]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더라.
"자기 안에 있는 신이 자기의 혀와 손을 사용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이 아는 것은 뭐란 말인가?"

그렇다.
모든 것은 그런 것이다.
한 때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것들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빼앗기지 마라.

짐을 지우는 일은 굳이 찾지 않아도 세상에는 흔하니 네가 좋아하는 일을 [일]로 만들지 말라.

아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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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뭘 쓰거나 그린다.
남들처럼 술을 잘 먹지도못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풀지도 않는다.
술을 먹으면 심화만 쌓이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생각이 증폭되어버린다.

언젠가부터 혼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교 재학중에는 4년 내내 일기를 썼다.
(지금 보니까 여자들 이야기밖에 없더라. 하기야 그 때 뭐 다른 생각 있었겠나.)

언젠가부터 혼자 책상에 처박혀서 글을 쓰고 있는거다. 인터넷으로 쓰던가 다른 매체를 동원해서 쓰던가.
이도저도 아니면 혼자 만화를 그리거나 이런 식이다.

글을 몰랐다면 뭘 했을까

상상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이긴 하다. 대한민국에서 글을 모른다는 것은 어이없을 정도로 문맹률이 낮은 나라에 산다는 것은 축복이니까. 하지만 다른 남미 어느 부족같은 곳에서라면 뭘 하고 있었을까?
아무도 없는 밀림에 들어가서 나무가지나 부러뜨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글을 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가진 생각을 반의 반도 아니지만 그럭저럭 빈 곳에 기호화시켜서 옮길 수 있고
그것을 다시 보면서 생각을 정리할수 있지 않은가. 문자가 없었다면 인간의 사고는 퇴보했을게다.
기호를 시각화해서 그것에 일정한 사유의 대표성을 부여하여 기호의 조합으로 하여금 일정패턴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누리게 했다는 것은 참으로 거대한 업적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것이 과연 기호가 내포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글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한다.
사랑합니다.
뭘?
내가 지금 사랑한다고 한 말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 감정이라는것은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 안에 섞여 있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기복을 표현할 수는 없다.
어떤 날은 사랑한다는 말이 계량화된다면 100%  [사랑한다]는 말에 적합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10%도 안되는 감정이 있지만 그것을 [사랑한다]는 말로 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알래스카 에스키모가 100개가 넘는 [눈(雪)]에 대한 호칭이 있다지만 분명 100개만으로는 존재를 규정짓기 힘든 눈이 존재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글은 인간의 가진 정신상태를 100% 표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역할도 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인가들을 쓴다는 과정은 그러한 의미의 오차과정을 축소시키고지속적으로 개인의 감성을 확장시키고 단련시켜서 그때그때 시의적절한 말을 찾아내어 필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타자에게 오해없이 이해시키는 데 주목적이 있는 것이다. 만약 필자의 감정을 타인에게 옮길 정도의 능력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완성이며 나중에 궁극적으로 발전하면 내가 쓴 글을 읽고 타인에게서 내가 느낌 감정 이상의 고양을 일으켜서 행동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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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쓴다

수련장 2008. 10. 30. 13:26
하루에 뭐라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는 건 문제다
하다못해 일상생활이라도 끄적이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가 없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술을 먹거나 한다면 아마도 이 욕구는 줄어들겠지만
어차피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주목적이 아니라 잠시동안 무언가 빠져있어야 할 거리를 찾는 것에 불과하니 영속적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적인 문재의 소유자라서 쓰는 족족 사람들의 감성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쓰는거다. 왜 쓰는지에 대한 이유목적에 대한 고찰도 없고 책임도 없고 그냥 글을 올리고 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올리고 또 올리는 거다.

영화 샤이닝에서 잭이 미친듯이 하루종일 타자기만 두들기는데 나중에 마누라가 그걸보고 이 놈이 맛갔구나 하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그런 식으로라도 뭔가를 써 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압박감이라기 보다는 글을 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피곤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게 변했던가 히키코모리로 변했던가 뭐 그런 거겠지. 동물이라도 키워볼까? 그런데 아마 그 놈에 대한 불만이나 애정에 대해서 다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바귀려는 의지가 있지 않는 한. 하지만 이게 뭐 그렇게 나쁜 짓 같지는 않으니 당분간은 계속할 예정.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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