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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30 쓴다쓴다 2
  2. 2008.10.28 내가 와인을 싫어하는 이유 2

쓴다쓴다

수련장 2008. 10. 30. 13:26
하루에 뭐라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는 건 문제다
하다못해 일상생활이라도 끄적이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가 없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술을 먹거나 한다면 아마도 이 욕구는 줄어들겠지만
어차피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주목적이 아니라 잠시동안 무언가 빠져있어야 할 거리를 찾는 것에 불과하니 영속적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적인 문재의 소유자라서 쓰는 족족 사람들의 감성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쓰는거다. 왜 쓰는지에 대한 이유목적에 대한 고찰도 없고 책임도 없고 그냥 글을 올리고 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올리고 또 올리는 거다.

영화 샤이닝에서 잭이 미친듯이 하루종일 타자기만 두들기는데 나중에 마누라가 그걸보고 이 놈이 맛갔구나 하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그런 식으로라도 뭔가를 써 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압박감이라기 보다는 글을 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피곤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게 변했던가 히키코모리로 변했던가 뭐 그런 거겠지. 동물이라도 키워볼까? 그런데 아마 그 놈에 대한 불만이나 애정에 대해서 다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바귀려는 의지가 있지 않는 한. 하지만 이게 뭐 그렇게 나쁜 짓 같지는 않으니 당분간은 계속할 예정.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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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바꿔 말하면 내가 등산복을 싫어하는 이유도 될 수 있고 내가 은행원을 싫어하는 이유도 될 수 있고 내가 여선생을 싫어할 수도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거리이다. 하지만 그래도 쓰는 이유중 하나는

와인이 언젠가부터 소주만큼이나 많이 먹게 된 술이라는 것 때문이다. 항간에는 심장병에도 좋고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하는데 술 먹으면 당연히 혈관 늘어나는 거지 뭐. 탄닌? 그냥 떫은 감 씹어먹으면 돼.

내가 일전에 근무하던 회사가 출판사를 겸하고 있던 곳이 있었다.
이곳에서 뭘 했느냐? 와인 책을 만들었지.
사장이 와인 마니아였다. 마니아가 아니라 와인이 없으면 내일이라도 책상에 머리를 부딪히고 죽어버릴 만큼이었던 양반이니 마니아가 아니라 매니악(Maniac)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뭐 나름대로 이성적인 부분도 있었다, 회사 외적인 부분에서는. 회사적인 부분에서는 처음의 총명함이 점점 사라지고 드센 고집과 아첨에 목마른 사람으로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찌하랴. 내가 그 양반 마누라도 아닌데.)

그 사람의 꿈은 와인에 의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었던지
전 사원들에게 와인교육을 시켰다. 와인 따는 법이 그 기초였고 테이스팅 기법과 빛깔 보는 법, 떼루아 보는 법과 향의 보전, 글라스 고르는 법, 디캔딩까지 전문강사와 함께 개인교습 비스무리 한 것을 받았다. 그리고 교보재로 쓴 것이 5대 샤토의 와인부터 생떼밀리옹, 끼안티, 칠레와인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있어도 아까워서 못 먹을 와인들이었다.  (회사 지하실에 기괴한 셀러가 있었다.)

내가 싫어한 이유는
우선 나는 회사에 돈 벌러 온 사람이지 내 할 일을 하지 못한 채 술 먹으면서 다른 일을 제쳐두기가 싫었다.
알콜에 대해서 별반 친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실주를 과음하면 두통이 발생하는 나에게 와인의 지속적인 섭취는 고문외에는 별 다른 게 아니었다. 샤토 라투르를 먹던 오브리옹을 먹던 고생하는 건 내 간이고 내 머리였는데 그것도 반쯤은 회사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참여한다면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개인적인 가치판단이 그것을 저어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무리 바디가 좋고 수확량이 적은 희귀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영속성이 있는 가치품이 아니다. 언젠가는 먹지 않으면 산폐되어 식초로 변해버리고 마는 숙명의 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일정 수준의 가치를 훨씬 상회하는 평가와 칭찬을 받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식품]이라는 것이 무언가 밸을 꼴리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내 개인적인 와인의 가치는 포도로 만든
술이며, 맥아를 발효시킨 맥주하고 별 다른 가격의 차이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마도 내가 사장과 친구였다면 와인에 대한 기호가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고 와인 예찬론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찌되었든 그 사장하고 막판에 쌈질을 하고 뛰쳐나왔고, 그 덕에 그 사장이 가지고 있던 모든 가치에 대해서 삐딱선을 타게 되었으니 궁극적으로는 그 사장이 가장 좋아하던 와인이라는 품목에 대해서도 그렇게
되었던 듯 하다.

결론은...취미를 강요하는 사람과 같은 직장에서
그것도 상사로 만나면 그 취미가 참 고약스럽게 보인다는 결론이다.



 
Antinori Chianti Classico Riserva Badia a Passignano

유일하게 내가 와인공부하면서 맛깔나다고 느꼈던 이태리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정확하게 그 때 먹은 끼안티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 저 위의 그림에 있는 안티노리 끼안티 글라시코 리제르바 바디아 아 파시냐노 였던 듯 싶다.
이제 와서 내 돈 내고 먹으라면 먹을 수 있으려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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