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7.15 생과 사 4
  2. 2010.06.28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그렇지만 10
  3. 2009.09.01 영화에 대한 쓸쓸한 이야기 두 개 10
  4. 2009.04.02 사람에겐 때가 있나니 모두가 있나니 6
  5. 2009.01.08 이모저모 2

생과 사

작은 방 한담 2010. 7. 15. 22:02
1.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간 서울대병원.
복도가 장례식장과 연결되어 있다.
수술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검은 비닐에 쌓여 운반되는 침대를 본다.

섬찟.

2.
어머니는 간단히 방사선 수술만 받고 나오셨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냉장고가 고장나서 내일 바꿔야하는데
공간이 좁아서 놓을 곳이 마땅치 않음을 걱정하신다.

나도 냉장고를 걱정한다.
냉장고를 걱정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3.
어머니가 일전에 쓰러지신 것은
머리의 암과 하등의 연관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의사선생은 말했다.
말 그대로 우연히 일이 그렇게 되어서
이것저것 검사하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발견을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살았을 것이다.
1년에 0.2mm정도씩 자란다고 한다.
위험해지는 정도까지 자라는 데 200년.
좀더 심각하게 잘라서 50년이라고 치자.
천수를 넘기신 나이다.

불필요한 수술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게 약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알게 되면
사람이란 그렇지 않다.
몸이 약간만 좋지 않아도
내가 이 병때문에 그런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알게 된 이상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

4.
뭐가 옳은 일일까?
뭐가 더 현명한 선택일까?


어머니는 머리에 드릴을 뚫고
방사선을 쬐고
스테로이드 재제를 드시고
그렇게 지내다 6개월 뒤에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가셔야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일 들어올 냉장고를 걱정하신다.

어쩌면 어머니의 걱정이
가장 현명한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荊軻
,
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지구촌을 달군 월드컵이 끝났지만
난 축구경기를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별반 축구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그일보다 더 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셨다. 
편찮으시다고 하면 어폐가 있다. 편찮지는 않으시다. 대신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지.
언젠가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병의 발견. 그리고 치료가 상당히 희박한 증상.

막장드라마에서 가끔 주인공 죽을 때 써 먹는 그 병. 뇌암. 뇌종양.

부부젤라인지 자블라니인지 붕가붕가인지를 TV에서 볼 맘이 생길 수가 없었다.
검사결과를 알게 된 다음부터 든 느낌은 시간이 딱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뭔가 생경하면서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느낌. 
내 일이 아닌 것을 내가 역할극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었다.


-1-
사람은 유한한 존재다. 언젠가는 내 주변의 모두가 죽고, 나도 죽는다. 
필멸의 존재에게 죽음이란 필연의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누구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깊이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고민거리라기 보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막상 [죽음].[이별]같은 생경한 말이
어느날 문자나 개념에서 벗어나 생생한 사실이 되어 우리 코 앞에 들이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꾸듯 현실을 몽롱하게 보게 된다. 
근심, 걱정, 가족, 사랑
그리고 그가 떠나간 뒤에 처할 나의 처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정형화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2-
언젠가는 닥치리라
늘 최악의 상황은 다가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누누이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이지만
실제로 닥치게 되면 역시 마음속의 다짐이라는 것은
단순 예방차원의 것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늘 하는 말 있지 않은가?
바닥이라 생각하는가. 지하실을 보게 된다.
인생의 굴곡은 사람의 생각을 훨씬 넘어서는
끝없는 밑바닥이 존재한다.

사람은 약하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해 본 사람이라고 해도
재앙이 닥쳤을때 면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보게 된다.

일가친척, 가족의 죽음을 한 두번 본 것이 아니지만
늘 그 과정은 새롭고, 새로와서 서럽고 슬프다.


-3-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니까.
수술을 받아보자고 하신다. 위험성도 상당히 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는 수술을 해 봐야 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불확실성만큼 사람에게 절망과 희망을 강요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천천히 돌이켜보면

언젠가는 어떤 경로로든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은 그 과정을 밟게 되어 있고 목도하고 집례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슬픔이 지나가고 애통함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간 뒤에는
돌아올 수 없는 추억에 대한 회한이 남으리라.
그것이 인생일테니까.
아직은 아니라지만 언젠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끄적거려봤자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
슬프다는 거다.

자식 아닌가
몸에서 태어난 자식인데 말이다.
Posted by 荊軻
,
1.
배우 장진영씨가 죽었다. 우리 집 앞의 언덕배기위에 있는 병원에서.

내가 장진영을 처음 본 건 [반칙왕]에서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쉰들러리스트]을 마지막으로 보고 군대를 갔고  [반칙왕]을 본 직후 은행에 입사했다...이 뭥미)

참 깔끔하니 좋은 마스크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그 여자는 성큼성큼 커진 중견배우가 되어 있었고
스타의 풍모를 풍길 줄 아는 배우가 된 것 같더니
어느 날 심지가 닳은 양초가 자기가 녹인 촛농에 빠져 꺼지듯
그렇게 사라졌다.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가.
서글픈 일이다.
꽃다운 이가 순식간에 시들어 사라지는 것만큼 애처로운 일이 세상에 또 있으랴.



2.
어제 8/31일
광화문의 시네큐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흥국생명의 결단.
아직 3년의 계약을 남겨놓고 영화사 백두대간은 철수를 해 버렸다.

숨막힐 듯 우뚝우뚝 솟은 빌딩 숲 사이
여름에 턱턱 숨이 차오르는 비정하기 그지없는 서울 콘크리트 바닥 사이에서
정말 사람이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던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찾는]이들을 위하던 극장.

내가 그곳에서 본 영화는 별반 많지 많았다.
[아귀레: 신의 분노] 와 [잠수종과 나비]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 아마 몇 편 더 있었겠지만
이젠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발걸음이 쉽게 닿는 서울시내에서
흥행과 관계없는 좋은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는 상징이 중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이제 그곳은 추억으로 사라지고
제3세계의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수익을 내는 영화관 [씨네큐브]가 되어서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난 흥국생명을 욕하고 싶지 않다.
흥국생명은 그 커다란 지하공간을 그동안 기꺼이 백두대간에게 희사했었다.
그동안 보여준 훌륭한 Patron의 풍모를 이번 결정으로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좋은 후원자에게서 그 손길을 끊어버릴 수 밖에 없는 외부의 경제적 환경과
그런 경제적 환경을 만들어 낸 사람들과 이런 환경이 사라지는 것에 영 무덤덤한
우리 자신들에게 욕을 해 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블럭 떨어진 곳에서 새롭게 공구리질을 하고 발전하는 한국이니
뭐시기니 하는 70년대 발라드를 불러제끼는  2009년.

참 좋은 것들이
아홉수를 빙자해서 너무 많이 사라지는구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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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침실 문고리에 검은 넥타이를 매 두고 있었습니다.
무슨 쓸데없는 장식이 아니라
무심결에 걸어 둔 것이었지만
왠지 마음이 꺼림하여 그냥 놔 둔 것이었는데

오늘 후배 한 명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여자앱니다.

개인적으로는
10년 전 즈음
제가 교회 청2부 조장을 맡으면서
맨 처음 신입조에서 들어왔던,
그 녀석에겐 제가 첫 조장이었습니다.

공친 날이라고 혼자 집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소식을 전해 듣고
문고리에 매인 넥타이를 주섬주섬 목에 걸었습니다.

아마
오늘 친구와 만났더라면
늦게까지 술 몇 잔을 하느라
내일 수원으로 발인을 떠나는 그 녀석을 볼 수 없었겠지요.

오늘 일이 예정대로 떨어졌더라면
아마 피곤에 지쳐서 소식을 듣기도 전에
집에서 자고 있었거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겝니다.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는 않으나
사람에게는 범사에 정한 때라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왜 저보다 어린 녀석이 먼저 갔는지는
신께 여쭤볼 문제입니다만

오늘 하루가 갑자기
텅 빈 공간에서
순식간에 정신을 압박할 정도로 조여들어옵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이렇게
타자를 치는 순간에도 무언가가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겠지요.
그저 때가 올 때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사재인이요 성사재천이라
 제갈공명이 말했습니다만
그냥 자신의 한풀이로 말한 것이 아님이
오늘 야심한 밤에 느껴집니다그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Posted by 荊軻
,

이모저모

작은 방 한담 2009. 1. 8. 00:20
아는 후배의 조모가 돌아가셔서 밤 늦게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호상이라고는 하나 사람이 죽는데 즐거움이라는 건 없지요.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하느냐 마느냐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 분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총명함을 잃지 않으시고
'내 행사는 다 끝났다. 구원받았다.'라고 하시고 돌아가셨다더군요
(이분은 기독교인이셨습니다.)

사람의 오복중에 고종명이 있는데
확실히 죽을 때 깨끗하게 떠나는 것은
본인에게도 좋고 남은 자에게도 짐을 덜어주는 일 같습니다.

저희 조모님은
주무시다 돌아가셨는데
나중에 보니
그동안 자식들에게 받은 돈을 다 모아놨다가
장례비로 쓰라고 농 안에 넣어두셨더군요.

아직 제 나이 불혹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마무리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대저 처음과 끝이 같지 않으니
끝을 처음과 같이 하라고 했던
한명회의 유언이 생각나는 밤이올습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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