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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07 정말 전부터 들던 의문 6
  2. 2011.01.31 내가 삐딱한 놈 같지만서도 6
솔직히 난 지금 현 이명박 대통령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시책이고 정치적 스탠스고 뭐고를 떠나서
이 양반이 가진 종교관과 하는 행동거지가 180도 다른 행보를 가지고 있는게 넌더리가 나서 선거 전부터 싫어했다.

딱 70-80년대 건설족 스타일로
한국사회는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경제논리와 있는 사람이 잘 살아야 나머지 떨거지들이 잘 산다는 개발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양반인데, 그것이 내가 믿는 기독교적인 입장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상반되는 것 같아서 이율배반적인 듯 싶어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한기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인 부흥주의, 성장주의 목회에 어울리는 기독교인사인 것이다. '돈은 일만 악의 근원'이라는 성경의 말씀과 정 반대로 '힘이 있어야 교회가 부흥하고 구원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심히 나치즘에 비견될만한 한국 목회철학의 산물이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본다.

일주일 내내 사회에서 사고치고 일요일날 회개하고 성스럽게 살고
그렇게 사회에서 얻어 낸 지위와 재력으로 교회에서도 그 세력을 넒혀가는 방식.
남들 앞에서야 경건하게 누가 못 살 것인가. 재력이 있고 권력이 있다면 어찌 그게 더 어렵겠는가.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서도 독실하지 않은 이슬란 술탄이 없더라.

 하박국 선지자가 뭐라고 지껄였던가. 있는 놈은 흥왕하고 없는 놈은 궁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데 주님은 뭘하시냐
그러자 하나님이 심판으로 응보하시리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걸 보고 있자니
참 이 양반 운때가 좋더라.
운때가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정말 적재적소에 뭔가 하나씩 터져서 정치적으로 힘든 상황들이 타개되더라.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더란 말이다. 

난 참으로 의문인 것이
이 양반의 일에 정말 신의 개입이 있다면
이걸 기뻐해야하는가 슬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2-
예전에 부시가 이라크 쳐들어 갈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걸 내가 응원해야 하는 거냐 말아야 하는거냐. 부시 저 자식도 굉장히 신실하다던데
이 전쟁 아무래도 저 놈의 종교적인 정의관이 개입된 것 같은데
이 전쟁이 신학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먼저 대입해야 하는 거냐 아니면
인간으로써 벌어지는 국제사회의 잔악상과 이기주의에 대한 비난을 먼저 해야하는 것이냐.

 이명박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똑같다.
만약 신께서 이 대통령을 도와주는 거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도움이고 간섭이겠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면 나머지 일반 서민들에게는 불공평한 경제체제와 대한민국의 발전저해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무신론자가 팽배한 한국사회에 대한 신의 경고로 봐야 하느냐
아니면 그냥 다 팽개치고 이명박의 건너편에서 교회에 대한 반대선에 서야 하느냐

하여간
이런 생각들로 요즘 머리가 아프다.

예전에 루터도 30년 전쟁 때 독일 농부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반란군노무새퀴들은 죽어라' 따위 말을 했다고 하지만서도...정말 신앙이라는 게 사회 안에서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 건지 두려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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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디선가들은 설교말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젊은 학생들에 대한 기도였는데

여러분, 여러분은 언젠가 주님에 의해 물질적인 축복과 명예를 얻을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기도하십시오.

라는 기도제목이 나왔다. 얼핏 들으면 참 고결한 기도제목이고
사실, 저런 기도제목이라는 것은 굉장히 고풍스러운 것이다.
스스로 자고함을 떠나서 신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기도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 세상에,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
주님을 믿는다고 물질적인 축복을 얻을 자가 거기 모인 수 많은 학생들 중 몇이나 될까.

여러분, 여러분은 언젠가 돈과 세상의 일 앞에 쪼들려 빈곤과 걱정이 삶을 짓누르겠지만
그 때에 주님을 잊지 않겠다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맞는 기도제목 아닐까.
하지만 이런 기도제목을 목사님이 자라나는 청소년들 앞에 이야기하기도 그럴 것이다.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고, 꿈을 꾸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가능한게 또한 아이들이니까.
그리고 나도 모든 아이들이 세상에서 만족하고 평안을 얻으며 살기를 간구한다.


하지만 물질적인 축복이라는거, 그 무시못할 유물론적 혜택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내가 40년 가까이 싸워온 것은
그 혜택을 누리고저 함이 아니었던가?

우리 반 학생 중 하나가 그런 말을 했다.
"참 저희 교회에는 대단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요. 기업사장이나 판사, 변호사 같은 분들만 있고
성공하지못한 분들은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네 앞에 서 있는 이가 안 보이느냐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단다. 단지 그렇지 못하기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거야. 신께서 보시기에는 삼팔광땡이나 망통이나 다 그놈이 그놈이란다. 하지만 그런 말을 교회 선생이라는 자가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어쩌면 했어야 할까. 신앙은 핑크빛 로맨스, 백마탄 왕자의 기다림이 아니야. 겉은 그럴지언정 발은 미친듯이 물속에서 장구질을 헤대는 백조의 헤엄과 같은거야.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기는 좀 두렵다.
요즘 애들은 피상적으로는 세상 모든 일을 어른들 못지않게 알고
심층적으로는 우리 초등학생 때보다도 못한 정서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우리가 하던 기도는 어디에 갔을까
하나님 제가 풍요로와 주님을 잊지않게 하시고
제가 빈곤하여 주님을 원망치 말게 하소서. 

어려운 일이다. 신앙이던 삶이던.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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