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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5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9
  2. 2009.03.20 이런 저런 3/20 7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고 사는 곳에는 늘 갈등이 있는데

가끔은 말이 씨가되고 묘목이 되는 경우도 참 많더라.

이 나라 떠나면 그런 꼴 안 보려나 해도

사람이라는 개체가 원래 그런 습속을 타고 나는지

어딜 가든 좋지않은 이야기 듣는 것은 다반사다.

명심보감에 그러하였다.

相識滿天下(상식만천하)하되 : 서로 아는 이가 세상에 많이 있으되

知心能幾人(지심능기인) : 마음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酒食兄弟 千個有(주식형제천개유)로되 : 밥 먹고 술 같이 하는 이 천 명이 있어도

急難之朋 一個無 (급난지붕 일개무) : 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줄 이 없는 법이라

 

不結子花 休要種 (부결자화 휴요종)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 말고

無義之朋 不可交(무의지붕 불가교): 의리 없는 친구는 벗하지 말라


어딜가나 모함하는 이가 끊이질 않고 험담하는 이 끊이질 않는다.

어쩔때는
정말 내 행로와 신상에 위난을 줄만큼 모욕을 당하고 비방을 당하는 일조차 생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가족이고, 가족이 멀다면 의지할 수 있는 벗이다.

예전부터 인용하던 싯구 중에 루드야드 키플링의 "The Thousandth man"이라는 시가 있었다.

Nine nundred and ninety-nine depend
On what the world sees in you,
But the Thousandth man will stand your friend
With the whole round world agin you.


999명이 세상이 보듯 널 대하여도
마지막 천번째 사람은
모두가 등을 돌려도 네 친구로 남으리

어쩔 때는 그러한 벗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과, 법과, 논리적인 정황에서 밀린다 하더라도
끝까지 친구라는 이름 하나로 등을 빌려 줄 친구가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삶은 무언가 이룬 것이다.
물론, 요즘같은 법치사회에서 저것은
협객지정(俠客之情)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게 그리워 지지 않는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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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에 대한 상대방과 나의 가치관을 맞추지 못한다면 참 곤란하다고 본다만
   이리저리 곤란한 게 그 뿐일까. 그냥 친구간의 관계에서도 곤란한게 한 둘이 아닌데.
   문제는 어느 정도의 포기와 어느 정도의 신뢰를 서로 갖느냐인데
   결국 파고들어 가다보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예전 전공교수님이 갑자기 강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여러분은 왜 결혼하려고 하는 겁니까? 공짜로 같이 자고 공짜로 밥 먹여주는 기회비용을 취득하려고
    하는 거 아니냔 말입니다. 대부분의 기저심리에는 그런 것이 존재한단 말이지!"
 
  강의시간에 순 남정네 뿐이었으니 한 말이셨을 게다.
  -.- 그때는 참 속물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양반도 나름대로는 철학이 있었을 것이고
 가끔은 저런 [공짜의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도 해 보곤 했다.
 가혹한 유물론적 결혼관이지만 세상이란 건 그런거니까.

 어쩌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은 서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긴장과 긴장의 연속을 갖는 지루한 과정일지도.

...이런 생각을 하니 피곤하다.


2.
하지만 가끔 밀려드는 고독감이라는 것에 대해
교수님의 [기회비용적 측면]을 배제하고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은
[대화할 사람의 부재]라는 것이고
내가 말을 하고 싶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을 항상 불러내기 위해서 같이 살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양이를 키우던 강아지를 키우던
일단 인간의 언어로 대화가 안 되면 그건 한계가 있는 거다.
외국인의 경우도 솔직히 비슷하게 생각한다.
내가 모국어처럼 멀티링구얼을 하지 못하는 한
언어의 함의를 전달못하는 제2외국어는 한계가 있다.

어느 날 기똥찬 번역기가 생겨서
세상 모든 언어의 뉘앙스까지 잡아주는 날이 온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겠지.

하지만 그런 때가 생긴다면
1번 문항의 마지막 구절과 같은 문제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동물 말 번역기를 사서 애완동물과 이야기하는 걸
훨씬 즐길지도 모르겠다.

나도 소라게가 말을 할 줄 알면
지금보다 훨씬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대체 이 자식은 같이 산지 3년이 지나도록
뭔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고양이라면 와서 발바닥이라도 긁을텐데.

혼자 살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거다.
집에 오면 혀를 쓸 일이
맛을 보는 일 외에는 없다는 것.

3.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책밖에 없는 것이다.
책이라는 건 참 오묘한 물건이다.
읽다보면 누군가 말을 하는게 느껴진다.

세익스피어를 다시 사 볼까 생각 중이다.
리처드3세와 헨리5세. 헨리6세. 등등

한 사람의 손 끝으로 천 사람의 대화를
전혀 어색함 없이 풀어낸 이 영국인은
분명 천재였을것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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