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8.13 과산화수소수
  2. 2010.10.27 그리 길지 않은 시간 7
  3. 2010.09.29 아득하구나 2
  4. 2009.12.08 센티멘탈 4
외조부모묘를 정말 오래간만에 시간내어 찾아갔다.
외조부묘묘라고 길게 둘러 쓰는 이유는 두 분이 합장이 되어서 봉분 하나를 쓰기 때문이고 오랫만에 시간을 냈다는 이야기는 충북영동에 외가 선산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외가 시골에 찾아가 본 적이 없다. 일가 외가쪽이 몽땅 서울에 올라와 살기도 했거니와, 시골을 지키시던 둘재 외삼촌이 돌아가신뒤로는 영 그 곳과의 인연이 끊긴 때문이다.

각설하고, 나도 나이가 먹으니까 땅이나 핏줄에 대한 귀소본능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머릿속에 풍경을 넣어두어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충동적으로 부모님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이거. 정작 선산은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충북 야트막한 야산이 머나먼 정글의 메콩강 골짜기더라. 여름철 길 없는 야산에 올라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이거 사람이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 설상가상 비까지 왔고 우리 외가는 100% 찰진 황토다. 넌더리가 날데로 나서 이젠 못가겠다 싶을 때 산소가 나오더라. (고라니 두마리를 봤다. 그 야트막한 산에서...0.0)

하여간 올라갔다 왔더니 양팔에 칼자국 투성이다. 물이 오를대로 오른 풀은 칼보다 예리해서 스치면 그대로 혈흔이 올라온다. 패잔병의 꼬락서니로 서울까지 올라온 뒤에 집에 돌아와서 약국에서 과산화수소수를 오랫만에 구입했다.

예전에 약 중에 가장 싫어했던 소독약이 이 과산화 수소수였다. 상처가 아픈건 둘째치고 이 소독약은 들이 부으면 통증보다 더 심한 아픔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혼자 집에서 솜에 묻혀서 두 팔뚝을 닦는데 여전히 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 쓰라림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게 된 나는 어지간히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툰중한 통각을 주는 곪은 상처보다는 그 상처를 째는 예리한 통증이 내 몸에 훨씬 좋다는 것을 알고
찢어지게 아픈 것 보다는 상처부위가 붙어서 가려운 것이 몸이 나아지는 신호라는 것을 파악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픔은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번에 본 시골도 여전히 풍광은 비슷했지만 들어오는 광경이 달랐다.

내 어릴 적 같이 뒤놀던 또래들은 이제 아무도 시골에 남아있지 아니하고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머니의 오빠대 노인네들만이 변하지 않는 동네 느티나무 정자 아래 모여 있고
느티나무 아래 흐르던 개울은 보기 좋게 시멘트로 복개가 되어있고
옛 시골집 뒤에는 양옥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남은 것은 죽은 자와 하늘과 산뿐인데
정작 얻어 온 것은 팔뚝의 상처뿐. 그리고 그 상처를 쓰라리게 소독하고서도 별 감흥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외손자만 남아있는 세월이다.

세월은 앉은 자리에서 추억하면 그 얼마나 쏜 살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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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통화를 해보았다.
별다를 것이 없는 목소리

맨처음엔 내 목소리를 듣고 어색해했지만
잠깐 뒤엔 그냥 그렇더라

"요즘 어떻게 지내요?"

그냥 일상적인 대화, 그리고 침묵.

2분도 안 되는 통화였을테지만
업무때문에 건 전화가 참 길게 느껴졌다.

내가 이 사람을 안 건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도 변했고, 나도 변했고.
하지만 사람이 오래되어도
가끔 보아도
변하지 않는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 있더라.

처음 보았을 때 가졌던 감정이
퇴색되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

하지만 엄연한 건 비정한 현실이고 내가 서 있는 자리고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다. 나는 낭만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고
그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업무상의 통화로 끝나는 것일게다.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안다.
알아도 족히 오래전에 알았을 것이다.

아트 가펑클은
Traveling boy에서
완벽한 사랑은 영원히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노래 했건만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무척이나 긴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오랬동안 한 사람에게 동일한 감정을 갖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주위의 사람들이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하나 정도일까.
무덤까지 가져가서 혼자 만족하며 사라질 추억같은 거
하나 정도는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뜬금없이 맥주가 땡기는 저녁.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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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구나

작은 방 한담 2010. 9. 29. 21:00
그러고보니

사람 손 잡고 길을 걸어 본 지 참으로 오래 되었구나

다 커서 동무들과 손 잡고 걷기는 겸연쩍은 나이가 되었으니 그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나 좋다는 여인네 있는 것도 아니니 이것도 어렵고.

점점 사라지는 추억은 많은데 시간은 점점 빨리 가기만 하누나


손 주무르는게 좋아서 그랬겠나

그 시간이 좋아서 그랬겠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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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탈

작은 방 한담 2009. 12. 8. 13:19
그 때도 눈이 왔었다.
3년 넘게 일하던 회사의 문을 마지막으로 열고 돌아나오던 그 날이.

아무 생각 없었고, 적잖이 후련했었다 느꼈지만
그 때는 몰랐었다. 뭔가 하나 남아있었다는 걸.

서로 알았던 것은 20대.

그리고 다시 봤을 적엔 이미 30대 중반을 훌쩍 넘겨
서로 그 동안 쌓여온 인생의 길이 다르고
그동안 겪어온 시절의 때가 켜켜이 묻어있어 그 시절의 윤곽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 때 왜 그만 뒀어요?"

대답이야 무엇이라 하겠나. 지금에 와서야 그만 둔 까닭이 생각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즐거움의 산물이랴. 되씹을 추억이라도 될 도리가 있을까.
그리고 이미 그 때 가슴에 묻어놓은 말을
서로 현실에 충실할 이 나이에 다시 꺼내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을까.

첫 사랑을 잊으려고 군대를 갔고
두번째 실패를 잊으려고 지방전근을 갔었다.
퇴사를 한 것?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 같은 이유였으리.

웃어 넘기고 길을 재촉해 돌아오지만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뜬금없이 어울리지 않는 눈물 한 방울.

혹자는 이야기하더라.
그런 이야기는 혼자 묻어두라고. 당신에게 오는 다른 사람들을 막을 뿐이라고.

하지만 사내가 여자와 같으랴.
다른 건 몰라도  사내의 과거와 사랑과 추억과 그리움은
흑빛으로 바래지 않는 영원한 칼라인것을.

시간이 꽤나 흘렀다고 생각했건만
그래서 같이 살던 사람 이름도 잊어가지만
가슴 한 켠에는 잊지 못할 사람의 이름이 하나씩은 있는 법이라는 걸
주책맞게 내리는 소소한 눈방울이 새삼스레 기억나게 해 주는 하루.

오늘은 자작이라도 할까.

시리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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