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1.02 사람이 초심을 잃었을 때 12
  2. 2010.03.12 계영배(戒盈杯) 4
  3. 2009.11.01 욕망으로 점철된 인생 2
맨 처음 양배추를 끓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2년 전인가 문득 머리를 스친 아이디어였다.
배추도 국을 끓이는데 더 야들야들한 양배추는 국을 왜 못 끓이겠는가라는 생각이 그 첫번째였고

속을 국물로 덥히되, 가급적이면 비싼 먹거리를 쓰지 말고 질박하게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보자는게 그 두번째 목표였다. 사실 먹는 일에 그렇게 관심도 흥미도 없었지만 그나마 인생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급은 받아야 할 터, 나름대로는 고심해서 고른 메뉴였다. 아무런 미련도 없고, 만들다 망해도 그냥 던져버릴만한 최소한의 음식.
그것이 양배추국의 시작이었다.

그런데로 소금도 안 넣고 맨 처음에는 양배추만 끓여먹었다.
그냥 그렇게 먹었다.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끓어서 풀어진 양배추만 먹은 것이다. 밥하고.

근데 솔직히 못 먹겠더라. 그래서 소금을 넣어서 간을 했다.
그런저럭 먹을 만 했다. 묘한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어우러졌다. 
이 정도면 밥에 아무런 집착없이 한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는]분야에 있어서는 최적의 음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찬장에 치킨큐브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넣어주고 가신 듯 했다. 
치킨큐브가 무엇인가?
맹물에 하나만 던져넣어도 닭국물이 된다는 기적의 향신료 아닌가!
무념무상으로 양배추를 끓이던 어느 날 저녁, 초록색 통이 눈에 들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나는 소금 대신 그 놈을 넣어서 간을 해 보기로 했다. 나름대로 풍미가 나기 시작했다. 
고기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양배추국이라니! 오호 은혜로다. 난 참 머리가 좋아. 혼자 이러면서.  

그때는 몰랐더랬다.
그 맛과 향이 지금까지 먹었던 고고한 채식의 아취를 와장창 깨버리고 슬며시 육식의 유혹을 불어넣고 있었다는 걸.

다음날부터 소시지를 잘라서 양배추국에 넣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먹는다는 [사우어 크라프트] 생각이 났달까. 그러다가 집 찬장에서 혼자 외롭게 놀고 있던 스팸을 보고
'거기 혼자놀다간 평생 독신으로 살다 맥주안주 따위밖에 안 될 것이다'라는 생각에  그 놈을 배추국에 넣어봤다.
맛이 달랐다. 고기냄새만 풍기는 국물이 아니라 뭔가 씹히기 시작하니 세상이 달랐다.

점점 내 양배추국은 양배추만 들어가는 국이 아니라 잡다한 요소들이 이것저것 첨가되기 시작했다.
몸을 생각해서 마늘을 잘라넣기 시작했고
영양소 균형을 생각해서 감자 한 알을 같이 썰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스팸을 과감히 탈피해 버리고, 어느 순간
소시지계의 끝판왕..미국 [존슨빌 소시지]를 구해다 숭덩숭덩 썰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무념무상으로 국을 끓이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내가 만들고 있는 양배추국을 쳐다보았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청정 초록빛만이 감돌아야 할 냄비 안이 너무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 때 나는 불현듯 깨달았으니

오호라 이것이 인간의 탐욕이로다
처음에는 남는 재료가 아까워 넣기 시작하더니
어느순간 부터는 미각을 탐하여 이것저것 채우기 시작했구나
주인공 양배추는 어디 구석에 파묻히고
언제부터 양키쏘세지가 냄비를 나와바리로 접수하였던고.

며칠 뒤
호옹님이 친히 집을 방문하시어
끓고 있던 양배추국을 슬쩍 보시고 뚜겅을 열어 보시고 다시 덮으시면서
조용히 한 말씀을 던지셨다.

"이것은 스튜(stew)입니다."

그렇다. 
더 이상 맑은 물 아래 양배추가 비치는 국이 아닌 스튜가 되었던 것이다.

그저 한 끼니 거르지 않고 넘기며 감사하려고 만든 국이
어느날 밑바닥도 보이지 않는 걸쭉한 고기국물로 변하는 순간.
이제는 예전처럼 만들어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2010년은 정말 정신사납게 보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 중 팔할은 내 욕심과 내 분을 못 이기고 만든 일이었으니.
올 해는 좀 더 신중해 볼까.

한번 넘어서면 돌아갈 수 없는 것은 국이나 스튜나 인생이나 일반일텐데.

p.s) 다 쓰고 보니 뭔 소린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지금 양배추국을 다시 끓여먹고 오는 길이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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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배(戒盈杯)

수련장 2010. 3. 12. 23:20
조상들의 술잔 중에 계영배(戒盈杯)라 하는 술잔이 있다. 익히 최인호의 소설 [상도]로 유명해진 술잔이다.
잔의 7할 이상 술을 부으면 압력에 의해 아래 뚫린 구멍으로 술이 다 새어나가버린다. 끝까지 채우면 모든 것을 잃지만 요족함을 알면 그대로 머무는 술잔이다.

전설에 따르면 우명옥이라는 조선의 전설적인 도공이 자신의 교만함을 깨우치고 만들어낸 술잔이라 한다. 세사의 명성과 부를 잃은 뒤에 만들었던 술잔. 모든 것을 잃은 다음에야 절제의 미덕을 깨달았다한다. 사람은 대저 그러한가,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무언가 부족함을 깨닫는 것인가.

하지만 인간의 성정이라는 것은 항구하지 못하다. 처음에 교만하여 나중에 도를 깨우친다 할지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욕망은 저절로 생겨나 커지는 법이며, 처음에는 소소하고 겸손하게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자신의 애초 부족함에 갈등하여 더 큰 욕심을 채우도록 발전하는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후자에 속하는 듯 하다. 처음 시작의 마음가짐은 소소하고 질박하더라도 계속되면 그 안에서 복락을 누릴 줄 알았으나 그것이 부서지고 좌절하는 상황에 도달하자 '차라리 이럴 바엔 사람이 욕심을 내고 예전보다 더 나은 것을 찾아야함이 아니겠는가'하는 악받침 혹은 분노로 인한 욕망에 눈이 먼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초에 10할을 채우지 못하고도 잔이 비었으면 한 번 10할을 채워보려 도전함이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비루한 이야기다.
[전도서]를 쓴 유대의 왕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귀와 향락을 누려보고서야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달았지만
애초에 모든 것을 갖지 않고서도 그것이 쓸모없음을 알았던 법정스님같은 분 또한 존재한다. 둘 다 시작은 달랐지만
결국 도달한 곳은 같았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한 성경의 말씀도 그것이며 집을 멸하여야 도를 얻는다는 불가의 말씀또한 그러하다. 사람은 늘 자신을 하루하루 죽여야만 스스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가 받을만한 말이 아님 또한 어찌 가슴아픈 것이 아니랴.

나는 오늘도 무언가 얻기를 갈구하고, 그것이 어제보다 낫기를 희망하고, 타인의 동정과 긍휼로 얻는 것이 아닌 자력과 소망함으로 그 모든 것을 성취하기를 희망하지만 내 손아귀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오늘도 바라본다.
사람은 스스로 갖지 못함에 절망하고,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절망하며, 변하지 아니하는 시간에 절망한다.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절망하고 자책하고 더 많은 것을 잃고, 잃을 수 없는 환경, 잃을 것이 없다 믿는 상황에서 또 다른 것을 잃고 또 잃어 나 자신조차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 가서야 나는 깨달음의 파편 하나를 줏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술잔에 술이 덜 채워지고 더 채워짐에 미련을 두지않을 것이요
어쩌면 술잔에 술이 담긴 것 조차 알 지 못하는 경우가 오지 않으리오.
죽기 전에나 한 번 그런 명경지수의 마음을 가져봤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나
그 또한 내 욕망의 소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슬한 밤 가슴이 시리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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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교양으로 조선후기사를 듣던 시절의 일이다. 
교수님이 쉬는 시간에 그냥 흘러가는 농담조로 이야기하시던 말이다.

당시 풍속화가중 양대 거두 중 하나였던 혜원 신윤복은
풍속화 뿐 아니라 사대부들의 요청에 의해 [춘화]도 꽤 그렸다.
그리고 일설 재야 사학가들에게 전해지기로는
그 신윤복이 남긴 [미공개 춘화집]이 아직도 유실되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아마 이후락이에게 있다고 하던데......'
교수님의 말은 그렇게 어물쩡 넘어가버렸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을 법 하다는 대충의 [뜬 구름잡는 소리]였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 법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락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유물중에는 호생관 최북, 단원 김홍도가 그린 작품들도
끼어 있는 것이 확인된 바 있으니. 

호가호위로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그를 이용해 사람이 탐할 수 있는 것은 다 탐하던 양반이
말년에 병을 얻어 방에서 거동도 못하다가 재산을 다 거덜내고 죽었다고 한다. 이후락. 그가 죽었다.

남은 것은 어디있는 지 조차 모르는 고미술품이 아니라 그의 더럽고 치사한 찌꺼기같은 이름뿐이다.
이후락이.
어느 당을 지지하는 양반이건 어른들은 그를 저렇게 불렀다. 이후락이.

살아서 먹고 마시고 싸는 것 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으랴.
생각을 하건 음악을 듣건 무엇을 쓰건 내 몸이 할 수 있는 것은 먹고 싸고 마시는 것 외엔 없다.
남들보다 더 많이 먹고 싸고 마시려다 남겨진 것은 지저분한 이름밖에 안 남는 인생으로 팔십객을 보낸
노욕의 덩어리가 이제 썩어 문드려져서 강산으로 돌아간다.

나라고 다를손가?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에 그랬거니와
일체유위법이 여몽환포영하고 여로역여전하다고 금강경에도 써 있으니

다 부질없음 아닌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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