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10.31 데이트 5
  2. 2010.06.28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그렇지만 10
  3. 2010.03.06 쿨~ 2
  4. 2009.04.25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같았는데 6

데이트

작은 방 한담 2010. 10. 31. 21:34
고모님이 무릎을 다치쳐서 병문안을 다녀왔다. 원래는 아버지와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조카를 돌보시겠다고 안 가신단다. 원래 우리 집안이 게으른데다, 자기 식솔이 있으면 절대로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마 나도 그랬고 앞으로 가족이 생기면 또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어쨌거나. 각설하고 아버지는 동생이 아픈데 나하고 어머니를 보냈다.

어머니를 모시고 주말에  드라이브를 했다.

"얘, 광화문쪽으로 가 보자."

"거기 막히는데 왜 그 쪽으로 가요?"

"나 그쪽 바뀐 다음에 한 번도 못 가봤어, 그리고 네 조카 태어난 담에 외출도 못해봤잖아."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손녀가 생긴 담에는 그냥 집에만 계셨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리저리 뱅뱅 돌아서 광화문 광장까지 가서 경복궁 앞에서 유턴을 하면서 천천히 시내를 돌았다.

"많이 바뀌었구나. 아이고 이렇게 변했네"

어머니는 내심 밖에 나와서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날씨도 무척이나 화창했더랬다.
병문안을 벼락처럼 끝내고 (고모 미안해요) 어머니는 점심을 드시고 싶어했다.

"어디 근처에 먹을 데 없을까?"

"엄마, 기왕 여기까지 나왔으니 삼청동이나 가요."

"그래그래, 거기나 가 보자"

뭔 바람으로 거길 가자고 했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하여간 삼청동에 스파게티를 먹으러 어머니랑 길을 나섰다.
차를 좁은 골목 주차장에 세워놓고, 선남선녀가 디카 하나씩 끼고 어슬렁 거리를 길을 모자가 터덜터덜 걸으면서
가을날의 서울시내 데이트에 나섰다. 예전에 친구들하고 왔을 때는 여기가 아니라 이쪽길로 올랐는데 뭐라고 어머니는 연신 중얼거리시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계셨다. 잘 모시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여자들만 바글거리고 사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스파게티집에 들어가서 모자가 이태리 국수를 시켜먹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속이 버글거리긴 하지만 어쨌거나 즐거웠다. 즐거워하는 어머니를 보는 게 즐거웠다.

"얘, 호떡이나 하나 사 가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길 옆의 호떡집에 들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뭔 호떡이오."

"네 아버지 호떡이나 하나 주지 뭘..."

호떡 네 개에 4천원.

"아이고 비싸네."

하지만 연신 웃으시며 좋아하시더라.
날이 참 좋더라. 파란 하늘에 점점이 흐르는 구름이 좋더라.

언제 또 어머니랑 둘이서 와 보겠는가
언제 또 해 보겠는가.
모자가 같이 골목길을 걸어다니는 일을.

그러고보니
나 어렸을 적에는
참 많이 엄마 손을 잡고 여기저기 다녔던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구나.
후회할 겨를도 없이 너무 빨리 가는구나.


Posted by 荊軻
,
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지구촌을 달군 월드컵이 끝났지만
난 축구경기를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별반 축구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그일보다 더 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셨다. 
편찮으시다고 하면 어폐가 있다. 편찮지는 않으시다. 대신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지.
언젠가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병의 발견. 그리고 치료가 상당히 희박한 증상.

막장드라마에서 가끔 주인공 죽을 때 써 먹는 그 병. 뇌암. 뇌종양.

부부젤라인지 자블라니인지 붕가붕가인지를 TV에서 볼 맘이 생길 수가 없었다.
검사결과를 알게 된 다음부터 든 느낌은 시간이 딱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뭔가 생경하면서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느낌. 
내 일이 아닌 것을 내가 역할극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었다.


-1-
사람은 유한한 존재다. 언젠가는 내 주변의 모두가 죽고, 나도 죽는다. 
필멸의 존재에게 죽음이란 필연의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누구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깊이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고민거리라기 보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막상 [죽음].[이별]같은 생경한 말이
어느날 문자나 개념에서 벗어나 생생한 사실이 되어 우리 코 앞에 들이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꾸듯 현실을 몽롱하게 보게 된다. 
근심, 걱정, 가족, 사랑
그리고 그가 떠나간 뒤에 처할 나의 처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정형화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2-
언젠가는 닥치리라
늘 최악의 상황은 다가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누누이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이지만
실제로 닥치게 되면 역시 마음속의 다짐이라는 것은
단순 예방차원의 것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늘 하는 말 있지 않은가?
바닥이라 생각하는가. 지하실을 보게 된다.
인생의 굴곡은 사람의 생각을 훨씬 넘어서는
끝없는 밑바닥이 존재한다.

사람은 약하다.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해 본 사람이라고 해도
재앙이 닥쳤을때 면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보게 된다.

일가친척, 가족의 죽음을 한 두번 본 것이 아니지만
늘 그 과정은 새롭고, 새로와서 서럽고 슬프다.


-3-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니까.
수술을 받아보자고 하신다. 위험성도 상당히 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는 수술을 해 봐야 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불확실성만큼 사람에게 절망과 희망을 강요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천천히 돌이켜보면

언젠가는 어떤 경로로든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은 그 과정을 밟게 되어 있고 목도하고 집례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슬픔이 지나가고 애통함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간 뒤에는
돌아올 수 없는 추억에 대한 회한이 남으리라.
그것이 인생일테니까.
아직은 아니라지만 언젠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끄적거려봤자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
슬프다는 거다.

자식 아닌가
몸에서 태어난 자식인데 말이다.
Posted by 荊軻
,

쿨~

작은 방 한담 2010. 3. 6. 10:24
아침에 빵 먹고
등따시고 배부르니 부모생각이 나서 집에 안부전화를...

H: 뭐하세요
M : 그냥 있다
H: 뭔 일 없죠?
M: 응

H: 아버지는 뭐해요?
M: 운동갔다
H: 수술한지 몇 달 되었다고 혼자 나가요. 같이 다녀 오셔야지.

M: 응, 난 아침에 운동하고 와서 갈 필요 없어.


이 감당못할 시크함이란.

Posted by 荊軻
,
어느 순간 결혼해서 애를 덜컥 낳아버리더니
나보다 훨씬 깊이있게 인생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되어있는
동네 아이들(이라고 할 수가 없구나...이젠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을 바라본다.


나만 제자리에 있는 듯한,
그리고 남자는 영원히 철부지일 수 밖에 없는.


p.s)

이 글을 쓴 게 점심 15:00

그리고 지금 추신을 다는 것이 새벽 1:20분.

어쩌면
나한테도
조금은 예지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荊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