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는 책들

見.聽,感 2011. 10. 27. 00:02
1. 로마제국 쾌락의 역사

 읽다보면 미국이 생각날 수 밖에 없다. 전 세계의 물산을 흡수하는 기형적인 경제구조. 그리고 특권층이 되어버린 로마시민. 로마시민 중에서도 소수인 귀족들의 소비와 문화향유. 그리고 섹스와 취향. 말 그대로 읽다보면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백년정도는 [로마에서 귀족으로 태어나는 것]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상낙원을 향유한 순간이구나 싶다. 현대인들의 취향으로도 감당이 안되는 짓거리를 해 대던 로마인들. 소비의 정점에 오른 문화를 역사적으로 탐구해준다. 인간은 쾌락을 탐구하는 동물이다.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 서울에서 가장 거룩한 곳


저자 김문환교수는 신학과 미학을 전공하신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으로, [건축구조물이 도시에서 갖는 소통의 역할]을 주제로 삼고 쓴 책이다. 서울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성지. 성균관 대성전부터 절두산 성지, 이태원 모스크, 경동교회등 각 종파의 랜드마크가 될 법한 성전들을 망라해서 써 놓았다. 종교색은 별로 없고, 각 건축물의 유래와 상호작용, 현재 그 건물의 사용과 주변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진술한다. 생각보다 훨씬 진중하고 편견없는 저작물이라 놀라웠다.

3.고문진보


과거시험 준비하는 서생도 아니면서 고문진보까지 나서 보게 되었다. 시,서,부를 다 보려면 후권까지 사야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일단 전편만 사서 보기로 했다. 아무리 짱깨짱깨 하더라도 한자가 갖는 압축성의 시상(詩想)은 압도적인 힘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세월의 조탁에 의해 정련되어 남은 글들은 후대가 읽어야만 한다. 명문들이다. 그런데 이걸 언제 다 읽나.


4.닥치고정치

표지의 김어준 얼굴보면서 웃다가 아직 표지를 넘기지도 못했다. 이것부터 읽을까?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 준 희대의 아이콘. 김어준이 [졸라!]를 넘어서 무대정치와 막간극 사이에서 이렇게 줄타기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아마 각하는 아셨을 것이다. 그분은 졸라 섬세하시거든. 씨바.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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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가끔 블로그가 아닌 도구로 일기를 쓴다. 
일기라고 해 봤자 며칠 뒤에 돌아서 읽으면 돈과 여자에 관한 일이 전부다.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인데
당시의 소회를 써 놓은 것이라곤 그런 것 밖에 없으니 나도 참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매천 황현 같은 분은 망해가는 조국의 모습을 그리도 세세하게 기록을 하셨건만...그릇이 다른게지.

각설하고,
사람이 나중에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고 그 것을 몇 줄 글로 갈음해본다 하였을 때
내 삶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글 쓸 수 있는 이가 현대에 몇이나 될까.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고 후대에 알리고 싶은 욕망은 지금도 옛날과 마찬가지리라.

이 책은 선비들의 자서전. 그 중에서도 짧게 자기를 평한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벼슬길에 현달하여 이름을 높인 선비들의 자성이 반이오,
불우한 환경 덕에 처사로 엮인 사람들의 글이 반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솔직한 바,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는 글이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거울을 마주보고 말하듯 엄숙하고 진솔하게 변하는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중종때 형조판서까지 지낸 이자 라는 양반이 자신의 삶에 대해 쓴 글은
무섭기까지 하다.

"선을 좋아하길 독실하게 하지 않고 악을 미워하길 용맹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평생 그렁저렁 보내고 하루하루를 허랑하게 지냈다."

이 구절을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양반은 연산군 때 벼슬을 시작한 사람이다. 왕의 눈을 피해 하루 종일 술만 퍼마셨다.
그리고 중종반정이 일어난 뒤에 조광조와 함게 언관에 제수되었다.
훈구와 사람이 붙었을 때는 중도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조광조는 죽는다.

그렇게 살다가 50이 넘은 지금에 와서 저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맺힌 것이 얼마나 많았으랴.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어쨌건
스스로의 살아온 길에 대해서 준엄하게 이야기하는 책. 예전부터 이런 종류의 책은 있어왔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점점 체계화되는 느낌이고 갈수록 좋은 컨텐츠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긴 한데,
스스로 한적한 곳에서 고인들의 삶을 맑은 물 삼아 내 얼굴을 비춰보는 것도 좋으리라.

* 추재기이의 작가 조수삼의 자서전도 들어있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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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 조수삼이 쓴 당시 떠돌던 야사들을 모아다 내 놓은 기담집.

추재 조수삼은 중인 역관출신이다. 학문이 높고 명철했으나 늙어서 무관말직에 한 번 있었을 뿐 평생을 평민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영조와 정조시대 실학자들의 격동기에 살았던 사내. 이덕무. 김정희. 이서구등과도 교유가 있었던 당대의 재사였지만 그는 사대부의 눈보다는 민중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를 원한 시인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그가 늙은 뒤까지 들었던 기담들을 모아서 [추재기이]를 펼쳐내었다.
이 중에 우리도 아는 설화가 몇가지 있으니 그중 유명한 것이 [일지매], [거상 김만덕]같은 것들이다.

이 책은 사대부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천민과 중인, 길거리에서 이름없이 살다 죽은 사람들의 아름답고 슬프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짧게 읊고 각각의 시를 붙인 것들이다. 
내용들은 하나하나 골계미가 있지만 가만히 읽고 있으면 더할나위없이 서럽다. 인간의 인생에 대해서 이것저것 간명하면서도 선방의 화두와 같은 내용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몇개는 그 짧은 글 속에서도 사람의 눈물을 맺게 하는 것이 있다. 몰락한 양반, 효성스러운 효자, 알아주지 않는 의인, 평생의 정인을 못 만난 기생과 선비 등등 인생사의
모든 화두가 짧은 글 안에서 빛나고, 그 산문을 또한 응축해 놓은 추재의 시문 역시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추재 조수삼은 비록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빈한하게 살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열가지 특출난 재주가 있음을 부러워하고 펴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한다.
그것은 각각
풍모, 시문, 문체, 의학, 바둑, 글씨, 기억력, 웅변, 덕행, 그리고 장수함이었으니

사람의 기상이 인중룡이어도 뜻을 얻지 못함은 말 그대로 천시를 타고나지 못함이었을까.
아니면 이렇게라도 이름을 후대에 남길 수 있는 능력이라도 복되다 해야 할 것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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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격언과 교훈집은 동양과는 달리 장중하고 긴 문체로 이어진 [우화]의 형식을 띄는 경우가 많다. 
의미함축적이고 글자의 행간을 찾아 깊은 뜻을 음미하는 맛이 있는 동양의 고전과는 표현방식이 다른데
기나긴 구절과 문체의 반복적인 장면전환으로 의미를 이해하기는 매한가지로 난해하다는 공통점은 있다.

소개하는 [가윈(거웨인)경과 녹색의 기사]는 중세 아서왕 로맨스중 하나로 나름대로 유명한 작품중 하나인데
얼핏 봐서는 기사의 공훈담 같지만 그 안에는 신학적 상징주의와 더불어 중세인들이 이데아라고 생각한
철인의 이상향이 들어있는 짧은 서시이다.

크리스마스에 아서왕의 궁전에 기골장대한 괴인 [녹기사]가 출현해서 목자르기 게임(이게 게임이야?)을 신청하고
거기에 맞서서 녹기사의 게임을 신청하고 모험을 떠나는 원탁의 기사 거웨인의 무용담이다. 이 서시는 거웨인의
모험을 그리고 있는데 그 과정중에 중세인들의 선(virtue)이라고 생각한 신뢰,관대,예의,순결,연민에 대한 기사의
자기고행을 그려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기사는 그 모든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찾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비단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더라도, 거웨인의 무용담과 그 과정은 [교훈]을 염두해 두고 쓰여진 책일지라도 상당히 시사할 점이 많고, 그의 도덕적 노력과 의무를 진 자로써 갖는 책임감에 대한 용전분투는 독자로 하여금 묘한 쾌감을 갖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에 관한 이야기들은 숱한데, 그 전체적인 개략을 살펴볼 때 어찌보면 가장 완벽한 기사도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아서왕이 아니라 거웨인이다. 아서처럼 운명이 선택한 용사도 아니고 란슬롯처럼 여자에 홀려서 기사도를 팽개치지도 않고 트리스탄처럼 애정에 목말라 자기자신을 파멸시키지도 않고 갈라헤드나 퍼시발처럼 신앙에 종속되어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의 종속자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기사로써는 란슬롯에 버금가는 무용도 펼칠 줄 알고 성질도 가끔 부리고 미련퉁이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는 기사의 본분을 넘어서지 않고 늘 자신의 모자람에 대해서 고민하고 늘 고친다. 
녹색의 기사 말고도 유명한 거웨인의 설화 중 하나는 거웨인이 장가가는 에피소드인데, 이 이야기에서 그는 자기보다 한참 격이 낮고 못생긴 아가씨를 부인으로 맞게 됨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써, 그리고 현명한 자에게 배우는 말학의 모습으로 충실하게 부인에게 외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거웨인은 중세민중이 가장 숭앙하면서도 가장 가깝게 느끼는 [훌륭한 기사]의 원형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짧은 시집인데, 중세어로 쓰여진 이책을 이동길 교수는 10년에 걸쳐 번역해냈다고 한다. 번역자에게
은총있으라.

p.s) 사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인지라 이 주제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꽤 있었다

그 중 유명한 건 1984년에 나온 [Sword of Valiant], 거웨인과 녹색기사라는 타이틀의 영화였다.
이 영화는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공중파 방영이 되었던 영화다. 주인공 거웨인이 누군지는 예전에 까먹었지만
녹색기사의 위광이 너무 당당해서 아직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다.

[숀 코네리] 이 아저씨가 녹기사로 등장을 하셨으니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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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악마가 공존하던 시절, 음울한 중세를 배경으로 한 명의 정의의 검사가 악을 응징한다.
그런데 이 자는 악인가 구원인가. 자비라고는 한톨도 찾아볼수 없는 무자비한 전사가 
악을 넘어서는 악함으로 세상을 구원한다...

[야만인 코난]으로 환타지 소설에 지울 수 없는 획을 그었던 불세출의 작가 로버트.E.하워드의
첫 장편작이 바로 이 [솔로몬 케인]이다. 그가 야만인 코난 이전에 만들어낸 수많은 비정불굴의
캐릭터 중 하나. 하지만 그 음울한 내용은 후대 환타지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더랬다.

세월이 세월이다보니, 소재의 고갈을 견디지 못한 헐리우드가 작심하고 과거의 소설들과 게임, 만화들을
파 제끼기 시작한 지 벌서 한참 되었다. 이 소설이 나올 법하다고 믿은 것도 꽤 되었는데 이제서야
영화화되어 나타난 모양이다. 주인공은 제임스 퓨어포이. 그게 뭐하는 놈이더라 하는 양반중에
미드 [ROME]을 보신 분이라면 얼굴이 익숙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느끼남 안토니우스가 저렇게 변했다.

영화는 좀 B급 병맛으로 뽑힌 모양이던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특혜를 입게 되었다.

영화덕에 이 시리즈가 한글로 번역되어서 들어왔단 말이지!!!!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도 영어가 딸려서 못 보고 있었는데 ㅠㅠ

3월달에 내게 일어난 즐거운 일이라면 이 놈 하나랄까나.
얼른얼른 피튀기는 중세기담을 보고 싶어서 학학대는 중년남.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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