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그득 빠그득

어젯 밤에 꿈을 꾸는 중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하고 같이 어딜 가고 있었던가 아니면 나 혼자 어딜 가고 있었던가
하여간 처음 보는 황무지를 걸어가고 있었다

빠그득 빠그득

발소리인지 신발에서 나는 소리인지 하여간 귀가 아프게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가 꿈에서 내게 뭐라고 했고,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디까지 가야하는 건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조용히 가지도 못할 거 왜 그렇게 시끄럽게 구냐는 핀잔이었는지. 하여간 그 인간하고 싸우려고 했던것 같은데...내가 아는 사람이었나. 아니며 모르는 인간이었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였나?

빠그득 빠그득

시끄러워서 눈을 떴다. 
꿈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고양이들이 뭔가 또 갉아먹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해!"
소리치고 자리에 누웠는데 빠그득 빠그득 소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이 자식들, 오밤중에 미쳤나. 궁둥짝에 불이 나려고 하는 짓인가
뭘 갉아대길래 저런 빠그득 빠그득 소리를...

빠그득 빠그득

갑자기 눈이 떠졌다

빠그득 빠그득

집안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빠그득 빠그득

현관에서 나는 소리다.
열쇠구멍 긁는 소리

빠그득 빠그득

조용히 뒷발을 들고 현관으로 다가간다. 고양이들하고 살면서 소리나지 않는 법은 터득한지 오래다

빠그득 빠그득

확실하다
누군가 현관 열쇠구멍을 뭔가로 쑤시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일단 곁눈질로 부엌의 일각별작 이 어디있나 확인해본다

"누구요!"
큰소리로 현관문에 붙어서 호기롭게 외친다. 
뭐, 안 열어주면 그만이고 까불면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오빠 나야"


순간 온몸의 소름이 버썩 올라오는데
목소리가 누군가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 죽어가는 목소리같기도 하고
이걸 열었다가 갑자기 시퍼런 칼이라도 튀어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 등등
오만잡상이 다 튀어나오는데

"오빠"

죽어가는 목소리가 다시 날 부른다
누굴까.
내가 아는 여동생이 새벽에 날 찾으러 올 리가 있나
싶었지만 이미 난 문고리를 따고 있었다.
진짜 죽어가면 우짜노. 날도 추운데

쇠고리를 끼운 채 덜컥 문을 열었는데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검은 마스카라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기절하지 않은게 이상했다.
생각보다 난 겁이 없나보다.

"누구세요?"

"거긴 뉴구? 여기 우리 8...어머어머"

일본 게이샤처럼
두께10cm는 되어보이는 화장빨의 아가씨는 고개를 상모돌리듯 흔들더니
우리집 앞에 문패를 잠깐 보고 다시 내 얼굴을 본다

"아주쒸, 쥐에송해요"

갑자기 얼굴이 호로록 사라진다.
그제서야 나는 쇠고리를 떼고 문 밖으로 빼곰 얼굴을 내밀었다.
술취한 아가씨가 롱부츠를 신고 발레하듯 양발을 미친듯이 휘저으며
옆으로 앞으로 비틀대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대체 이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올라온 거지.

아가씨 좇아내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반.

아우
이게 뭔 경우란 말인가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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