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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22 메탈기어 시리즈. 게임 이상의 함의. 5
얼마 전 국전에서 업어온 메탈기어4. Guns of Patriot를 며칠 전에 끝냈다. 사실 밀린 일이 있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잡으면서 하지는 못했지만 엄청나게 집중해서 한 듯 하다. 전작 [스네이크 이터]와 [sons of liberty]를 거진 일주일간 붙잡고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꽤나 열심히 단기간동안 깬 것이다. 물론 4편의 집중력이나 구성이 전작들만 못할 수도 있고, 코지마 히데오가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게임성보다는 내러티브에 중점을 두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메탈기어 시리즈1편을 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 40대를 넘겼거나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여야 한다.
MSX를 기반으로 나온 잠입액션. 그 첫 시작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 팩키지를 기억하는 당신은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섰을것이다)

총을 쏘지 않는 액션게임. 이 게임이 들키지 않게 숨어들어가는 [잡입액션 장르]의 시초이자 20년은 이어질 장대한 서사시가 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코지마 히데오가 그런 기획안을 가지고 만들었는지조차 의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 게임의 성공과 함께 뒤이어 20년간 등장한 [메탈기어2] [메탈기어 솔리드] [선즈오브 리버티] [스네이크 이터] [선즈 오브 패트리어트]로 이어지는 [메탈기어 사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패러렐 월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초기 메탈기어의 게임 스토리는 단순했다.
핵탄두를 세계 아무곳으로나 이동해서 쏠 수 있는 2족보행 전차. 말 그대로 비대칭무기 중에서도 발군인 특급무기[메탈기어]를 막기 위해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가 파견되고, 그를 막는 끝내주는 능력의 적들을 해치우고 기지에 잡입해 메탈기어를 파괴하면 되는 것이다. 메탈기어1,2편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엔딩을 맞는다.

(아~ 정겨운 도트)

그런데 스토리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만들어진 콘솔용 타이틀 [메탈기어 솔리드]부터 스토리의 궤가 달라진다. 아에 그래픽도 환골탈태했지만, 게임의 배경자체가 엄청나게 선이 굵어져 버린 것이다. 

메탈기어의 개발 뒤쪽으로는 세계의 군수시장과 전쟁경제를 통제하려는 미국과 그 미국의 상층부를 쥐고 있는 집단의  발톱이 숨어있고, 메탈기어를 탈취한 세력은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정보와 나노머신으로 통제하려는 (무형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는 자유의지의 용병들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는 체제유지를 위해 길러진 사냥개. 그리고 그 자신은 자기가 싸우는 라이벌들과는 태어날때부터 애증의 관계로 묶여진 숙명이 걸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무슨 운명의 희비쌍곡선인가.

(최강의 병사 솔리드 스네이크, 인물 설정은 영화 '뉴욕탈출'의 주인공이었던 커트러셀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영화에서 커트 러셀의 이름은 [스네이크 플린스킨]/ 플린스킨이라는 이름은 (선즈오브리버티)에서 솔리드 스네이크가 가명으로도 사용한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전쟁기계, 살육기계로 태어난 용병들의 자유의지와 그들과 사상을 같이 하지만 그들을 막아서야 하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장대한 이야기는 근 20년간을 끌어온다. 각각의 에피소드들 자체가 힘이 있고, 코지마 히데오의 연출력은 가히 장인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기 흥에 못 이겨 가끔 신파+일본 무사도에 빠지는 기나긴 동영상(이 게임들은 대대로 동영상과 플레이의 비율이 거의 맞먹고, 엄청나게 긴 엔딩을 자랑한다)들을 보면 좀 얼이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적재적소에 배치한 블랙코미디도 꽤나 플레이어를 즐겁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선즈오브리버티를 오밤중에 혼자 하다가 갑자기 게임에서 "당장 게임을 중지하고 전원을 꺼! 실제상황이다" 라는 메시지가 떠서 엄청나게 당황했던 적이 있다.

결국 20년 뒤, 프리퀄(스네이크 이터)이후 만들어진 최후작 (선즈 오브 패트리어트)로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는 그 끝을 맺는다. 설정상 끝을 내는 게 맞다. 그동안의 기나긴 전투와 싸움 끝에 미국으로 대표되는 군산복합체와의 힘겨운 싸움을 끝내는 라이벌과 그 라이벌을 없애야 하는 스네이크의 대결은 뭔지 뻔하지만 그 자체로도 가슴 한 군데가 아리다. 마지막에 백발이 성성해진 스네이크와 스네이크의 숙적 리퀴드 스네이크의 육탄대결은 70년대 다찌마리 영화를 연상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영화문법상 어울리는 것이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나노머신의 부작용으로 노화가 진행되는 마지막편의 솔리드 스네이크)

(최후까지 솔리드의 적으로 남는 리볼버 오셀롯. 인물 설정은 [석양의무법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맞수였던 명배우 리 반 클리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
개인적으로 이 게임 시리즈를 통해 가장 놀랐던 것은
게임의 백그라운드를 이렇게 설정할 수 있는 일본의 자유로움이었다.
사실, 이 게임 전반에 흐르는 것은 반전주의와 탈전체주의. 궁극적으로는 아나키즘에 가깝다.
60년대생인 코지마가 전공투였을리는 만무하지만 그 사상의 맥은 일본의 전공투세대와 닿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개인을 구속할 수 밖에 없는 국가체제에 대한 저항과 그 방법으로써 찾아내는 폭력으로의 인간회귀라는 것을 게임에서 구현해서 20년을 끌어왔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좌빨]내지 [Programmer from 'The' North]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나라를 배신한 반역자라는 흔한 코드와 그것에서 한술 더 떠 체제를 파괴하는 세력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나노머신을 통한 인간의 구속, 정보통제로 인한 경제독점과 그 수단으로써의 전쟁. 전쟁을 통한 체제유지. 
약간의 SF를 양념으로 칠해놓았지만 어떤 부분은 쓰디 쓴 현실이다. 이미 소년병은 아프리카에선 흔한 병제중 하나이며, 블랙워터(black water)로 대표되는 미국의 용병회사들은 돈을 받고 무력을 정당하게 팔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이 사용되고 있음은 이미 이라크전으로 세계 만방이 깨달은 바 있고, 수많은 전쟁들 역시 구성원 개개인의 명분이 아닌 실체없는 체제유지를 위한 도구이며, 프로파간다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게임타이틀로 구현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 내 오버일수도 있겠지만 게임 하나가 검열당하는 뉴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루리웹의 누군가가 이렇게 글을 올렸다. [메탈기어 시리즈]는 왜 허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지 못하는가? 간단하다. 미국에서 어떤 놈이 만들겠냐고. 이런 내용을.

나는 이 시리즈를 플스2용 선즈 오브 리버티부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시작한 게임을 좀 늦은 2010년에 끝냈으니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서야 엔딩을 본 것이다. (2008년에 건즈오브패트리어트가 플3용으로 나왔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뭔가 유치해보이기도 하는 신파를 동영상에서 확인하고 쓴웃음을 짓곤 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내용이 아직까지도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됨에 쓴 입맛을 다신다. 정말로 자유의 아들들이 세상을 재정립하는 날이 올까. 단지 그것은 코지마 히데오가 만들어낸 한없이 가벼운 인류의 보편적 희망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삐딱한 내가 평범한 타이틀을 보고 흥분해서 지껄이는 과대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전 시리즈에서 제일 좋아했던 히로인 에바 사진으로 두서없는 마무리를...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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