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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2 컨닝에 관한 기억 2
태어나서 딱 한 번,
그것도 일생일대의 자리에서 나는 컨닝을 해 본 적이 있다.

학력고사 날이었다.
솔직히 컨닝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적도 없고, 해 볼 생각도 없었고 그 뒤에도 컨닝은 해 본 역사가 없다. 대학교 때는 내가 쓰는 답이 정답이고 교수가 틀렸다고 믿는 [왕재수]가 나였기 때문에......아, 이야기는 이게아니고 내가 왜 컨닝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다시 돌아가보자.

그 때가 3교시였나 하여간 제2외국어 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내 제2외국어는....흐흠,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불어였다. 지금은 꼬망딸레부 트레비엥 정도밖에 못 하지만 그 때는 상당히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막히는 것 없이 술술 문제를 다 풀고 주관식 5개를 쓰기만 하면 되었는데

3번 문제가 아리까리 한 것이었다. 악상떼기가 붙는지 그라브가 붙는지 뭐 이런것부터 시작해서 뭐가 뭐더라 한참 고민을 하다가 문제를 일단 적어두고 다른 답을 맞춰보고 있었는데
내 앞에 앉은 여학생이 갑자기 기지개를 켜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팔을 슬쩍 어깨위로 올린 순간
나는 그 여학생이 쓴 불어 주관식 답안지의 3번문제를 보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3번 문제에 진짜 대빵만하게 적어놓은 그 아가씨의 답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아가씨 답이 정답이었다.

악상떼기고 그라브고가 아니었다. 내가 쓴 답이 전적으로 틀리고 그 답이 전적으로 맞는다는 확신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저 답이 맞다.
100% 맞는 답이다.

한 5분 정도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쨌건 컨닝을 했는데 그 답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근데 저걸 내가 쓴 답으로 써야 하나?

눈 질끈 감고 현실과 타협했다. 아가씨 미안하우. 우리 나중에 합격하면 내 밥이나 사주리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붙고 그 아가씨는 떨어졌다.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의도한 것도 아니고 그저 눈에 보여서 쓴 것이긴 하다만
내가 맞춘 문제 하나 때문에 그 여자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도 마음이 가끔 뒤숭숭하다.

이걸 뭐라고 할 수 있을까.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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