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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1 결혼할 때&장례식 때 2
인생의 추억록에서 [나]란 존재를 백지처럼 여기다가

갑자기 삶에 저 두가지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면
내 이름이 찬란한 황금문자로 박혀서 추억록 가운데 떡 박히게 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나 장가간다. 오빠 나 결혼해요
이런 문자+전화가 온다.

'근데 젠장 넌 대체 누구세요?' 라고 할 수도 없고 보통 그런 문자나 전화는 좋게좋게 말하고 끊지만
기분 찜찜한 건 별 수 없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추억의 귀통이에 박힌 존재에 불과한 나를 어느 날
현실세계에서 만나려고 하는 것은 단 하나, 봉투나 받으려는 짓거리라고 밖에 확대해석할 수 없다.
(이럴 때 얼굴이나 보자...는건 거짓말임. 친하지 않은 놈들은 사진 안 찍고 밥먹으러 가고 눈도장 찍어봤자 결혼식 당일날은 삐에로 분장을 하고 가도 결혼 당사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 이런 전화 오면 그런 생각만이 든다.
"세상에 친구라는 귀한 명사를 참 걸레처럼 쓰는 것들이 있구나."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가지 않는다. 어차피 갔다오면 자기들 삶에 매몰될 놈들이니.

2.
하지만 두번째 경우는 좀 망설여진다.
결혼이야 지 좋은 맛에 했다쳐도 장례를 누가 좋아서 치루는 놈이 있을 것이며

결혼식때 룰루랄라 아 이놈은 그래도 나랑 연분이 있지 하고 심심풀이 청첩장 날리는 수준하고
장례식 때 머리속이 텅 빌때 아, 이녀석은 그래도 내 친구니까 와줄거야 하고 연락하는 것은
엄밀하게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가게 된다.
어느 순간 기억의 회로에 불이 다시 들어와서 과거에 묻어뒀던 내 이름에 조명이 들어왔다 할지라도
누군가 막막할 때 부르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일 아닌가.
최소한 친구는 아니라 지인, 면식일지언정 그 정도면 내가 잘 처신했구나 싶은 것이다.

물론,
전화 건 놈이 누군지조차 모를 경우나
내 연적이었거나 기분 나쁘게 깨진 전직 여친이라던가
가문의 원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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