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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2 디스트릭트9 - 타자와 자아의 매개란 2
영화제목을 써 놓긴 했지만 별다른 스포일링을 만들 꺼리는 없다.
누구나가 알 수 있는 스토리였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대한 것이 모든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

이미 아파르트헤이트로 유명한 남아공이 배경이고
예고편만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뻔해 보이던 District9.

내용에서 움직이는 것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행동을 결정짓는 타인들의 행동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과 아는만큼 보이는 것에서 더 들어가 타인의 관점으로 시각을 옮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 영화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빼 놓고 보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이스라엘 애니메이션과 대척점에 서 있다.
배경과 환경은 극도로 비슷하지만 주인공이 겪는 시점의 변화는 정확히 달라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내가 타자화 되어서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지식의 체득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느낌인 것이다.
내가 새가 되어서 하늘을 날아 보았는가?
나는 비행기를 타고 작은 창문으로 멀어지는 대지를 바라본 경험밖에 없다.
[새처럼 하늘을 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새가 되지 못하니까.

가난한자의 슬픔에 대해서 아는가?
고독한 자의 외로움에 대해서 아는가?
아픈 자의 서러움에 대해서 아는가?

공감은 해도 알 수는 없다. 왜. 나는 철저한 타자니까.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냉엄한 현실이니까.

순간체험을 위해서, 경험을 위해서 어느 날 유흥삼아 며칠간은 노숙자 흉내를 낼 수 있다 치자.
하지만 난 맘만 먹으면 다시 따듯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중산층이라고 치자.
난 노숙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내가 철저하게 내가 원하는 자의 삶이나 내가 바라보는 자의 삶에 동화되고 싶다면
지금의 나를 버려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된다면 나는 지금의 나로 돌아가지 못한다. 사람은 두 군데에 동일하게 영혼을 갈라놓고 살 수 없다.
그것은 알량한 줄타기일 뿐이고, 지식인의 가벼운 유희일 뿐이다.
내가 타인이 되려면 지금의 내가 타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존재의 괴로움을
느끼며 살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매개체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선택뿐이다.
이대로 남아서 거리를 두느냐? 아니면 그와 함께 동화될 것이냐?
환경에 의해 떠밀리지 않는 한 선택은 유효할 것이다.
그리고 늘 인간은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것이고.

Posted by 荊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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